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소유정이 창고에 갇힌 지도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축축하고 냉기 어린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한 탓에 손발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새아버지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고, 친어머니는 밥 한 끼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친어머니는 이복 남동생의 앞길을 위해 그녀와 언니를 두 노인의 품에 밀어 넣는 잔인한 짓을 저질렀다.

언니는 절대 승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소유정을 데리고 유씨 가문을 몰래 도망치려 했지만, 그날 밤 새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소유정은 새아버지가 언니를 벽에 내던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고, 그녀는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창고에 갇혀버렸다.

차가운 기운이 시멘트 바닥을 통해 온몸에 스며들었지만, 소유정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언니는 어디에 있을까? 안전하게 지내고 있을까? 새아버지의 강요로 시집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녀가 다시 정신이 흐릿해질 무렵, 덜컹거리며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유정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 문 쪽을 바라봤다. 역광 때문에 흐릿하게 보였지만, 익숙한 실루엣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유정아!"

언니다!

언니가 소유정을 향해 달려오더니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언니…"

입을 벌린 소유정의 목이 너무 말라 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고,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서워하지 마. 언니는 괜찮아."

소선주는 재빨리 동생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눈시울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소유정이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소선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와 함께 유씨 가문에 시집갈래?"

"유씨 가문은 손꼽히는 부자 집안이야. 그 집 아들 둘 중 한 명은 32살이고, 다른 한 명은 24살이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야…"

유씨 가문은 해성에서 제일가는 재벌 가문이다. '그런 가문에서 어떻게 나와 언니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새아버지의 사업은 유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소선주의 갑작스러운 말에 소유정은 멍한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언니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언니는 절대 자신을 속이지 않을 터였다.

'유씨 가문으로 시집가는 게, 그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언니, 나도 언니와 함께 갈래. 언니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거야."

그렇게 사흘 후.

유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 소유정과 소선주를 병원에 데려가 건강 검진을 받게 했다.

소유정은 언니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자신은 유씨 가문의 둘째 아들인 유동준과 결혼하고, 언니는 유씨 가문의 큰아들인 유성훈과 결혼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유씨 가문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시집간 후 3개월의 시험 기간이 있었고, 시험 기간 내에 그녀와 언니가 임신을 해야만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유씨 가문의 며느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소유정은 너무나 두려웠다.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자신이 곧바로 시집가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니.

유성훈은 성격이 차갑고, 유동준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 바람둥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검진을 기다리는 동안, 언니는 잠시 화장실에 갔고 복도에는 소유정 혼자만 남았다.

그때, 그녀들을 병원에 데려온 사람이 급하게 다가왔다.

"소유정 씨, 검사 결과는 병원 측에서 유씨 가문으로 보낼 겁니다. 아무 문제 없다면 오늘 밤 두 대의 차가 소유정 씨와 소선주 씨를 두 도련님의 저택으로 모실 겁니다. 혼인 신고는 내일 할 예정입니다. 유씨 가문 큰 도련님의 차 번호는 1324이고, 둘째 도련님의 차 번호는 1234입니다. 잘 기억하셨죠?"

소유정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항상 언니의 보호 아래 자라왔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유씨 가문의 차가 저택 앞에 나란히 멈춰 섰다.

작고 마른 몸의 소유정은 경호원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더라? 1324…1324…'

'1324 번호판이 둘째 도련님의 차량일 거야. 1234 번호판이 더 좋으니, 당연히 큰 도련님의 차량이겠지.'

소유정은 1324 번호판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떨며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소선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두 대의 차를 번갈아 쳐다봤다. 무언가 이상한 듯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곧바로 다른 차량으로 올라탔다.

어두운 밤, 두 대의 검은색 세단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소유정은 자신의 행동이 느려 상대방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소유정 씨, 유 도련님의 침실은 3층 첫 번째 방입니다."

소유정은 유동준의 저택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저택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치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웠다. 계단 쪽만 은은하고 따뜻한 불빛이 주변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침실 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간 소유정은 침실 환경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언니의 말을 떠올렸다.

'먼저 몸을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 기다려야 해. 절대로 유동준이 나를 싫어하게 만들어서는 안 돼.'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욕실로 들어간 소유정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찬물로 샤워를 하고 말았다.

샤워를 마친 후에야 그녀는 잠옷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침대로 달려가 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어차피 벗어야 할 옷이니, 입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은 완전히 어두웠고, 소유정은 눈을 크게 뜨고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불에서 풍기는 낯선 백단향이 그녀의 몸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소유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꼭 움켜쥐고 몸을 더욱 단단히 감쌌다. 오직 두려움으로 가득 찬 두 눈동자만 문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가 복도의 희미한 불빛을 등지고 들어왔다. 시원한 백단향이 소유정의 코끝을 강하게 자극했고, 희미한 술 냄새도 섞여 있었다.

남자는 바로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한 듯 그는 문을 닫아 외부의 마지막 광원까지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방 안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고, 소유정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남자는 무언가 눈치챈 듯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소유정은 그의 무게 때문에 매트리스가 약간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소유정은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시선에는 심사숙고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갑자기 남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약간 거친 촉감으로 그녀의 볼에 붙어 있던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소유정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곧바로 그의 손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옷을 입지 않았어?"

남자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상상했던 바람둥이 특유의 경박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였다.

소유정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 잠옷이 없어서요…"

그 말에 유성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머니는 이 여자가 성격이 차분하고 집안일을 잘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걸까?'

남자는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소유정은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남자의 숨결과 함께 자신의 온몸이 완전히 휘감기며 스며드는 듯했다. 마치 자신의 의식마저 더 이상 그녀의 통제하에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회차 2

소유정은 밤새도록 유성훈의 품에서 모진 시달림을 견뎌야 했다.

엎드렸다 누웠다, 작은 몸이 이리저리 뒤집히는 와중에도 다리가 후들거려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

새벽에 잠에서 깬 그녀는 옆에서 잠든 남자를 몰래 훔쳐보려 했다.

그러나 소유정이 남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가 바로 눈을 번쩍 떴다.

소유정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다 남자의 다리에 부딪혔다. 어젯밤의 방탕한 기억이 떠오른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유성훈도 이제야 여자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작고 창백한 얼굴에 놀라움과 수줍음으로 인해 불그스레한 홍조가 번졌고, 촉촉하게 젖은 두 눈은 마치 겁에 질린 아기 사슴처럼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선주가 25살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려 보이는 걸까?'

"네가 이곳에 시집온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겠지?"

유성훈은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자 여자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네, 둘째 도련님. 저, 저도 빨리 임신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남자의 눈빛이 순간 어둡게 가라앉았다. "둘째 도련님?"

"네, 네."

유성훈의 주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한 순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어젯밤 어둠 속에서부터 유성훈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여자는 너무 소심했고, 어머니가 말한 온화하고 차분한 소선주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다만 술에 취한 데다 품에 안긴 몸이 너무 부드러워 그는 잠시 그 차이점을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넌 누구야?"

남자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고, 말투에도 묵직한 위압감이 깃들어 있었다.

소유정은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저, 저는 소유정이에요…"

"소선주가 아니라고?"

유성훈은 소유정이라는 이름을 되뇌며 차갑게 물었다. "소씨 가문의 둘째 딸…"

소유정은 겁에 질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도 이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눈앞의 남자가 유동준이 아니라, 나의 형부인 유성훈인 걸까? 이제 끝장이다…'

유성훈의 주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압이 무섭게 낮아졌다.

이불을 꼭 끌어안은 소유정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죄, 죄송해요…"

유성훈은 어젯밤 소유정의 서툰 반응과 작은 흐느낌, 그리고 오늘 아침 눈물로 가득 찬 눈동자를 떠올렸다. 어쩐지 그녀가 너무 소심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자매가 차를 잘못 탄 것이었다!

자신마저도 그 우연한 실수로 다른 여자를 품에 안아 버렸다!

'그렇다면 유동준은…'

유성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불을 꼭 끌어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여자를 깊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여기서 기다려. 내 허락 없이 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

소유정은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 흐느낌을 억지로 참았지만, 눈가와 콧등이 새빨갛게 물들어 처연하고 가여운 모습 그 자체였다.

유성훈은 휴대폰을 손에 쥐고 방을 나서며 유동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다른 방.

유동준은 아침 일찍부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는 등을 돌리고 깊이 잠든 여자를 흘깃 쳐다본 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를 받은 그의 목소리는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누구야!"

소선주 역시 그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몸을 살짝 뒤척인 그녀는 온몸이 쑤시고 으스러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32살의 남자가 그런 정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3개월 안에 임신할 수 있겠지? 유성훈의 정자에 문제가 없다면 말이지.'

유성훈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유씨 가문에서 사모님 신분을 든든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녀도 동생을 보호할 능력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유정이가 임신하지 못해 소씨 가문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더라도, 내가 유성훈에게 부탁해 유정이를 데려와 돌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소선주의 생각을 방해했다.

"내가 형수님과 하룻밤을 보냈다고?"

소선주는 그 한 마디에 머릿속이 갑자기 새하얘지며 핑 도는 듯했다.

그러나 유동준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지,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형수라고 할 수 없지. 형, 우리 다시 바꿀까? 형은 나랑 잤던 여자도 괜찮지?"

전화가 끊긴 후, 소선주 역시 이불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동준은 윗옷을 걸치지 않은 채 침대 머리맡에 느긋이 기대어 옆에 앉은 여자를 쳐다봤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여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여자를 품게 되다니, 그 사실 자체가 너무나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어쩐지 어젯밤 여자가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더라니, 대담한 성격의 여자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지난밤의 일들을 떠올렸다.

유동준은 침실 문을 열 때, 어머니가 여자가 20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놀라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으니, 유동준은 오히려 그녀를 확실히 놀라게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겨우 20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라면 아직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유동준은 어두운 방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널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뭔지 알고 있겠지?" 그는 일부러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소선주는 잠시 침묵했다. 유성훈이 32살이라는 것을 떠올린 그녀는 그가 온갖 부류의 여자들을 겪어보았을 터이니, 자신이 굳이 수줍어하거나 밀당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합시다."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유동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어린 여자가 아는 게 꽤 많은 모양이네.'

그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실루엣만으로도 몸매가 매우 날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적어도 내가 흥미를 가질 만하게 만들어야지."

유동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는 그의 다리 위에 올라앉아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유동준은 눈을 크게 뜨고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제법 반전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그는 짧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먼저 옷을 벗어."

유동준은 잠시 숨을 골라 가며 자신의 솟구치는 반응을 억눌렀다. 욕망 때문에 조급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골라준 사람은 확실히 나쁘지 않네.'

유동준이 몸을 숙여 그녀를 침대에 눕히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도련님."

여자는 다른 쪽 베개를 집어 들더니 자신의 허리 아래에 받쳤다.

소선주의 머릿속은 온통 임신 생각뿐이었다.

"30분이면 충분할까요?"

유동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날 임신 도구로 생각하는 건가?'

그는 유선주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며 고개를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도련님, 저를 좀 안아주실 수 없을까요?"

유동준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흡족해했다. '역시 어린 여자는, 다 끝나고 나면 달래주는 게 필요하긴 한가 보네.'

그의 입에서 '부탁해 봐' 라는 말이 나오기도 무섭게, 소선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렇게 하면 임신에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그 말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확 나빠진 유동준은 소선주의 말을 듣지 못한 척했고, 밤새도록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잠자리를 함께 한 여자가 어머니가 형을 위해 준비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동준은 소선주를 쳐다봤다. 여자는 오히려 자신보다 훨씬 더 태연하고 침착해 보였다.

소선주는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침묵을 깨뜨렸다. "그러니까, 어젯밤은 오해였던 거네요."

유동준은 그녀의 침착한 모습을 보고 어젯밤 그녀가 먼저 자신의 다리 위에 올라앉아 베개를 허리 아래에 받쳤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자 마음속에 불쾌감이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오해였어."

소선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그의 경박한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

"유성훈 씨는 뭐라고 했어요?" 그녀는 여동생과 눈앞에 닥친 이 상황이 더욱 걱정되었다.

그녀와 동생은 절대 소씨 가문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유동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형의 차가운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 일은 반드시 본가에 돌아가 상의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툭 던지듯 말했다. "어떻게 하긴, 이미 벌어진 일이니 이대로 쭉 가는 거지."

소선주는 그 말에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소심한 소유정이 유성훈의 손에 넘어갔으니, 지금쯤 많이 두려워하고 있을 게 뻔했다.

"안 돼요!"

소선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유정이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니 유성훈 씨 곁에 남겨둘 수 없어요."

"소선주, 유씨 가문이 이런 추문을 허락할 것 같아? 아니면 형이 이미 품에 안은 여자를 내 침대에 보내는 것을 동의할 것 같아?"

소선주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유동준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씨 가문은 절대 이런 황당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소선주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것을 본 유동준은 마음속에 불쾌감이 조금 가라앉고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흥미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침착한 척하는 여자의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유동준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감으며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해."

"나와 함께 지내는 게 형과 함께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야. 아이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는 소선주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적어도 나를 따르면 베개를 허리 아래에 받칠 필요는 없을 거야."

소선주는 마음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유정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솔직히 소선주는 자신이 누구와 함께하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성훈은 유씨 가문의 장남이다. 그러니 소유정은 유성훈 한 사람뿐만 아니라, 유씨 가문의 두 어른까지 상대해야 할 터였다…

회차 3

소유정은 두 무릎을 꼭 끌어안은 채 침대 위에 홀로 웅크려 앉아, 여린 몸을 가냘프게 떨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내가 망쳐버렸다니. 유씨 가문 사람들을 건드렸으니, 그들이 나와 언니를 어떻게 대할까?'

'어젯밤에 언니도 유동준에게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닐까? 만약 유씨 가문 사람들이 화가 나서 나와 언니를 다시 소씨 가문으로 돌려보내 버리면 어쩌지?'

소유정은 걱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작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온몸에 빨간 자국이 가득한 채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때 마침 유성훈이 침실로 돌아왔다.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다니, 그가 바랐던 바는 전혀 아니었다.

남자가 침대 쪽을 흘깃 쳐다보자 어린 소녀가 넋을 잃은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병이라도 앓은 사람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유성훈은 어젯밤 자신의 절제하지 못한 행동을 떠올리며, 소유정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어디 아파?"

그 말에 소유정은 숨을 멈추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목구멍이 바싹 말라 당장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유성훈은 그런 그녀를 흘깃 쳐다보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해결책을 찾아야지. 이 일은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해. 네 언니는 반드시 유씨 가문에 시집와야 해. 그리고 넌…"

"만약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돈을 주고 소씨 가문으로 돌려보낼 수 있어."

유성훈은 어린 소녀를 강요할 정도로 비열한 사람은 아니었다. 소선주가 유씨 가문에 시집온 건 유씨 가문의 액운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그 자신도 이미 결혼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유정은 그저 덤으로 따라온 사람일 뿐이다. 만약 어젯밤에 사람이 바뀐 사실을 알았다면, 유성훈은 결코 그녀에게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성훈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어린 소녀는 조건반사라도 하듯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저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만약 자신이 소씨 가문으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그 늙은이에게 시집가야 하는 신세가 될 게 뻔했다.

소유정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원하며 말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제발요… 앞으로 말 잘 듣고 무엇이든 시키시면 다 할게요. 임신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어린 소녀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불을 꼭 움켜쥔 그녀는 유성훈을 미래의 남편으로 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유성훈은 그런 그녀를 몇 초 동안 가만히 쳐다봤다.

어젯밤, 그는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소유정을 오랫동안 괴롭히고 말았다.

소녀의 몸은 자신과 잘 맞았지만, 아직 너무 어렸다. 유성훈은 이런 일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가 자신의 아내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아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그에게 더 많은 걱정거리만 안겨줄 뿐이었다.

"유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사람들과의 교류는 기본이야. 네 언니는 충분히 해낼 수 있지만, 너는 할 수 있겠어?"

소유정은 동작이 순간적으로 멈춰 버렸다. 그녀는 평소 남과 말하는 것조차 너무나 소심하고 목소리도 작기 짝이 없었다.

그녀 역시 언니처럼 당당해지고 싶었지만, 어릴 적에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바로 매를 맞았고, 매를 맞으면 맞을수록 더더욱 입을 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언니가 평생 자신을 보호해 줄 수는 없었다…

"유 도련님, 저도 배울 수 있어요. 정말 열심히 배울게요…"

"왜 내가 널 가르칠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유성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녀의 안색이 확연히 어두워졌다. 마치 비에 흠뻑 젖어 숨을 곳을 찾지 못하는 작은 사슴처럼, 남자의 가슴 한 켠이 순간적으로 뭉클해졌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소유정이 유동준에게 시집가면 그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시집온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유씨 가문은 일반 가정보다 환경이 훨씬 더 복잡했고 그는 소심한 어린 소녀에게 처세술을 하나하나 가르칠 만한 인내심이 없었다.

"이 일은 본가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해. 내가 사람을 시켜 옷을 보내라고 했어. 만약 네가 내 부모님 앞에서도 지금 이 모양 그대로라면, 유씨 집안에 시집올 가능성은 전혀 없을 거야."

그는 말을 완전히 잘라 버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어제 소녀의 몸을 취해 버렸고,이런 예기치 못한 사고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소유정은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만약 유성훈의 부모님이 동의한다면, 나에게도 기회가 있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서둘러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문이 열리고 중년 여인이 들어오자 소유정은 무의식적으로 침대 쪽으로 몸을 움츠렸다. 온몸에 남아 있는 자국들이 그녀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방금 유성훈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이불로 중요한 부분을 가렸다. "놓…"

입을 여는 순간, 목이 잠긴 탓에 쉰 듯 갈라져 나왔다.

그녀는 목소리를 좀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놓으세요. 제가 직접 가지러 갈게요."

여인이 방을 나가자 소유정은 급히 옷을 가지러 달려갔다. 하지만 순간 다리에 힘이 쭉 풀리면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소유정은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통을 무릅쓰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뜻밖에도 그 옷은 자신의 몸에 완벽하게 맞았다.

세수를 마친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하기 짝이 없었지만 몸에 꼭 맞는 하얀 원피스 덕분에, 그녀를 더욱 순종적이고 온순하게 보이게 했다. 그나마 조금은 유 부인다운 모습을 갖춘 듯했다.

소유정은 거울을 보며 미소를 연습해 보았지만, 보면 볼수록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유성훈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됐어?"

소유정은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거울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자신을 바라본 뒤, 문을 열었다.

문 밖에 선 유성훈은 이미 깔끔하게 다려진 짙은 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는 냉철하고 침착한 기운이 묻어났다.

남자의 시선은 무심하게 소유정을 스치듯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했지만, 적어도 옷차림은 단정했고 자세도 바르게 유지하려고 나름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가자."

소유정은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 못했지만, 남자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유씨 가문 본가.

소유정이 유성훈을 따라 본가에 도착하자 언니가 이미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언니는 유성훈과 빼닮은 젊은 남자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소선주를 쳐다보자 소선주도 그녀를 바라보았고 눈빛은 온통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동준은 소유정의 목덜미 아래 희미하게 남아 있는 키스 마크를 한눈에 발견했다.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침묵이 흐르는 분위기에서 그의 웃음소리는 유난히 튀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형, 이 여자를 나한테 돌려주는 거야?"

유동준은 소유정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유성훈에게 바짝 다가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소유정은 그 남자의 성격이 매우 나쁠 것이라고 직감했다.

"형이 이 어린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명 다 나한테 줘."

유성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자 유동준은 그제야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형이 건드린 여자는 나도 싫어."

아버지 유혁일은 철없는 작은 아들을 쳐다보더니, 옆에 놓여 있던 지팡이를 집어 바닥을 쿵쿵 두드렸다.

"또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면 네 다리를 부러뜨려 버리겠다."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자 어머니 지문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젯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지문영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소선주와 소유정을 번갈아 쳐다봤다.

소선주가 먼저 대답하려 하자 지문영은 눈빛으로 그녀를 제지했다. "넌 가만히 있고 네 동생이 대답하게 하렴."

소유정은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침을 꿀꺽 삼키고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떨리지 않도록 애썼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어제 제가 차량 번호를 잘못 기억했어요. 1234가 큰 도련님의 차인 줄 알고 다른 차에 올라타 버렸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거실 안은 다시금 깊은 침묵 속에 잠겼다.

지문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유정의 창백한 얼굴을 살폈다.

소심해 보이는 소녀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

"차량 번호를 잘못 기억했다고?"

지문영의 담담한 어조 속에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가득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잘못 기억했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가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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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신혼 방을 잘못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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