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오늘은 송 씨 가문의 장녀 송가은이 결혼을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결혼식과 다른 점은 결혼식 내내 신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텅 빈 신부 대기실에 홀로 앉아있는 송가은의 얼굴에는 무기력함이 가득 차 있었다.

모욕과 수치가 함께 밀려오며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분하고 억울해도 그녀는 어찌 할 수 없었다. 결정권은 처음부터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송가은 인생의 주도권을 쥔 사람은 그녀 자신이 아니었다. 결혼을 포함해서 말이다.

송가은 족쇄의 끝은 그녀의 탐욕스러운 아버지였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권문세족 가문 어르신 강철산의 운전기사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송가은의 할아버지는 우연한 사고로 강철산의 목숨을 구해주고 돌아가시게 되었다.

송가은의 아버지는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달간, 회사는 투자금이 끊겨 곧 파산 직전이었다. 강 씨 가문이 송 씨 가문에 진 빚을 돈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강 씨 가문과 송 씨 가문의 정략결혼을 생각해 냈다.

그러면 송 씨 가문은 예물로 큰돈을 받게 될 것이고 게다가 강 씨 가문과 사돈을 맺게 되면 앞으로 투자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강 씨 가문에서는 이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결혼에 대해 강도윤은 큰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강도윤은 결혼식을 참석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의 반항을 했다. 그리고 송가은에게 밖에서 절대 강 씨 가문의 며느리이자, 자신과 결혼했다는 말을 꺼내지 말기로 협박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누구도 송가은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대기실에 홀로 앉아있는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고 부케를 꽉 쥐었다.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절대 떨구지 않을 것이다. 눈물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길고 지루한 첫날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동료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동료는 송가은에게 오늘 밤 당직을 대신 근무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송가은은 망설임 없이 택시를 잡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바로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흰색 가운으로 가라 입었다.

"퍽!" 큰 소리와 함께 당직실 문이 누군가의 힘에 의해 열렸다.

송가은이 고개를 들자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누구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목에 칼을 겨누고 당직실 책상 위에 그녀의 머리를 꾹 눌렀다. 그러자 책상 위에 놓은 환자 차트가 땅에 떨어져 큰 소리를 냈다.

희미한 달빛 아래 그녀는 남자의 피투성이 얼굴과 매서운 눈동자만 볼 수 있었다.

익숙한 피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 송가은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는 남자가 심한 부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년간의 훈련과 의사 경험 덕분에,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다리를 굽히고 남자의 갈비뼈를 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바로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두 다리로 송가은의 다리를 옭아매었다.

그때, 복도에서 남자 구두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당직실로 향하고 있었다.

"빨리! 그 놈이 이곳으로 오는 걸 내가 봤어!"

남자들은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것 같았다.

긴급한 상황에서 남자는 송가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깜짝 놀란 그녀가 남자의 가슴을 밀치자 남자는 순순히 물러났다. 더 이상 칼로 그녀의 목을 겨누지도 않았다.

송가은은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당직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녀는 하는 수없이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자신의 입술을 부딪쳤다. 이번엔 그녀가 먼저 키스를 했다.

"제가 도와줄게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다치길 원하지 않았다.

송가은이 먼저 입술을 붙이자 남자는 살짝 놀랐다. 그리고는 주도권을 다시 다잡아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뜨겁고 거친 숨소리가 그녀의 귀가를 스쳤고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책임질게."

남자는 송가은이 하는 행동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저 남자의 목숨을 살려주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송가은은 남자의 입술에 더욱 열정적으로 키스를 했다. "앗! 하..." 그리고 비디오에서 들었던 것처럼 길고 관능적인 신음 소리를 내기도 했다. 쫓아오는 사람들이 당직실에 쳐들어왔음에도 남자는 송가은의 입에서 흘러나온 신음 소리에 반응하는 자신의 몸을 발견했다.

문앞 남자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로 송가은의 신음 소리에 취했을 것이다.

"이런! 병원에서 불장난이라니. 제발 적당히 좀 해라."

복도의 불빛이 당직실을 비추자 남녀가 서로 뒤엉킨 몸이 드러났다. 남자는 몸으로 송가은을 감싸 안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살짝 어둠 속으로 숨겼다.

"강도윤 아니야, 그 자식 심하게 다쳤어. 그 몸을 가지고 이런 짓은 할 수 없을 거야."

"저 여자 신음 소리 참 맛을 돋군단 말이지."

"닥치고 움직여! 빨리 강도윤을 찾아야 해. 아니면 우리 다 죽어!"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닫히고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자신을 쫓아온 사람들이 떠나가는 소리를 들었지만, 남자는 자신과 입을 맞추는 여자가 그의 욕망을 들끓게 하는 것을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욕정의 물결이 그를 휩쓸었다.

욕정의 물결은 송가은도 함께 휩쓸었다. 두 사람의 숨결이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아니면 송가은 내면의 반항이 폭발하는 탓일까.

여태껏 아버지의 조종하에 영혼 없는 인형처럼 살아온 그녀의 인생은 암흑 자체였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마음껏 즐길 생각이었다.

송가은은 거부감을 던져 버리고 남자의 품에 안겨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어두운 당직실에서 남자에게 자신의 첫날밤을 내주었다.

사랑을 다 나눈 후, 남자는 송가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이고 당직실을 빠져 나갔다. "다시 올게."

송가은은 허리와 아랫배의 통증으로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녀의 전화벨 소리에 방안의 정적이 깨졌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자 휴대폰은 책상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휴대폰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은 송가은은 바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여기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빨리 좀 와주세요!"

송가은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네. 곧 내려갈게요."

전화를 끊은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의 옷은 지저분하고 구겨져 있었고, 다리 사이에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방금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머리를 흔들었다. 결혼 첫날밤, 그녀는 낯선 남자와 뜨거운 밤을 보냈다.

오늘은 그녀의 인생에서 제일 무모한 날이었다!

자신의 행동에 더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바로 응급실로 내려가야 했다.

힘든 당직이었다...

다시 당직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새벽이 되었다. 당직실은 여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어젯밤 일을 기억하자 송가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대신 당직 서줘서 정말 고마워요." 정오연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송가은은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이젠 제가 마무리할게요. 얼른 들어가 쉬세요." 정오연은 아수라장이 된 당직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폭탄이라도 맞았어요?"

송가은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죄송해요. 아까 실수로 탁자 위에 있던 물건을 넘어뜨렸어요.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정오연은 송가은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송가은이 당직실을 나선 뒤, 정오연은 바로 흐트러진 차트를 정리했다.

그때, 병원장이 강도윤의 비서와 함께 당직실 문 앞에 섰다.

회차 2

"어젯밤 당직인 정오연 의사입니다." 원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강도윤의 비서 이민수는 정오연의 가슴에 박힌 이름표를 보고 말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그의 말에 정오연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러나 원장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빨리 가봐. 강 사장을 기다리게 하지 말고."

곧 그녀는 원장 사무실에 도착했다.

소파에 기대앉은 강도윤은 두 다리를 꼬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뜬 그는 정오연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입술은 평소보다 창백했지만 날카로운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그의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를 숨겨 주었다.

몸에 맞춘 듯한 정장을 입은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가 원장 사무실을 압도했다. 얼굴은 매서운 느낌을 주었고, 날카로운 눈매와 서늘한 눈빛은 다른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민수는 강도윤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 병원 CCTV는 누군가 일부러 손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기록이 삭제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놈들이 한 짓입니다. 이분은 어젯밤 당직인 정오연 의사라고 합니다. 원장님께서 직접 확인하셨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어젯밤 당직이 맞습니다."

강도윤은 정오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가 천구 그룹의 사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정오연은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어젯밤에 나를 도와준 사람이 당신인가?" 강도윤은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물었다.

정오연은 바로 고개를 숙이고 그의 눈빛을 피했다.

"네... 네 저 맞아요." 무슨 영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인정을 받는다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마침 제이병원에 인턴으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말만 인턴이지 정식 직원과 다름 없었다.

제이병원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이 병원보다 시설이 훨씬 좋아 모두의 로망이었다.

만약 이번 기회를 잘 잡으면 제이병원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네가 원하는 모든 걸 줄 수 있어. 사모님자리까지 포함하여." 강도윤의 차가운 목소리에 정오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젯밤 일이 생각나자 그의 얼어붙은 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저는..." 강도윤의 제안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정오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 정리하고 연락해." 강도윤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이민수한테 자신의 명함을 정오연에게 주라고 지시했다.

원장은 서둘러 사무실 문을 열고 손짓했다. "강 사장님, 이곳..."

"아니요. 괜찮아요." 부드러웠던 그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갑자기 그가 자리에 멈춰 서더니 원장을 보며 말했다. "잘 부탁할게요."

"네, 사장님." 원장은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민수는 서둘러 강도윤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장님, 이미 결혼하셨잖아요. 사모님 자리는 안됩니다."

이민수의 말에 강도윤은 억지로 결혼한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이민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죽고 싶어?"

이민수는 바로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강도윤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어젯밤 그와 뜨거운 밤을 보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신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그 시각, 송가은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그녀와 남편의 신혼 집이기도 했다.

현관으로 그녀를 마중 나온 사람은 바로 가문의 오래된 가정부인 오숙분이었다. 아줌마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사모님, 어젯밤에 왜 외출하셨어요?"

"당직을 대신 서주었어요." 송가은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눈에는 실핏줄이 가득 퍼졌고 많이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줌마는 송가은이 피곤해 하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서둘러 위층에 있는 방에 도착한 송가은은 바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 어젯밤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송가은은 하는 수없이 물 속으로 얼굴을 넣었다.

이 복잡한 감정을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어젯밤 자신의 첫날밤을 가진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그녀는 결혼을 했다.

밀려오는 죄책감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누가 뭐라 하여도 그녀와 강도윤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샤워를 마친 그녀는 옷을 가라 입고 출근할 준비를 했다.

아줌마는 그녀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 "사모님, 아침밥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송가은은 자신의 손목에 있는 시계를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괜찮아요. 저 늦었어요."

처음에 송가은의 직업이 의사라는 것을 들은 아줌마는 그녀를 더욱 안쓰럽게 여겼다. 의사는 밤낮 없는 근무로 환자들을 돌보는 존경 받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아줌마는 서둘러 주방에서 따뜻한 우유를 건넸다. "사모님, 이거라도 마시고 출근해요."

"고마워요." 송가은은 아줌마의 따뜻한 배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니에요. 빨리 따뜻할 때 마셔요." 강제 결혼이지만 아줌마는 송가은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녀가 강도윤의 아내가 아니라고 하여도, 의사인 직업을 가졌으니 충분히 존경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우유를 다 마신 후, 송가은은 아줌마에게 잔을 건넸다.

병원에 도착한 송가은이 향한 곳은 입원실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이곳 중환자실에 있었다.

송가은은 조심스럽게 병실로 들어가 어머니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병은 하루하루 더 악화되었다.

병실에 누워 야윈 모습인 어머니를 보며 송가은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심장 부전을 겪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이식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식을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송가은이 결혼을 동의 한 제일 큰 원인은 바로 아버지가 어머니의 수술비로 그녀를 협박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요구대로 결혼을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어머니에게 맞는 심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송가은은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줘요."

그녀의 어머니는 이 세상 유일하게 그녀를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송가은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고 귓가에 댔다.

"가은아, 나 좀 도와줘." 휴대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차 3

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그녀의 대학 선배인 심자언이었다. 같은 대학교 2년 선배인 그는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의사로 되었다.

심자언은 줄곧 송가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두 사람은 꽤 친했다.

"무슨 일이에요?"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있는데, 지금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아. 네가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송가은은 시계를 보며 오늘 자신의 일정을 떠올렸다. 오전에 다른 일정은 없고 오후에 수술 2개만 하면 되었다. "알았어요. 그럼 어디로 가면 돼요?"

"주소는 문자로 보내줄게. 도착하면 경호원한테 이민수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될 거야. 부탁해."

"알았어요."

"그리고 한 가지." 심자언은 당부하며 말했다. "아무 질문도 하지 말고 누구한테도 네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의 위치를 말하면 안 돼. 기억해. 치료가 끝나면 바로 나와."

"그렇게 할게요."

전화를 끊은 후, 송가은은 심자언이 보낸 주소로 향했다.

그곳은 국내 최고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갖춘 아파트가 가득 들어선 부자 동네였다.

심자언의 말대로 경호원들은 입구에서부터 그녀의 출입을 막았다. 송가은이 이민수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경호원은 바로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목적지를 빠르게 찾은 그녀는 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문은 바로 열렸다.

방문객이 심자언일 것이라고 생각한 이민수는 문 앞에 있는 송가은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

심자언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환자는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해 큰 거리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 문제 없이 환자를 치료하고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문제에도 휘말리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송가은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선택했다.

"심자언 의사가 보내서 왔습니다."

이민수는 그녀의 손에 쥐어진 구급상자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나요?"

"네. 심자언 의사한테서 전해 들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심자언은 절대 믿을 수 없는 사람한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이민수는 송가은을 방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거실을 지나 2층 계단을 오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 어두컴컴한 것을 보고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치료를 하란 말이죠?"

강도윤은 여자 목소리를 듣고 곁에 있는 옷으로 자신의 얼굴을 막았다. "불 켜."

이민수가 스위치를 누르자 방은 순식간에 환해졌다.

남자의 목소리가 익숙했지만 송가은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침대를 쳐다보니, 그곳엔 한 남자가 누워있었고 셔츠에 묻은 피는 이미 말라 있는 것 같았다.

송가은은 바로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자신은 오늘 이곳에 환자를 보러 온 의사였다.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 했고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상처만 집중해서 진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구급상자를 옆에 놓고 바로 수술 도구를 꺼내 들었다.

송가은은 가위로 남자의 셔츠를 자르자 그곳엔 간단하게 거즈로 덮은 상처가 드러났다. 거즈를 열어보니 남자의 오른쪽 허리의 칼 자국을 발견했다.

구급상자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꺼내어 상처 치료를 시작했다.

송가은은 침착하게 상처를 살피고, 빠른 손놀림으로 상처 소독을 마쳤다.

"혹시 마취제에 관한 알레르기가 있으신가요?"

다행히도 상처가 깊지 않아 큰 수술은 필요 없었다.

대신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부분 마취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송가은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단호했다. 어젯밤 다른 남자의 품에서 낸 신음 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였다.

강도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요." 송가은에게 몸을 맡긴 강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후, 송가은은 바로 마취약을 준비했다.

부분 마취가 되기까지 조금 기다린 후, 바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1시간 후, 모든 치료가 끝났다.

상처에 비하면 치료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송가은은 피투성이 된 자신의 손을 보고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1층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이민수의 말을 듣고 송가은은 바로 1층으로 향했다.

송가은이 1층으로 내려간 것을 확인 한 이민수는 바로 강도윤의 곁에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습격한 사람을 알아냈습니다. 최옥금, 사장님의 숙모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최옥금 씨가 우리 회사에 심어 둔 스파이를 모두 자르자 어젯밤에 사장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강도윤은 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은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의 어두운 두 눈에서 위험한 빛이 번쩍거렸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민수를 보며 물었다. "그 여자와도 관련 있는 건가?"

이민수는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최옥금 씨가 그녀의 아버지인 송창성 씨에게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송창성 씨는 어떻게든 딸을 강 씨 가문에 시집 보내려고 했지만 강도빈이 아닌 사장님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최옥금 씨가 미리 손을 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귀국 선물로 아주 큰 것을 준비했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나도 큰 선물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 강도윤이 잠시 해외에 다녀오는 사이, 최옥금은 많은 소란을 일으켰다.

"강도빈이 중심거리에서 '매지컬'이라는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지?" 강도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민수는 바로 강도윤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네. 현재 회사에 마땅한 자리가 없어 클럽이 유일한 돈줄입니다. 만약 클럽도 문을 닫으면 앞으로의 생활도 더 어려워질 겁니다."

"네가 처리해라." 강도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민수가 계단을 내려오자 송가은은 막 2층으로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심지언이 이미 언질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대로 한 번 더 말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만약 오늘 있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따를 겁니다.

강도윤이 다쳤다는 소식이 최옥금과 강도빈의 귀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고 또 기회를 엿볼 것이다.

송가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저의 물건만 챙기고 떠나겠습니다."

송가은이 방으로 돌아가자, 남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가 묻은 셔츠를 벗고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의 넓은 어깨와 근육으로 가득 뒤덮인 등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몸이었다. 군살 하나 없이 엉덩이와 연결된 남자의 뒷모습만 보면 야수가 연상되었다.

"안 가세요?"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송가은의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조롱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당황한 송가은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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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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