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눈이 그치고 하늘이 개였다. 차가운 햇빛이 눈밭 위로 쏟아져, 은빛 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강단월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눈을 떴다. 달콤하면서도 느끼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스쳤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어지러움이 덮쳐왔고, 뒤엉킨 기억 파편들이 뇌리를 스치며 전생의 일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난 생의 끝나지 않은 고통과 원한이 단번에 밀려들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

오늘은 평양 후부 사 노부인의 회갑잔치라 경성의 명문 세가 대부분이 초청받았다. 강단월은 본래 이런 자리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효월이 함께 가자고 고집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되었다.

연회석에서 강단월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나, 결국 차잔을 엎어 옷을 적셔 버렸다. 이를 본 강효월이 재빨리 계집종을 불러 그녀를 난각으로 데려가 옷을 갈아입히게 했다.

강단월은 왠지 모르게 불안함을 느꼈다.

난각 안의 향기가 점점 진하고 느끼하게 변해갔다.

이 향기엔 미약이 섞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장박동이 망치로 내리치듯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후려쳤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갈리는 듯한 고통이 오장육부를 휩쓸며,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강단월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되었다. 무력하게 남의 계략에 휘둘리며, 몸이 산산조각나는 고통을 겪은 끝에 온전한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강단월이야말로 강씨 가문의 진짜 딸이었다. 강효월의 부모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신분을 바꿔치기했고, 모든 것을 빼앗긴 피해자는 강단월이었다. 그런데 결국 죽은 이는 그녀였다.

'대체 왜?'

강단월은 이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늘을 집어삼킬 듯한 억울함과 분노가 가슴 깊숙이 타올라 강단월의 마음속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녀는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책상을 꽉 움켜쥐었다. 갓 자라난 손톱이 부러지며 피가 맺혔지만, 그녀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강단월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세상을 뒤흔들 듯한 증오 속에서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이곳을 떠나야 해.'

'여기서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릴 순 없어.'

강단월은 깊게 한숨을 내쉰 뒤, 비틀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문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유천이었다.

강단월은 걸음을 멈췄다.

지금 나가면 반드시 그와 마주칠 터였다.

사유천이 남긴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오르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도록 주먹을 꽉 쥐며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하늘이 자신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이상, 강단월은 전생의 비극을 절대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난각은 좁아 숨을 곳이 없었다. 강단월의 시선이 문 쪽 훈향로에 고정되었다.

수천 냥짜리 귀한 봉수향도 그 틈새로 스민 발정향의 악취를 가릴 수 없었다.

강효월은 술에 탄 약만으로는 부족할까 봐, 난각 안까지 미리 조치해두었다. 참으로 치밀한 계획이었다.

강단월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재빨리 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순간 사유천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효월아…"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드러냈다.

강단월은 숨을 죽이고 빠른 속도로 향로를 휘둘러 그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사유천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지만, 바로 쓰러지지 않았고 심지어 몸을 돌려 공격자를 확인하려 했다.

강단월은 망설임 없이 온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사유천은 간신히 신음소리만 흘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몸이 몇 차례 경련하며 떨리더니 이내 의식을 잃어버렸다.

강단월은 냉소를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사유천은 진흙덩이처럼 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강단월은 머리에서 비녀를 빼더니, 단호하게 그의 목구멍을 향해 내리꽂으려 했지만,

목젖에서 한 치 남짓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멈췄다.

'아직 죽일 수 없어. 적어도 지금은 안 돼.'

사씨 가문은 대대로 내려온 명문 세가로, 태조 황제가 친히 봉한 평양후부다. 사유천은 평양후부의 적손으로 세자 책봉을 받았으니, 그가 죽으면 사씨 가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강단월의 처지에서 만약 살인자로 밝혀진다면, 그녀의 편을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반드시 살아남아, 그녀를 해친 자들이 살아도 죽기보다 못한 지옥에서 죽지도 못하고 허덕이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봐야 했다.

강단월은 사유천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천천히 일어섰다.

곧 강효월이 사람들을 이끌고 '간통 현장'을 덮치러 올 참이었다.

강단월은 비녀를 꽉 움켜쥔 채, 바닥에 널브러진 사유천을 쳐다보지도 않고 큰 걸음으로 난각을 나섰다.

회차 3

강효월이 타 넣은 약은 약성이 극도로 강했다.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강단월은 몸 안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가슴을 파고드는 저릿하고 가려운 감각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수만 마리의 벌레가 이성을 한 뼘씩 갉아먹는 듯했다.

손바닥에 닿은 비녀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약의 효과를 제때 억제하지 못하면, 그 후과는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해질 터였다.

강단월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듯이 주먹을 꽉 쥐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연못 하나가 있었다.

이미 늦가을이라 연못의 연꽃은 자취를 감추었고, 물가에 세워진 부용정만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단월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망설임 없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이 단번에 그녀를 삼켰다. 두꺼운 옷을 뚫고 스며드는 찬 기운은 마치 수많은 바늘이 피부를 관통해 오장육부를 찌르는 듯했고,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녀는 능지처참을 당하던 그날로 돌아간 듯했다.

'좀 아파도 괜찮아.'

아플수록 강효월에 대한 증오는 더욱 강해졌다.

강단월은 이를 악물고 더 깊게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몸속에서 들끓던 가려움과 열기가 혹독한 한기에 거칠게 제압당했다.

그녀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급격한 체온 저하로 위기가 닥쳤다.

강단월은 뒤늦게야 어지러움을 느꼈고, 꽁꽁 얼어붙은 몸이 돌처럼 무거워지더니 결국 힘없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정신이 흐릿해진 순간, 이마에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진 듯했다.

강단월은 깜짝 놀라 의식을 되찾았고 곧 정신이 맑아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날아오는 물건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동그랗고 투명한 동주였다.

그 순간,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낭자의 투신을 막을 생각은 없소만, 소란을 피우니 본왕이 잠을 잘 수가 없소."

그 목소리는 가벼우면서도 싸늘했다. 마치 이른 봄에 녹아내리는 새하얀 빙설과도 같았다.

강단월은 그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어,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부용정 안, 훤칠한 사내가 미인탁에 반쯤 기대어 난간에 손을 걸친 채 술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비록 옆모습 뿐이었지만, 강단월의 시선은 그에게 사로잡혔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고귀한 기품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이런 시선에 이미 익숙한 듯,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술병을 기울여 잔을 채운 뒤 머리를 젖히며 단숨에 들이켰다.

붉게 물든 노을빛이 각진 그의 옆모습을 비추었다. 길게 뻗은 목선 위로, 삼킬 때마다 움직이는 날카로운 목젖이 마치 수묵화의 한 획처럼 도드라졌다.

강단월은 잠시 멍하니 굳어 있었다.

"본왕이 겨우 이 한적한 곳을 찾았는데…"

그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낭자께서 다른 곳을 찾아 투신하는 게 어떻겠소?"

그는 진지한 어조로 마치 평범한 대화를 나누듯 말했다. 누군가에게 죽을 장소를 바꾸라 권하는 것이, 그에게는 주막에서 자리를 옮기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죽기 싫습니다."

강단월은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실어 말했다.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어 목소리는 얼어서 떨렸지만, 그 결의는 쇠를 가르고 돌을 깨뜨릴 만큼 확고했다.

한 번 죽은 몸이니, 이번 생은 제대로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게다가 죽어야 할 자는 그녀가 아니다.

"그럼 죽지 마시오."

남자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태도는 어딘가 산만하고 가벼웠다. 그 모습은 마치 경성에서 가장 방탕한 청년 같았다.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여전히 옆얼굴만 그녀에게 보이고 있었다.

허나 강단월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솟구치던 약효가 차가운 호수물에 완전히 가라앉았고 그녀도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때, 부용정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성가신 자들이 와서 본왕의 잠을 방해하는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마치 한낮의 고양이처럼, 눈가엔 졸림이 가득했으나 눈빛은 맑게 빛나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공간을 채웠다.

두 가지 상반된 기질이 그의 안에서 섬세하게 어우러졌다. 아침 안개 속에 떠오르는 해처럼 고결하면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한 줄기 난초처럼 취한 듯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강단월은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이 길은 난각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인데 강효월이 명문 세가 규수들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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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 사랑 앞에 무릎을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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