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펜트하우스는 집이라기보다 하늘 위의 요새였다. 우리는 인적 드문 구청에서 지친 표정의 공무원과 권태하의 무표정한 운전기사를 증인으로 세운 채, 조용하고 무미건조한 혼인신고를 마친 뒤 이곳에 도착했다. 이제 그의 거실 한가운데 서 있으니, 마치 현대 미술관의 전시품이 된 기분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창이 두 개의 벽면 전체를 차지하며, 서울의 반짝이는 스카이라인을 숨 막히게 아름다운 파노라마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유리는 창문이라기보다 세상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 장벽처럼 느껴졌다. 가구는 모두 날카로운 각과 흑백의 색조—검은 가죽, 크롬, 회색 대理石—로 이루어져 있었다. 잡동사니도, 사진 한 장도 없었다. 인간이 실제로 산다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 공기는 마치 삶의 모든 향기를 깨끗이 문질러 없앤 것처럼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규칙은 이래.”
권태하의 목소리가 동굴 같은 공간에서 살짝 울렸다. 그는 수트 재킷조차 벗지 않았다. 그는 창가에 서서 도시의 불빛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을 이루고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우린 헌신적인 신혼부부야. 모든 사업 문제에선 내 의견을 따르되, 넌 내 파트너가 될 거야. 내 동등한 상대. 내 계좌, 직원, 자원에 접근할 수 있어. 마음껏 써.”
그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사적인 공간에선, 우린 비즈니스 파트너야. 이쪽은 내 공간.”
그가 오른쪽 복도를 가리켰다.
“저쪽은 당신 공간. 우린 각자의 삶을 유지할 거야. 이건 계약이지, 로맨스가 아니니까.”
*계약이지, 로맨스가 아니니까.* 그 말은 안도감을 줘야 했지만, 가슴속에 이상하고 공허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캐시미어 담요를 몸에 더 단단히 둘렀다. 아직도 축축하고 찢어진 드레스 차림이었다. 마치 궁전에หลง 들어온 길고양이 같았다.
“가사도우미가 옷을 좀 준비해 뒀어. 사이즈가 맞을 거야.”
그가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여전히 그 무심하고 평가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내일은 새 옷을 맞춰야지. 넌 이제 권씨 집안사람이야. 그에 걸맞게 보여야 해.”
그는 날렵한 검은색 콘솔 테이블로 걸어가 얇은 태블릿을 집어 내게 건넸다.
“그리고 이건 당신 숙제.”
나는 태블릿을 받았다. 화면이 켜지며 암호화된 단일 폴더가 나타났다. 제목은 ‘서진그룹’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파일을 열었다. 그것은 기업의 부정행위, 수상한 거래, 숨겨진 계좌들로 얽힌 상세한 조사 자료였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초상화가 탐욕과 부패라는 stark한 색채로 그려져 있었다. 압도적이었다.
그때, 내 눈이 하위 폴더 하나에 꽂혔다. 제목은 대부분 가려져 있었지만 두 단어는 보였다. ‘프로젝트 나이팅게일.’ 숨이 멎었다. 나는 그것을 탭해서 열었다. 대부분의 문서는 암호화되어 있었지만, 한 파일에 거친 이미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고풍스러운 鳴鳥 모양 로켓의 클로즈업 사진이었다. 할머니의 로켓. 서연이 차고 있던 바로 그것. 사진 아래에는 짧고 암호 같은 메모가 있었다. *자산 키 확인됨. 나이팅게일 프로토콜 활성화.*
로켓은 단순히 盗まれた 가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열쇠였다. ‘프로젝트 나이팅게일’이라는 무언가로 가는 열쇠. 내 가족의 가장 깊은 음모와 권태하의 개인적인 복수심을 연결하는 중요한 비밀. 차가운 공포가 나를 덮쳤다. 이건 단순한 가족의 배신보다 훨씬 더 큰 문제였다.
내가 그 의미를 처리하기도 전에, 내가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놓아둔 새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떠 있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나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손을 공중에 멈췄다. 권태하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고, 그의 침묵은 시험이었다. 혼전 계약서. *만약 당신이 접촉을 시도한다면…* 하지만 그녀가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받아.”
권태하가 조용히 말했다.
“스피커폰으로.”
나는 떨리는 숨을 내쉬고 화면을 탭했다.
“여보세요?”
“서아야! 아가, 세상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무균실 같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꾸며낸 눈물과 공포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우리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어디 있니? 주원이가 걱정돼서 죽으려고 해. 밤새 널 찾아다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위선이 너무나 엄청나서 숨이 막혔다.
“얘야, 집에 와야 해.”
그녀가 애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연습된 것처럼 갈라졌다.
“네가 뭘 봤다고 생각하는지 알아. 스트레스, 슬픔… 그게 사람 마음을 속일 수 있단다. 김 박사님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하셨어. 네가… 환각을 볼 수도 있다고. 서연이를 본 거… 오, 서아야, 내可怜한 딸, 네가 그 애를 너무 그리워해서 그래.”
가스라이팅. 그것은 명인의 연기였다. 고통스럽고 끔찍한 순간, 내 어린 시절의 열병과 악몽을 달래주던 그 목소리, 그 원초적인 감정 조작이 거의 먹혀들 뻔했다. 한 줄기 의심이 내 결심을 꿰뚫었다. *내가 정말 미친 걸까? 내가 모든 걸 상상한 걸까?*
나는 고개를 들어 권태하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의 회색 눈은 흔들림 없이 확고했다. 그 눈에는 판단이 없었다. 오직 조용하고, 명료한 집중만이 있었다. 그는 진실을 보았다. 그는 나를 믿었다. 그 조용한 확신이 내가 필요로 하던 anchor였다.
나약함은 지나가고, 차갑고 단단한 확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집에 안 가요.”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하지만 서아야—”
나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찔러 통화를 끊었다. 뒤따른 침묵은 무거웠다. 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마치 그녀가 전화기를 통해 손을 뻗어 내가曾经是女儿였던 마지막 흔적까지 파내어 버린 것 같았다.
권태하가 다가와 내 감각 없는 손에서 태블릿을 가져가 파일을 닫았다.
“좀 쉬어.”
그가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내일부터 시작이야.”
나는 그가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자기 쪽 아파트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는 가죽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고 잠시 멈췄다.
“옷 입어.”
그가 강렬한 시선으로 말했다.
“약속이 있어.”
“약속이요? 지금요? 한밤중인데.”
“밤은 아직 젊어.”
그가 처음으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것은 위험하고 포식자 같은 미소였다.
“그리고 연례 서울 헤리티지 자선 갈라가 아직 한창이거든. 올해는 네 아버지 회사가 주 후원사지. 아마 가족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일 거야.”
피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진심일 리가 없었다.
한 시간 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용하고 효율적인 가사도우미인 김 여사님의 도움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이제 몸에 착 달라붙는 짙은 자정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위로 쓸어 올렸고, 섬세한 화장은 밤의 흔적을 감춰주었다. 거울 속에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세련되고 우아하며, 몇 시간 전 배수구에서 쓰러졌던 망가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여자. 나는 권씨 집안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권태하가 완벽하게 재단된 턱시도를 입고 문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았을 때, 처음으로 그의 평가하는 듯한 시선에 다른 무언가가 스쳤다. 인정.
서울 그랜드 호텔의 연회장은 보석과 샴페인의 바다였다. 공기는 정중한 대화 소리와 현악 4중주단의 연주로 윙윙거렸다. 우리가 들어서자,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고개들이 돌아갔다. 속삭임이 들불처럼 번졌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뉴스 알림을 읽었다. 그들은 미친 여자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권태하의 손이 내 허리를 단단하고 따뜻하게 감싸며, 마치 왕족이 바다를 가르듯 군중 속을 헤쳐 나갔다. 그는 아는 사람들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누구든 우리에게 도전하려는 자를 압도하는 힘과 자신감을 발산했다.
연회장 맨 끝 무대 위에는 아버지가 연단에 서 있었고, 어머니와 주원이 자랑스럽게 그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가족 가치가,”
아버지가 거짓된 진심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지역사회와 우리 회사의 기반입니다.”
권태하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앞의 길이 열리는 것을 보며 무대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속삭임은 잦아들고, 충격에 찬 집단적인 숨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는 아버지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설을 마치는 순간 무대 계단에 도착했다. 주원이 우리를 먼저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의 미소는 싸구려 도자기처럼 얼어붙고 금이 갔다. 어머니는 손을 입으로 가져갔고, 그녀의 눈은 공포로 커졌다.
권태하는 두 번의 쉬운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손은 여전히 내 허리에 있었다. 그는 연단에 도착해, 정중하지만 단호한 몸짓으로 아버지의 힘없는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았다. 연회장 전체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권태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벨벳처럼 부드럽고, 강철처럼 날카로웠다.
“그저 장인어른의 감동적인 연설에 축하를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 말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장인어른. 군중 속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권태하의 시선이 내 가족의 겁에 질린 얼굴을 훑고 청중에게로 향했다. 그는 다시 그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오늘 밤 우리 가족의 기부금 발표는 제 아내와 제가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내 눈을 찾았다. 그 순간, 수백 쌍의 눈초리 아래에서, 불꽃처럼 터지기 시작하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나는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아내였다. 그리고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