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임신 8개월, 나는 남편 강태준과 세상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집, 사랑이 넘치는 결혼 생활, 그리고 곧 태어날 기적 같은 아들까지.
그러다 남편의 서재를 정리하던 중, 그의 정관수술 확인서를 발견했다.
날짜는 1년 전. 우리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기도 훨씬 전이었다.
혼란과 공포에 휩싸여 남편의 회사로 달려갔다.
하지만 굳게 닫힌 사무실 문 너머로 들려온 건 웃음소리였다.
남편 강태준과 그의 절친 최민혁이었다.
"아직도 눈치 못 챈 게 믿기지가 않네."
최민혁이 낄낄거렸다.
"무슨 성녀처럼 광채라도 나는 얼굴로 그 거대한 배를 하고 돌아다니잖아."
매일 밤 내게 사랑을 속삭이던 남편의 목소리는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
"기다려, 친구. 배가 부를수록 추락은 더 클 테니. 그리고 내 몫도 더 커질 거고."
그는 우리의 결혼 생활 전부가 나를 파괴하기 위한 잔인한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모두 그의 소중한 여동생, 강유라를 위해서.
심지어 그들은 아기의 진짜 아빠가 누구인지를 두고 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기는 아직 유효한 거지?"
최민혁이 물었다.
"난 여전히 나한테 건다."
내 아기는 그들의 역겨운 시합의 트로피였다.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느꼈던 사랑, 내가 꾸려가던 가족,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그 순간, 산산조각 난 심장 속에서 차갑고 선명한 결심 하나가 굳어졌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개인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내가 말했다.
"예약 좀 하려고요. 중절 수술이요."
제1화
묵직한 뱃속의 무게는 끊임없이, 그리고 반갑게 존재감을 알렸다.
8개월.
몇 주만 더 있으면 내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나는 동그랗게 솟아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나와 태준은 모든 것을 가졌다.
아름다운 집,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그리고 곧 완성될 가족.
나는 태준의 서재를 정리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의 책상 서랍 깊숙한 곳, 오래된 세금 고지서 뭉치 아래에서 손가락 끝에 두툼하게 접힌 종이가 스쳤다.
공식적인 문서 같았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꺼내 들었다.
의료 증명서였다.
정관수술 확인서.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적힌 이름을 읽었다. 강태준.
그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1년 전이었다. 우리가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하기도 6개월 전.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종이를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임신 8개월이었다.
이건 분명 실수거나, 장난이거나, 뭔가 오해가 있는 걸 거다.
증명서는 내 안에서 자라는 생명의 온기와는 대조적으로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임신했다.
오늘 아침에도 태동을 느꼈다.
이 종이는 거짓말이다. 그래야만 했다.
메스꺼움과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미친 듯이, 고통스럽게 뛰었다.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나의 완벽한 삶, 사랑하는 남편, 우리 아기… 전부 거짓이었을까?
그를 만나야 했다.
그에게서 직접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나는 차 키를 움켜쥐었다.
머릿속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하얗게 비어 있었다.
그의 회사로 가야 했다.
지금 당장.
운전하는 동안의 기억은 흐릿하다.
교통 상황도, 내가 꺾었던 코너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증명서에 적힌 그 날짜만이 나를 조롱하며 기억에 구멍을 뚫는 듯 선명했다.
TJ 그룹 방문자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안으로 돌진했다.
불러온 배 때문에 움직임이 둔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나를 막으려 했지만, 나는 그녀를 밀치고 태준의 코너 오피스로 직행했다.
가까워질수록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의 닫힌 문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크고 요란한 웃음소리.
나는 발걸음을 늦췄다.
손잡이 근처에서 손을 멈췄다.
차가운 나무 문에 귀를 바싹 갖다 댔다.
내 평생 후회하면서도 동시에 감사하게 될 결정이었다.
"아직도 눈치 못 챈 게 믿기지가 않네."
태준의 절친, 최민혁의 목소리였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
"무슨 성녀처럼 광채라도 나는 얼굴로 그 거대한 배를 하고 돌아다니잖아."
남자들은 또 한바탕 잔인하게 웃어젖혔다.
그 비웃음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때, 매일 밤 내게 사랑을 속삭이던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려, 친구. 배가 부를수록 추락은 더 클 테니. 그리고 내 몫도 더 커질 거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몫?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전부 유라를 위한 거 알잖아."
태준이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상하리만치 집착적인 애정이 묻어났다.
"그 서아리라는 년은 자기가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어. 내 동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외국으로 내쫓았으니까."
유라.
그의 여동생.
특별 프로그램 때문에 유학을 가야 한다고, 아주 좋은 기회라고 했었다.
나는 그 결정을 지지했고, 심지어 격려까지 했다.
내가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멍청하게 사랑에 빠져서 내가 하는 말은 뭐든지 믿잖아."
태준이 비웃었다.
경멸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는 물리적인 충격처럼 다가왔다.
"아마 이 아기가 기적이고, 우리 위대한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할걸."
다른 남자들이 야수처럼 웃어댔다.
"그래서, 내기는 아직 유효한 거지?"
민혁이 물었다.
"진짜 아빠가 누굴까? 난 여전히 나한테 건다."
"아니면 나."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내기.
그들은 내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었다.
내 아기를.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느꼈던 사랑, 내가 꾸려가던 가족, 내 심장을 바쳤던 남자.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나를 모욕하고 파괴하기 위해 설계된 잔인하고 정교한 게임.
뱃속의 아기가 갑자기 날카롭게 발길질을 했다.
마치 나의 고통을 느낀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사랑이 가슴속에서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로 응고되었다.
거짓말이었다.
전부 다.
그 순간, 남편의 사무실 문밖에 서 있는 동안, 내 심장의 폐허 속에서 하나의 결심이 굳어졌다.
차갑고, 선명하고, 절대적인 결심.
이 아기, 그들의 역겨운 게임의 상징인 이 아기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뻣뻣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문에서 돌아섰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더듬는 손가락이 떨렸다.
개인 병원의 번호를 찾아냈다.
"여보세요."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예약 좀 하려고요. 중절 수술이요."
회차 2
사무실 안의 목소리들은 그들이 방금 저지른 파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되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완전히 무너지겠지."
민혁이 가학적인 희열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몇 주 내내 울고불고 난리 칠걸. 한심하게."
"자업자득이야."
태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감히 우리 집에 굴러 들어와서 유라를 밀어낼 생각을 해? 내가 내 동생보다 그 여자를 택할 거라고 정말 생각했을까?"
내 동생.
그 말은 내가 이제야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의미를 담고 공기 중에 무겁게 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언제나 강렬했지만, 나는 그저 가까운 남매 사이일 뿐이라고 치부했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역겨웠다.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잖아, 태준아."
다른 친구가 말했다.
"네가 몇 년 동안 가지고 놀았는데. 그냥 속이기 쉬운, 머리 텅 빈 순진한 년일 뿐이지."
"결국 떠날 수밖에 없을 거야."
민혁이 예언했다.
"남편도, 아기도, 돈도 없이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태준이 대본이라도 읽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유라를 조종해서 외국에서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헛소리를 머릿속에 채워 넣은 게 바로 그 여자였어. 유라를 없애고 싶었던 거지."
나는 휘청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벽에 기댔다.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유라가 먼저 나에게 와서 태준에게 숨이 막힌다며 울었고, 자기 자신이 될 기회를 간절히 원했다.
내가 그녀를 위해 유학 프로그램을 찾아주고, 지원서를 도와주고, 심지어 내 비상금으로 비행기 표 값까지 줬다.
나는 그녀를 해방시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나를 공격하는 무기로 뒤바꿔 놓았다.
"유라가 정말 그래서 떠난 거야?"
친구 중 한 명이 의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지."
태준이 날카롭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서아리가 상황을 조작한 거야. 하지만 괜찮아. 덕분에 이 작은 게임을 할 완벽한 핑계가 생겼으니까."
"게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민혁의 목소리가 비열해졌다.
"유라 돌아오면 할 파티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 훨씬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태준이 부드럽지만 무시하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대로 해. 귀찮은 일에만 나 엮지 마. 솔직히, 그 아기 생각만 하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 새끼도 아니고, 누구 새끼든 상관없어."
그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깊은 혐오감을 담아 말했다.
"애 아빠인 척하는 것보다 새로 나온 게임 레벨 올리는 데 시간을 쓰는 게 낫지."
그가 덧붙였다.
"네가 그 여자를 얼마나 경멸하는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한 친구가 중얼거렸다.
"경멸은 약한 표현이지."
태준이 대답했다.
"그 여자 얼굴을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그냥 일이야. 그리고 난 곧 그 대가를 받을 거고."
"좋아, 그럼 공식적으로 하자."
민혁이 크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선언했다.
"마지막 내기다. 아기가 내 아들이라는 데 10억 건다. 참여할 사람?"
"나 10억."
한 목소리가 즉시 대답했다.
"나도 10억."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난 20억 걸지."
태준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들을 갈랐다.
"내 새끼가 아니란 걸 너무 확신하니까. 그 여자의 불행으로 돈 좀 벌어야겠어."
동의하는 합창이 뒤따랐다.
그들은 수십억 원을 던지며 내 몸과 내 아이, 내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타락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잊지 마, 태준이 '시술'받은 직후에 내가 제일 먼저 덮쳤다는 거."
민혁이 자랑했다.
"확률은 내 편이야."
나는 복도에 얼어붙은 채 서서 그들의 웃음소리, 내 유린을 아무렇지 않게 논하는 대화를 들었다.
바닥이 발밑에서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새로운 고통의 칼날이 되어 사랑을 도려내고 텅 빈 고통스러운 공허를 남겼다.
진실은 물리적인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폐에서 공기를 빼앗았다.
내가 결혼한 남자, 내 집에 초대했던 친구들, 그들은 괴물이었다.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듯 손이 배로 향했다.
하지만 아기는 더 이상 사랑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들의 역겨운 시합의 트로피였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질식할 것 같은 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공기를 찾아 필사적으로 문에서 비틀거리며 멀어졌다.
몸을 주체할 수 없이 떨며 엘리베이터에 겨우 도착했다.
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마침내 무너졌다.
격렬하고 짐승 같은 순수한 고통의 소리가 터져 나오며 온몸이 들썩였다.
고통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안에서부터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하지만 눈물이 잦아들자,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차갑고 단단한 분노.
절망의 깊은 곳에서 불꽃으로 시작되어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져나갔다.
그들은 나를 부수고 싶어 했다.
내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 그 만족감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운전하며 새로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낙태는 여전히 첫 단계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시작이 될 것이다.
내 복수의 시작.
그들이 게임을 원한다고?
게임을 해주지.
그리고 이 게임이 끝날 때쯤, 그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라고 확신시켜 주겠다.
우선,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라를 위한 파티에서.
나의 마지막 굴욕이 될 예정이었던 그 파티는 그들의 몰락을 위한 무대가 될 것이다.
회차 3
태준과 내가 함께 고른 집, 우리 집으로 다시 들어섰을 때, 그곳은 낯선 사람의 집처럼 느껴졌다.
벽에 걸린 우리의 웃는 얼굴 사진들은 조롱거리였다.
나는 멍한 상태로 방들을 헤맸다.
조금 전의 기쁨은 오싹한 침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저녁, 태준이 집에 돌아왔다.
그는 완벽한 배우였다.
웃으며 들어와 곧장 내게 다가와 뺨에 키스했다.
"우리 사랑하는 두 사람은 어땠어?"
그가 내 배 위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그의 손길에 움찔했지만, 나는 억지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당신 주려고 뭐 좀 가져왔어."
그가 부엌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돌아왔다.
"아기를 위해서. 기운 내야지."
그는 가짜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우유를 내밀었다.
몇 시간 전, 친구들을 보며 그토록 잔인한 즐거움을 드러냈던 바로 그 눈이었다.
속이 뒤집혔다.
뼈 속까지 시린 확신이 들었다.
이 우유는 그냥 우유가 아니었다.
"목 안 말라, 태준 씨."
나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조금만 마셔, 아기를 위해서."
그가 구슬렸다. 그의 미소 끝이 살짝 굳어졌다.
"우리 아들이 튼튼하고 건강하길 바라지 않아?"
우리 아들.
그 말은 독이었다.
"아니, 정말 못 마시겠어."
나는 잔을 부드럽게 밀어내며 고집을 부렸다.
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사랑하는 남편의 가면이 벗겨지고, 짜증의 기미가 스쳐 지나갔다.
내가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놓쳤을 만큼 빠른 변화였다.
"아리야, 우유 마셔."
그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요청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그는 내 입술에 잔을 갖다 댔다.
따뜻하고 약간 단맛이 나는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한 모금 한 모금 삼킬 때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곧이어, 무거운 졸음이 몰려왔다.
팔다리는 납처럼 무거워졌고, 눈꺼풀은 뜨고 있기 힘들었다.
"나 좀 누워야 할 것 같아."
나는 말이 꼬이며 중얼거렸다.
태준은 나를 소파로 이끌었다.
그의 손길은 이제 거미의 애무처럼 느껴졌다.
"그래, 여보. 푹 쉬어."
세상이 흐릿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깊고 꿈 없는 잠에 빠져들기 전, 방 안에 다른 형체들, 시야의 주변부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몇 시간 후, 나는 몸이 쑤시고 피부에 이상하고 끈적한 잔여물이 남은 채로 깨어났다.
뼈 속 깊이 자리 잡은, 원초적인 잘못됨, 유린당한 느낌이 들었다.
집은 조용했다.
태준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
내 정신은 놀랍도록 맑았다.
어제의 분노는 차갑고 집중된 목적으로 날카로워졌다.
나는 일어나 거실 책장으로 걸어갔다.
고전 소설들 뒤에 숨겨진 작은 검은 상자가 있었다.
숨겨진 카메라.
태준이 몇 달 전 "보안"을 위해 설치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 그가 무엇을 지키고 있었는지 알았다.
메모리 카드를 꺼내 노트북에 삽입했다.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봐야만 했다.
그들의 배신의 전모를 알아야만 했다.
움직임이 보일 때까지 빈 시간을 빨리 감았다.
녹화는 어젯밤, 내가 정신을 잃은 후부터였다.
화면에는 태준이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심장이 멎었다.
강유라와 최민혁이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소파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내 위로 그들이 서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유라는 순수한 증오의 가면을 쓴 채 나를 내려다봤다.
"참 평화로워 보이네. 역겨워."
"그냥 진정제 때문이야."
태준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효과 직빵이야. 몇 시간은 꼼짝 못 할걸."
민혁이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이게 고분고분할 때의 모습이군. 이러면 일이 훨씬 쉬워지지."
"오늘 밤엔 그냥 새로운 약물 테스트만 하는 거야."
유라가 핸드백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며 말했다.
"민혁 오빠가 고상하게 이름 붙인 '복종 혈청' 말이야. 파티 때 완벽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난 그 여자가 완전히 의식은 있지만 저항할 수 없게 만들고 싶어.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하고 싶다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들은 몇 주 동안 이걸 계획해왔다.
내 집에서 나에게 약을 먹이고,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왜 그렇게 그 여자를 미워해, 유라야?"
민혁이 거의 감탄하듯 물었다.
"그 여자가 오빠를 나한테서 뺏으려고 했잖아."
유라가 태준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
"평범한 삶, 가족 같은 걸로 오빠 머릿속을 채웠어. 중요한 걸 잊게 만들려고 했다고. 바로 나를."
태준은 순수한 숭배의 표정으로 유라를 바라봤다.
"누구도 널 잊게 만들 순 없어."
그때, 새로운 인물이 화면에 들어왔다.
내가 모르는 남자였다.
키가 크고 우락부락했으며, 차갑고 생기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던 놈이야."
민혁이 말했다.
"파티 전에 '시범 운행'에 최고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대. 우리 판돈에 좋은 보너스가 될 거야."
"파티는 이틀 뒤, 유라가 공식적으로 '귀국'할 때야."
태준이 확인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어."
나는 유라가 내 입안에서 면봉으로 검체를 채취하는 것을 공포에 질려 지켜봤다.
"진정제 수치만 확인하는 거야. 완전히 정신을 잃었는지 확인해야지."
그녀는 작은 장치로 결과를 확인했다.
"완벽해. 완전히 무력해."
그들은 내 공개적인 굴욕을 위한 계획을 마무리하며 몇 분 더 낮은 목소리로 음모를 꾸몄다.
그러고 나서 태준과 유라는 떠났고, 민혁과 그 낯선 남자만이 나와 함께 남았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나는 목이 졸리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노트북을 쾅 닫았다.
그들의 타락의 깊이는 끝이 없었다.
이건 단순한 내기가 아니었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학대와 착취 계획이었다.
나는 깊고 떨리는 숨을 쉬며 절망을 억눌렀다.
똑똑해야 했다.
강해야 했다.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야? 나 일찍 왔어!"
태준이었다.
공포가 나를 덮쳤다.
나는 재빨리 노트북을 치웠다. 손이 떨렸다.
"나 여기 있어."
나는 목소리를 고르게 유지하려고 애쓰며 외쳤다.
그는 웃으며 들어왔다.
"걱정했잖아. 어젯밤에 너무 정신없어 보이던데. 좀 괜찮아?"
"훨씬 나아."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거짓말했다.
"그냥 쉬고 있었어."
그는 내 말을 믿는 것 같았다.
"다행이네. 서류 좀 가지러 위층에 잠깐 다녀와야겠어."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내 생존 본능이 발동했다.
그의 핸드폰이 커피 테이블 위에 있었다.
이게 기회였다.
나는 그것을 낚아챘다.
비밀번호는 유라의 생일이었다.
물론이지.
나는 재빨리 그의 앱들을 훑어봤다.
정상적으로 보였다.
너무 정상적이었다.
그때 화면 하단에 희미한 반짝임이 눈에 띄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곳을 누르자, 두 번째 숨겨진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같은 폰 안에 완전히 분리된 시스템이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날아다니며 내가 모르는 메시지 앱을 열었다.
그의 우선순위 목록 첫 번째는 유라였다.
그들의 대화 기록은 나에 대한 비열하고 뒤틀린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때 그룹 채팅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클릭했다.
그룹의 이름에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갔다.
"서아리 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