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이혼했다고?" 하지만 민세라는 잠깐의 기쁨 후 곧 바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내 목숨이 당신이나 임경호와 아무 상관 없다는 게 무슨 뜻이지?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임경호야! 그리고 당신은 이 상황을 이용해서 태우 씨와 결혼을 한 거잖아. 당신의 피를 줬다는 이유로. 그런데 이제 와서 후회하겠다는 거야? 자신이 부끄럽지도 않아? 당신 정말 역겨운 인간이야!"
"차 사고의 진실을 조만간 밝혀낼 거에요. 하지만 남태우 씨와 결혼한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는 건 사실이죠." 임경아가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당신..." 민세라는 할 말을 잃었다.
임경아가 그 날에 대해 조사한다는 말을 듣자 불안감이 밀려 들었다.
그 때 문 앞에 서 있는 정장 차림의 남태우을 발견했다. "태우 씨!"
남태우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올라 왔다. 그는 병실에 도착하였을 때 임경아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말에 그는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쓰라리고 아팠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임경아는 뒤에 남태우가 있는 것을 알고도 돌아서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민세라 씨, 내 할 말은 다 끝났어요. 피를 기증해줄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위급상태에 빠질지도 모르니까요."
민세라는 사태를 파악하자 급격히 표정이 굳어졌다.
임경아는 돌아서서 남태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의 차가운 눈빛 속 일렁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게 병원이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히 발작했을 것이다.
임경아는 그런 남태우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남긴 채 그녀는 그를 지나갔다.
남태우는 무의식적으로 멀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임경아는 병원을 나온 뒤 택시를 타고 남태우와 같이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짐을 싸서 그 곳을 나왔다.
어릴 적 그녀의 부모님은 오로지 임경호에게 가족 사업을 물려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뛰고 알뜰하게 생활해서 지금까지 집안에 한 번도 손을 내민 적이 없었고 적금도 충분했다.
그녀는 열심히 모아둔 돈으로 몇 년 전에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래서 새로 산 아파트에 이사할 예정이었다.
임경아는 새 집 청소를 마친 뒤 거울 속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치고 초라하고 피부도 거칠었다. 남태우와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전의 당당하고 자신 있는 예쁜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됐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들이 끝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세면대에 놓여 있는 휴대 전화를 들어 연락처에 담긴 남태우를 차단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임씨 그룹 주가 폭락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많은 주주들이 불만을 토로 하기 위해 회사로 몰려 들었다.
임경아는 아침 일찍부터 울려 대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의 친구인 배민성에게 온 문자 메시지였다. 그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니 가능한 한 빨리 회사로 와달라고 내용을 보내왔다.
그녀는 즉시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그녀의 마음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임 씨 집안의 일원이었다.
그녀의 차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회사 앞에 서 있던 기자들이 그녀에게 몰려 들었다.
"임경아 씨, 임씨 그룹 회장의 6000억원의 부채와 공공 자금의 횡령, 그리고 부패 의혹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국이 조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빛은..."
임씨 그룹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몇 십억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갑자기 어떻게 그런 큰 빚을 지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회사를 말아먹고 있는 격이었다.
"임경아 씨,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왜 말씀을 하다 마시는 거죠? 잘못 하신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 곳에는 기자들 외에도 많은 주주들이 있었다. 그들은 임씨 집안과 관련된 사람을 발견하자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당신들은 우리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 순간 검은색 리무진이 임씨 그룹의 정문 앞에 멈춰 섰다.
회차 3
뒷좌석에 앉은 남자는 다름 아닌 남태우였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 번호는 현재 유효하지 않는 번호로..." 그는 전화기에서 흘러 나오는 음성에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휴대 전화를 다시 열어 메시지 창에 들어갔다. "얘기 좀 할 수 있어?"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 보내는 사람을 연락처에 등록해야 한다는 문구가 떴다.
남태우는 메시지 문구를 보자 분노가 일어 휴대 전화를 세게 움켜쥐었다. 감히 자신을 차단하다니!
그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창문 밖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임경아를 쳐다보았다. "고마움도 모르는 여자 같으니라고!"
"여러분! 제 말을 들어보세요!"
임경아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4층 건물 테라스에 서서 메가폰을 들고 외치고 있는 임창병이 보였다. "저의 무모한 판단으로 인해 임씨 그룹에 거대한 양의 부채가 쌓이게 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약속 드리겠습니다. 나의 유일한 딸인 임경아는 글로리 그룹의 사장인 남태우 씨의 아내입니다. 우리 모두 글로리 그룹이 얼마나 강력한 기업인지 알고 있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임씨 그룹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빈성시의 모든 사람들은 임씨 집안과 남씨 집안이 사돈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로 주주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잠잠해졌다.
하지만 임경아는 그들과 달리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직 남태우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창병은 이를 핑계로 우선 눈앞의 위기를 넘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인정한다면 거짓말을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전..." 나중에 이혼 사실이 알려진다면 더 큰 재앙이 몰려들 것이다.
임경아는 복잡한 심경을 담아 말했다. "네, 맞습니다. 글로리 그룹은 임씨 그룹의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저희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임씨 그룹은 여러분들께 어떠한 빚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모자를 쓴 한 남성이 사람들을 선동하며 말했다. "우리 모두 당신이 이름만 남태우 씨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이라고요! 남태우 씨가 그 엄청난 빚을 모두 갚아주겠다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죠? 그저 시간을 벌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차에 함께 탑승하고 있던 남태우의 비서가 백미러로 남태우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의 표정은 매우 어둡게 변해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비서가 입을 열었다. "오늘 인수 인계는 어려울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는 게..."
하지만 남태우는 그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 사장님..."
비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에 사로 잡혔다.
남태우는 무리 속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나 단지 두 걸음 만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며칠 전 두 분이 이혼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임씨 그룹을 남태우 사장님이 도와준다는 거죠?"
그리고 모자를 쓴 그 남성은 자신의 휴대 전화를 꺼내 들어 '임경아'와 '남태우'의 이름이 적힌 사진을 확대하여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보이시나요? 이것이 바로 그 이혼증명서입니다!"
남태우는 그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임경아 역시 그 남성을 바라보았다. 아직 이혼 소식을 발표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그가 알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이혼증명서 사진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혼? 정말 이혼했어요?"
임창병은 글로리 그룹을 이용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게 되어 그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어이, 당신!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요! 이혼이라니요! 둘은 아주 사이가 좋다고요!"
이 후 무슨 해명이라도 하라는 눈빛으로 임경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수 없이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네, 맞아요. 남태우 씨와 저는 이미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임씨 그룹이 이번 위기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전 어떻게 서든 6000억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을 겁니다. 아!"
그 순간 누군가 임경아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감히 자기 딸을 이용해서 우릴 속이려고 해?! 당신들은 인간도 아니야!"
임경아는 그 순간 머리카락이 뽑힐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한 기자의 카메라를 집어 들어 그녀를 향해 던지려고 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막기 위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잡아 끌었다. 그렇게 그녀는 한 남자의 품에 안겼다.
임경아는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