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박주헌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에 김유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식탁 모서리에 허리를 제대로 찍은 탓에 너무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우두커니 서서 박주헌이 민연서를 조심스레 안아 올려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유나는 코를 훌쩍이며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몇 분 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소 아주머니가 도착한 것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에 들어 선 아주머니는 김유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아가씨, 아가씨 왜 그래요? 왜 이렇게 울고 있어요?"

심한 통증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김유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저 좀 도와주세요. 너무 아파요."

아주머니는 경비실에 연락해 김유나를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갔다.

검사 결과,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당분간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약도 제때 바르세요."

의사가 처방전을 건네고 나서 김유나의 앳된 얼굴을 보며 위로했다. "심하게 멍이 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유나는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아주머니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아가씨, 사장님한테 전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민연서를 돌보느라 바쁘겠지. 내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을 거야.'

김유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움직여 보았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던 그녀는 약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아주머니, 먼저 집에 들어가요. 저는 학교에 가봐야겠어요."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가씨, 정말 괜찮겠어요?"

"의사 선생님도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잖아요. 괜찮을 거에요."

한참 동안 시간을 들여서야 그녀는 아주머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차에 올라 탄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했다.

8살 때부터 박주헌과 함께 지낸 그녀는 항상 그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정작 다쳤을 때,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은 아주머니뿐이었다.

그러나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었다.

인연의 끝은 이별인 법이니까.

'나와 박주헌은 그저 이별을 했을 뿐이야.'

김유나는 담당 에게 서류를 건네며 강북에서 신턴십을 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담당 교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강북? 너무 멀지 않아? 전에 작은 삼촌과 헤어지기 싫어서 작은 삼촌 회사에 가겠다고 했잖아? 너희 작은 삼촌이 걱정하지 않을까?"

박주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던 김유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저와 삼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예요. 삼촌한테 계속 걱정을 끼칠 순 없죠. 그리고 저도 이제 21 살이잖아요. 독립할 때가 됐어요. 삼촌도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작은 삼촌이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이 학교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네가 이렇게 컸는데도 직접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고, 다른 남자애들이 너를 꼬실까 봐 아주 걱정이 많으신 것 같더구나."

"방금 독립하고 싶다고 했니? 잘 생각했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봐. 너의 능력이라면 어디서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난 너를 믿어."

김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당 교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학교를 나섰다.

그녀의 대학 생활은 길지 않았지만, 교수의 말대로 박주헌은 그녀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대학 1학년 땐, 박주헌은 그녀를 돌보기 위해 심지어 학교 근처에 집을 사서 직접 끼니를 챙겨 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모두 과거의 일 뿐이다.

이제 그에겐 진정으로 챙겨 줘야 할 여자가 생겼다. 그는 그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이다. '이제 난, 그에게 방해만 되는 존재일 뿐이야.'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 그녀가 박주헌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일 것이라 생각했다.

집 앞에 도착 한 김유나는 박주헌이 오늘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민연서를 챙겨야 할 테니까.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박주헌이 보였다.

인기척을 들은 박주헌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수업 끝났어?"

그녀는 멈칫하더니 이내 눈치 챘다. 그녀가 학교에 다녀왔다는 건 아마 아주머니가 그에게 전해 줬을 것이다.

"네."

김유나는 가방을 신발장에 넣고 물었다. "민연서는 괜찮아요?"

박주헌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네 작은 어머니야. 어떻게 이름을 불러? 예의도 몰라?"

그가 또다시 '서열' 정리를 한다고 생각한 김유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박주헌은 그녀의 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아깐 너무 급하게 서두르느라 힘을 조절하지 못했어. 아주머니가 네가 식탁에 부딪혔다고 하던데, 많이 다쳤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가 푼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괜찮아요."

박주헌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녀가 너무 아파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강하게 자란 그녀다. 그런 그녀가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많이 아팠을 것이다.

박주헌은 미간을 더욱 찌푸리더니 노트북을 내려놓고 김유나에게 다가갔다. "어디 봐봐…"

그가 손을 내밀자 김유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박주헌은 그녀가 피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김유나?"

그는 고개를 들어 착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 연서가 너무 걱정돼서 미처 너를 신경 쓰지 못했어. 미안해, 삼촌이 사과할게."

'그래, 당시 당신 눈엔 민연서 밖에 없었지. 난 안중에도 없었고...'

김유나는 가슴이 묵직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그 통증은 이내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표정을 숨긴 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부딪힌 것뿐이에요. 민연서처럼 심하게 다치지 않았어요. 삼촌은 민연서 곁에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은 데요?"

"정말 괜찮아?"

"네."

박주헌은 의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만약 심하게 다쳤다면, 그녀의 성격상 이미 난리를 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박주헌이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소파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손에 쥔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연서야?"

"조심하지 그랬어. 많이 다쳤어?"

말을 하는 와중에 박주헌은 소파에 걸려 있던 재킷을 손에 쥐었다. "지금 바로 갈게."

현관문 앞에 도착한 그는 김유나를 돌아보며 당부했다. "싸돌아 다니지 말고 얌전히 집에 있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김유나는 그가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곧 엔진 소리와 함께 차는 천천히 멀어졌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왠지 허리가 다시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그때, 가방에 넣어 둔 휴대폰이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강서준이었고 그녀는 코끝이 찡해졌다.

통화 버튼을 누른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러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서준... 나 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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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삼촌, 왜 이러는 거예요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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