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고시영에게 고설희를 소개하던 고운표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자리에서 멈칫했다. 그는 몇 년 전, 노부인과의 통화 중에서 고시영이 수능도 보지 않았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고운표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설희처럼 훌륭한 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고시영은 고운표의 한탄 섞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그들은 고설희의 작은 습관마저 똑똑히 기억했지만, 그녀가 대학을 다녔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마치 고설희가 그녀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시영은 고씨 저택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분명 이곳도 그녀의 집이지만, 그녀는 저택에 처음 방문한 셈이다.

이지혜는 그녀에게 관심을 쏟아 붓는 척, 싱긋 미소 지으며 방을 안내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알겠지?"

고시영은 싱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내,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 시영아. 나한테 너무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넌 내 딸이잖아."

말을 마친 이지혜가 아직도 방을 나서지 않자 고시영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어머니, 아직 하실 말씀이 더 남았나요?"

이지혜와 고운표는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에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졸부 가문에 가까운 그들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업계 사람들은 그들을 배척하기에 바빴다. 반면 육씨 가문은 인맥이 넓은 데다, 전국 서열 1위를 차지하는 재벌에 명성마저 높은 가문이다.

하여 육씨 가문에서 먼저 정략결혼을 제안했을 때, 이지혜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략결혼이 가져다 주는 혜택은 물론이고, 잇따른 기회와 명성은 눈을 감기만 해도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승준은 사고로 하반신마비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지혜는 소중하게 키운 딸을 육승준과 결혼시킬 수 없었다. 육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시골에서 지내는 고시영을 데려오기로 했다.

고시영의 차분하면서도 맑은 눈빛을 가만히 응시한 이지혜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죄책감을 느꼈다.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를 시골에 남겨두고 상경했기에 가족의 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진심 어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연민이나 동정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혜는 이것 또한 고시영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수능도 보지 못하고 시골의 작은 마을 의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무능한 소녀가 육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는 것은 신이 내린 기회가 아니고서야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하반신마비가 옳든 아니든 육승준은 부와 명예를 이미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시영아, 저녁에 만나야 할 손님이 있으니까 지금은 잠깐 쉬고 있어."

이지혜는 손님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지만, 고시영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육승준이겠지.'

일찍이 육승준의 사고에 관한 기사를 본 적 있는 고시영은 슬퍼해야 할지, 아니면 기뻐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차피 정도 없는 부모에게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무력감에 일찍이 체념하는 법을 배웠다.

"네." 살짝 고개를 끄덕인 고시영은 이지혜의 말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육승준 때문에 북성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고, 그에 대한 걱정과 생각이 슬며시 피어 올랐다.

이지혜는 고시영의 얌전한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피곤할 텐데 얼른 쉬어. 엄마는 먼저 내려가 볼게."

막 방을 나서려던 이지혜가 갑자기 자리에서 돌아서더니 고시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부했다. "오늘 누가 네 학력에 관해 묻는다면, 경성 의과대학의 석사 학위를 졸업했다고 말하면 돼. 거짓말이 들킬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엄마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고시영은 침대에 편하게 누웠고,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술실에서 할머니를 떠나 보낸 지 6일이 지났다. 할머니를 살리지 못한 순간부터, 그녀의 오른손은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외과의사에게 손 떨림은 치명적인 약점이자 문제점이다.

고시영은 눈을 감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다 잠이 들었고, 이내 불안한 꿈속에 빨려 들어갔다.

그 시각, 방으로 돌아간 고설희는 소파에 기대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채팅방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언니 외모에 관심을 쏟았고, 고설희는 언짢은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고시영은 예쁘다는 말로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미모를 자랑했다. 평범한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출 수 없는 미모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고, 외딴 시골에서 지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흰 피부에는 흠 하나 없이 매끈했다. 도리어 자신의 귀여운 얼굴이 고시영 곁에 서면 평범해 보일 지경이었다.

계속되는 질문에 고설희는 하는 수 없이 짧은 답장을 보냈다. [그냥 평범한 외모야. 못생기진 않았어.]

당장 들통날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의식 중에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북성의 모든 사람들은 육씨 가문과 고씨 가문이 정략결혼을 맺었다는 소식을 익히 들었다.

재벌 가문 자제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육승준이 어떤 여자와 결혼할지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졌다.

고설희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모두가 침묵을 이어갔다. '못생기지 않았다고? 못생기지 않았다는 건, 그리 예쁘게 생긴 얼굴도 아니라는 말이잖아.' 그들은 어쩐지 육승준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채팅 방에는 육승준의 남동생인 육경민도 있었다.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진 육경민은 휴대폰을 세게 움켜쥐고 어머니 오미란을 돌아봤다.

"엄마, 형이 아무리 하반신마비라 해도, 아무 여자한테 남은 인생을 맡길 수는 없지 않겠어요? 고설희가 그러는데 친언니가 아주 못생겼다고 해요."

육경민의 잔뜩 화난 목소리에 오미란은 죄책감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도 평범한 어머니처럼 아들이 훌륭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육승준은 다리만 마비된 것이 아니라 남자 기능도 거의 상실했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육씨 가문의 안주인인 오미란은 아들에 관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하여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문에 위협이 되지 않는 가문을 선택했고, 고씨 가문의 장녀 고시영을 정략결혼 상대로 결정했다.

"어른들 일에 참견하지 마." 오미란은 슬픈 감정을 억누르고 최대한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육경민은 내키지 않았지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미란은 육경민을 더 설득하지 않고 당장에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방금 이지혜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는데, 저녁에 고시영과 육승준이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곧장 육승준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오미란은 햇빛을 완전히 가로막은 창문 커튼을 홱 열어젖혔다.

눈부신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차갑게 가라앉은 어둠을 순식간에 몰아냈다.

침대에 누워있는 육승준의 지독히도 깊고 음울한 어둠이 넘실거리는 눈동자와 짙은 눈빛,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가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한 오미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맞선을 주선했으니, 오늘 저녁에 결혼 상대를 만나게 될 거야. 네가 거절할 이유는 없어."

"어차피 거절하지도 못할 텐데, 맞선으로 시간 낭비까지 해야 하나요? 내일 당장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부터 하면 되겠네요." 육승준은 아무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미란은 그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연민이 뒤섞였다.

예기지 못한 교통사고가 육승준을 하반신마비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 목숨까지 앗아갔다는 사실은 가족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른다. 육승준의 상태만으로도 이미 충격이 컸기 때문에, 남편의 죽음을 감히 알릴 수 없었다. 혹시라도 회사에 불안을 초래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순순히 하겠다고 하니 다행이네. 그래도 아내 될 사람인데, 만나보는 게 좋겠지."

말을 마친 오미란이 방을 나가자 육승준의 얼굴에 다시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통과 자기혐오가 묻어났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결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해가 질 무렵, 고시영은 고설희가 그녀의 방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고설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거만하게 말을 걸었다. "언니, 곧 육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는 거 축하해. 육씨 가문이 북성 최고 서열을 자랑하는 가문인 거 알고 있지?"

수년 간의 유학 생활과 고설희보다 나이가 7살이나 많은 고시영은 단번에 그녀의 위선을 알아차렸다.

그저 시선이 맞닿은 것만으로도 자신에 대한 고설희의 적대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고시영은 태연하게 이불을 정리하며 고설희가 무슨 말을 더 할지 기다렸다.

회차 3

고시영의 예상대로 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고설희가 빠르게 말을 이어 했다. "육씨 가문이 북성에서 서열 1위 가문인 건 맞지만, 육승준은 하반신마비 장애인이야. 남자가 하반신 마비라면 성기능에도 영향이 미친다고 하던데. 솔직히 난 언니가 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좋겠어. 그건 과부로 지내는 것과 다름없잖아."

고설희는 고시영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고시영이 육씨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육승준이 아무리 하반신마비가 되었어도, 고설희는 육승준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시영이 그와 결혼한다면, 분명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설희의 위선을 바로 알아차린 고시영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네가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억지로 걱정하는 척하지 마."

고설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한 고시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나도 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고시영의 직설적인 대답에 고설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고시영이 자신의 위선을 당장에 까발릴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고시영의 방을 나선 고설희는 분노를 참지 못해 자리에서 발까지 동동 굴렀다. "주제도 모르고 고상한 척하기는! 뻔뻔한 시골 촌뜨기 주제!"

바로 문 앞에서 고설희가 내뱉는 욕설을 들은 고시영은 자리에서 돌아서 고설희를 똑바로 쳐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부모님도 청성에서 상경했다는 사실을 잊었어? 내가 거실에 내려가 부모님한테 네가 청성에서 상경한 사람들을 시골 촌뜨기라고 비난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어떻게 될까?"

그 말에 고설희는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고시영의 날카로운 눈빛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

고설희는 그런 고시영이 죽도록 미웠지만 반박하지 않고 씩씩 화를 내며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고설희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쾌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이지혜가 고시영의 방을 찾아왔다.

고시영은 묻지 않아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고설희는 분명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며 이지혜에게 달려가 눈물을 터뜨렸을 것이다.

"너, 설희한테 뭐라고 했어?" 이지혜는 고설희가 괴롭힘을 당한 것이 확실하다는 듯 추궁하듯이 날카롭게 캐물었다.

고시영은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비난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 그녀가 태연하게 되물었다. "고설희가 어머니를 찾아가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 이지혜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고시영이 그녀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되묻는 태도에 이지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역시 시골 마을에서 자란 탓에 예의범절은 조금도 익히지 못했다고 확신했다.

"고설희가 먼저 저를 시골뜨기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청성 출신이 시골뜨기라면, 어머니와 아버지도 시골뜨기라고 알려줬을 뿐이에요. 어머니와 아버지도 청성에서 지내다 상경했으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우리 설희는 절대 교양 없는 말을 입에 올리는 애가 아니야!" 이지혜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설희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 이제 거짓말까지 하는 거니? 고시영, 네가 그렇게 대단해?"

고시영은 이런 상황이 어처구니없다고 느껴질 뿐이다. 이지혜는 그녀에게 대답을 강요했지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만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고시영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기를 채우는 능력도 상당했다. 어차피 이지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으니 말이다. "어머니, 제 말이 거짓말인 것 같으면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어머니는 설희의 말만 믿을 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절대 사과할 수 없어요. 이런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는 다시 시골에 내려갈 테니, 설희가 육승준과 결혼하면 되겠네요."

이지혜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고시영은 그것을 이용해 이지혜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 네가 어떻게!"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이지혜는 고시영을 북성에 데려온 진짜 이유를 상기하며 가까스로 화를 억눌렀다.

고시영과 고설희 두 사람 모두 그녀의 딸이지만, 성격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고설희는 애교 가득한 성격에 명문 대학에 입학한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하면, 고시영은 고집스러운 성격에 거짓말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이지혜는 그런 고시영에게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약속 시간이 거의 다가오니까 준비하고 내려와. 아주머니한테 미리 옷을 준비해 달라고 했으니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오면 돼."

고시영이 북성에서 지내기로 결정한 이유는, 고설희만 편애하는 부모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녀는 북성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뉴스에서 육승준을 첫눈에 알아봤기 때문이다.

육승준을 만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지혜가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고 싶지 않았던 고시영이 잠시 후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조금 전 방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일찍이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이지혜의 미간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왜 옷을 갈아입지 않은 거야?"

"갈아입기 싫어서요." 고시영은 개의치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인내심이 바닥난 이지혜는 그런 고시영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불현듯 고시영이 그녀가 생각했던 것만큼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제일 시급한 것은 그녀와 육승준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그래, 갈아입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이제 출발해."

그 시각, 재벌 가문 2세 자제들만 모여있는 채팅 방에서 육경민은 고설희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해댔다.

[고설희, 너희 언니의 직업은 뭐야?]

오래 전부터 동일한 그룹 채팅 방에 가입했지만, 졸부 가문이라는 낙인이 찍힌 고설희는 평소 육경민과 대화할 접점조차 찾지 못했다.

그랬던 육경민이 먼저 말을 걸자 고설희의 얼굴에 흥분된 기색이 역력했다.

고설희는 육경민의 문자를 기다린 사람처럼 바로 답장을 보냈다. [시골 마을 의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다고 들었어요.]

곧바로 육경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의사?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육승준을 더 잘 돌봐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마지못해 고시영을 조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고설희는 어머니 이지혜가 고시영이 경성 의과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릴 계획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

그녀는 매일 밤을 새워가며 간신히 경성 의과대학에 입학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고시영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찬사를 받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고설희는 고의가 아닌 척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언니는 대학에 다닌 적이 없어요. 아마 시골 마을 의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에게 의학 지식을 배웠을 거예요.]

[뭐? 대학도 다니지 않았다고?] 짧은 문자에 육경민의 놀란 기색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어쩌면 고시영이 의사로 근무했다는 사실마저 믿을 수 없었다.

육경민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형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명문대학을 졸업했는데, 못생긴 여자와 정략결혼을 하는 것도 모자라 대학도 다니지 못한 사람이라니...'

인내심이 완전히 한계에 달한 육경민은 당장에 육승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 고시영이라는 여자와 결혼하지 마. 그 여자는 형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고시영의 동생은 고시영이 대학도 다니지 않았다고 했단 말이야. 못생긴 것도 모자라 대학도 다니지 못한 여자가 형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

그 시각, 육승준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향풍각 VIP룸에 도착했다.

우아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인 레스토랑의 창문을 통해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육승준과 오미란은 야경을 감상할 기분이 아니었다.

오미란에게 이번 맞선은 순전히 사업상의 거래였지만, 육승준에게는 단지 자신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자리밖에 되지 않는다.

짧은 진동 소리와 함께 육승준은 육경민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했지만, 얼굴에 어떤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미란도 육경민이 보낸 문자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바로 두 눈을 꼭 감은 그녀가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준아, 엄마를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엄마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육승준이 하루라도 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입양한 아이를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키우는 것만이 그에 대한 나쁜 소문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육승준의 한쪽 입 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가더니 자조적인 미소가 번졌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었기에, 그는 어머니를 원망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육승준은 육경민에게 짧은 답장을 보냈다. [말조심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화를 이기지 못한 육경민은 휴대폰을 벽에 내던졌다. 이런 순간에도 육승준은 그에게 예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다니.

'형은 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바로 그때, 고시영과 이지혜도 향풍각에 도착했다.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 이지혜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나서야 스니커즈를 신은 고시영을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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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특별한 치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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