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박훈의 울음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고, 밤낮없이 칭얼거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하 씨 집안 일원들은 극도로 짜증이 났다.

"저 꼬맹이는 언제까지 울 거야?" 주미연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죽은 지 엄마처럼 쓸모 없는 놈이야. 짜증 나 죽겠어!"

주미연의 말에 하예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박훈은 우리 예슬 언니의 아들이에요. 그 미친년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주미연은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박현준이 언제 저 아이를 데리러 온대?"

"지금 오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박훈이 고집을 부리며 징징대서...참...."

주미연은 입술을 꼭 깨물고 말했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영원히 울음을 그치지 않을 기세야. 구석에 끌려 가서 한 대 얻어 맞아야 조용해지지."

"안돼요.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소문이 어떻게 날지 아무도 몰라요. 비록 박현준이 하유정을 버렸지만 박훈은 그의 핏줄이니까요."

하예진은 박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하 씨 집안이 박 씨 집안과 사이를 맺는 가장 가치 있는 도구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당당하게 박현준 곁에 있으려면 박훈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 심산이었다. 생일 연회에서 얌전하게 있지 않으면 다시 집에 데려와 상대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하예진과 주미연이 아래층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박훈은 위층 침실 창문을 이용해 나갈 방법을 찾아냈다...

쿵! 저택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소리였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뭐야? 무슨 소리야?" 불안한 마음에 하예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그때, 마당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소리를 질렀다. "박훈 도련님이 2층에서 떨어졌어요!"

경비원의 목소리를 들은 하예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 박훈이 떨어졌다고?"

미친 사람처럼 밖으로 뛰쳐나간 그녀는 창문 아래에 피가 잔뜩 묻은 채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박훈 이었다.

"박현준이 오늘 오기로 했는데, 이제 어떡하지? 어떡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하예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박 씨 집안의 차대가 하 씨 집안의 별장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멀리서 두 개의 눈부신 헤드라이트가 빛나고 있었다.

하 씨 집안 일원들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쓰러진 박훈을 쳐다보며 어쩔 바를 몰랐다.

하예진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식은땀이 이마에서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전속력으로 달려 다가오는 차를 막아 섰다.

"현준 씨, 큰일 났어요. 훈이가... 훈이가 2층에서 떨어졌어요!"

그 순간 차대는 길에 멈춰 섰고, 차에 탄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박현준을 보자마자 하예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박훈이 방에 자신을 가두고 문을 잠그겠다고 고집했어요. 부주의로 창문에서 떨어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미안해요. 현준 씨, 모든 건 제 잘못이에요. 제가 훈이를 잘 돌보지 못했---"

"어디 있어!" 박현준은 그녀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하예진은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피투성이가 된 박훈을 가리켰다.

눈시울이 붉어진 박현준이 하예진의 멱살을 잡으며 언성을 높였다. "만약 훈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겠어!"

충격으로 눈을 크게 뜬 하예진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른 상황을 돌볼 겨를도 없이 박현준은 바로 박훈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직접 병원 로비로 마중 나온 병원장은 아이를 안은 박현준을 바로 응급실에 안내했다. 2층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친 박훈은 바로 수술이 필요했다. 당직 의사들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박 씨 집안이라는 이유로 병원장은 해외에서 많은 돈을 들여 고용한 의사에게 박훈의 수술을 집도하게 결정했다.

"하 선생, 환자는 세 살짜리 남자아이입니다. 박 사장의 유일한 아들이니 수술할 때 신경을 많이 써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수술을 성공해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 병원에 큰 영향을 끼칠 겁니다."

하유정은 무심하게 머리를 묶으며 엑스레이 결과를 쳐다봤다. "어떤 환자든지 최선을 다해 수술할 겁니다. 잠시만요, 박 사장? 박 사장은 누구예요?"

"성남 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박현준 사장입니다. 박 씨 집안에 관한 소문은 이미 알고 있겠죠?"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깜짝 놀란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이 병원에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박현준과 마주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박현준한테 아들이 있었다고?

"박현준한테 아들이 있어요?" 하유정이 깜짝 놀란 말투로 물었다.

"네. 3살 난 남자아이예요. 내가 방금 아이의 상황에 대해 말씀 드리지 않았나요?"

"박현준 사장의 전처는 이미 죽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3살 난 아들이 있을 수 있어요?" 하유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아이가 전처의 아이라면 지금 네 살쯤은 됐겠죠."

"아이는 하예슬 사모님의 아이예요. 4년 전, 박 사장의 전처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예슬 사모님이 의식을 찾았고 1년 뒤에 아들을 낳았어요. 그러니 올해 세 살이 되었죠."

병원장이 하는 말을 들은 하유정은 가슴이 찌르는 통증을 느꼈다. 아이가 하예슬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반짝이던 그녀의 눈빛이 사라졌다.

손에 들고 있던 수술 가운을 내려놓은 그녀가 병원장을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이 수술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병원장은 깜짝 놀랐다. "아니 왜요? 왜 갑자기 안 된다는 거죠? 방금 전까지 약속했잖아요!"

"시차 적응이 이렇게 빨리 되는 건 아니잖아요. 몸이 좋지 않아요. 수술은 양 선생님한테 맡기면 되겠네요." 하유정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녀는 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수술 가운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예슬 아이의 수술 만은 할 수 없다.

말을 마친 하유정이 바로 몸을 돌리자 병원장이 다급하게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한편, 진료실 밖에서 한참 동안이나 기다려도 의사가 나타나지 않아 박현준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집도의가 수술을 포기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박현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곁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를 잡으라고 지시했다.

긴장감이 맴도는 로비에서 하유정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지금 이 자리를 떠나면 그녀의 등 뒤에 있는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틀어쥘 것이다.

상관없다.

4년 전, 생사의 기로에 놓인 그녀가 박현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한 순간의 자비도 품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자신의 아들을 구해달라고?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4년 전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 하유정의 몸이 떨려왔다. 그녀가 돌아서자마자 박현준의 사나운 눈빛과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거만하고 차가웠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했었는지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증오뿐이다.

"박현준 사장님, 저는 오늘 몸이 편찮아 사장님 아들의 수술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경험이 많은 양민규 선생님을 제가 찾아올 테니까요."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아한 목소리에 박현준의 가슴이 세게 뛰었다.

조금은 놀란 것 같은 표정으로 그는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여자의 눈을 쳐다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얼굴 전체를 거의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병원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지만 박현준은 익숙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만약 오늘 반드시 당신이 수술을 해야 한다면요?"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경호원들이 하유정의 주위를 둘러쌌다.

주먹을 꽉 쥐고 미간을 찌푸린 하유정은 숨이 가빠 오는 것을 느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인다고 하여도, 수술실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회차 3

병원장은 화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스카우트한 의사가 감히 박 사장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죽은 하유정보다 담이 더 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하예진은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앞에 있는 의사를 노려보며 팔짱을 꼈다. "너 뭐야? 당신이 집도하게 한 것에 감사히 받아들일 망정 감히 거절을 해? 만약 훈이가 어디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땐, 하찮은 너의 목숨 하나로 끝낼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대단한 일이면 그쪽이 하던가요." 하유정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반박하며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 하예진은 박현준의 팔을 잡고 칭얼거렸다. "현준 씨, 저 여자가 하는 말 들었어요? 우리 훈이한테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두 저 여자 때문이에요."

하유정은 콧방귀를 뀌더니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고 있네요! 제가 아이를 밀쳐 다치게 했나요? 어떻게 제 잘못이죠?"

그녀의 말은 하예진의 신경을 정확히 건드렸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가 서둘러 손을 저으며 변명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가 밀었다고? 훈이는 혼자 떨어진 거라고! 당신 의사 맞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했어? 아이가 지금 수술실 안에서 죽어가는데 어떻게 여기 서서 시간을 낭비할 수 있어? 우리 훈이가 당신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예진은 몸을 돌려 다시 병원장을 쳐다보고 계속 말했다. "원장님, 병원은 아무 심사 제도 없이 의사를 고용하나요? 이런 사람도 의사가 될 수 있어요? 기본이 없잖아요! 만약 우리 훈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겠어요!"

잔뜩 겁에 질린 병원장은 하예진과 박현준에게 연속으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그리고 바로 양 선생을 수술실에 호출했다.

허겁지겁 달려온 양 선생이 수술실에 들어가려 할 때, 박현준이 그의 앞을 막아 섰다.

그의 매서운 눈빛이 하유정을 쏘아봤다. "오늘 이 수술을 집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당신이어야 해." 낮은 목소리였지만 위압감은 실로 엄청났다.

"흥!" 그의 말에 하유정은 콧방귀를 뀌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행동에 박현준의 참아왔던 인내심이 폭발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하유정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박현준! 이 더러운 손 치워!" 하유정은 그의 손등을 세게 긁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박현준의 눈에 싸늘한 빛이 언뜻거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에게 막말을 할 수 없다. 유일한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의 죽은 전처였다.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여자를 잡아 삼킬 것 같은 그의 눈동자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발버둥 치는 모습이 들어왔고 문득 전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유정도 이 무례한 의사와 같은 인상적이고 예쁜 눈을 가지고 있다.

박현준의 입 꼬리가 예쁘게 휘어지더니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내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병원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그는 손에 힘을 풀어 여자의 목을 놓아주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주저앉은 하유정은 목을 감싸고 몇 번 기침을 했다. 아직도 목에 남은 압박감이 괴로워 박현준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 원망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벽을 짚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조금 쉰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 반드시 후회할 거예요!"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제 박현준에 대한 혐오감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수술실에 있는 그 도련님의 생사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대 앞에 선 그녀는 의사라는 책임을 등에 업고 있어 개인적인 원한은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아무 잘못고 없는 아이한테 자신의 증오를 퍼붓고 싶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술대 위에 생사를 오가는 어린아이를 바라봤다. 작은 얼굴이 충격으로 부어 오르고, 여러 군데 피가 잔뜩 묻어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하유정은 다른 일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바로 아이의 부러진 곳부터 수술을 시작해야 했다.

세 시간 후,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간호사들과 다른 의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하유정만 무감한 표정이었다.

박 씨 집안의 작은 도련님으로서 피가 묻은 얼굴로 수술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간호사들은 하유정더러 아이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라고 부탁했다.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면봉에 알코올을 적신 그녀는 주저하며 아이의 곁에 다가섰고 박현준에 대한 증오감에 이를 악물고 박훈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거의 닦아낼 때쯤, 그녀는 그만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창백한 아이의 얼굴을 깨끗하게 정리한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 아이 누구야?" 하유정은 곁에 있는 사람의 팔을 잡고 물었다.

"박 씨 집안 박현준 사장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박훈입니다. 선생님."

"박... 훈?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창백한 얼굴의 하유정이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술대 위에 있는 아이가 그녀의 아들과 똑같게 생겼다.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닮은 아이가 있을 수 있지?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말했다. 하은준과 하은서. 두 명의 아이는 그녀가 직접 키우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그녀의 아이들과 똑같게 생긴 아이가 또 나타날 수 있지?

삼둥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닮은 얼굴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유정은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뱃속에서 제일 먼저 나온 아이는 남자아이였고, 그녀는 그 아이가 하은준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지금 실제로 그녀가 삼둥이를 낳았단 말인가?

앞으로 박 씨 집안을 계승할 이 아이가 그녀의 아들일까? 그렇다면 그녀의 오빠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대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던 걸까?

하유정은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간호사들이 그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지만 방금전 심하게 다쳐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를 싫어하는 박현준이 그녀가 낳은 아이를 제대로 챙겼을 리 없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하유정은 메스를 손에 꽉 쥐고 충혈된 눈으로 수술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선생님, 우리 훈이 어떻게 됐나?" 수술실 문이 열리자 하예진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오며 물었다.

"비켜요!" 하유정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로비에 울렸다.

그녀의 손에 피가 묻은 메스를 발견한 하예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유정은 충혈된 눈으로 박현준을 쳐다봤다. 4년,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지 4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2년간의 결혼생활도 하예슬의 말 한마디에 무너졌으니까. 하예슬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녀의 아이라도 박현준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서 빼앗아 갔다. 그런데 지금, 잔인한 그 남자는 그녀의 아이를 이렇게 학대하고 있었다니!

하유정은 바보가 아니다. 박현준의 주위에 둘러싼 경호원을 본 그녀는 화를 억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아이의 열이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24시간 안에 열이 내려야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바로 중환자 실로 내려갈 예정이고, 가족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면회할 수 없습니다."

하유정은 간호사에게 박훈을 중환자실로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병원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하 선생가 있으니 내 이리 마음이 놓여요."

"저의 직업은 의사입니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퉁명스러운 대답을 남긴 하유정은 몸을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박현준의 눈길이 멀어져 가는 하유정에게 고정되었다. 그녀의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수술복을 입은 의사의 뒷모습이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의 모습에 하예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의사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저 여자 대체 누구야?" 여전히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현준이 물었다.

하예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병원장은 외부 병원에서 스카우트했다고 했어요. 현준 씨, 왜 저 여자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예요? 벌써 관심이라도 생겼어요? 우리 언니를 잊은 건 아니죠?"

"시끄러워." 하유정한테서 시선을 거둔 박현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입을 꾹 닫은 하예진은 머리 위에 찬물 한 바가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박훈이 빨리 깨어나길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이제 내 눈앞에서 꺼져!"

그의 말에 하예진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형부, 이건 제 잘못 아니에요. 훈이가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형부가 제일 잘 알잖아요. 저 그동안 훈이와 언니가 멀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진심으로 훈이를 돌봤어요. 언니를 위해 훈이를 제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키웠어요. 저도 훈이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단 말이에요."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박현준은 울며 애원하는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 복도를 지나가던 중, 간호사를 발견한 그가 간호사의 팔을 잡고 물었다. "의사 사무실은 몇 층에 있나?"

간호사는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박 사장님, 사장님 아들을 수술해 준 하 선생님을 찾고 계시나요?"

"그래."

"앞으로 직진하고 모퉁이를 돌면 하 선생님의 사무실이에요."

간호사의 팔을 놓아준 그는 힘찬 발걸음으로 앞으로 직진했다. 박현준은 자신의 발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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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도와 뺏어온 여자가 삼둥이의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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