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빌라 안에서, 이옥화는 김도욱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도련님, 오늘 밤에 크루즈 파티에서 은정 아가씨를 깜짝 놀라게 해주실 계획 아니셨어요? 제가 실수한 거, 꼭 만회할 수 있게 해주세요!"

몇 년 동안 유은정을 모셔 왔던 이옥화는 그녀의 취향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김도욱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유은정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기에, 파티 장소는 준비조차 안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김도욱이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루즈 파티가 시작되기까지는 이제 겨우 세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망치면 당신은 끝이야. 김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것뿐만 아니라, 법원 소환장까지 받게 될 줄 알라고."

이것은 마지막 경고이자, 한 번뿐인 기회였다. 이옥화는 결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급히 자리를 떴다.

김도욱은 다시 몸을 돌려 갖가지 음식들이 가득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았다. 순간, 방금 전에 한예름이 이옥화를 때리던 장면이 떠올라 짜증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한예름은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어딘가 차갑고 냉혹해진 느낌이었다. 더는 그가 알던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세 털어버렸다. 어쨌든 그의 눈에 한예름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재미없는 아내일 뿐이니. 그를 떠나면 한예름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시각, 빌라 밖에는 고급스러운 람보르기니 한 대가 멈춰 섰다.

"예름아!" 정소은이 활짝 웃으며 다가와 한예름을 꼭 끌어안았다. "내 집에서 평생 살아도 돼! 언제든지!"

정소은은 용업 그룹의 외동딸로, 부모님은 부동산으로 시작해 집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도대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정소은이 한예름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물었다. "아직도 식용유 냄새가 나네. 설마 또 그 멍청이한테 밥 차려줬던 건 아니지?"

정소은의 따뜻한 포옹에 한예름은 목이 메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차에 가서 얘기하자."

람보르기니에 올라탄 후, 한예름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조용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차분한 한예름의 목소리와는 달리, 이야기를 듣던 정소은의 표정은 점점 분노로 가득 찼다.

"말이 돼? 결혼식 날 유은정한테 차인 주제에, 이제 와서 널 버리고 다시 유은정한테 가겠다고? 둘이 딱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수준 낮은 것들끼리!" 정소은이 분노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 집안 사람들은 대체 뭐야?" 정소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네가 그 집안 뒷바라지한 게 몇 년인데, 널 이렇게 대해?"

정소은이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 부었다.

"그렇잖아. 아무리 그 사람이 어렸을 적의 기억을 잃었다지만, 지금 너한테 하는 짓들이 용서되는 건 아냐. 넌 지난 3년 동안 할 만큼 했고. 충분히 갚았어.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맞춰줄 필요 없어. 그냥 깨끗이 끝내자."

한예름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세상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다 끝났어. 나도 이제는 빚진 거 없다고."

지난 3년 동안 한예름은 김도욱이 원하는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이 되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하이힐도 포기하고, 긴 머리는 질끈 묶고 다녔으며, 심지어 단정하고 따분한 옷차림까지 감수했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 유은정처럼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김도욱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사실, 김씨 가문은 너랑 함께할 자격도 없어."

한예름의 피곤함을 눈치챈 정소은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혼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은 우리 집에서 지내. 우리 둘은 가족이나 다름없잖아."

한예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고마워."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에게 가족은 생소한 단어였다.

하지만 정소은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그녀를 아껴주었다.

이들이 타고 있던 차는 한 전문 메이크업 스튜디오 앞에 섰다. 정소은은 창문을 내리고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Marry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Marry! 오늘 특별한 손님이 있어요!"

한예름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나 오늘은 진짜 너무 피곤해서.. 메이크업은 사양할게."

"에이, 무슨 소리야! 너 설마 그렇게 '집에서 남편 기다리는 차림'으로 파티에 갈 건 아니지?"

"아... 아니지."

"그럼 됐어!" 정소은의 얼굴이 밝아졌다. "편하게 있어. 전문가들이 알아서 다 해줄 거야. 세계 최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거든. 오늘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시켜 줄 거라고!"

30분 후, 한예름의 말 그대로 환골탈태를 했다. 사람들은 모두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피곤함에 묻혀 있던 그녀의 또렷한 이목구비가, 전문가의 손길을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빛나기 시작했다.

한예름의 길고 매력적인 눈매는 자연스러운 음영이 더해져 훨씬 더 깊어졌고, 눈가에 살짝 찍힌 눈물점이 아슬아슬한 매력을 더했다.

그 모습을 본 정소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 이게 내가 알던 한예름이지!"

그리고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드레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음에 드는 거 아무거나 골라. 오늘은 너의 자유를 축하하는 날이니까, 내가 특별히 럭셔리한 요트랑 모델 같은 남자들도 8명이나 준비해 뒀다고! 절대 잊지 못할 밤이 될 거야!"

한예름이 손사래를 쳤다. "지금 남자에겐 관심이 없어."

정소은이 답답하다는 듯 한예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관심 없어? 너 안 한 지 벌써 3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

사실 그간 욕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김도욱은 늘 유은정에게만 순정을 바치겠다며 그녀를 외면해 왔으니, 한예름은 아직 순결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예름도 사람인지라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억지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소은은 한예름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자, 아직도 그녀가 마음을 접지 못한 줄 알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오늘 파티에 유명한 조향사들도 오는 거 알지? 카리스마의 대표도 온대. 드디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야. 설마 관심 없다고는 못 하겠지?"

카리스마는 M국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의 향수 브랜드였다.

한예름은 과거 국제 향수 대회에서 카리스마의 대표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의 작품은 예술 그 자체였고, 묘하게도 엄마의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익숙했다.

하지만 그 대표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카리스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음에도, 그는 한 번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누구도 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가보자." 한예름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동의했다.

사실 한때 한예름은 카리스마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한 적이 있었지만, 그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마치 운명처럼, 그녀는 카리스마의 CEO가 자신의 어머니와 어떤 인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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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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