회차 3
한세라 POV:
더 이상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 아파트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무자비했다.
내가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자의 모든 사진, 모든 선물, 모든 기억이 검은 쓰레기봉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단순히 여행 가방을 싸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삶을 지우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조직과는 무관한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고, 내 정신을 온전하게 지켜주던 작은 독립 제작사였다.
내 상사인 미란 팀장님은 내가 사직서를 내밀자 슬프고 지친 표정으로 내 말을 들어주었다.
동료인 대성이와 소희는 나를 안아주며, 강태준은 원래부터 사람을 조종하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단순하고 솔직한 지지가 상처투성이인 내 마음에 연고처럼 발렸다.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강태준이었다.
열 번째 전화가 올 때까지 무시했다.
“어, 자기야.”
그의 목소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쾌했다.
“어젯밤 일 말인데, 미안해. 오유라가 워낙 극성스러워서. 아무튼, 웨딩 플래너랑 얘기해봤는데. 봄에 우리 저택에서 결혼식 올리는 거 어때….”
그의 어처구니없고 경악스러운 오만함.
그는 진심으로 내가 아직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날카롭고 까다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강태준, 전화 끊어. 내 언론 보도 건 얘기해야 하잖아.”
“끊어야겠다.”
그가 갑자기 말했고, 전화는 끊겼다.
몇 시간 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전화가 아니라, 한 가십 사이트의 뉴스 알림이었다.
헤드라인은 이랬다.
‘새로운 파워 커플: 강태준과 오유라, 신규 프로젝트 축하.’
사진 속 그들은 샴페인 잔을 부딪치고 있었고, 그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소유욕 넘치게 감싸고 있었다.
차갑고 깨끗한 분노가 나를 휩쓸고 지나가며, 단 하나의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확신으로 굳어졌다.
이건 이별이 아니었다.
전쟁이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음성사서함으로 넘길 뻔했지만, 어떤 직감이 나를 이끌어 전화를 받게 했다.
“세라 씨?”
익숙한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
노 실장이었다.
“태준이가… 좀 이상합니다. 오유라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서울대병원에 있어요. 세라 씨 이름만 부르고 있습니다.”
“오유라도 같이 있나요?”
나는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급실에 내려주고 가버렸습니다.”
물론 그랬겠지.
그리고 내 안의 배신자 같은 부분—오래되고 어리석었던 보호자로서의 나—가 원치 않는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동정심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짊어져 왔던 의무감의 유령이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의 버팀목이었기에, 그를 바로 세우려는 본능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었다.
“제발요, 세라 씨.”
노 실장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건 보살핌의 행위가 아니었다.
마지막 단절이었다.
그가 망가진 모습을 직접 봐야 나 자신도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갈게요.”
내가 말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조용한 맹세를 했다.
이것이 마지막 희생이 될 것이다.
내가 잿더미 속에 남겨두고 떠날 삶의 마지막 행위이자, 내가 강태준을 위해 하는 마지막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