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조나라, 백옥마을에 위치한 서씨 가문.

"누나, 빨리 먹어."

귓가에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서은별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

'동생? 내게 언제부터 동생이 있었지?'

입술에 뭔가가 닿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누나, 어서 먹어. 제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녀는 애써 눈을 뜨며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 보았다.

"누나! 죽지 마! 죽으면 안돼! 빨리 눈 좀 떠."

"이 망할 것들, 당장 나오지 못해!"

주변의 소란에 사은별의 짜증은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 요란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서은별은 끝내 눈을 떴고 순간, 수많은 기억들이 그녀의 뇌리에 덮쳤다.

"윽!"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에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누나!"

이제 3살 된 서은혁은 울상을 지은 채 서은별을 쳐다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서은정은 손에 든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깜짝 놀란 얼굴로 서은별을 살폈다.

"언니, 언니, 왜 그래? 우리를 놀래 키지 마."

쾅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낡아 빠진 문을 세게 걷어차며 방으로 들이 닥쳤고 두 아이는 즉시 침입자가 서은별을 해치지 못하도록 그녀의 앞을 지켰다.

방에 들이 닥친 사람은 서씨 가문의 노부인 서유진이었고 자애로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문의 큰 아들의 며느리와 둘째 아들의 며느리가 서유진의 뒤를 따라 들어왔고 마찬가지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셋째 집안의 이 망할 것들! 감히 음식을 훔쳐? 이 늙은이를 눈에 두지도 않는 것이냐? 오늘 너희를 재대로 혼내 줘야겠다!"

"할머니, 저희는 음식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이건 언니의 몫이에요. 언니가 아파서 제가 대신 가지고 있었습니다."

10살 밖에 되지 않은 서은정은 무서웠지만 두려움을 억누르고 가문의 어른들과 맞섰다.

"흥, 가문의 규정에 밥 때를 놓치면 굶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규정을 어기고 음식을 훔친 주제에 감히 말대꾸를 해? 어르신, 이것들을 제대로 벌해 주십시오, 아니면 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당시, 제 딸이 저녁 밥 때를 놓쳤을 때, 어르신은 아이를 굶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둘째네 종예슬이 예전에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어르신, 이 것들을 좀 보세요. 두 팔을 활짝 벌려 언니를 보호하려는 모습이라니. 가엽긴 하지만 너무 눈꼴 사납네요. 흥, 주제도 모르는 것들 같으니."

첫째네 임미진이 아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들을 향해 침을 뱉었다.

노부인은 두 며느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앞으로 다가가 서은영의 손에 들려있던 차갑게 식어 딱딱해진 찐빵을 빼앗았다.

"으앙! 돌려 줘! 이 나쁜 놈! 그건 언니 거야."

서은영은 서럽게 울며 노부인을 향해 작은 주먹을 휘둘렀다.

"이 은혜도 모르는 것 같으니! 감히 내게 혼을 대? 오늘 제대로 혼쭐을 내줘야겠군!"

"은혁아!"

정신을 차린 서은별이 급히 서은혁을 품에 안았다.

"어르신, 은혁이는 이제 3살입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습니까?"

품에 안긴 채 서럽게 울고 있는 동생을 내려다 보며 서은별은 생각에 잠겼다.

'타임 슬립?'

눈을 감고 여러 번 심호흡을 한 끝에야 점차 생각이 정리 되었다. 전 주인의 기억을 전부 흡수했는지 더 이상의 두통은 없었고 눈앞의 상황을 주시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타임 슬립의 익숙한 레파토리였다. 심술궂은 할머니, 그리고 양 옆에 있는 두 심보 나쁜 고모들.

자신을 언니 누나라 부르던 두 아이를 바라보니 몰골이 형편 없었고 몇 달 동안 씻지도 못한 듯 보였다.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는 것 같았고 낡고 해지다 못해 군데 군데 구멍이 뚫린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 자신을 보니 동생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큰 부인 임미진은 살이 뛰룩뛰룩했고 둘째 부인 종예슬은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중간 체형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노부인 서유진이었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 여태 호의 호식하며 살아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어르신, 저년 눈빛을 보세요." 큰 부인은 침대에 걸터앉은 서은별의 차가운 눈빛에 이상한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했다.

"서은별! 강물에 몸을 던졌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해결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이미 조씨 가문의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았다. 네가 죽으면 네 동생 은정이로 대신 할 것이다."

서은별이 눈을 크게 떴다. 노부인 서유진은 고작 은자 5냥을 위해 그녀를 조씨 가문에 팔아 넘겼고 꽃다운 나이에 다리 병신에게 시집을 가고 싶지 않았던 이 몸의 원래 주인은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마감했다.

그렇게 현대에서 온 그녀의 영혼이 이 몸에 깃들게 되었다.

'운명이란 신기하군.'

서은별, 현대에서 온 그녀의 이름이었고 본주의 이름도 서은별이었다.

"어르신, 은정이는 아직 어립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흥! 어떻게 하는지는 네게 달렸지. 미리 말해 주는데, 이틀 후에 조씨 가문 사람들이 너를 데리러 올 거다. 그때까지 얌전하게 있어라. 그렇지 않으면 은정이로 너를 대신할 것이고 네 어린 남동생은 팔아 버릴 것이니!"

노부인 서유진은 험악한 얼굴로 서은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여리기만 하던 년이 오늘은 왜 이렇게 달라 보이는 걸까?'

"어르신, 음식을 함부로 훔친 죄는 어떻게 다스리실 겁니까?"

임미진은 세 남매를 이대로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흥, 내일 셋째네 식구들에게 음식을 내어주지 말아라."

서유진은 말을 마친 즉시 방을 나섰고 임미진이 그 뒤를 따랐다.

"너희들 똑똑히 들었겠지?"

종예슬이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둘을 따라 나갔다.

"언니. 두번 다시 그런 일은 하지마. 언니가 떠나면 나와 동생은 어떻게 해..."

서은정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른인 척 해도 그녀는 아직 10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은정아, 울지 마. 은혁이는 어때?"

서은별은 애써 몸을 가눴다. 아직 이 몸이 익숙치 않아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누나."

서은혁이 한 걸음에 달려와 곧바로 그녀의 품에 안겼다. 눈빛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서은혁의 팔을 확인해 보았더니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앙상한 팔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마 원주의 기억을 그대로 이어 받은 탓에 두 동생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 없었다.

"언니, 앞으로는 그러지 마."

서은정도 참지 못하고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겼다.

"응, 미안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은별의 얼굴은 어두웠다.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이 시대의 자녀들은 무조건 부모의 말을 따라야 했다. 모든 일의 결정권은 전부 집안 어른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녀는 고작 13살 밖에 되지 않은 앳된 소녀였다. 배불리 먹지도 못한 탓에 몸도 튼튼하지 않았고, 당장 이틀 뒤에는 조씨 가문에 팔려갈 운명이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시대에, 이런 가난한 가문에 오게 되다니... 가장 고통스러운 건 현재 그녀가 있는 이 시대는 역사에 존재 하지도 않았다.

전생, 그녀는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모처럼 타임 슬립을 해서 두 번 째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또다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본주의 부모는 산에서 약초를 캐다 산적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여 서씨 가문은 부모도 없는 세 남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하는 것도 없이 밥만 축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 서은별은 동생을 등에 없고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빨래며, 청소며 고된 나날이 이어졌고 휴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 남들처럼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본주의 기억을 떠올리자 본주의 절절한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노부인 서유진은 그들 세 남매를 팔아 은자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은정아, 나를 댁으로 데리고 온 사람은 누구야?"

"조씨 가문의 고모가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갔다가 언니가 정신을 잃은 채 강가에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을 불렀어. "그때, 난 언니가 죽을 줄 알았어. 옥의원은 마을에 계시지 않았거든. 그래서 사람들은 언니를 그저 방에 데려와 눕히고는 자리를 떠났어."

서은정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마을 사람들 누구도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 것이다.

"조씨 가문의 고모..."

은별의 기억 속, 조씨 가문의 고모의 연미화에 대한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절름발이 아들과 거의 방에 숨어 살다시피 했고 외부와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언니. 언니를 사간 사람이 바로 그 조씨 가문의 고모야, 예물도 없고 혼사도 올리지 않고 그저 돈만 내고 언니를 사간 거야. 듣기론 그 여자도 돈이 별로 없대, 하지만 어떻게든 아들에게 아내를 찾아 주고 싶어 한다 했어. 절름발이 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서은정의 말에 그녀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 곳에 온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당장 절름발이의 아내로 팔려갈 팔자라니...

"은혁아. 어서 자거라, 네 눈이 벌써 감기려 하는구나."

서은별은 그의 멍든 팔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숨을 지었다.

'약이 있다면 발라 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 가난한 집구석에 약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낡아 빠진 침대와 구멍이 숭숭 뚫린 이불 하나가 전부였고 세 남매는 한 이불 아래에서 서로를 껴안고 잠을 자야 했다.

회차 2

"언니, 빨리 일어나."

서은정은 다른 가족들이 들을까 두려운 듯 목소리를 낮게 깔고 서은별을 살며시 흔들어 깨웠다.

"은정아, 지금 몇 시냐?" 서은별은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볐다.

"묘시야, 언니."

'묘시? 5시부터 7시를 뜻하는 군.'

"아직 이르지 않느냐?"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서은정이 그녀를 깨웠던 것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긷고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 그녀들의 일상이었으니까.

그 생각이 서은별은 들자 마음이 아려왔다.

"은정아, 오늘은 허드렛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응? 그랬다간 어른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리한테 금식을 명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일을 하겠느냐? 우선 먹을 것부터 찾아야겠다. 너와 나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지만 막내는 아직 너무 어리구나. 나와 같이 산에 오르자꾸나, 여홍산에 나물과 열매가 많았던 기억이 나는구나."

서은별은 반드시 살아 남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허약한 몸으로는 끼니를 때우다간 이틀도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두려워하지 마. 굶어 죽는 것보다 매 맞는 게 낫지 않겠니?"

"알았어, 언니. 막내도 함께 데려가자. 혼자 집에 남겨두는 건 불안해."

"응, 그럼 막내를 깨우거라."

일각 후, 세 남매는 바구니를 메고 여홍산을 향해 걸었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 여홍산 정상에 무지개가 자주 나타났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무지개를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복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어느 학식있는 노인이 이곳을 지나다 무지개 홍자를 따서 여홍산이라 이름을 지었다.

서은별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는 자주 이 산에 올라 나물을 캤지만 깊은 산 속까지 들어 간 적은 없었다. 산 깊은 곳은 상당히 위험해서, 실력이 뛰어난 사냥꾼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마을의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산기슭과 과일이 있는 곳에서만 활동 하는 게 전부였다.

500 미터 정도 걸어 세 남매는 산기슭에 도착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면서 시야가 밝아 졌고 주변이 눈에 보였다. 서은혁은 아직 어렸기에 반쯤 감긴 눈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셋중에서 가장 힘이 셌던 서은정이 서은혁을 품에 안고 가다 쉬는 걸 반복하며 천천히 산길을 걸었다.

"언니, 마을과 가까운 곳 나물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캐가서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서은정은 나물이 있을 만한 곳을 모두 둘러보고 돌아와 서은별에게 말했다.

"그러면 조금 더 올라가 볼까, 은정아?"

동생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 줘야 했기에 서은별은 깊은 곳 까지 들어가고 싶었다.

"위험해, 언니. 잊었어? 우리 부모님도..."

서은정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부모님의 죽음을 떠올린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도적들은 이미 관청에서 소탕했지 않니?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예슬아. 아버지께서 여홍산 깊은 곳엔 작은 계곡이 있고, 물고기가 많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는구나."

"하지만..."

"가자, 예슬아."

"응, 언니."

산속 깊이 들어가자, 폭포 소리가 들렸고 그들의 눈에 희망이 가득 차 올랐다.

이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은정은 급히 동생을 나무 아래에 내려놓고, 가지고 온 대나무 물통에 물을 길어 언니에게 건넸다.

"언니, 막 병이 나았고 밥도 못 먹었으니, 먼저 물이라도 마셔."

"그래."

서은별은 이 세상에서 새롭게 만난 여동생을 바라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다니,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막내야, 일어나. 먼저 입 헹구고 세수해야지."

서은정은 자고 있는 서은혁을 깨워 얼굴을 씻겨주었다.

녀석은 잠이 덜 깬 듯 비몽사몽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둘째 누나, 우리 왜 숲에 있어?"

"언니가 이곳에서 먹을 걸 구하자고 했어. 그래서 내가 널 안고 여기까지 온 거야. 보여? 저 개울 봐봐 물고기가 아주 많아."

"물고기! 둘째 누나. 물고기 먹고 싶어!"

물고기란 세 글자에 서은혁은 눈을 번쩍 떴다.

"누나! 기다려 내가 큰 물고기를 잡아 올게!"

"그래, 얕은 곳에서만 놀고, 절대 깊은 곳에는 들어가지 마."

"알겠어 누나! 걱정하지 마."

서은별은 두 동생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현재, 그녀의 몸은 너무 허약했다. 얼마 걷지도 않은데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집안 어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동생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하복부에서 알 수 없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즉시 눈을 감았고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다시 눈을 떳을 때, 그녀는 생소한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중앙에는 옹달샘이 있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오두막 한 채가 있었으며 주변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대략 계한해 보니 약 200평 정도 되는 곳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조금 전에 있던 곳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소설 속에서 흔히 등장하던 이공간이 분명했다.

그녀는 기쁨을 억누르고 그녀는 즉시 다시 이공간에 진입해 보았다. 역시나 그녀의 생각대로 순조롭게 그 이공간에 드나들 수 있었고 이공간에서의 행동 또한 자유로웠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이 험난한 세계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이직 이공간의 비밀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겐 시간이 많았다.

그녀는 일단 이공간에 대한 일을 두 동생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나이가 어린 두 동생이 겁을 먹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동생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얼른 나가려 했지만 이공간의 옹달샘에 자꾸만 눈길이 끌렸다. 맑고 깨끗했으며 알 수 없는 신성한 힘이 느껴졌다.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순간, 온몸이 치유되기 시작했고 힘도 천천히 되돌아 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안돼, 이 샘물을 함부로 마실 수 없어.'

그녀는 돌멩이를 주워 그 옹달샘에 넣어 보았다. 돌멩이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옹달샘에 잠겼다. 주위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그 돌멩이를 건져 올려 자세히 관찰해 보았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누나, 둘째 누나가 물고기를 잡았어!"

서이혁의 목소리에 그녀는 잠시 현세로 돌아 왔다.

"봐! 누나! 우리 이제 물고기를 먹을 수 있어!"

서은혁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하지만 메마른 그의 몰골을 보노라니 서은별은 마음이 무거웠다.

"은정아, 정말 대단하구나."

서은별은 여동생이 팔뚝만 한 물고기를 들고 그녀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고 서은혁은 그녀의 옆을 맴돌며 환호를 질렀다.

물고기 품종은 알 수 없었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언니, 이 물고기가 글쎄 간이 배밖에 나왔는지 우릴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어. 그래서 쉽게 잡을 수 있었어."

서은정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너희들은 일 단 옷부터 벗어서 말리거라. 안 그러면 감기에 걸릴 거다. 불은 내가 피우겠다."

그녀는 서은혁을 서은정에게 맡기고는 장작을 찾아와 불이 지폈다. 본주의 기억이 있었기에 불을 붙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불을 지피고 나서 서은별은 물고기를 대나무에 꿰고, 불에 고기를 구웠다. 아무 양념도 없었던 터라 비린내가 많이 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정아, 혹시 근처에서 나물은 못 봤니?"

"못 봤어. 여긴 처음이라 주위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몰라."

서은정은 서은혁의 옷을 잘 씻어 나무 가지에 걸어 말렸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옷을 씻기 시작했다.

무심코 물고기를 굽고 있던 서은별은 배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이공간이 그녀와 교감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상한 기분에 따라 눈을 감고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머릿속에 나물을 떠올렸다.

순간, 이산의 모든 것들이 전부 그녀의 눈에 보였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나물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산을 벗어나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은별은 뛸 듯이 기뻤다.

'좋아, 아주 좋아.'

그녀는 소설 속의 여주들처럼 박식하지 않았고 의술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공간이 있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 누나. 왜 그래?" 서은혁이 미친 듯 웃어대는 서은별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니..."

서은정도 마찬 가지였다. 물에 몸을 던졌던 서은별이 깨어 났을 때부터 그녀가 뭔가 달라 졌다고 느꼈지만 여태 두려운 마음에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정확이 뭐가 달라졌다고 집어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은별의 눈빛은 전과 달리 두려움이나 나약함은 없었고 차분하기만 했다.

"하하, 놀랐느냐? 괜찮다. 물고기를 먹게 되어 너무 기뻐서 웃은 거다. 신경 쓰지 말거라, 난 저쪽에 가서 나물이나 찾아 볼 테니 너희는 물고기를 잘 지켜보거라."

말을 마친 서은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전 까지만 해도 허약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니, 몸은 괜찮아?"

"괜찮다, 오래 안 걸릴 거야. 아까 오는 길에 얼핏 야생 대파를 본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안 그러면 비려서 먹기 힘들 거다."

"빨리 돌아와, 언니."

"그래, 막내 잘 보고 옷을 말리고 있어라. 안 그러면 감기에 걸릴 거다."

"응."

두 동생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즉시 이공간을 불러냈다.

그리고 이공간의 새로운 사용법을 알게 됐다. 몸을 현세에 남겨둘 수도 있었고 몸까지 이공간 속에 들어 갈 수도 있었다.

이공간 속에 들어간 그녀는 즉시 샘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랬더니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문뜩 손바닥을 땅에 댄 채 아까 야생 대파가 있었던 곳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순간, 그녀는 공간을 이동하여 순식간에 대파 앞에 도착했다.

'순간 이동인가? 조심해야겠어, 절대 이 능력을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돼.'

그녀는 몸을 숙여 대파를 꺾어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눈을 감고 이번에는 과일들을 떠올렸다.

즉시, 근처에서 대추 나무를 발견 했다. 샘물을 효력이 대단했다. 뛰는 건 물론이고 나무에 오른 것도 너무 쉬웠다. 그녀는 손쉽게 나무에 올라 대추를 바구니에 한 가득 담았다.

그렇게 그녀는 대추와 대파를 바구니에 담은 채 아무일 도 없었다는 듯 동생들에게 돌아갔다.

회차 3

서은별은 파를 손질해 생선 배를 가르고 안에 집어 넣었다 비린내를 없애려는 것이다.

'소금과 양념이 있었다면, 생선이 더욱 맛있었을 텐데.'

"누나. 나, 생선이 너무 먹고 싶어!"

군침을 꿀꺽 삼키는 서은혁의 모습에 서은별과 서은정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배가 고파? 입가에 군침이나 좀 닦거라. 부끄럽지도 않느냐?"

"생선을 먹어 본지 너무 오래 됐어. 누나."

서은혁은 소매로 대충 침을 닦으며 생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은별은 그런 동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앞으로 생선을 자주 먹게 해줄게."

"정말이지 누나?"

"그래, 내가 언제 너를 속인 적 있느냐?"

"와! 앞으로 고기 자주 먹을 수 있어! 물고기, 물고기!"

서은혁은 기쁜 나머지 모닥불 주위를 뛰어다니며 춤을 췄다.

"언니, 아무리 막내라고 해도 너무 오냐오냐하는 거 아냐? 꿈에서도 물고기 타령하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은정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시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생선을 자주 먹게 해준다니, 그저 동생을 위로 하는 말 정도라고 생각했다.

곧 생선이 다 익었고, 서은별은 부드러워 먹기 좋은 뱃쪽 살을 가시를 발라 먼저 막내에게 건네 주고는 또다시 조심스레 가시를 발라 여동생에게도 건넸다.

"생선이 정말 맛있어. 큰 누나, 둘째 누나, 빨리 먹어 봐."

서은혁이 생선 살을 크게 한입 배어 물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들을 다 챙기고 그제야 서은별은 생선을 한입 입에 넣었다. 생각했던 비린내는 없었고 맛있기만 했다.

'고대라 그런가? 생선이 너무 맛이 있는걸?'

"생선이 너무 맛있구나. 은정아, 은혁아. 많이 먹어라. 생선으로 배가 부르지 않다면 저기 대추도 있다. 내가 아까 오는 길에 많이 따왔다."

"예, 언니."

서은별은 생선은 거의 맛만 보다시피 했고 주로 대추로 배를 채웠다. 대추 맛은 현시대 보다 못했지만 그래도 허기를 달래긴 충분했다.

그렇게 끼니를 해결한 서은별은 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공간이 있으니 위험은 없었다. 이공간 덕분에 산 어디에 무슨 나물이 있는지 한눈에 보였고 위험한 맹수도 미리미리 피해 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이제 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자꾸나."

"언니,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아. 더 들어가면 호랑이나 늑대 무리를 만날 수도 있어."

서은정은 그녀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은정아, 우리가 나물을 캐지 않고 돌아가면 할머니가 오늘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고 꾸짖을 게 뻔하지 않겠냐? 하지만 바구니에 나물이나 과일들을 채워서 돌아간다면 배가 고파 산에 먹을 것을 찾으러 왔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거다."

서은정은 일리가 있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은혁아, 너는 어떠냐? 무서워?"

"무섭지 않아. 누나! 누나와 둘째 누나도 무서워하지 않잖아, 나도 무섭지 않아!"

서은혁이 작은 가슴을 활짝 펴고 말했다.

"우리 막내 정말 용감하구나."

"말만 뻔지르르하지 호랑이를 만나면 바로 울음부터 터뜨릴 걸?"

"둘째 누나 미워! 산 속에서 호랑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정말 튀어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흥!"

"이 녀석이."

"그 만들 하고 산에 오를 채비를 하자꾸나."

서은별은 동생들에게 준비하라 이르고는 이공간으로 나물의 위치를 체크했고 순식간에 그녀는 야생 감자를 찾을 수 있었다.

"언니,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니야?"

서은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다, 은정아. 그리 멀지 않아. 반 시진 정도만 가면 된다."

"반 시진 이라고?"

서은정은 의아하기만 했다. 그녀가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목적지를 정했는지도 궁금했고 심지어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시간까지 알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의문을 마음속에 숨기고 서은혁의 손을 잡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반 시진 후, 세 남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주위에는 온통 나물들로 가득했다.

"언니, 어떻게 이곳에 나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언니는 이곳에 온 적도 없잖아."

서은정의 질문에 서은별은 멈칫하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은정아, 이제야 말하지만 내가 물에 몸을 던졌을 때, 나는 거의 죽다 살아났다. 깨어 났을 때는 머릿속에 많은 일들이 떠오르더구나."

고대이긴 해도 거짓말이란 역시 자연스러워야 사람을 속일 수 있는 법이다.

"무슨 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지력 같은 능력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산 속 어느 위치에 무슨 나물이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거다."

"거짓말."

"내가 왜 네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난 누나를 믿어!"

서은혁이 천진한 목소리로 끼어 들었다.

"흥! 꼬맹이, 먹을 줄만 아는 줄 알았더니. 아부도 잘하는 구나."

"둘째 누나는 큰 누나 말도 안 믿잖아. 왜 나를 비웃고 그래!"

"그만들 하고, 이제 나물을 캐자꾸나."

"응! 누나!"

서은혁은 작은 발걸음으로 서은별에게 다가가더니 능숙하게 나물을 캐기 시작했다. 3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물을 캐는 그의 몸놀림은 아주 익숙했다.

15분쯤 지나니 주위에 있는 나물을 모두 수확할 수 있었다.

서은정과 서은혁의 바구니는 나물들로 가득 찼으나 서은별의 바구니는 아직 빈 곳이 있었다.

"은정아, 이게 뭔지 아느냐?"

서은별은 야생 감자를 손에 들고 물었다.

"몰라, 평범한 잡초 같아 보이는데?"

"이건 잡초가 아니다. 이건 감자라 불리는 작물이지. 뿌리 쪽을 파보면 알맹이가 있을 거다."

"감자? 언니. 나는 그런 이름을 처음 들어 봐."

'흠, 이 시대엔 아직 감자에 대해 제대로 모르나 보군.'

서은별은 챙겨온 괭이로 뿌리 쪽 흙을 파냈고 금세 감자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감자를 들어 올리자 두 동생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감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먹을 수 있지."

"하지만 이걸로 요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언니."

그녀의 말대로 감자로 요리를 하는 사람은 이 시대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내가 감자를 구워주마."

두 동생은 못 미더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서은별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었다. 서은별을 말리고는 싶은데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은별은 즉시 서은정 더러 불을 지피고 먹을 것을 만들라 시키고는 자신은 주위를 돌아 다니며 최대한 많이 감자를 캤다. 그리고는 그녀는 일부러 감자를 바구니 제일 아래에 숨기고는 그 위에 나물을 덮었다.

캔 감자 중 6개를 구워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려 했다.

두 동생은 처음에 감자를 입에 대려 하지도 안았다. 하지만 서은별이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더니 끝 내 참지 못하고 작게 한입 먹어 보더니 눈빛이 반짝 빛났다.

"너무 맛있어! 누나."

서은혁의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정말 먹을 수 있을 줄 몰랐어. 그리고 정말 맛있는 걸? 역시 언니가 최고야."

맛도 있고 배도 물릴 수 있는 감자를 찾아 내다니, 서은정은 이번에 산에 오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은정은 맛있게 감자를 먹었다. 서은별이 어떻게 감자라는 작물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잊혀진지 오래었다.

두 동생과 상의를 마친 서은별은 동생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던 중에 산 기슭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세 소녀를 만났다. 이웃 마을의 소녀들과는 옷차림부터 달랐다. 딱 봐도 읍내에 사는 아가씨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서혜영이었고 옆에는 그녀의 친구 우청하와 우연아였다.

유연아는 남매의 길을 가로 막더니 팔짱을 끼고 서은별을 하찮게 쳐다 봤다.

"쯧쯧, 은별아, 곧 시집갈 사람이 왜 산에 기웃거리는 것이냐? 시집가기 전에는 얌전히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몰라?"

"어머! 연이야 너는 아직 모르나 보구나. 저년이 어디 그런 좋은 팔자가 있겠어? 우리 할머니는 은자 5냥에 저년을 다리 병신한테 팔아 넘겼다."

서혜영은 원래부터 사촌 언니인 서은별을 싫어 했다. 서은별이 자신보다 예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뼈가 앙상하고 낯색도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얼굴은 빛을 바래지 않았다.

"뭐라고? 은자 5냥? 너무 많지 않아? 저런 년은 기생집에 팔아 넘겨도 2냥도 채 받지 못할 것 같은데?"

우청하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요사하게 웃었다.

"닥쳐!"

참지 못한 서은정이 우청하를 밀쳐냈고 그 바람에 그녀는 논두렁에 빠져 옷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 미친년이! 너 오늘 죽었어!"

우청하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서은정을 향해 달려 들었고 이내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나머지 둘 도 부리나케 달려와 친구를 도와 허은정을 밟아 대기 시작했다.

"너희들 당장 그만둬!"

서은별은 바구니를 서은혁에게 맡긴 뒤, 부랴부랴 서은정을 향해 달려갔다.

이공간 속의 샘물을 마신 그녀는 힘이 장사였다. 그녀는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도 그 셋을 전부 논두렁에 처박았다.

급히 서은정을 살펴보니 입가에는 피가 흘렀고 머리에는 커다란 혹이 생겨있었다.

바로 그때, 서은별은 한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은정아, 빨리 기절한 척하거라!"

"왜?"

서은별은 주위를 힐끗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년들에게 맞아서 정신을 잃은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 노부인은 너를 치료하는 돈이 아까워 우리를 밖으로 내 쫓을 거야. 그러면 우린 분가 할 수 있어. 더 이상 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될 거다."

"언니, 나..."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라. 넌 그저 기절한 척 눈만 꼭 감고 있으면 된다."

"알겠어, 언니."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은정아! 제발 눈을 좀 떠 보거라!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 은정아 정신 좀 차려 보거라!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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