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서이준은 강수빈의 스킨십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나쁜 남자가 될 자질이 충분했다. 얼굴은 잘생겼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입체적이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우아함과 고귀함이 몸에 배인 듯 그의 모든 행동에서 자연스레 묻어났다.
그는 검은색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단추가 몇개 풀어져 있었고 긴 팔에 감긴 붕대가 훤히 드러났다. 붕대를 감은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퇴폐적인 매력을 더해 주었다.
강수빈이 유부남인 그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질척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이준은 허리를 굽혀 강수빈을 부축해 일으켰다. "일어나. 쪼그려 앉지 말고. 검사도 다 받았잖아. 큰 문제 없대."
"다 제 잘못이에요. 오늘 오빠가 저를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교통사고도 나지 않았을 텐데." 서이준의 부축을 받은 강수빈은 의자에 앉는 대신 그의 품에 기대앉았다.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김이진은 한참이나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몸도 추웠지만 그 것보다 마음이 더 차갑게 식어 내렸다.
서이준에게 완전히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했던 그녀다. 하지만 그가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자 무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와 강수빈... 도대체 누가 서씨 가문의 사모님일까?'
그때, 의사 한 명이 김이진에게 다가와 손에 든 두 장의 보고서를 내밀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착각했습니다. 남편분께서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은 다른 서 씨 남자분입니다. 방금 10중 추돌 사고가 발생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김이진이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떠나려 할 때, 서이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어둡고 침침해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김이진은 가방 끈을 꽉 움켜쥐었다.
잠시 후, 서이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 죽는다고 하니까 달려 온거야? 왜? 내가 죽지 않아서 실망했어?"
"제가 오든 말든, 달라 질게 있나요?"
김이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강수빈을 흘깃 쳐다봤다.
강수빈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김이진을 돌아봤다. "이진 언니, 다 제 잘못이에요. 이준 오빠가 저를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이런 사고도 나지 않았을 텐데. 비가 많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서 그만..."
그녀는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김이진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도발이 가득했다. 사랑받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김이진은 시선을 거두고 강수빈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병원을 나섰다.
이런 저급한 수법에도 상처를 받았던 건, 그만큼 서이준을 사랑했고 그 감정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니 강수빈과 이런 유치한 싸움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김이진!" 서이준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 세웠다.
김이진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걸음을 재촉해 병원 문을 향해 걸어갔다.
서이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언제부터 저 여자가 나를 무시하기 시작한 거지?'
"이준 오빠…" 강수빈이 그의 팔을 흔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듣지 못한 서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수빈은 눈시울이 빨개지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이준 오빠!"
그제야 서이준은 뒤를 돌아 강수빈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나 먼저 갈게. 얌전히 출근해."
말을 마친 그는 강수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병원 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강수빈은 멍하니 서서 서이준의 뒷모습을 가만히 노려봤다, 그녀의 눈빛에 증오가 스쳐 지나갔다.
응급센터를 나선 서이준은 김이진이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김이진에게 다가갔다. "같이 가."
김이진은 화를 꾹 참으며 차갑게 말했다. "같은 방향 아니에요."
서이준은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내 차는 고장 났어. 네가 나를 데려다줘."
김이진은 그제야 서이준이 그녀를 뒤쫓아 나온 건 그저 운전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이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달빛정원으로 가."
김이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1년만에 집으로 돌아가신다니, 서 대표님. 어련하시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들자 강수빈이 응급실 앞 계단에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회차 3
김이진은 얼굴을 굳힌 채 조수석 문을 열었다. 서이준을 쫓아 내려던 말은 전부 되 삼켜 버렸다.
서이준을 사랑하지 않는 그녀지만, 내연녀가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서 으스대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서이준과 단둘이 차에 있는 것이 어색할까 봐 걱정했지만, 그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많이 피곤한 듯 보였다.
김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내연녀한테 정성을 다할 땐 언제고, 내 앞에서 피곤한 척은?'
김이진은 액셀을 세게 밟고 속도를 높였다.
서이준이 갑자기 눈을 뜨고 소리쳤다. "김이진, 운전 똑바로 해!"
김이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방금 전에 사고 낸 게 누군지 잊었나 보네요?"
서이준이 발끈 하는 모습을 본 김이진은 하루 종일 쌓였던 화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달빛정원에 도착하자마자, 김이진은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녀는 더 이상 서이준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김이진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눈앞이 캄캄해 지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쑥 나타난 한기가 김이진의 단잠을 깨웠다.
비몽사몽 중에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안아주는 것 같았다. 상대방의 뜨거운 체온이 그녀의 몸에 스며들어 한기를 몰아냈다.
신혼 때, 그녀가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다. 당시 서이준은 바로 이렇게 그녀를 품에 안고 재워 주었다.
잠결인 지라 그녀는 두사람의 사랑이 이미 끊났다는 걸 잊었고 습관적으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에게서 전해지는 온기로 한기를 몰아내고 싶었다.
"가만히 있어."
그녀의 귓불에 깃털처럼 가벼운 입맞춤이 닿았다. 이어 그의 입술 사이에서 뭔가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어, 딱딱한 무언가가 그녀의 허리춤에 닿았고 불편했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큰 손이 그녀의 잠옷 아래로 파고들어 허리를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가더니,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김이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아랫배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신음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서이준은 간신히 지켜오던 마지막 이성까지 완전히 잃었다. 그의 다른 손으로 그녀의 잠옷 허리춤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더니 물기가 새어 나오는 그곳을 탐색했다.
잠자리를 너무 오래 갖지 않았던 탓에 갑자기 들어 오는 손가락에 통증을 느낀 그녀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렸다.
뒤늦게 눈을 뜬 그녀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급히 서이준을 밀어내고 침대 가장 자리까지 물러나 몸을 웅크린 채 스탠드를 켰다.
"어떻게 들어 온 거에요?"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고 얼굴에 남아있던 홍조는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서이준은 천천히 침대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헐렁한 잠옷 바지 아래로 솟아오른 작은 텐트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가 차갑게 비웃으며 반문했다. "여긴 내 집이야.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 설마 나른 놈이 기어 들어 오기를 기대했던 거야?"
서이준의 말에 모욕감을 느낀 김이진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세게 때렸다.
그녀는 평생 서이준 한 남자만 사랑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를 마치 아무 남자와도 잘 수 있는 여자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여태 강수빈과 살다가 뻔뻔하게 내 침대에 기어 올라 오다니!' 너무 역겨웠던 그녀는 분노하며 욕을 퍼부었다.
"내가 너인 줄 알아!? 더러운 새끼! 다 너 같은 줄 알아!?"
서이준은 김이진이 방금 전력으로 때렸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는 냉소를 지었다. "김이진. 내가 그렇게 싫은데 왜 나랑 결혼 했어?"
"결혼 전에는 네가 하도 다정하게 굴어서 그게 사랑인 줄 알았으니까! 결혼하자마자 바람피울 줄 알았으면, 죽어도 너랑 결혼 안 했어!"
"이런 생과부 같은 생활,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