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그 짧은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폭탄적인 메시지에 기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순간 너나 할 거 없이 마이크를 앞으로 내밀며 일말의 정보라도 놓칠까 비집으며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미연은 더 이상 다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기가 힘들었지만, 이 많은 기자들 앞에서 함부로 화를 낼 수도 없었기에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바로 그때, 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군중 속을 뚫고 터져 나왔다. "진은비! 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 루이반스의 수장품은 분명 너의 가방 안에서 나왔잖아! 증거가 빼박인데 네가 뭐가 억울하다는 거야?! 감옥에서 4년을 썩고 나왔으면서 반성은 못 할 망정, 이렇게 뻔뻔하게 굴다니? 우리가 땡볕에 너를 데리러 온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어디서 배은망덕하게 따지고 있어!"
말을 뱉은 사람은 진씨 가문의 장남, 진도건이었다.
임은비가 무려 17년 동안 오빠라고 부르며 따랐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가 누명을 썼을 때, 이 오빠란 사람은 진소월을 등 뒤로 감싸며 임은비를 거칠게 땅바닥으로 밀쳐버렸다.
바닥으로 넘어진 임은비는 팔이 책상 모서리에 찍히며 피가 낭자하게 쏟아졌고, 그 상처는 결국 흉터로 남아 평생 지워지지 않게 됐다.
그리고 그 수장품은... 진소월이 임은비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그녀의 가방 속에 몰래 넣어둔 것이다.
그 당시 임은비는 진소월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정말로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진소월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섰을 때 아무런 의심 없이 가방을 맡겼던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순수하고 다정해 보였던 진소월은 속으론 누구보다도 교활하고 질투심 많은 인물이다
그래서 임은비의 존재가 자신의 입지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때부터 진소월은 치밀하게 덫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날, 임은비는 진씨 가문의 민낯을 똑똑히 보았고, 그녀의 마음도 그 날과 함께 죽었다.
"언니가 아직 나한테 화가 나 있나 봐...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진도건의 옆에 서 있던 진소월은 붉어진 눈으로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언니, 난 정말 언니 자리 뺏으려고 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게 아니야. 제발... 이제 그만 화 풀어, 응?"
그 말과 동시에 진소월의 가녀린 몸이 살짝 떨리더니, 금세 눈물이 뚝 떨어질 듯했다.
진도건은 그런 진소월을 품에 안으며 어깨를 다독였다. "소월아, 네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원래 네 것이었던 17년을 빼앗아간 임은비가 잘못한 거지! 저것 봐, 반성은커녕 고개도 안 숙이잖아. 다시 감옥에 보내서 제대로 버릇을 고쳐놔야 해!"
"그만 좀 해!" 우미연은 진도건을 한번 째려보고는 주위에 있는 기자들을 살폈다.
'이렇게 많은 시선들이 지켜보는데, 좀 작작하지 않고!'
우미연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들 쪽으로 돌아섰다. "4년 만에 만난 거라, 우리 은비가 아직 적응이 안 된 모양이에요. 그래도 난 다 이해해요. 은비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칠 수만 있다면, 우리 진씨 가문에서는 여전히 은비를 큰 딸로 생각할 거예요."
'큰 딸?'
그 말에 임은비는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비웃듯 말했다. "진 사모님, 저랑 이미 가족관계 끊으셨던 거 잊었어요? 증명서에 서명까지 하셨잖아요. 아니면 성조차 다른 저를 정말 진씨 가문의 큰 딸로 받아들일수 있겠어요?"
회차 3
우미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몇 년 전, 진씨 가문은 육씨 가문의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직접 육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임은비와 친권포기각서에 서명을 했었다.
물론, 그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자들은 일제히 마이크를 내밀며 물었다. "진 사모님, 그게 사실입니까? 전에는 친딸을 찾았어도 어렸을 때부터 돌봐온 진은비 씨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미연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이... 이게 사실일 리 있겠어요? 당연히 다 오해예요."
그러자 임은비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진 사모님, 육씨 그룹 사람들을 직접 불러서 한번 확인해보시겠어요? 제가 쓴 그 친권포기각서가 진짜인지 아닌지 말이에요!"
"진은비, 적당히 해! 육씨 가문 사람들이 우리가 함부로 불러올 수 있는 사람들이야?!" 진도건이 옆에서 언성을 높였다.
임은비는 눈웃음을 지으며 진도건을 바라보았다. "그럼 부를 담이 없다는 거네요?"
진도건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진씨 가문이 쌓아 올린 이미지가 산산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우미연은 갑자기 뭔가에 크게 자극이라도 받은 듯 격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진소월은 이내 상황을 눈치채고 곧바로 우미연을 부축했고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리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왜 그래요? 괜찮으세요?"
그리고는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임은비를 바라보며 연약하게 말했다. "언니... 엄마가 언니 걱정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매일 밤마다 눈물로 지새우셨어. 건강도 많이 안 좋아지셨고 의사 선생님도 더 이상 자극 받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십몇년 동안 언니를 키워주신 은혜를 봐서라도 더는 엄마를 속상하게 하지 말고 우리랑 같이 집에 가..."
임은비는 진소월의 그 징그러운 연기를 바라보며 치가 떨렸다.
집에 돌아가자고? 예전의 진은비에게는 집이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임은비에겐 더 이상 집이라 불리는 곳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는 그들과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임은비는 단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진은비는 4년 전에 이미 죽었어. 그것도 진씨 가문이 손수 죽인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임은비는 군중을 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우미연은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두 눈을 뒤집으며 쓰러져버렸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진도건은 재빨리 우미연을 업고 현장에서 빠져나갔고, 진소월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진씨 가문의 차에 올라타 기자들과 멀어지자, 우미연은 그제서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내가 기절한 척 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정말 수습하기 어려웠을 거야...'
'이게 다 진은비 그년 때문이야!'
'우리가 기꺼이 마중나온 걸 고맙다고 여기진 못할 망정,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씨 가문을 공개적으로 망신시켜!?'
'배은망덕해도 유분수지!'
"진은비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딴 배신자가 어딨어요!" 운전대를 부여잡은 진도건은 분노로 이를 악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온화하고 자애로웠던 우미연의 눈빛이 순간 싸늘하고 냉혹하게 변했다.
그녀는 콧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년은 지금 돈도 일푼 없고, 감옥살이 했다는 전과까지 있어.. 우리 진씨 가문을 벗어나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분명 다시 돌아올 거야. 그땐... 내가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날 오후,
임은비는 운성시 법원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