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소한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탁 주변의 공기가 굳어지더니 모두가 경악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내심을 잃은 소태리가 식탁을 세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촌녀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 엄마가 네가 온다고 얼마나 열심히 반찬을 준비했는데. 거지같은 게 감히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설쳐?"
그러자 소한주는 무구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잔뜩 억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그저 고기가 역겹다고 했을 뿐인데, 생고기라서 보기만 해도 좀 역겨운 느낌이에요. 태리야, 언니 말을 오해했구나?"
"너...!" 순간 말문이 막힌 소태리는 반박하지 못하고 말만 더듬었다. 더 떠들어댔다간 소한주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분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소한주는 계속해서 무구한 표정을 짓고 눈을 깜박였다."태리야, 설마 식탁에 생고기보다 역겨운 음식이 또 있다는 거야?"
소태리는 그 말에 어찌 답변해야 할지 몰라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 꼬리만 실룩거렸다. 마치 무언가에 목이 멘 듯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때, 당윤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색한 침묵을 깼다. "한주야, 이건 일반 육회가 아니라 미슐랭 셰프의 특제 소스로 최고급 소고기와 저온 살균 계란으로 만든 특급 육회야. 일반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없는 최고급 음식이란다. 아마 여태껏 시골에서 지내느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겠지?"
당윤미의 말에는 시골에서 지낸 소한주가 고급 요리를 먹어본 적 없다는 조롱이 미묘하게 섞여 있었다.
소한주는 싱긋 미소 지으며 조금도 개의치 않다는 듯이 답했다. "요즘 아무리 미슐랭 셰프가 대단하더라도 저는 전통 음식이 입에 맞는 것 같아요. 조상들이 남겨준 조리 방법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양식 소스를 곁들여 생고기를 먹는다는 게 너무 야만인 같지 않나요?"
당윤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드러났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우리 전통 육회도 있는데 엄마가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그래, 나도 서양 소스를 곁들인 육회는 별로인 것 같아." 갑자기 끼어든 소승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한주를 바라봤다. "나도 우리 전통 음식이 더 입에 맞는 것 같아. 한주의 음식 취향을 보니 나를 많이 닮은 것 같구나."
소한주는 소스가 묻은 젓가락을 냅킨으로 닦으며 계속해서 미소만 지었다. 소태리의 분에 겨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
당윤미는 소한주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한주는 지금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어? 태리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중주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너는 어때?"
소태리는 바로 득의양양한 표정을 하며 가슴을 앞으로 폈다.
소한주의 학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승제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한주가 지내고 있던 마을 주민들한테 확인해 보니 한주는 지금 어느 대학에도 다니지 않는다더군."
당윤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네? 한주가 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다는 말이에요? 그럼 안 되는데, 심씨 가문 사람들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얼마 전 심씨 가문 사모님께서 한주가 돌아오면 성대한 연회를 열어 축하해주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만약 심씨 가문에서 한주가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승제가 한껏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당윤미의 말을 가로챘다. "그만해. 한주 학교는 내가 직접 알아볼 거니까."
곁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소태리가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소한주가 아버지의 인맥을 빌어 아무 지방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상상만으로도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가서 무명 대학에 진학한 시골 촌녀 소한주를 위해 축하 연회를 여는 심씨 가문도 덩달아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연회장에서 소한주가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행동과 태도를 보인다면 축하를 받기는커녕 되려 미움을 사게 될 거다.
사실 소태리는 심씨 가문의 도련님인 심하준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씨 가문에서 오래 전에 양가 부모끼리 약속한 혼사 때문에 굳이 소한주를 데려오게 할 줄 누가 알기나 했을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약조를 곧이곧대로 지키는 가문이 있다니!
소태리는 심씨 가문이 학교도 제대로 다닌 적 없는 촌년 소한주를 결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한주의 대학에 관한 말이 오가는 동안, 분위기가 또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소한주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더니 세 사람을 둘러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며칠 뒤에 있는 경화 대학교 입시 시험에 참가할 예정이에요. 이변이 없으면 경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될 겁니다."
놀란 듯 어안이 벙벙해 있던 소태리가 이내 어처구니없는 실소를 터뜨렸다.
경화 대학교는 전국 수재들만 모여 있는 대학인만큼, 입시 시험 자격 또한 매우 까다로웠다. 그러니 시골에서 자란 소한주에게 경화 대학교에 입시 시험 자격이 주어졌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소승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깊게 찌푸리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주야, 네가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 경화 대학 입시 시험을 본다는 거짓말로 우릴 속일 생각이야? 시골에서만 자랐더니, 못된 것만 배웠구나."
"여보, 화내지 마세요." 당윤미가 서둘러 중재하며 나섰다. "한주는 당신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을 거예요."
소한주를 돌아본 당윤미가 최대한 자애로운 목소리로 달래려 했다. "한주야, 대학에 입시하지 못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 없어. 더욱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단다.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에, 널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야."
그녀를 위로하는 당윤미의 말에는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확신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한주는 말없이 휴대폰을 꺼내 몇 번 두드리더니 식탁 중앙에 올려놓았다.
세 사람은 휴대폰 화면을 보기 위해 머리를 빼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실소를 하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소태리가 웃음을 멈추고 표정을 굳혔다.
화면에는 그녀의 사진과 이름까지 똑똑하게 적혀 있는 경화 대학교 입학시험 수험표가 떡 하니 있었다.
소태리는 식탁에 놓인 휴대폰을 낚아채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이나 확인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 이럴 수 없어! 우릴 속이기 위해 가짜 수험표까지 만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