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심윤청이 약혼자에 의해 재판에 서게 된 그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기까지 그들은 4년을 함께했다. 심윤청은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그녀의 이복 여동생의 심나영의 말 한마디에 그는 직접 그녀를 법정에 세운 것이다.

고요하고 엄숙한 법정 안, 판사의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숨 막히는 순간의 시작을 알렸다.

"심윤청 씨, 당신은 심사위원 매수, 학업 사기, 그리고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모든 혐의를 인정합니까?"

핏발 선 심윤청의 눈은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녀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약혼자인 박운을 바라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박씨 가문은 국내 최고의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명문가였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감히 그녀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심윤청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내뱉었다.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그동안 심윤청은 줄곧 박운이 인생의 전부라 믿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복동생인 심나영과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그녀의 학문적 성과마저 가로챘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를 살인자라며 모함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판사는 다시 한번 망치를 내리치며 판결을 선고했다.

"본 법정은 피고 심윤청에게 징역 8년과 벌금 6천만 원을 선고한다."

재판이 끝나자 교도관들이 심윤청을 데려갔다.

법정을 나서던 심윤청은 뒤를 돌아 원고석에 앉아 있는 박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깊은 원망과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 ...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심윤청, 네 앞으로 보석금이 예치 되었다. 나와."

그 말을 들은 심윤청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창백한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3년간 지옥 같은 날들을 견디며 그녀는 남은 형량을 다 채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풀려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출소 한 시간 후, 심윤청은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중환자실 앞에 도착한 그녀는 문 너머로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에 심장이 조여왔다. 각종 의료 장비에 연결된 채 의식 없이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 심윤청은 흥분하며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

"거기 서! 여기는 특별 보안 중인 병실이야.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못 들어 가." 갑자기 등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 여자를 발견한 심윤정은 말문이 막혔다. "심나영? 우리 엄마는 이미 오래 전에 심씨 가문과 연을 끊었어. 그런데 왜 아직도 괴롭히고 있는 거야?"

심윤청이 적의 가득한 눈으로 심나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심나영 역시 질투와 경멸이 섞인 눈빛으로 심윤청을 바라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언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아주머니를 살린 거야. 내가 아니었다면 언니 엄마는 벌써 죽었을걸? 그럼 언니는 출소해서 엄마의 무덤만 보게 됐었을 거라고."

심윤청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애써 진정하려 노력했다. "위선 떨지 마, 심나영. 네가 우리 엄마를 살려주고 있다고? 내가 바보로 보여? 너 대체 무슨 꿍꿍이야? 엄마를 볼모로 날 이용하려는 거지?"

"역시 똑똑하네. 학계에서 떠오르는 유망주라고 불렸던 이유가 있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니는 이제 살인미수 전과자야. 그리고 언니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지." 심나영이 비웃었다. "언니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오늘 밤, 이태혁이랑 하룻밤만 보내. 그러면 엄마 치료도 해주고 언니도 보석으로 풀려나게 해 줄게."

"이태혁? 그 노인네는 벌써 예순이 넘었잖아. 너 진짜 제정신이야?" 믿을 수 없다는 듯 심윤청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상관할 일이야? 그 사람이랑 자는 건 언니잖아? 언니가 그 사람이랑 하룻밤만 보내면 우리 가문은 이씨 가문과 무기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어. 그거,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사업이야. 언니는 몸 하나 팔아서 그렇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그런데도 거절하겠다면..."

심나영이 중환자실을 가리켰다. "언니 엄마 생명 유지 장치, 내가 꺼버릴 거야. 그럼 언니 엄마는 언니 눈앞에서 죽게 되겠지. 5초 줄게. 결정해. 5, 4, 3..."

"알았어! 갈게." 심윤청이 눈물을 흘리며 절망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날 밤, 심윤청은 깨끗이 단장한 채 차에 태워졌다.

오늘 밤, 그녀는 예순이 넘은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첫 경험이었다.

회차 2

그날 밤, 자동차는 텅 빈 거리를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탕!

갑작스러운 총성이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차창 유리가 와르르 깨지더니, 유리 파편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거리에는 비명이 울려 퍼졌고 남아있던 가게들도 서둘러 셔터를 내렸다.

운전 기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떨며 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타이어가 끼익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더니 어딘가에 세게 부딪혔고 운전 기사는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심윤청은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욱신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부여잡은 그녀는 깨진 창문 너머로 깜빡이는 불꽃을 발견했다.

"젠장!"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한복판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아마도 두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이 총격전으로 번진 듯했다.

심윤청은 몸을 가누며 차 문을 열고 최대한 몸을 낮춘 채 길가로 기어가려던 순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크고 강렬한 존재감을 풍기는 남자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이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까만 눈동자와 오똑한 콧날은 또렷하게 보였다.

남자의 옆구리에서 붉은 얼룩이 점점 퍼지고 있었다. 피였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리던 남자는 결국 그녀의 발 앞에 쓰러졌다.

그 순간, 또 다른 무리의 건장한 남자들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무장을 하고 있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손등에 같은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좋아! 쓰러졌다. 이제 마무리 해!"

보스로 보이는 대머리 남자가 쓰러진 남자에게 총을 겨누며 포악하게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시선을 돌려 심윤청을 보았다.

오늘 밤 이태혁에게 보내질 선물이었던 심윤청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몸에 딱 붙는 새빨간 드레스는 그녀의 완벽한 라인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희고 깨끗한 피부와 대조를 이루며 치명적인 매력을 풍겼다.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고 인형 같은 얼굴에 커다란 눈동자는 남자의 본능을 자극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꿈속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의 여인, 한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유혹 그 자체였다.

음흉한 눈빛으로 심윤청을 바라보는 대머리 남자의 입가에 더러운 미소가 번졌다.

지금껏 본 여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가질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놈을 처리하는 동안, 난 이 예쁜 아가씨랑 좀 즐겨야겠어."

남자가 심윤정을 깨진 창문 쪽으로 거칠게 밀었다.

"안 돼! 제발!"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간절히 외쳤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내가 너처럼 예쁜 여자를 때리기야 하겠어?" 남자는 조롱하듯 속삭이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더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스쳤다. 그의 부하들은 흥미롭다는 듯 낄낄대며 남자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 순간, 심윤청의 손이 천천히 보이지 않게 가방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빠른 움직임으로 펜을 꺼내 남자의 목을 향해 깊숙이 찔러 넣었다.

대머리 남자의 눈이 충격으로 휘둥그레졌다. 그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고 심윤청을 붙잡고 있던 손에 서서히 힘이 풀렸다.

방금 전까지 겁에 질려 있던 심윤청의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천사처럼 아름답던 그녀의 모습은 이제 핏빛으로 물든 장미로 변해 있었다.

"이년이 미쳤나! 죽여버려!"

잠시 얼어붙었던 부하들이 이내 분노에 휩싸인 채 심윤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심윤청이 먼저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펜을 뽑아 버릴 거야. 그러면 피가 쏟아져서 금방 죽을 걸?"

순간, 남자들은 멈칫하며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때, 쓰러져 있던 남자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남자의 움직임으로 보아, 여태 부상을 입은 척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심윤청이 붙잡고 있던 대머리 남자도 머리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심윤청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가 튀는 것을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옷과 다리는 온통 끈적한 피로 얼룩지고 말았다.

"윽.."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러 속이 울렁거렸다.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쓰러지기 직전,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더니, 남자가 심윤청을 내려다보며 재밌다는 듯 빙그레 웃는 것이다.

"아까는 그렇게 용감하더니 이제 와 겁먹은 거야?"

심윤청은 인상을 쓰며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이거 놔!"

심윤청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나타났다.

게다가 주변 건물의 옥상에서도 총으로 두 사람을 겨누고 있는 남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남자들은 전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심윤청은 그들이 숙련된 킬러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기관총과 바주카포를 마치 일상적인 무기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잘 훈련된 정예 부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남자들이 갑자기 한 명 한 명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마치 왕 앞에서 절이라도 하듯이.

수백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머리를 숙이고 그들 중 대장인 듯한 남자가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시를 내리십시오, 박 도련님."

심윤청은 숨이 멎을 듯했다. "당신이.. 박서준이에요?"

회차 3

박서준은 자신의 오른팔 민호에게서 손수건을 건네받고는 마치 왕족 같은 우아한 손놀림으로 묻은 피를 천천히 닦아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그 순간, 숨을 삼킬 정도로 완벽한 얼굴이 드러났다.

어두운 밤조차 집어삼킬 듯한 깊고 매혹적인 눈동자, 그 아래 곧게 뻗은 조각 같은 콧날, 그리고 단정하면서도 날렵한 입술까지.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의 이목구비는 마치 신이 빚어낸 듯 완벽했다.

어설픈 연예인들 따위는 그 앞에서 초라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은 그의 외모가 아니라, 그가 풍기는 절대적인 위압감이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는 존재였다.

박서준이 눈빛을 번뜩이며 미소 지었다. "내가 박서준이면 어쩔 건데?"

심윤청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박서준, 이 이름은 전설이었다.

그는 한때 박씨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10년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홀로 국내의 모든 암흑가를 장악한 절대 권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심윤청의 전 약혼자 박운 또한 박씨 가문의 일원이었다. 박씨 가문이 이름 없는 집안에서 최고의 자리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박서준 덕분이었다.

혈연으로 따지자면 박운은 박서준의 조카였다.

만약 그녀가 박운과 결혼했다면 박서준은 그녀의 시삼촌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심나영이 그녀를 이태혁에게 팔아넘길 작정이다.

이태혁 역시 s시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박서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자와 쥐를 비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심윤청의 마음 속에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만약 박서준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강제로 팔려갈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어머니까지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윤청이 조심스레 숨을 고르며 물었다. "아까 제가 도와드렸으니, 저도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박서준의 눈이 살짝 가늘어지더니 눈빛에 호기심이 스쳤다.

눈앞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도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라니.

흥미가 생긴 박서준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심윤청에게 다가가더니,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의 눈을 주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야? 내가 널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 한마디에 심윤청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구름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그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불길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은 박서준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저는 화학과 의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수익성이 높은 특허도 보유하고 있고요. 저를 도와주신다면 돈은 충분히 벌어다 드릴 수 있어요."

박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돈?" 그는 낮게 중얼거리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가볍게 훑었다. "내가 돈이 없을 것 같아?"

그의 손끝에는 여전히 희미한 피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 매서운 살기에 심윤청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세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뭐든지 드릴게요."

순간 박서준의 눈에 알 수 없는 어두운 빛이 스쳤다.

그는 심윤청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든지?" 갑자기 그가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거."

그는 한순간에 심윤청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부하들 앞에서 그녀에게 뜨거운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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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 제왕이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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