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이혼 서류 내용 확인하고 서명해."

권여원은 라이먼 호텔 입구에 잠시 멈춰 서서 아내인 류서영을 바라봤다.

오늘은 류진환의 생일이었다. 완벽한 선물을 사서 제시간에 도착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류서영은 그런 그를 따뜻하게 맞기는 커녕 이혼 서류를 들이밀고 있었다.

권여원은 애써 미소 지으며 이혼 서류를 쥔 그녀의 손을 살짝 잡고 내렸다.

"서영아, 오늘 할아버님 생신이잖아. 손님도 많은데 이런 농담은 좀 아닌 것 같다." 그는 긴장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곧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류서영에게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경멸 어린 차가운 시선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지금 당장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떠나."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권여원이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당신 첫사랑 때문에 그래?"

그의 질문에 류서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신용카드를 건넸다.

"이미 알고 있네.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어. 이 카드에 있는 돈을 합의금이라고 생각해.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돈을 받으면 끝이야."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권여원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그냥 이혼해. 합의금은 무슨? 이 쓰레기 자식이 가질 자격 있어?"

류서영의 남동생인 류은찬이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권여원과 눈을 마주친 류은찬은 한쪽 눈썹을 치키며 코웃음을 쳤다. "뭘 쳐다보고 있어? 왜, 기분 나빠? 류씨 가문이라면 별성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우리 누나는 회사 대표에다 능력도 있고 예쁘기도 하지! 하지만 그쪽은 완전히 보잘것없는 사람이잖아. 지난 2년 동안 얻어먹는 거 외에 한 게 뭐가 있는데? 정말 우리 누나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는 류서영을 돌아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누나, 저 인간한테 줄 돈 있으면 새 차나 사 줘. 그게 덜 아깝지 않아?"

류서영은 한숨을 내쉬며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원 씨가 능력이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결혼한 사이야. 합의금은 줘야지."

이 말을 들은 권여원은 슬픔과 무력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류서영의 삶에서 그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인 듯 했다.

그러나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권여원은 원하면 누구든 거뜬히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런 모습에 류서영이 전 애인을 떠올리게 할까 봐 두려웠다. 류서영은 그 재능 많고 능력 있는 남자한테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상처받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권여원은 류서영이 빛날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을 감췄다.

하지만 권여원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2년 동안 했던 노력은 류서영에게 닿지 않은 듯 했다.

이제 첫사랑이 돌아왔으니, 결혼 생활을 끝내겠다 이건가?

정말이지 불공평했다.

그는 사람들이 하는 사랑이 덧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영아,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우리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어?"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류서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권여원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체념하듯 말했다. "그래. 지난 2년 동안 날 구해줘서 고마웠어."

그가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류서영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신용 카드를 그의 손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왜 갑자기 과거 얘기를 꺼내? 그냥 카드나 가지고 가."

둘의 대화를 듣던 류은찬은 불만스럽게 말했다.

"참 나, 정말 네가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코웃음을 치더니 권여원의 손에서 카드를 낚아채려고 했다.

류은찬은 권여원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겉으로는 허약해 보여도 힘이 꽤 셌다. 그는 카드를 꼭 움켜쥐고 류은찬을 막아냈다.

당황한 류은찬은 권여원을 힘껏 밀었다.

방심하던 권여원은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의 선물인 소중한 주머니 시계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품이었다.

권여원은 상심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순간, 류은찬은 그에게서 신용 카드를 빼앗았다.

"이런 쓰레기를 가지고 다니니까 그렇지." 류은찬이 조롱조로 말했다. 그는 망가진 시계를 내려다보며 우쭐대기 시작했다. "준우 형은 해외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인데다가 우리 누나한테도 엄청 잘 챙겨줘.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고대해 온 천우그룹과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더군. 우리 누나는 잊어. 지난 2년 동안 부부라고 하기도 민망한 사이였잖아."

권여원은 싸늘한 시선으로 류은찬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류은찬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바닥을 굴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류서영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권여원! 은찬이는 내 동생이고, 우린 아직 이혼 절차 다 끝나지 않았어. 선 넘지 마!"

권여원은 환멸을 느낀 듯 비웃으며 반박했다. "저 자식이 방금 우리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품을 망가뜨렸어. 선을 넘은 건 저 녀석 아닌가?"

류서영은 말문이 막힌 채 멍하니 서서 이혼 서류를 낚아채 주저 없이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는 권여원을 지켜보았다.

권여원이 이혼 서류에 서명하자, 류은찬은 다시 일어나 비꼬듯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어차피 우리 가족의 지원이 없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류은찬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여원은 재빨리 움직여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입 다물어. 난 더 이상 류씨 가문 사람이 아니니까. 자꾸 나를 자극하지 마." 권여원이 날카롭게 반박했다.

그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던 류은찬이 소리쳤다. "권여원, 이 쓸모 없는 패배자야! 우리 누나한테 덤비기는 겁이 나니까 나를 공격하는 거지? 누나, 이 자식 잘 버렸어. 누나를 만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류은찬의 가혹한 말에도 권여원은 빙그레 웃으며 충격에 휩싸인 류서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류서영, 오늘을 꼭 기억해.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 그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와의 이별에 안도감을 느껴야 할 류서영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권여원의 그렇게 싸늘한 눈빛은 처음 봤다.

그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고통스러운 진실을 인정했다.

류서영이 성공적으로 대표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것은 권여원이 집에서 그녀를 세심하게 돌봐준 덕에 모든 정력을 회사에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후회가 몰려오던 그때, 갑자기 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빵빵 소리가 들리자, 후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회차 2

경적 소리가 울리자 이혼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류서영이 뒤를 돌아보니 최신형 외제차에서 당당하게 내리는 키 큰 남자가 보였다.

한없이 차가웠던 그녀의 얼굴은 남자를 보자마자 더할 나위 없이 밝아졌다. 그녀의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었던 동준우는 깔끔한 옷차림에 머리를 뒤로 넘기고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동준우는 류서영과 시선을 마주치고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붉은 장미 꽃다발을 손에 든 채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권여원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류서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동준우를 발견한 류은찬은 웃으며 달려갔다.

"준우 형, 너무 오랜만이에요. 정말 좋아 보이네요! 우리 누나가 잊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그가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

동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류서영의 옆에 조용히 서 있는 권여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쪽은?"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이 사람이 권여원이에요." 류은찬이 재빨리 대답했다.

권여원을 살펴보던 동준우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아, 권여원 씨. 나쁘지 않네요. 2년 동안 류씨 가문의 돈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겠어요."

그러고 나서 그는 권여원에게 다가가더니, 류서영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당신한테 감사해야겠네요. 당신이 우리 서영이를 감시해 준 덕에 접근하는 남자는 없었지만, 이제 당신 도움은 필요 없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우리 서영이를 잘 돌봐줄 거예요. 이혼이 확정되면 당신은 사라져야 할 겁니다, 전 남편 씨." 그가 권여원의 어깨를 거만하게 두드리며 조롱했다.

류서영은 동준우가 딱 붙어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권여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2년 간의 결혼 생활 동안 류서영과 그가 그렇게 가까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류서영은 불편한 듯 시선을 내리깔고 동준우의 품에서 살짝 빠져 나왔다.

"여기서는 이러지 마.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류은찬이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권여원, 봤지? 그 긴 결혼생활 동안 우리 누나를 한 번 안아본 적도 없지? 그러면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다니. 왜 그렇게 뻔뻔해?"

권여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거야." 그가 차갑게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크게 비웃었다.

류은찬이 말했다. "권여원, 가난한 젊은이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는 건 다 옛날 얘기야. 그래 봤자 우리 준우 형 발끝도 못 따라온다고!"

동준우가 중재하며 말했다. "권여원 씨, 당신은 지난 2년 동안 류씨 가문의 하인에 불과했어요. 물론 힘들었겠지만, 류씨 가문의 보호 아래 있었잖아요? 이제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무 원망하지 말아요. 이건 당신 능력 밖의 일이라고요. 오늘은 귀한 손님이 많이 오시는 날이니 소란 일으키지 말고 우리 서영이와 조용히 헤어져요."

권여원이 반박하려던 순간, 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정신 없이 전화를 받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권여원 씨?"

목소리의 주인이 이어 말했다. "저는 별성시에 있는 신씨 가문의 신윤아라고 합니다. 의학계에서 선생님의 명성이 자자합니다. 저희는 오랫동안 선생님께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있어요. 2억 드리겠습니다."

신윤아는 권여원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확신했지만, 그의 반응은 차가웠다.

"다른 사람 찾아보시죠." 권여원은 냉정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정신 없는 상황에 다른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회차 3

신윤아는 협상하려는 시도 조차도 못 하고 끊어버린 전화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는 어쩔 줄 몰랐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신씨 가문의 장녀로서 이렇게 냉정하게 거절을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아픈 여동생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재빨리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10분 안에 권여원 씨가 지금 있는 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줘. 뭐? 류진환 어르신의 생신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라이먼 호텔에 갔다고? 얼마가 들든 상관 없으니까 권여원 씨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 우리의 진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어. 호텔을 떠나지 않는지 잘 지켜보고 있어. 내가 직접 모셔올 거야." 그리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권여원의 얼굴이 걱정으로 어두워졌다.

누군가가 그의 개인 정보를 흘린 것이 분명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놀랍게도 그의 숨겨진 신분 중 하나를 알고 있었다.

동준우와 류은찬은 그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오해했다.

류은찬이 놀리듯 말했다.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는 거야? 일자리를 찾고 있는 거지? 지금 그쪽 제안을 거절한 거야?"

"네가 알 바 아니야." 권여원이 차갑게 대답했다.

동준우는 거만하게 웃으며 받아 쳤다. "왜요, 보수가 너무 적었어요? 그냥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요. 2년 동안 우리 서영이를 돌봐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일자리 정도는 찾아줄 수 있는데. 우리 경비원이나 운전기사라도 할래요? 그러면 매일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는지 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결혼 생활 동안 우리 서영이와 그다지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으니, 이렇게라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동준우가 우월감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권여원은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주는 일자리 따위는 필요 없어요. 게다가 내 보수를 감당할 수도 없을 걸요."

동준우와 류은찬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동준우는 미소를 지으며 권여원에게 말했다. "우리가 당신 보수 정도도 못 맞춰줄 것 같아요? 월 100만 원 어때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본 적 있나요? 설마 연봉 몇 억을 바라는 건 아니겠죠? 당신이 그 정도의 보수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권여원은 그들의 조롱을 철저히 무시했다. 최근 자신에게 2억 원에 달하는 제안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류서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권여원, 왜 자꾸 일을 크게 만들어? 나는 당신이 겸손하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착각했나 보네. 당신은 패배자에 거만하기까지 해. 준우 씨가 일자리를 주겠다고 친절하게 제안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답을 해? 정말 실망했어."

권여원은 결심을 굳히며 대답했다. "서영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동준우 씨가 나한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해? 내가 감사해야 한다는 거야? 나한테 실망을 해? 솔직히 나야말로 당신한테 실망했어."

류서영은 분노가 치밀었지만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격노한 그녀가 소리쳤다. "권여원! 우리는 이혼했어.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권여원은 고개를 저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류씨 가문에 대한 내 신뢰는 완전히 사라졌어. 나는 어르신께 생신 축하 인사를 드리러 온 것뿐이야. 다른 의도는 없어."

지금 전체 스토리 읽기
작가를 후원하고 Moboreader의 다음 이야기를 응원해 주세요!
모든 회차 잠금 해제

그 남자가 돌아왔다

1화
회차
사용자 설정
다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