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문이 열리자마자 소파 위에서 두 몸이 뒤엉켜 있었다. 소예담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하수명의 집으로 오는 내내, 그녀는 2년간의 장거리 연애를 드디어 끝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 그가 얼마나 놀라고 기뻐할지 상상했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한 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추악한 장면이었다.

그녀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 소파에서 얽혀 있는 두 사람을 노려봤지만, 두 사람은 너무 몰입한 탓에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역겨움을 꾹 참으며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두 사람이 자세를 바꾸는 순간, 소예담과 눈이 마주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수명도 화들짝 놀라 담요를 끌어당겨 몸을 감싸고는 여자를 등 뒤로 숨겼다. 하수명은 소예담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소예담은 눈시울을 붉히며 비웃었다. "이렇게 멋진 장면은 기록해서 SNS에 올려야지."

하수명은 뒤에 있는 여자가 알몸인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요를 끌어당겨 제 몸부터 가린 채 소예담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단체 메시지로 뿌릴 거야."

소예담이 위협했지만 하수명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다가왔다.

소예담은 망설임 없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수명은 충격에 휩싸였다.

평소 온순하고 착하기만 하던 여자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저지를 줄이야!

"소예담, 죽고 싶어!" 하수명은 소예담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소예담이 휴대폰을 높이 들어 올리자, 화면에는 이미 112가 눌려 있었다. "경찰에 신고했어."

하수명은 눈을 크게 뜨고는 말문이 막혔다. "너..."

소예담의 가차 없는 모습을 본 하수명은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래, 네가 이겼어!"

소예담의 두 눈에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다. "2년이란 시간, 개나 줘버린 셈 칠게.

아니, 넌 개만도 못해."

하수명의 집에서 나온 소예담은 곧장 육민정의 집으로 향했다.

육민정의 집에서 닷새를 머무는 동안, 육민정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수명을 욕했다.

그날 아침, 소예담이 휴대폰을 보며 울적해하는 모습을 본 육민정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런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슬퍼할 가치도 없어."

소예담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슬프지 않아. 다만 아빠가 소개해 준 결혼 상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뿐이야."

"뭐?"

소예담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결혼 상대를 소개해 주었다며, 빨리 집에 돌아와 상의하자고 재촉했다.

남자는 집안도 좋고,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외동아들이라고 했다.

그녀가 결혼을 승낙하기만 하면, 남자 집안에서 10억 원의 예단을 주고, 두 달 안에 임신하면 1억 원을 보너스로 준다고 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아이를 낳기만 하면, 그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 셀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될 거라고 했다.

육민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가 막힌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건 네 새엄마 계략일 거야. 정말 그렇게 좋은 자리라면, 왜 자기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겠어? 그거 완전 불구덩이야."

"너 뭔가 아는 거 있어?"

"응. 근데 중요한 건 쏙 빼놓고 말했네."

"응?"

육민정은 말을 이었다. "그 남자 이름은 모건우야.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많고 능력도 뛰어나지. 구현성의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그와 결혼하고 싶어 했어. 그게 안 되면 하룻밤이라도 같이 보내고 싶어 했지."

"모건우..." 소예담은 그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다. "왠지 익숙한 이름인데."

육민정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구현성에서 그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지."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작년에 그 남자가 불치병에 걸려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어. 원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바로 해외로 도망갔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이건 뭐 영혼결혼식이나 다름없는 거지."

그런 거였구나. 참 안타까운 사람이네.

육민정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계모 밑에서는 자식도 못 알아본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네 새엄마는 네가 그 집에 시집가서 청상과부가 되길 바라는 거라고."

"그 남자가 죽으면 재혼하면 되지."

육민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너 정말 그럴 생각이야? 그 남자, 이미 가망이 없다는데 지금쯤 몰골이 어떻겠어? 그리고 이 시점에 결혼하려는 건, 죽기 전에 후사나 보려는 거 아니겠어?

완전 변태지!"

소예담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돈을 많이 준다고 했어."

"..."

"그리고 그 남자가 죽으면, 내가 그 재산을 상속받게 되잖아." 소예담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가 되면 돈 많고 자유로운 싱글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겠어."

육민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너 충격받아서 정신이 나간 거야?"

"아니." 소예담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랑이라는 건 귀신과 같아. 소문만 무성할 뿐, 본 사람은 없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 좇지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결국 돈 많이 벌어서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는 거 아니야? 눈앞에 지름길이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육민정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네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지?"

소예담은 싱긋 미소 지었다. "그게 현실이니까."

그날 밤,

하수명은 다른 사람의 휴대폰으로 소예담에게 전화를 걸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년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가 번호를 바꿔가며 계속 전화를 걸어오는 통에, 소예담은 몇 개의 번호를 차단하다가 결국 휴대폰을 꺼버렸다.

다음 날, 소예담이 휴대폰을 켜자마자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대부분 하수명이 보낸 메시지로, 온갖 욕설로 가득했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도 난리가 났다. 잠자리를 가진 적도 없는데, 하수명은 소예담의 가슴이 성형한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요염하게 생겨서는 순진한 척하는 위선자라고 욕했다.

아무튼, 하나부터 열까지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었다.

소예담은 심호흡을 했다. 모든 일에는 다 뜻이 있을 거라고,

하늘이 그녀에게 그 쓰레기 같은 놈의 본모습을 일찍 알아보게 하려고 그 장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소창현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모씨 가문의 대저택에 도착했지만, 모건우는 만나지 못하고 그의 부모님만 만났다.

소예담이 모건우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소예담은 한 가지 조건만 내걸었다. 바로 혼인신고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그녀가 내건 표면적인 이유는 합법적인 부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은 필요 없다고 했다.

상대방은 당연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마음을 바꿀까 봐 전전긍긍했다.

양측은 바로 합의했고, 모건우의 아버지는 구청 직원을 집으로 불러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때, 소예담은 모건우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 남자는 육민정의 말대로 잘생긴 외모에, 특히 깊고 신비로운 눈빛은 사람을 홀리는 듯했다.

이런 남자가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녀와 엮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소예담은 손에 들린 혼인 신고서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비록 합성 사진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모건우의 어머니는 결혼식은 생략하지만 예단은 그대로라며 은행 카드를 건넸다. 생활비까지 두둑이 챙겨주었다.

아무튼, 그녀는 매우 관대했고, 소예담은 카드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카드를 받았다.

다시 혼인 신고서로 시선을 돌린 그녀의 눈길이 '모건우' 세 글자에 멈췄다. 그 남자는 부모님이 자신을 이렇게 '팔았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기분일까?

모씨 가문의 대저택을 나설 때,

아버지 소창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모씨 가문에서 아버지한테 꽤 큰 이득을 약속했나 봐요."

소창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소리냐?"

"더 이상 연기하지 마세요." 소예담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를 쳐다봤다. "아버지한테 득 될 게 없었다면, 저를 찾지도 않으셨을 거잖아요."

소창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담아..."

소예담은 그의 뻔한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손을 저었다.

그녀는 앞장서서 걸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

육민정은 소예담이 정말 모건우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못하며 제자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네 아빠 정말 잔인하다. 불구덩이인 줄 뻔히 알면서도 너를 밀어 넣다니. 너도 바보야? 왜 그렇게 빨리 혼인신고를 한 거야? 그 남자가 널 괴롭히더라도 혼인신고를 안 했으면 도망칠 수라도 있었을 텐데. 이제 법적으로 부부인데, 그 남자가 널 어떻게 하려 해도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된 거야."

육민정은 걱정과 분노에 눈시울이 빨개졌다.

친구의 걱정에 소예담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육민정을 위로하며 말했다. "혼인신고는 했지만, 그 남자 앞에 나타날 생각은 없어."

육민정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소예담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반짝였다. 조금은 악마다운 생각이었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네가 그랬잖아, 그 남자 내년 2월도 못 넘긴다고. 3개월도 채 안 남았어. 일단 숨어 있다가 그가 꼼짝도 못 하게 되면 그때 나타날 거야."

소예담은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했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그녀가 그 말을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누군가 그녀를 찾아왔다.

"모 선생님께서 사모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

회차 2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

소예담은 히터가 아무리 따뜻해도 마음은 여전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시한부 인생, 그가 무슨 짓을 한들 상관없었다.

소예담은 심호흡 한번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육민정에게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차는 구현성에서 가장 큰 클럽 앞에 멈춰 섰다.

운전기사는 공손하게 차 문을 열어주었지만, 그 태도에 존경심은 한 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소예담이 차에서 내리자, 남자가 앞장서서 걸었다.

눈부시게 화려한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 방 앞에 멈춰 선 남자가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모 선생님,

사람 왔습니다." 남자는 소예담에게 턱짓으로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그녀는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밀폐된 공간에 긴장감이 감돌았고, 희박해진 공기에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시선을 돌리자 소파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다리를 꼬고 가죽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아 있었다. 거리가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담배의 빨간 불빛만이 깜빡였고, 공기 중에 옅은 담배 냄새가 퍼져 있었다.

소예담은 심호흡을 하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사진발이 잘 받지 않았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잘생겼다. 사진보다 얼굴이 병적으로 하얗다는 것만 빼면.

단추를 몇 개 풀어헤친 검은색 셔츠 사이로 드러난 목과 쇄골 라인이 유난히 섹시한 분위기를 풍겼다.

병적으로 하얀 피부는 그의 입체적인 이목구비를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아주 맑아 보였고, 죽을 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 얼굴이라면,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할 만했다.

가까이 다가간 소예담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견했다.

그랬다, 그의 혼인관계증명서는 그의 어머니가 가져갔었다.

아들의 혼인관계증명서까지 발급했으니,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

"재물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말, 못 들어봤나?" 모건우는 눈앞의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런 상황에 제 발로 기어들어 온 여자가 돈 말고 다른 목적이 있을 리 없었다.

돈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임을, 소예담은 금세 알아차렸다.

그녀는 아예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제가 당신을 흠모해서, 오랫동안 이 결혼을 계획해 왔을 거란 생각은 왜 못 하세요?"

모건우는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더욱 세게 쥐었다.

오랫동안 계획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건우는 소예담의 거짓말과 가식적인 미소를 단박에 꿰뚫어 보았다.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긴 손가락을 까딱이며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소예담은 마른침을 삼키고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모건우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몸을 바로 하더니, 소예담의 손목을 잡아채 힘껏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힘에 소예담은 속수무책으로 그의 품에 쓰러졌다가, 이내 그에게 밀쳐져 그의 무릎 위에 앉혀졌다.

허리에 단단한 손이 감기자, 그의 뜨거운 손바닥이 느껴졌다.

외투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바닥이 닿은 곳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그는 소예담에게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혼인관계증명서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나를 흠모한다고?"

소예담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혼인관계증명서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턱을 긁어 불쾌했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그의 눈을 마주했다. "구현성에 있는 미혼 여자들이라면, 아마 다들 당신을 흠모하겠죠."

"하."

모건우는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죽는 건 안 무서운가?"

"무서워요."

모건우는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소예담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언젠간 죽을 텐데, 죽기 전에 흠모하는 사람이랑 부부로 살아보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서요."

모건우의 뇌리에 네 글자가 떠올랐다. 황당무계(荒唐無稽).

그는 소예담을 힘껏 밀치고 그녀가 앉았던 자신의 다리를 손으로 툭툭 털어냈다. 혐오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혼해."

소예담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가 바닥에 던진 혼인관계증명서를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혼 숙려 기간은 한 달이에요."

모건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쏘아봤다. "내가 그게 필요할 것 같아?"

소예담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에게 숙려 기간은 필요 없을 터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모건우는 훤칠하고 곧은 몸매를 드러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잘록한 허리, 곧게 뻗은 다리로 소예담의 옷자락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가 자신을 훑어보는 노골적인 시선에 소예담은 그를 감상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저, 이혼 안 해요."

모건우는 걸음을 멈췄다. 그의 두 눈에 음산한 냉기가 서렸다.

소예담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모건우는 위험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고요." 소예담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당신의 아내가 되어야만, 정식으로 당신을 돌보고, 아이도 낳아드릴 수 있어요."

"당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든, 저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 이기심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당신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소예담은 감정에 북받친 듯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스스로도 감탄할 만한 연기력이었다.

모건우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차갑게 물었다. "뭐든지 다 하겠다고?"

그의 압박감에 소예담은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건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소예담은 그의 미소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건우는 다시 자리에 앉아 다리를 살짝 벌렸다.

"무릎 꿇어."

소예담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그가 벌린 다리와 음산한 눈빛, 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는 그녀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도 못해?"

소예담은 육민정이 말했던 '변태'가 어떤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모건우의 눈에 담긴 경멸을 본 소예담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외투를 벗어 소파에 던졌다. 그리고 머리를 질끈 묶고 그의 다리 위로 올라타 무릎을 꿇었다.

"이러면 돼?"

그녀는 모건우보다 조금 더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의 눈에 찰나의 놀라움이 스치는 것이 보였다.

몸에 꼭 맞는 검은색 니트는 그녀의 볼륨감 있는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고, 청바지는 그녀의 엉덩이를 아찔하게 감싸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두 사람의 숨결이 뒤섞였다.

두 사람의 자세는 야릇하고 섹시했으며, 금방이라도 뜨거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예담은 혼인관계증명서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웠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가 매혹적인 여우상이었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눈빛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모건우는 두 팔을 벌려 소파에 느른하게 기대앉았고, 깊은 눈동자에 그녀의 매혹적인 미소를 가득 담았다.

"벗겨."

차가운 입술이 열리며 나른한 명령을 내뱉었다.

소예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그의 가슴 앞으로 손을 뻗었다.

파뿌리처럼 희고 고운 손가락이 검은색 단추 위에 놓이자, 마치 흑백의 바둑돌이 부딪히는 듯한 미감이 느껴졌다.

소예담은 느릿느릿 단추를 풀었고, 단추가 단춧구멍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그의 가슴팍이 조금씩 더 드러났다.

구릿빛이 아닌 하얀 피부는 또 다른 종류의 유혹이었다.

단추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점점 더 많은 속살이 드러났다.

소예담은 숨을 죽인 채 더 이상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살짝 눈을 들자, 모건우가 무심하게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태도와 표정은 마치 옥좌에 앉은 왕과도 같았다.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은 그를 즐겁게 하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소예담은 마지못해 그의 단추를 계속 풀었고, 그녀의 손이 그의 복근에 닿을 무렵 그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소예담은 그의 깊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느려터져서 어느 세월에 애를 낳겠다는 거야?" 모건우는 그녀의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소예담은 숨이 가빠왔지만,

여기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무작정 할 수는 없잖아요. 듣자 하니, 감정이 동했을 때 가진 아이가 더 예쁘고 똑똑하대요."

모건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래?" "네." 소예담은 용기를 내어 다른 손으로 그의 셔츠 아래 맨살을 건드렸다.

모건우는 재빨리 그 손마저 붙잡았다. "내 것만 벗겨서 쓰겠어?"

회차 3

그의 노골적인 시선이 그녀의 몸매를 훑었다.

소예담은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모건우가 정말 이곳에서 그녀를 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옷자락을 잡고 위로 걷어 올렸다.

하얀 허리가 드러나고, 검은색 스웨터 아래로 하얀색 속옷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모건우가 그녀를 밀쳐내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예담은 바닥에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그녀는 기쁨을 억누르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모건우는 가식적인 표정을 짓는 소예담을 흘겨보았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였다.

지금은 돈에 눈이 멀어 그가 죽은 후, 그녀가 평생 과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자신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지만, 결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나가."

모건우는 가식적인 여자를 싫어했다.

소예담은 사면을 받은 듯 기뻐하면서도 아쉬운 척했다.

"여보..."

모건우는 짜증이 치밀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소예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스웨터를 내리고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클럽을 나서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외투를 입지 않았는데도 춥지 않았다. 그녀의 심장은 아직도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소예담은 다음 날 육민정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너 정말 대단하다." 육민정이 감탄하며 말했다.

소예담은 육민정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육민정은 그녀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모건우가 정말 너를 안을까 봐 두렵지 않았어?"

"그 얼굴에 몸매, 집안까지. 호감을 느끼기 쉬운 남자잖아."

"뭐?" 육민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모건우의 아이를 낳는 것도 나쁘지 않아." 소예담은 말을 덧붙였다." 우리 둘이 낳은 아이는 분명 예쁠 거야."

육민정은 할 말을 잃었다.

소예담이 싱글벙글 웃자 육민정은 그녀에게 너무 선 넘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건우가 다시 이혼을 요구하면, 순순히 이혼해 주라고 했다.

"결혼 후에 학대라도 당하면 어떡해? 그런 건 가정폭력인데, 다들 부부 싸움이라고 가볍게 넘겨서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기도 힘들어."

"알겠어." 소예담은 육민정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대답했다.

식사를 마친 후, 육민정은 한결 차분해졌다.

두 사람이 웃고 떠들며 쇼핑몰을 구경하고 있을 때, 소예담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육민정도 눈살을 찌푸렸다. "쓰레기 같은 자식!"

소예담은 하수명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감정과는 상관없이,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었다.

"가자." 소예담은 육민정의 손을 잡고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육민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 피해? 내가 아직 그 자식을 혼내주지 않았는데." 육민정은 소예담의 손을 뿌리치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소예담은 그런 육민정을 잡았다.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운 거랑 엮이기 싫어서 그래."

육민정은 그 말을 듣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래, 역겨운 자식."

두 사람은 뒤돌아섰다.

"소예담." 하수명이 두 사람을 쫓아와 앞을 가로막았다.

육민정은 소예담을 보호하며 하수명과 맞설 준비를 했다.

소예담은 육민정을 옆으로 끌어당기고 하수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무슨 짓이야?"

"네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 같아?" 그는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소예담을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수명은 소예담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소예담이 빠르게 피하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지 못했다.

화가 난 하수명은 더욱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소예담은 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찰싹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그녀의 손이 얼얼했다.

하수명은 놀란 표정으로 소예담을 돌아보며 화를 냈다. "소예담,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내 손에 칼 없는 걸 다행으로 알아." 소예담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하수명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나를 귀찮게 하면, 네 집까지 쫓아가 죽여버릴 줄 알아."

소예담은 강한 사람을 만나면 더욱 강해지는 성격이었다. 한번 화나게 한 상대는 목숨이라도 걸고 끝장을 보는 타입이었다.

하수명과 소예담은 몇 번 만나지 않았고, 대부분 전화와 위챗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소예담은 항상 상냥하고 다정했다. 하수명은 그녀가 예쁘게 생긴 착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강한 성격이었다.

이런 여자는 길들여야 했다.

구경꾼들이 점점 많아지자 육민정은 소예담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비난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였다.

하수명은 맞은 얼굴을 문지르며 소예담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볼 거야!"

멀지 않은 곳에서 모건우는 방금 일어난 일을 모두 지켜보았다.

소예담이 하수명의 뺨을 때리는 모습까지.

지후는 소예담이 이렇게 겁이 없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저 남자는 하수명입니다. 유명한 망나니죠. 며칠 전, 하수명에 관한 영상이 그들의 모임에 퍼졌습니다. 지금 보니 영상을 찍고 퍼뜨린 사람은 사모님인 것 같습니다."

하수명은 이미 사람을 시켜 영상을 삭제했지만, 지후는 영상을 찾아 모건우에게 건넸다.

모건우는 영상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후는 입술을 꼭 깨물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수명은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모님에게 이런 수모를 당했으니 복수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해야지." 모건우는 몸을 돌렸다. "복수를 당해도 싸."

지후는 할 말을 잃었다.

모건우에게 소예담이 그의 법적인 아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할까?

지후는 모건우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래도 이혼하실 겁니까?"

모건우는 소예담의 가식적인 얼굴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혼해."

소예담은 저녁이 될 때까지 육민정의 집에 머물렀다. 육민정은 하수명을 욕하면서도 소예담이 하수명에게 복수를 당할까 봐 걱정했다.

소예담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때? 어쨌든 너도 모건우의 아내잖아. 모건우에게 하수명을 혼내달라고 부탁해."

소예담은 모건우를 떠올리며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 남자는 사악했다.

"내가 정말 모건우를 남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해?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는 건 어때?"

"그 자식은 날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

소예담이 자신을 잘 보호하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한 후에야 육민정은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은 그녀의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결혼하기 전에 그녀에게 사준 투룸 아파트였다. 크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영상을 보고 있을 때, 화면에 낯선 번호가 떴다.

소예담은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내일 오전 8시, 구청에서 이혼하죠."

소예담은 익숙한 목소리에 화면에 뜬 번호를 확인했다.

그녀는 모건우가 어떻게 자신의 번호를 알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곧바로 모건우처럼 돈이 많은 사람에게 그녀의 번호를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 집요했다.

소예담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을 함께할 생각으로 한 결혼이에요. 이혼 안 해요." "이혼 안 하면,

사별이라도 기다리시겠다는 겁니까?"

"..."

소예담은 모건우의 말에 마음이 불편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당사자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그런 말 하지 마요.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어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분명 나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든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모건우는 창가에 서서 소예담의 영혼 없는 표정을 상상했다.

"더 추해지고 싶지 않으면, 현명하게 행동하는 게 좋을 겁니다." 모건우는 소예담에게 경고했다.

소예담은 모건우가 이 결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 모두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가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리 없었다.

"그건 안 돼요. 당신이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려서 허락을 받으세요. 그럼 저도 동의할게요."

결혼은 충동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누구와 결혼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다.

모건우와 결혼하는 것이 더 단순했다.

모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소예담은 생각보다 똑똑했다.

그의 부모님은 소예담을 마음에 들어 했다. 어떻게 동의할 수 있을까?

모건우는 소예담의 계략이 더욱 싫어졌다.

"나와 맞서는 게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불쾌감이 묻어났다. 소예담은 여전히 모건우가 두려웠다.

"시간이 늦었네요. 몸도 안 좋으실 텐데 일찍 쉬세요. 당신이 마음을 정하거나 부모님을 설득하면 다시 연락 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소예담은 모건우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낯선 번호를 저장했다.

'모건우'

휴대폰을 내려놓자 모건우의 창백하면서도 잘생긴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쯤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이다.

최대한 그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다음 날, 모부인은 사람을 보내 소예담을 모씨 저택으로 데려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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