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우레카이. 오래 전부터, 우레카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존재로 손꼽혔다.

고대어로 그들은 '공포의 야수'라 불리었으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들은 늑대인간처럼 야수로 변신하여 뱀파이어처럼 인간의 피를 마셨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불멸하고 평화롭고 이타적인 우레카이들은 주로 자신들끼리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을 선호했다. 두려움과 불신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결코 서로를 공격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포용력이 강한 그들은 거대한 산 너머에 위치한 그들의 영역에 들어오고자 하는 모든 종족을 환영하면서 통행을 허락했다. ​

하지만 5세기 전, 예상치 못한 한 종족이 어느 한 밤중에 우레카이들이 방심한 틈을 타 그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바로 인간들이었다.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려던 데몬카이 대왕은 정신을 잃고 야수로 변해갔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백성들에게 오히려 위협이 되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레카이들은 야수가 된 그들의 왕을 포획하여 탈출할 수 없는 견고한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힌 우레카이들은 뿔뿔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가 항상 두려워했던 공포의 야수가 되었고 괴물로 변한 자신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인간들이 우레카이족을 침략한 후, 인간 세상에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바이러스의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은 인간들이 우레카이족을 공격하는 과정에 바이러스가 생겨났다고 추측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결국 회복되곤 했지만, 대다수의 여자들에게 이 바이러스는 치명적이었다.

생존자들은 여자 아이를 거의 낳지 못했고 현존하고 있는 여자나 새로 태어난 여아들은 희귀하고 탐나는 상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탐욕스러운 아버지들이 돈 때문에 딸들을 팔아 넘겼다. 일부는 남성들을 위한 유흥업소로 강제로 보내졌고 일부는 끔찍한 학대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부유층과 특권층조차도 주변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갓난아기든, 어린 소녀든, 노인이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는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녀들은 끊임없이 위험에 직면해야 했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프롤로그

인간의 땅: 나비아 제국.

"따, 따님입니다, 전하."

개럿 왕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궁전의 치료사를 돌아보며 지친 아내의 몸에 손을 얹은 채 떨고 있었다.​

개럿 왕자는 몇 달 전부터 비밀리에 출산을 준비했었다. 지금 그의 사랑하는 아내 판도라가 궁궐의 지하에 위치한 방 하나에 숨어 출산에 성공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개럿 왕자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기를 바랐다.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제발, 신들이시여, 치료사가 잘못 본 것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연로한 치료사의 얼굴에 드리운 연민의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감싼 보자기를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여자아이가 맞습니다."

아기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몸을 일으킨 판도라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세차게 고개를 젓던 그녀는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치료사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하."

"안 돼!!" 판도라는 비명을 지르며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묻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개럿은 아내를 품에 안은 채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

나비아 제국의 오레스투스 왕이 아직 네 살도 되지 않은 개럿 왕자의 첫째 딸 아이케이라를 팔아 넘기기 위해 이미 카바르 제국의 최고 입찰자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레스투스 왕이 더 높은 가격을 요구했기 때문에 협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개럿의 형인 오레스투스 왕은 폭군이었고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런데 또 여자아이를 낳았다니! 딸 두 명이라니!'

치료사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던 개럿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의 두 딸에게 이 세상은 안전하지 않은 지옥이었다.

"이 애를 아들처럼 키우겠어요." 판도라가 갑자기 선언했다.

그 말에 치료사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이의 정체를 숨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판도라가 결연하게 말했다.​ "​이 아이를 절대 여자아이처럼 보이게 하지 않을 거예요. 누구도 절대로 알아내지 못할 거예요!"​

"하, 하지만, 전하, 이런 일은 숨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치료사는 당황했다. "​왕께서 저희를 모두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면 돼요."​ 판도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첫째 딸은 지키지 못했지만, 빛의 신들께 맹세하건대, 둘째 딸은 기필코 지킬 거예요."

너무 위험한 계획이었지만, 개럿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것이 그들의 딸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늘 전 남자아이를 낳은 거예요." 판도라가 아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에머리엘이에요. 에머리엘 갈릴레이."

에머리엘. 이는 중성적인 이름으로 고대어로는 '하늘의 보호'를 의미했다.

개럿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딸에게는 세상의 모든 행운과 보호가 필요했기에 딱 맞는 이름이었다.​

"나도 동의한다." 개럿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방에 있던 다른 두 남자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하라 명령했다.

그날 밤.

개럿과 그의 아내는 아기의 작은 요람 옆에 서서 갓 태어난 아기가 잠든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방 건너편에서는 세 살배기 딸 아이케이라가 작은 담요 아래 웅크린 채 평온한 숨결을 내쉬고 있었다.

"내 평생 이렇게 여자아이 둘을 연달아 낳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개럿." 판도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글썽였다. "이게 우리에게 뭘 의미하는지.. 아니, 우리 아이들에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요."

개럿이 판도라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했다. "어쩌면 아이들이 위대한 운명을 이뤄낼 거라는 뜻일지도 몰라."

"아니면 미래에 큰 슬픔이 닥칠 수도 있고요." 판도라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큰딸에게로 향했다. "너무 무서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죠?"

"어쩌면 당신이 신의 은총을 받은 걸지도 모르지, 내 사랑." 개럿이 부드럽게 말했다.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왜 나죠? 왜 하필 우리인가요?"

개럿은 선뜻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정말 그런 거라면..." 판도라가 코를 훌쩍이며 아기의 보드라운 뺨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었다. "부디 신께서 언제나 아이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해요. 우리가 늘 곁에서 지켜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개럿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한 부부가 딸을 하나도 아닌 둘이나 키울 확률은 얼마나 될까? 0%. 그런 부부는 이 시대에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개럿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간절한 기도가 샘솟았다. '신이시여, 부디 우리의 천사들을 보호해 주소서.'

회차 2

21년 후, 에머리엘은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어쩜 저리도 예쁘실까."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진짜 여자처럼 생긴 왕자님이라니까." 다른 이가 덧붙였다.

또 다른 이가 음흉한 눈빛으로 말했다. "세상에 저렇게 고운 머릿결을 가진 남자가 존재하다니!"

에머리엘 왕자는 그들을 무시한 채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정원에서 궁궐 안으로 들어섰다.

매일 사람들의 수상한 시선을 받는 에머리엘이지만, 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평생을 남자아이로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나비아 제국의 남자들은 여자만 보면 들이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여성스러워 보이면 바로 덤벼들 것이다. 그리하여 에머리엘의 신경은 늘 곤두서 있었다.

에머리엘은 아마도 나비아 제국에서 유일한 스물한 살 처녀일 수도 있다.

그의 누나인 아이케이라 공주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한 공도 컸다. 두 자매는 이 비밀을 철저히 지켜왔다.

15년 전, 마차 사고로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오레스투스 왕이 두 자매를 입양했다. 그 폭군의 밑에서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었다.

에머리엘은 아이케이라의 침실로 향하는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작지만 고통에 찬 흐느낌이었다.

'아니, 이 소리는..'. 에머리엘은 온몸에 분노가 들끓었다. '또 이런 일이!'

그는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 검을 뽑아 들고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당장 우리 누나한테서 떨어져! 그렇지 않으면 맹세코 네놈을 당장 베어버릴 테니까!" 에메리엘이 으르렁거렸다.

머피는 짜증을 내더니 하던 짓을 멈추고 말했다. "꼬마 왕자님은 꺼져. 한창 재미를 보는데 방해하지 말고."

에머리엘은 '꼬마 왕자'라는 비웃음이 싫었지만, '여리여리한 왕자'라고 불리는 것만큼 싫지는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작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그에게 온갖 별명을 지어 주었다.

"지금 당장 떨어지라고!" 에머리엘이 성큼성큼 침대로 다가가 머피를 붙잡아 아이케이라한테서 떼어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늙은 멍청이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이케이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상처 입은 여린 몸을 팔로 감싸 안았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은 빨개졌고, 부은 눈에서는 깊은 피로가 느껴졌다.

에머리엘은 누나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이케이라."

"네 잘못 아니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머피가 분노에 몸을 떨며 일어섰다. "난 어젯밤 연회에서 카드놀이에 이겨서 아이케이라 공주를 정정당당하게 땄단 말이다! 내가 왕을 이겼으니까 아이케이라 공주는 내 거야! 적어도 두 시간은 공주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에머리엘이 홱 돌아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만약 다시 한 번 누나에게 손끝이라도 댔다간, 하늘에 맹세컨대 네놈의 그 더러운 것을 잘라버릴 것이다."

"네 이놈이 감히!"

"왕께서 무슨 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어." 에머리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네놈은 고자가 될 것이다! 현명히 처신해."

머피는 붉어진 얼굴로 마치 성기를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듯 두 손으로 그곳을 가렸다.

"왕께 이 일을 반드시 고할 것이다!" 머피가 이를 갈며 옷을 챙겨 들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에머리엘, 왜 그랬어?" 아이케이라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왕께서 또 채찍을 휘둘러 널 벌하실지도 몰라."

"상관없어. 내 방으로 가자." 에머리엘이 칼집에 칼을 넣으며 말했다.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누나의 눈조차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는 아이케이라에게 옷을 입힌 후 그녀를 데리고 복도를 걸어갔다.

오래된 죄책감이 에머리엘의 등골을 타고 내려왔다. 아이케이라는 언제나 에머리엘을 보호했다. 심지어 남자의 표적이 될 때마다 아이케이라가 나서서 위기를 모면해 주었다. 에머리엘은 자신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아이케이라가 안쓰러웠고, 무능한 자신 또한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아이케이라는 늘 활기 넘치고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의 몸이 더럽혀졌지는 순간, 그녀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진 듯 지쳐 보였다.

마치 이 세상에 지친 것처럼, 왕이 또 어떤 탐욕스러운 귀족에게 자신을 넘길까 두려움에 떨면서 말이다.

한참 후, 깨끗하게 몸을 단장한 아이케이라가 침대에 누워 힘겹게 눈을 감았다.

"에머리엘, 어렸을 때 제일 끔찍한 악몽은 카바르의 귀족에게 팔려 가는 거였는데 이제는 그 냉정한 왕이 차라리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돼." 아이케이라가 속삭였다.

"제발, 그런 말 하지 마." 에머리엘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왕국은 살아 있는 공포 그 자체야. 이 세상 어디라도 카바르보다는 나아, 누나."

그 생각만으로도 에머리엘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산 너머에는 우레카이족이 살고 있었다.

"가끔 이 빌어먹을 왕국을 벗어나서 멀리 떠나고 싶어." 아이케이라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나도 그래, 아이케이라. 사실, 나도 그래.'

그날 밤.

에머리엘은 목욕을 마치고 차가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비단결 같은 긴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이렇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니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자신의 진짜 신분이 드러났다.

'소녀! 거울에 비친 이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누나처럼 날 탐하려 드는 짐승 같은 남자들의 그림자 아래 떨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머리엘은 꿈속에서나마 자신을 보호해 줄 강인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보호자! 짐승 같은 남자들로부터 날 안전하게 지켜주고, 날 항상 감싸주고 엄청난 힘과 사랑으로 완전히 사로잡아 줄 만큼 강한 사람!'

하지만, 그건 다 부질없는 망상이었다. 그 달콤한 망상에 비해 현실은 너무나 추악했다.

그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친 뒤 침대에 기어 들어가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몸을 맡겼다.

오늘도 그는 똑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그림자 속에 모습을 감춘 채 문간을 가득 채웠다. 그는 에머리엘이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남자보다도 크고 남자다웠다. 거인 같은 키의 그의 앞에서 에머리엘은 구석에 몰린 사냥감처럼 작게 느껴졌다.

"누구세요?" 에머리엘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 나한테 뭘 원하는 거죠?"

"너는 내 것이다." 그가 천둥처럼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결국 내 앞에서 무릎 꿇을 운명이지. 넌 결국 날 갈망하게 될 거야. 오직 내 것만을 갈망하게 될 거야."

에머리엘은 충격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너무나 수치스러워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런 못된 말은!"

하지만 그 불가사의한 남자는 어느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에머리엘의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육체가 짐승으로 변해갔다.

그 짐승은 에머리엘이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존재보다 더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로 우레카이였다.

"오, 신이시여, 신이시여…" 에머리엘은 극심한 공포에 숨이 턱 막혔다. '수많은 것들 중에 왜 하필 우레카이란 말인가!'

그 우레카이가 뭔가를 결심한 듯 다가왔다. 굶주림으로 이글거리며 번쩍이는 노란 눈이 에머리엘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에머리엘은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며 뒤로 물러섰다. "안 돼, 안 돼, 안 돼! 저리 가!"

에머리엘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경비병! 살려줘!"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괴물은 침대 위로 펄쩍 뛰어올라 에머리엘의 위로 올라타 그를 꼼짝 못 하도록 짓눌렀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옷을 갈기갈기 찢었고 에머리엘의 연약한 여성의 몸이 그 짐승의 노란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

강한 허벅지가 에머리엘의 다리를 억지로 벌렸고 거대한 괴물의 성기가 그의 순결한 곳을 건드리며 파고들었다.

에머리엘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두려움에 계속 떨고 있었다.

"꿈이었구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신들이여, 감사합니다. 그냥 꿈이었어."

또 똑같은 꿈을 꾼 것이었다. 에머리엘은 몇 달 동안이나 이 끔찍한 꿈에 시달려 왔다.

그는 힘겹게 침을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왜 자꾸 이런 악몽을 꾸게 되는 거야."

에머리엘은 너무 두려웠다.

꿈에 우레카이가 나타나다니! 이 세상에 우레카이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에머리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극심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꿈에서 느낀 강렬한 느낌은 여전히 몸에 생생히 남았다. 여성으로서의 변화가 느껴진 것이다. 그곳이 젖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회차 3

다음날 아침.

에머리엘이 성문을 나서자 두 명의 전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왕께서 찾으십니다, 왕자님. 법정으로 오세요."

'젠장. 그 멍청한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왕에게 고자질한 모양이군.' 에머리엘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법정으로 향했다. '아마 채찍질 정도로 끝나겠지?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어.'

하지만 문을 향해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주위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뭔가 이상했다.

법정은 언쟁과 고함,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어서 늘 밖에서부터 떠들썩한 곳이었다.

그런데 에머리엘이 문을 열고 들어갔음에도 사람들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법정 한가운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머리엘도 자연스레 그 시선을 따라갔다.

하얀 예복을 입고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두 남자가 무해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복 아래로 살짝 드러나는 단단한 근육, 미묘하게 뾰족한 귀,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얼굴이 에머리엘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우레카이였다. 그들은 너무나도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였다.

에머리엘은 목이 바싹 말라왔다. 직접 우레카이를 마주하는 건 누구에게나 공포 그 자체였다.

"오레스투스 왕이시여, 어찌 하시겠습니까?" 뺨에 길게 흉터가 나서 인상이 꽤 날카로워 보이는 한 우레카이가 말했다.

"안 됩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겁에 질린 오레스투스 왕이 어설프게 연기를 하면서 항의했다.

그러자 얼굴에 흉터가 있는 우레카이의 미간이 더욱 찡그려졌다.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당신은 한낱 인간의 왕이니까요." 그가 위협적인 발걸음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법정에 있던 대신들이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섰다.

"진정하세요, 블라디야 영주." 다른 우레카이가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명령이라기보다는 간청에 가까웠다.

그러나 흉터 있는 우레카이, 블라디야 영주는 매서운 눈빛으로 왕을 노려보았다.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공주를 넘기면,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합당한 대가도 지불하겠습니다." 다른 우레카이가 예복 안으로 손을 넣어 커다란 동전 자루를 꺼내며 덧붙였다.

오레스투스 왕은 두려운 표정을 거두고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대가요?"

"그냥 돈이 아닙니다. 금화도 있습니다." 흉터 없는 우레카이가 말했다.

에머리엘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금화란,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희귀하고 값진 화폐였다.

우레카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공주만 저희에게 넘겨주신다면, 이 자루는 곧 당신 것입니다."

'잠깐... 공주? 설마... 아닐 거야.'

웅장한 문이 다시 열리고 두 명의 경비병이 아이케이라를 법정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안 돼, 안 돼, 안 돼. 누나만은 절대 안 돼.'

에머리엘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옆에 있던 경비병들이 그를 막아 섰다.

그는 애가 타서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건 꿈일 거야. 우레카이가 누나를 노예로 사려고 이곳에 왔을 리가 없어.'

아이케이라를 법정의 가운데로 끌고 오던 두 경비병이 우레카이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아이케이라의 얼굴에 에머리엘과 똑같은 공포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자, 확실히 말해보세요." 오레스투스 왕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저 아이를 팔기만 하면, 이 돈 전부가 내 것이 된단 말입니까? 다른 조건은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흉터 없는 우레카이가 대답했다.

블라디야 영주가 눈에 띄게 떨고 있는 아이케이라 쪽으로 다가섰다. 그는 아이케이라의 뺨을 감싸 쥐고 혐오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군."

오레스투스 왕은 테이블을 세게 두드리면 말했다. "좋아요! 이 순간부터, 아이케이라 공주는 우레카이 당신들 겁니다!"

"안돼!" 에머리엘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더니 법정 한가운데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제발... 누나를 저들에게 넘기지 마세요. 우레카이한테는 절대 안 됩니다! 폐하, 부탁 드립니다."

오레스투스 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금방 팔아버렸어, 에머리엘."

'뭐라고?' 에머리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왕을 올려다보았다. "안 됩니다. 누나는 폐하의 조카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우라카이한테 팔 수가 있단 말입니까?"

높아진 목소리가 여자의 비명 소리처럼 들렸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 운명이 저 산 너머에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누나를 팔아 넘기실 수가 있어요!"

"누가 보면 너한테 선택권이라도 있는 줄 알겠네." 블라디야 영주가 냉소를 지으며 비웃었다.

에머리엘은 몸을 홱 돌려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노려보았지만,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안에 있던 분노는 공포에 잡아 먹히고 말았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우레카이는 물리적 접촉 없이도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저 소문일 수도 있었지만, 누나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확인해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누나가 가는 곳이라면 저도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에머리엘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러자 아이케이라가 공포로 확장된 동공으로 에머리엘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안 돼! 에머리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나랑 같이 갈 거야." 에머리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블라디야 영주가 완벽하게 다듬어진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니. 우린 너 같은 건 필요 없다. 너희 누나만 있으면 돼."

에머리엘이 일어섰다. "상관없어요. 나도 갈 거예요. 날 여기 두고 가면, 내가 어떻게든 누나를 찾을 거예요. 저 거대한 산을 넘어서라도!"

블라디야 영주가 비웃었다. 그는 웃음기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통과 의례 없이는, 저 거대한 산이 너를 통째로 삼켜 버릴 거다. 네가 산 반대편에 도착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 운에 맡기겠어요." 에머리엘이 대답했다.

"안 돼! 제 동생은 안 돼요." 아이케이라가 에머리엘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이러지 마, 에머리엘. 난 이미 끝났어. 너까지 같이 끌려가게 둘 순 없어."

"우리와 함께 간다면 너는 우리의 노예가 될 것이다." 블라디야 영주가 에머리엘을 쏘아보며 단언했다. "우레카이는 네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하지 않아. 그저 주인의 요구에 따라 주인을 섬겨야 할 것이다. 광산이든 지하실이든, 무릎을 꿇든, 바닥에 엎드리든 말이다. 네가 우리 노예가 되는 것에 동의한다면, 너의 자유와 개인 의지는 오늘부로 끝이다."

에머리엘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작은 인간아, 우레카이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너는 예쁜 남자아이니, 섬길 주인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이 에머리엘의 심장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들은 모든 소문이 사실이라면 인간에게는 우레카이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악몽들. 그것을 생각하면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누나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흉터가 없는 우레카이가 말했다. "우리는 노예 두 명을 데려가는 것으로 합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제 합의하면 되겠군." 블라디야 경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흉터 있는 우레카이가 또 다른 동전 자루를 꺼내 왕을 향해 바닥에 던졌다. "둘 다 데려가겠습니다."

"좋아요!" 오레스투스 왕이 다시 한번 테이블을 세게 두드리면서 흔쾌히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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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소녀였다: 극악무도한 왕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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