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환희야, 엄마 말 꼭 기억해야 한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네 재능과 아름다움을 드러내선 안 돼."
지난 15년간, 영희주는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 깊이 새기며 일부러 못생기게 분장하고 바보 행세를 하며 심씨 가문에서 살아왔다.
오늘이 바로 그녀의 스무 살 생일이었다. 이제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녀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약물을 부은 뒤, 얼굴의 추한 분장을 지우기 위해 화장 도구를 챙겨 옷을 벗고 편안하게 목욕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문밖에는 심씨 가문의 하녀 이영희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서 있었다. "영희주, 창고에 처박혀서 수상하게 뭘 하고 있는 거야? 오늘 청아 아가씨 결혼식인데, 네가 얼굴을 안 비추면 남들이 사모님께서 널 구박한다고 수군댈 거 아니야. 어서 거실로 가기나 해!"
이게 어디 하녀가 주인집 아가씨에게 할 태도란 말인가?
창고에 처박혀 꿍꿍이를 부린다고? 그녀는 15년 동안이나 이 후원 창고로 쫓겨나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새어머니 허혜진이 사생아를 데리고 들어와 안방을 차지했고, 그 후 심상훈을 포함한 심씨 집안사람 누구도 그녀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갈게요."
"그 꼴로 갈아입을 옷이 어디 있어? 어서 가기나 해! 곽씨 가문 사람들 다 오셨고, 구청 직원까지 와서 곽 선생님이랑 청아 아가씨 혼인신고 도와준다잖니. 사모님께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이 신성한 순간을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어!"
영희주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걸렸다.
곽씨 가문은 해성 제일의 명문가이고, 후계자인 곽시혁은 재력과 외모를 겸비한 재계의 거물이다. 심청아 또한 해성 제일의 미녀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으니, 두 가문의 결합은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두 사람을 두고 재능과 외모를 겸비한 선남선녀라며 대서특필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수식어는 오직 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누리꾼들은 두 사람의 결혼에 열광하며 동화 같은 결혼 생활이 펼쳐지기를 기대했다.
허혜진이 내세운 명분은 그럴듯했지만, 사실은 심청아가 얼마나 행복한지 똑똑히 보여주어 영희주가 질투심에 불타 죽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영희주는 이영희에게 이끌려 거실로 향했다.
오늘 심씨 가문은 심청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온 집안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거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화려한 옷차림이었지만, 오직 영희주만이 값싼 흰색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흉측한 얼굴로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허혜진은 곽씨 가문의 어르신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거실로 들어서는 영희주를 본 그녀는 잠시 흠칫하더니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환희야. 이모가 새 드레스 준비해 뒀는데, 왜 안 입었을까?"
드레스는 무슨.
예전의 영희주라면 허혜진의 가식에 맞춰 바보처럼 굴었겠지만, 이제 진짜 자신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는 그녀의 위선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곽대준 어르신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곽 할아버님, 안녕하십니까?"
"하하하..."
곽대준 어르신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아가씨, 갈수록 옷 입는 게 개성이 넘치는구나."
영희주는 자신의 폭탄 머리를 만지며 생각했다. '어르신은 정말 관대하시구나. 내 꼴을 보고 '안구 테러'라고 하지 않으시다니.'
곽대준 어르신에게 인사를 건넨 그녀는 어르신 옆에 앉은 남자를 쳐다봤다.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의 시선은 가장 먼저 그에게 향했다.
그의 옷차림과 앉은 자리로 보아, 틀림없이 곽씨 가문의 후계자 곽시혁일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그는 소문대로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영희주는 그의 수려한 외모에 잠시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제 꼴은 생각도 안 하고, 어딜 감히 청아 아가씨의 약혼자를 넘봐? 망신스럽게 정말!"
"저런 흉한 몰골로 곽 선생님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모독이야!"
허혜진의 눈짓을 받은 이영희가 일부러 모든 사람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었다.
심청아는 곽시혁의 팔짱을 끼며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듯 말했다. "괜찮아요. 시혁 씨가 워낙 뛰어나서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은 걸요."
그녀는 영희주를 전혀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영희주가 곽시혁을 탐내길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남편을 얻었는지 과시할 수 있고, 영희주를 영원히 자신의 발아래에 둘 수 있을 테니까.
심상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영희주를 노려보았다. "되먹지 못한 것! 저리 썩 꺼지지 못해!"
영희주는 긴 다리로 의자를 끌어당겨 곽시혁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곽시혁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곽대준 어르신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구청 직원에게 말했다. "수고스럽지만, 두 사람 혼인 신고를 진행해 주시오."
"네."
직원은 노트북을 켜고 곽시혁의 이름을 입력했다.
다음 순간, 직원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변했다. "저... 곽 선생님, 시스템을 확인해 보니 이미 기혼 상태로 나오십니다. 법적 배우자는...영희주 씨입니다."
뭐라고?
그 말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좌중을 충격에 빠뜨렸다.
영희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직원을 쳐다봤다. '내가... 결혼을 했다고? 그것도 곽시혁이랑?
대체 언제?'
회차 2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허혜진이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심상훈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뭐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심씨 가문은 영희주의 어머니 영수진의 전설적인 약재와 의술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영수진이 세상을 떠난 후, 심씨 가문의 기반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고, 곽씨 가문이라는 큰 나무에 매달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두 가문의 혼사는 절대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영희주도 심씨 가문의 딸이지만, 심청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심청아는 그들의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었기 때문이다.
꽉 움켜쥔 주먹이 심청아의 초조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그녀는 애써 우아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 "아빠, 엄마,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분명 무슨 오해가 있을 거예요."
"시스템에 등록된 정보가 맞습니다." 직원이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컴퓨터 화면을 확인한 사람들의 눈에는 곽시혁과 영희주가 부부 관계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등록 날짜는 재작년 어느 날, 장소는 B국이었다. 그 해 영희주는 18살이었다.
심상훈과 허혜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순간 멘탈이 바스러진 심청아는 더는 명원의 자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곽시혁에게 집중되었고, 곽대준 어르신도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혁아,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곽대준 어르신은 화가 치밀어 수염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네가 다른 사람이랑 혼인신고를 했는데,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곽시혁은 맞은편에 있는 영희주를 흘깃 쳐다봤다. 그의 눈빛은 속세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듯 차갑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 영희주를 쳐다봤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희주가 무고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그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매일 후원에 갇혀 창고를 집으로 삼고,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으며, 외모가 하늘을 찌를 듯이 흉측한 그녀가 어떻게 B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분명 누가 수를 쓴 게 틀림없어요!"
허혜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진상은 나중에 밝히더라도 길시를 놓칠 순 없어요. 당장 이혼 신고부터 하고, 시혁 군이랑 우리 청아 혼인신고부터 다시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 그래. 결혼식이 중요하지." 심상훈도 맞장구쳤다.
"시혁이는 청아를 아내로 맞이할 수 없게 됐네." 곽대준 어르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 곽씨 가문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있어. 곽씨 가문 남자는 사별은 해도 이혼은 할 수 없네. 오늘의 신부는 영희주로 바뀔 수밖에 없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더 이상 명원의 체면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심청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온 성 사람들이 다 제가 곽씨 가문에 시집가는 줄 아는데, 결혼식이 코앞인데 영희주라니요! 그럼 제 체면은 뭐가 돼요? 앞으로 얼굴 들고 어떻게 살라고요?"
허혜진도 자애로운 새어머니의 가면을 벗어 던졌다. "최고 재벌가 안주인 자리는 우리 청아 거라고! 영희주 저 천한 년이 무슨 자격이 있어?"
두 모녀가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본 영희주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 그녀는 어떻게 하면 곽시혁을 빼앗아 두 모녀를 미치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결혼증이 뚝 떨어질 줄은 몰랐다. 이제 그녀는 아무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결혼증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곽시혁을 쳐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많이 억울하겠어~"
여보?
영희주의 여보라는 말에 심청아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영희주에게 달려들었다. "이 미친년이! 그분은 내 남자야! 네가 뭔데 여보라고 불러!"
영희주는 재빨리 곽시혁의 뒤로 몸을 숨기고 그의 어깨를 잡은 채 고개를 내밀었다. "청아 언니, 진정해요. 언니의 그 명문가 영애 이미지 망가지겠어요~"
영희주를 잡지 못한 심청아가 다시 달려들려 했지만, 영희주의 말에 그 자리에 멈칫했다.
방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자신이 해성 제일 명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 타이틀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절대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방금 전까지 시장 아줌마처럼 소리를 지르던 심청아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청초가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았다. "시혁 씨... 날 버리면 안 돼요.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심상훈과 허혜진도 애타는 눈으로 곽시혁을 바라봤다.
곽대준 어르신이 조훈과 가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곽 어르신의 마음을 돌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곽시혁이 나서서 고집불통인 곽대준 어르신과 맞서 싸우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사건의 중심인물인 곽시혁은 여전히 돌조각처럼 만물을 멸시하듯 차갑고 침착한 태도였다.
그는 어깨를 잡은 영희주를 흘깃 쳐다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었다. "저는 곽씨 가문의 후계자입니다. 가문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제가 조훈과 가규를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허혜진과 심청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휘청거렸다.
심상훈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곽대준 어르신을 쳐다봤다. "어르신, 이건 좀..."
곽대준 어르신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촌스러운 화장을 한 영희주를 흘깃 쳐다보고, 또다시 곽시혁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자가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조훈과 가규를 버릴 수는 없었다.
"상훈 군, 내가 자네 부친에게 빚을 진 것이 있어 두 가문의 혼사를 약속했지. 허나 약혼 당시 심씨 가문의 어느 딸을 며느리로 맞을지는 정하지 않았네. 지금 신부가 영희주로 바뀌어도 규율에 어긋나지 않아. 자네에겐 똑같이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니 별 차이 없을 터, 우리 곽씨 가문의 가풍을 어지럽히지 말게나!"
어떻게 차이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차이가 너무 컸다!
심상훈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곽대준 어르신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신부가 바뀌는 일은 빼도 박도 못할 사실이 되었다.
영희주는 심청아를 대신해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 .
회차 3
곽씨 가문 후계자의 결혼식은 모든 준비가 최고급으로 진행되었으며, 신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웨딩드레스는 전례 없이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소문에 따르면, 웨딩드레스에는 40만 개의 다이아몬드와 진주가 박혀 있으며, 그 가치는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심청아는 이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을 꿈꿔왔다.
심씨 가문과 곽씨 가문의 격차가 너무 커서, 허혜진과 심상훈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곽씨 가문의 높은 기준에 맞추려 애썼다. 무려 50억 원에 달하는 예단을 준비하며 성대한 결혼식으로 온 도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려 했지만, 결국 영희주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공수해 온 웨딩드레스가 영희주의 몸에 걸쳐지고, 심씨 가문이 반평생을 바쳐 준비한 예단이 영희주의 차지가 된 것을 보며 세 사람은 화가 치밀어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영희주는 몇 번이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곽시혁이라는 빙산이 옆에 있어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이 남자는 위험한 인물이다.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했고, 이 황당한 혼인 신고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심씨 가문 별장 밖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신부가 바뀐 사실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곽시혁은 웨딩카 대신 전용 헬기를 이용해 신부를 데려갔다.
헬기가 영희주와 곽시혁을 태우고 심씨 가문을 떠나자, 심청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엄마, 내 재벌 사모님 꿈이 이렇게 산산조각 나는 거예요?"
"아니, 절대 산산조각 나지 않아!"
허혜진의 두 눈에 악독한 기운이 번뜩였다. "곽시혁이가 어떻게 저런 추녀를 아내로 받아들이겠어? 그것도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서 말이야. 어쩌면 첫날밤도 채 지나지 않아 그 계집애가 죽어 나갈지도 몰라!"
심청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엄마, 그럼 시혁 씨가 일부러 사별을 만든다는 뜻이에요?"
허혜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영희주만 죽으면 곽시혁은 다시 널 찾아올 거야. 해성 제일 명원이라는 타이틀만 잘 지키고 있으면, 재벌 사모님 자리는 결국 네 것이 될 것이니라."
허혜진과 심청아가 곽시혁이 영희주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영희주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곽시혁을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의 이름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염라대왕보다 더 잔인무도하다고 했다. 그를 건드린 사람들은 죽거나, 죽지 못해 사는 신세가 된다고 했다. 그녀는 이 대마왕을 너무 심하게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결혼식 내내 얌전히 행동했던 그녀는 신방에 들어와서도 침대 끝에 얌전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은색 정장을 벗은 곽시혁은 침대 맞은편 소파에 앉아 영희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두 눈은 마치 X선처럼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 내렸다.
낮에 본 폭탄 머리에 기괴한 문신을 한 얼굴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는데, 화려한 웨딩드레스에 섬세한 베일로 얼굴과 머리를 가리니 드러난 가녀린 몸매와 흰 팔은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다섯 살 때 장난으로 불을 질러 별장을 모두 태웠고, 그 화재로 친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 자신도 얼굴에 흉터가 남았고, 심지어 점쟁이조차 그녀가 재앙을 몰고 다니는 팔자라고 했다.
소문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라고 했지만, 그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맑아 보이는 눈동자 속에 얼마나 많은 교활함과 계산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청아가 그녀를 잡으러 달려들었을 때, 그녀는 재빨리 그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보통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는 그녀의 독특한 발걸음에서 무술 실력이 어설픈 사람은 낼 수 없는 가벼움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궁금한 것은 오직 두 사람의 이름이 어떻게 혼인 증명서에 나란히 오르게 되었는지였다.
대체 누가,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를 안겨줄 만한 능력을 가졌단 말인가? 그 목적은 무엇일까? 영희주 본인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낮에는 곧잘 지껄이더니, 지금은 왜 조용하지?"
고요한 방 안에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영희주는 그의 말과 함께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가 분에 넘치게 곽 선생님께 시집을 오게 되어, 송구스러워서 그렇습니다..."
이제 곽씨 가문에서 살아야 하는 몸. 얌전히 굴어야 할 때는 얌전히 굴고, 아첨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그래야 숱한 문제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 곽시혁이 코웃음을 쳤다.
입만 열면 거짓말인 사기꾼 같으니. 심청아 앞에서 자신을 '남편'이라 부를 때는 조금도 주눅 든 기색이 없더니만. 어디까지 연기할 수 있을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영희주는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믿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에게 약점 잡혀 당하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녀가 속으로 셈을 하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긴 다리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는 몸을 숙여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공주님 안기에 영희주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곽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남자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사모님, 신혼 첫날밤에 우리 같은 신혼부부가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더니, 그녀는 그의 아래에 깔렸다.
부드러운 침대 매트리스가 출렁이며 위아래로 흔들리고, 코끝에는 그의 남성적인 향기가 가득 번졌다. 영희주는 완전히 멍해졌다. 지금 제 꼴이 이 모양인데, 곽시혁이 정말 덮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