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윤태리, 엄마 아빠가 날 데려왔는데, 네가 설 자리가 있을 줄 알아? 꿈 깨, 없어."
수영장 난간에 기대선 윤태은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고는 몸을 뒤로 젖히더니―
"풍덩!"
수영장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윤태은은 수영장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살려줘! 살려줘!" 그녀는 당장이라도 물에 빠져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수영장 난간에 기대선 윤태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윤태은을 지켜볼 뿐,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윤씨 가문 저택에서 친딸 윤태은을 위해 마련한 환영 파티였다.
18년 전,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 윤태은을 윤씨 가문 부부는 수년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고아원에서 윤태리를 입양했다.
하지만 윤태은이 성인이 된 후 다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윤태리는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태은아!"
김애란의 비명 소리가 저택에서 들려왔고, 그녀와 윤경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수영장에 빠진 윤태은을 발견한 김애란은 수영장 난간에 서 있는 윤태리를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더니 소리쳤다."윤태리!이 배은망덕한 년 !''
감히 동생을 밀어?!" 윤경진은 아무 말 없이 수영장에 뛰어들어 윤태은을 구했고, 김애란은 윤태리를 향해 삿대질하며 고함쳤다. "당장 나가! 이 집은 너 환영 안 해!"
"안 밀었어요." 윤태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쟤가 스스로 뛰어든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김애란은 화가 치밀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 은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 우리가 너를 고아원에서 데려왔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그때 윤경진의 도움으로 수영장에서 나온 윤태은이 그의 품에 안겼다.
온몸이 흠뻑 젖은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빨개진 눈시울로 힘없이 말했다. "아빠, 엄마, 언니 탓하지 마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차가운 바람에 떨고 있는 작은 백합과도 같았다.
"태은아, 넌 너무 착해빠졌어!" 김애란은 윤태은을 품에 꼭 안고 윤태리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보더니, "당장 짐 싸서 윤씨 가문에서 나가!"
윤경진은 잠시 망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그래도 우리가 원장님한테 약속도 했고... 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
." "오해? 무슨 오해?!" 김애란은 날카롭게 그의 말을 가로챘다. "지금 수영장에 빠진 건 당신 친딸이야! 윤태리가 민 게 아니면,쟤가 스스로 뛰어내리기라도 했단 말이야? !"
윤경진은 입을 벙긋거리더니 결국 고개를 숙였다. "... 그래, 보내면 되지."
휴대폰을 꺼내 든 그는 고아원 원장 문세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초에 윤씨 부부가 윤태리를 입양한 것도 국가 보조금 30만 원으로 급한 불을 끄기 위함이었다.
이제 친딸이 돌아왔으니, 윤태리는 자연스레 군더더기가 되었다.
그러니 윤태리가 떠나는 게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한쪽 구석에 가만히 서서 윤태리는 담담한 눈빛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크고 하얀 피부에 주먹만 한 얼굴은 차갑고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두 눈에는 분노도, 억울함도 없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윤경진은 전화를 끊고 어색하게 손을 비볐다. "태리야... 문세빈 원장님이 금방 오실 거야... 전에 너한테 사준 물건은 모두 가져가도 돼. 그리고 이 20만 원이라도 가져가라.. ."
"필요 없어요. "윤태리는 담담하게 그의 말을 가로챘다.
김애란의 품에 안긴 윤태은의 눈빛에 만족스러운 빛이 스쳤지만, 얼굴에는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제가 돌아와서 아직도 화가 난 거예요? 저는 그저 부모님 곁에서 효도하고 싶을 뿐이에요..."
"이 바보 같은 것, 미안해야 할 사람은 윤태리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김애란은 윤태은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라고 부르지 마. 난 네 언니 아니야." 윤태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제가 안 밀었다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윤씨 부부는 정곡을 찔린 듯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결국 윤태은은 그들의 친딸이었고,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었다.
"태리야, 이미 벌어진 일이야. 이제 와서 따져봤자 아무 의미 없어." 윤경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김애란이 막 화를 내려고 하는 순간, 정원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중년 여인이 정원으로 들어오더니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 "윤 선생님, 태리 데리러 왔습니다."
윤경진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태리야, 원장님 따라가거라."
성큼성큼 정원으로 들어온 문세빈 원장은 윤태리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아가, 데리러 왔어.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내가 더 좋은 가족을 찾아줄게."
그녀는 윤태리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고아원에 들렀을 때 만났던 연아름 아주머니 기억나? 아주머니가 너를 많이 좋아하셔. 네 상황을 알고 너를 입양하고 싶다고 하셨어."
윤태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연아름...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던 여자?'
문세빈 원장은 싱긋 미소 지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셔. 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그곳이 네 집이 될 거야."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했다. "제 생각엔 그 가정이... 너한테 더 어울릴 거야."문세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위에서' 그녀에게 준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이 '상전'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면...
윤태리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세빈 원장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회차 2
윤씨 가문 세 사람도 정원 밖으로 따라 나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고소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윤태리를 입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아마도 궁상맞은 집구석에서 윤태리를 입양해 집안일을 시키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대문 밖으로 시선을 돌린 그들은 자리에 얼어붙었다.
낡은 공유 자동차 한 대가 길가에 세워져 있었고, 차 옆에는 키가 훤칠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머리는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값비싼 실크 셔츠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기세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윤태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저 옷은 이탈리아 최고급 수제 맞춤 셔츠로, 한 벌에 윤씨 가문 반년 지출과 맞먹는 가격이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두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판단을 내렸다.
이 남자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때 마침 한도진의 시선도 윤태리에게 향했고, 그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겁에 질린 어린 소녀를 만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눈앞의 소녀는 허리를 곧게 펴고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흥미롭군.
한도진은 재계에서 유명한 한씨 그룹의 실세로,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었다. 윤씨 가문은 그를 우러러볼 자격조차 없었다.
그는 아내 연아름과 금슬이 각별했고, 두 아들을 두었지만 연아름은 항상 딸을 갖고 싶어 했다.
반년 전, 그녀는 고아원에서 윤태리를 한눈에 마음에 들어 했지만, 당시 윤태리는 이미 양부모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문세빈 원장님의 전화를 받은 연아름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뻔했고, 한도진에게 직접 윤태리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수천억 원의 자산을 가진 재계 거물은 수백억 원의 계약을 뒤로하고 서둘러 고아원으로 향했지만,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차가 망가졌다. 다행히 사람은 무사했다.
시간을 지체할까 두려웠던 그는 공유 자동차를 급히 빌려 윤씨 가문 대문 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지금의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윤씨 가문 사람들은 한도진의 초라한 옷차림과 공유 자동차를 보고 경멸에 가까운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역시 윤태리를 입양하는 사람은 가난한 집안 사람이 맞았어!
그들은 윤태리를 입양하는 가정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형편없을 줄은 몰랐다.
옷도 허름하게 입고, 공유 자동차를 타고 윤태리를 데리러 오다니.
쯧쯧, 윤태리의 앞날도 그리 순탄치 않겠군.
윤태은은 이 광경을 보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녀는 윤씨 가문의 천금같은 딸로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태리는 진흙탕으로 돌아가 입양한 가족과 함께 사회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문세빈 원장님도 조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연아름 씨의 남편은 재력이 상당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연아름 씨를 만날 때마다 통 크게 선물을 주곤 했었지.
아마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문세빈 원장님은 윤태리의 손을 잡고 한도진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물었다. "한 선생님이시죠? 이 아이가 바로 태리입니다."
한도진은 눈앞의 소녀가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 얌전해 보여,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드디어 아내가 윤태리를 한 번 보고 잊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파장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분명 그와 윤태리 사이에도 자석처럼 끌리는 기운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한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제 아내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문세빈 원장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윤태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태리야, 이분이 한도진 선생님이야. 아름 이모의 남편이지."
윤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도진은 잘생긴 얼굴에 범상치 않은 기품을 지니고 있었고, 조금 엄숙해 보였지만 그녀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녀는 한도진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윤태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순진한 척 앞으로 다가갔다. "언니~ 이 아저씨 공유차 타고 온 거야? 우리 아빠한테 차 좀 빌려달라고 할까?"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눈빛에 담긴 비웃음은 숨길 수 없었다.
윤태리는 그런 윤태은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됐어. 공유차도 괜찮아."
윤연민도 짐짓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태리야, 새 집에 가선 철 좀 들어라. 공부는 못해도 행실은 똑바로 하고, 사고 치지 말고."
그의 말은 윤태리를 깎아내리는 동시에 한도진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한도진은 윤연민을 차갑게 흘겨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돈은 우리 집에 넘쳐나는데. 내 딸은... 그냥 행복하기만 하면 됩니다."
윤씨 가문 사람들은 입꼬리가 저절로 씰룩거렸다.
허세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윤씨 가문도 재산이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오만방자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한씨 성을 가진 이 남자는 혹시 사기꾼이 아닐까?
거지처럼 옷을 입고 공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무슨 재벌 행세를 하려는 거지?
윤태은은 윤태리가 다시 버려지는 모습을 기대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부릉부릉!"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 세 대가 빠르게 달려와 한도진의 뒤에 멈춰 섰다.
차 문이 동시에 열리더니,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허리를 굽히고 큰 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사모님 지시로 모시러 왔습니다. 아가씨와 함께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윤씨 가문 사람들은 자리에 얼어붙었고,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롤스로이스? 경호원? 대표님?
윤태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한도진을 쳐다봤다.
거지처럼 옷을 입은 이 남자가, 한씨 그룹의 대표라고?
회차 3
한도진은 그들을 무시하고 윤태리를 돌아보자 차가웠던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다.
"가자. 네 엄마가 집에서 기다린다."
한도진의 말에 윤태리는 마음속에서 낯선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차갑게 식은 손끝이 갑자기 따스한 햇살을 만난 것 같은 느낌. 익숙하지 않지만, 피하고 싶지 않은 감정.
원장님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리야, 한 대표님께서 널 데리러 오셨어. 같이 가고 싶니?"
윤태리는 고개를 살짝 들어 맑은 눈동자로 한도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진지함이 묻어났다. "혹시 나중에... 갑자기 저를 쫓아내실 건가요?"
한도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입양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입양을 결정한 것뿐이다. 한씨 가문은 부유한 가문이었기에, 아이 한 명을 더 입양하는 건 그저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소녀의 눈에 담긴 불안감과 고집스러운 눈빛을 보며, 아내와 똑 닮은 눈매에 그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내가 꼭 데려와야겠다.
몸을 살짝 숙인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일 없다. 오늘부터 넌 한씨 가문의 아이야. 영원히."
원장님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한도진이 한 번 한 약속은 천금같이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윤태리는 윤씨 가문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뒤로한 채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고급 세단으로 향했다.
오늘부터 그녀는 더 이상 누구에게나 괴롭힘을 당하는 고아가 아니다.
한씨 가문이 애지중지하는 보물 같은 딸로 살게 될 것이다!
윤씨 가문 사람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드디어 저 눈엣가시 같은 재수 없는 애를 보냈어!
이건 정말 잘된 일이야!
'어차피 저 성격에 재벌가에서 얼마나 버티겠어? 곧 쫓겨나겠지.
......
고급 세단은 시내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윤태리는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갈아입을 옷 몇 벌과 미니 컴퓨터,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의 휴대폰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윙-"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
윤태리가 화면을 켜자 암호화된 메시지가 떴다.
''원장님께서 새 가족을 찾아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상대방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
윤태리는 짧게 '어'라고 답장을 보냈다.
상대방은 그녀의 과묵함에 익숙한 듯 답장이 곧바로 날아왔다.
''하지만 한씨 가문은 배경이 복잡합니다. 저희 계획에 없던 가문인데, 다시 준비할까요?''
고개를 숙인 윤태리는 답장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상대방은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적응이 힘드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어. 윤씨 가문에 줬던 지원, 전부 회수해. 지들이 잘난 줄 아는데 더 도울 필요 없어.''
윤태리가 윤씨 가문에 입양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이용해 윤씨 가문을 도왔고, 윤씨 가문은 그 이후로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
그때, 한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연아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여보, 태리 만났어요? 우리 딸 뭐 좋아해요? 주방에 미리 준비하라고 할게요."
한도진은 백미러에 비친 조용한 소녀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응, 만났어.
우리 딸, 아주 특별한 아이야."
차는 쏜살같이 달려 약 3시간 만에 한씨 가문에 도착했다.
한씨 가문.
경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황금 지역에 위치한 이 고급 주택 단지는 '운정천궁'이라고 불리며, 진정한 권력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놀라운 것은 한씨 가문 저택이 80%의 녹지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 호수가 반짝이는 것은 물론, 수억 원을 들여 소주 정원과 같은 정자와 연못을 만들었다.
당시 조원민은 제 분수도 모르고 이곳에 저택을 마련하려 했지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고급 세단이 저택에 천천히 들어서자 윤태리는 차창 밖으로 궁전 같은 저택을 둘러봤다.
한도진은 직접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고, 정성스럽게 가꾼 소주 정원을 지나 저택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한씨 가문 사람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둘러싼 중심에는 위엄 넘치는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비취 귀걸이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바로 한씨 가문의 노부인 심란이다.
왼쪽에는 한도근 가족이 앉아 있었고, 셋째 딸 한미정은 엽씨 가문에 시집가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노부인의 곁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가 서 있었다. 바로 노부인의 친정에서 한씨 가문에 맡긴 심민경이다.
"어머니, 제 딸 태리입니다." 한도진의 목소리가 드물게 부드러웠다.
거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윤태리는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고, 조금의 어색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 그녀는 간단한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백옥 같은 피부가 더욱 돋보였다.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욱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고아원에서 입양한 아이가 아니었던가? 어떻게 저런 명문가 규수 같은 기품이 느껴지는 걸까?
월백색 소주 자수 치파오를 입은 연아름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안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윤태리를 품에 꼭 안고 흐느끼며 말했다. "태리야, 우리 딸... 엄마는 우리가 인연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하늘이 우리를 도왔구나.너무 기뻐.이제 우리는 한 가족이야."
연아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매일 윤태리가 다시 고아가 되어 자신이 입양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윤태리는 여자의 가슴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백단향과 아이리스 향수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기억 속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따스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