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외할머니는 곧 저 세상으로 떠날 것처럼 쇠약한 상황이었다.

고현아는 눈물이 홍수처럼 터져 나왔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현아야, 나이가 들면 병들고 죽는 거 자연적인 일이야. 울지 말거라." 외할머니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너 같이 착한 손녀를 둔 것 만으로 이제 여한이 없단다. 그저 네가 좀 걱정될 뿐이구나."

"외할머니, 가지 마세요!" 고현아는 급히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달만 더 있으면 저 출소해요. 앞으로 매일 외할머니 곁에 있어드릴게요. 시골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죠? 완치되면 같이 돌아가요..."

"그래." 외할머니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후도 같이 가자꾸나. 둘이서 나한테 예쁜 손주를 안겨주거라."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고현아는 여전히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오늘도 할머니를 뵈러 오고 싶어 했지만 회사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왔어요."

"일이 중요하지." 할머니는 베개 밑에서 반원형 옥패를 꺼내 고현아에게 건넸다. 봉황이 새겨진 옥패는 촉감이 부드럽고 섬세한 것이 보기 드문 옥으로 만든 것이었다.

"현아야, 잘 보관하고 있거라. 이건 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이정후가 고급 양복을 입고 문 앞에 나타났다. 검은색 양복차림을 한 그는 아주 훤칠하였고 완벽한 비율은 마치 걸어 다니는 마네킹과도 같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는 귀족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고현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외할머니, 정후가 왔어요. 정후가 외할머니를 뵈러 왔어요!"

이정후는 예사롭지 않은 표정으로 병상 옆으로 걸어왔다. 그는 늘 차분하고 표정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는데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현아야, 설희가 아파. 바로 가서 수혈을 해줘야겠어."

고현아는 멈칫했다. '외할머니 뵈러 온 줄 알았는데 윤설희 때문이었어? 하긴. 이정후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바로 그의 죽마고우이자 첫사랑인 윤설희니까.'

고현아는 간신히 마음 속에서 전해오는 고통을 참은 채 울먹거리며 말했다. "외할머니 몸이 많이 안 좋으셔. 난 여기 있어야 해. 정후야, 윤설희는 병원의 피를 수혈 받으면 안 돼?"

"그 혈액형은 워낙 희귀한 혈액형이라 얼마 없어. 더군다나 이 병원에는 아예 없다고 하더라고. 가장 가까운 병원도 여기서 한 시간이나 걸려. 그러면 너무 늦어." 이정후는 고현아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고 가려 했다. "고현아, 사람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야. 얼른 가자."

"난 외할머니 곁에 있을 거야! 이거 놔!" 고현아가 발버둥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현아야... 현아야!" 병상에 누워있는 외할머니는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조급히 말했다. "네 신분에 대해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사실 넌..."

"외할머니!" 고현아는 병실에서 수혈하는 곳까지 질질 끌려갔다.

규정상 헌혈량은 400ml로 제한되었지만, 이정후는 800ml를 요구했다.

수혈을 마친 고현아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녀는 허약한 몸으로 벽을 짚은 채, 간신히 외할머니가 있는 병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호흡기는 이미 멈췄고 흰 천 한 장이 외할머니의 수척한 몸을 가리고 있었다.

고현아는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릴 힘도 없이 힘겹게 외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안 돼요... 외할머니... 제발 절 떠나지 마세요..." 그녀는 병상 옆에 무릎을 꿇고 외할머니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죽을 만큼 괴로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정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참, 설희는 괜찮아졌어. 수고 많았어... 그리고 교도소에서 전화가 왔어.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회차 3

고현아는 숨이 멎을 듯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이정후의 바리자락을 잡고 애원했다. "정후야, 제발 교도소에 말 좀 해줘. 외할머니가 돌아갔으니 내가 남아서 후사를 해야 해."

이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교도소는 돈으로 되는 곳이 아니야. 속상한 건 알겠는데 말하기 전에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말해."

"생각이란 걸 하라고?" 고현아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감옥에 갇혀있는 11개월 동안, 윤설희한테 수혈해 주러 4번이나 나왔는데 전부 다 네가 돈으로 해결한 거잖아? 왜 지금은 안 되는 거야?"

"상황이 다르니까."

"뭐가 다른데?" 고현아는 간신히 슬픔을 참고 계속 애원했다. "네 마음 속에서 윤설희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잖아. 외할머니는 날 키워주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난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효도도 제대로 못했어. 마지막은 내가 꼭 옆을 지켜서 보내드려야 해. 마지막 가는 길마저 배웅하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외할머니를 보낼 순 없잖아? 정후야, 내가 이렇게 빌게."

"너한텐 삼촌이 있잖아? 그리고 외할머니가 체면 있게 가실 수 있도록 내가 다 처리할게."

"돈 문제가 아니야." 고현아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돌아가셨는데 아무리 돈을 들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난 그냥 외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배웅하고 싶은 거야. 정후야, 이번만 도와준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윤설희한테 수혈할게."

"수혈하는 걸 조건으로 삼는 거야?" 이정후는 고현아를 내려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고현아, 이건 네가 윤설희한테 진 빚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설희가 휠체어를 탈 일도 없었겠지."

고현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을 꽉 감았다.

1년 전, 윤설희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리고는 고현아가 밀친 거라고 그녀를 모함했다.

이씨 가문 사람들은 전부 고현아를 범인이라고 확신했고, 감시 카메라 영상도 없고 증인도 없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인 이정후가 입을 열었다. "고현아, 네가 만약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면 설희는 평생 억울하게 살아갈 거야. 상해죄는 형법상 최소 3년에서 10년까지의 징역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마음씨 착한 설희가 1년 동안만 감옥살이를 하면 용서해 준다고 했어."

고현아는 그저 우습기만 했다. 그녀는 당연히 죄를 부인했고 경찰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때, 윤설희가 어딘가에서 고현아가 자신을 계단에서 밀치는 영상을 가져왔기에 고현아의 죄는 확실해졌다.

고현아는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 그 영상을 봤을 때의 표정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증오, 역겨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조차 더럽다는 그 표정...

고현아는 결국 이정후의 경호원을 따라 교도소로 돌아갔다.

그녀는 출혈과다로 침대에 이틀 내내 누워만 있었다.

사흘 째 되던 날, 교도소의 벽에 걸려있는 TV에서는 윤설희의 생일 파티 현장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씨 그룹의 대표가 200억을 들여 자신의 죽마고우한테 생일 파티를 준비해 줬다는 기사였다.

화면 속 윤설희는 휠체어에 앉아있었지만 여전히 청순하고 가련해 보였다. 이정후는 그녀를 챙겨주느라 바빴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 두 사람은 선남선녀의 조합으로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고현아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오늘은 외할머니의 장례식 날이야, 분명 후사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윤설희의 생일이나 축하해주고 있다니!'

고현아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바쳐도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한다는 슬픈 현실을 말이다.

고현아에게는 마음 속에 숨겨둔 비밀이 있었다. 그는 이정후를 10년동안 사랑해 왔었다.

이정후는 그녀에게 그저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그녀는 그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영원히 겹치지 않을 평행선과도 같았지만 한 차례 교통사고로 운명이 바뀌었다.

3년 전, 이정후는 교통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었었다.

이씨 가문 사람들은 명의라는 명의는 다 찾아서 이정후의 병을 고치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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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밤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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