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육태현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도건우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도련님, 조금만 천천히 걸으세요. 도련님께서 결혼할 상대가 어느 가문의 아가씨인지 알고 계십니까? 혹시라도 사람을 잘못 찾으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그의 말에 육태현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시선이 구청 로비를 한 바퀴 훑고 지나가더니, 맨 앞줄 의자에 앉아 지팡이를 쥐고 있는 구지영에게 고정되었다.
소녀는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얌전하고 온순해 보였지만, 눈에 띄게 예뻤다.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채 3미터도 되지 않았다.
육태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구지영을 바라봤다.
'불쌍한 년. 약혼자에게 팔려가는 줄도 모르는 바보 같은 눈먼이.'
정각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 육태현을 본 순간 송시헌의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곧바로 육태현의 팔을 붙잡아 구석으로 끌고 갔다. "누가 이렇게 요란하게 나타나라고 했어? 내 계획을 망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육태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비웃었다. "난 원래 요란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야. 게다가 오늘은 내가 결혼하는 날이잖아. 웨딩카 몇 대가 무슨 대수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거래를 취소할 수 있어."
육태현이 마음을 바꿀까 두려웠던 송시헌은 서둘러 그를 달랬다. "그래. 이따가 사진도 찍고, 서명도 해야 하니까 그때까진 입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마."
송씨 가문과 육씨 가문은 북성 경제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앙숙이었다.
육태현은 늘 가문의 기대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즐겼고, 어느새 28살이 된 그에게 가문은 결혼을 재촉하고 있었다.
장님과 결혼한다면, 고집불통인 할아버지를 화병으로라도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한편, 송시헌에게도 이 거래는 나쁠 게 없었다. 육씨 가문은 구지영 같은 짐을 떠안게 되고, 육씨 가문은 체면을 구기게 된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두 사람은 도박장에서 이미 합의를 마쳤고, 놀라울 만큼 죽이 잘 맞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의자에 앉아 있던 구지영에게 송시헌이 다가와 손을 잡아 일으켰다. "가자, 결혼 증명사진 찍으러 가자."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구지영이 의자에 앉자, 곧 한 남자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보다 훨씬 키가 큰 남자의 몸에서 독특한 나무 향이 풍겨왔다.
구지영은 고개를 숙이고 싱긋 미소 지었다.
'송시헌이 아니야. 송시헌은 이렇게 키가 크지 않아.'
육태현은 옆에 앉은 구지영을 흘깃 바라봤다.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자, 보조개가 깊게 패였다.
그는 한동안 넋을 잃은 듯 구지영을 바라보았다.
곧 정신을 차린 그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구지영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정말 어리석은 여자군. 팔려 넘어가 놓고도 혼자서 좋아하고 있다니.'
"네, 신랑 신부님 조금만 더 가까이 붙으시고, 웃으세요." 사진사가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구지영은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그저 정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녀의 영향인지, 육태현은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펴고 셔츠 단추를 여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송시헌은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진을 찍은 후, 세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창구로 향했다.
세 사람이 창구 앞에 앉은 모습을 본 직원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 사람이 혼인신고를 하러 온 모습은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직원은 두 사람이 제출한 신분증을 확인하고 서명해야 할 서류를 두 사람에게 건넸다.
송시헌은 구지영의 손을 잡고 서명해야 할 곳을 가리켰다. "여기랑 여기에 서명하면 돼."
구지영은 펜을 쥔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서명을 한 이상, 물러설 수는 없어. 나는 더 이상 송시헌이랑 아무 관련이 없는 거야.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은 라이벌이자 적이야.'
옆에 있던 육태현은 거침없이 서명을 휘갈긴 뒤, 펜을 내려놓고 송시헌과 구지영을 흘깃 바라봤다.
'라이벌의 약혼녀를 아내로 맞이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군.'
구지영이 눈치채거나 서명을 거부할까 두려웠던 송시헌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급히 재촉했다.
"서명해. 서명하면 혼인신고할 수 있어. 그러면 내가 널 집으로 데려갈게."
그 말에 구지영은 싱긋 미소 지으며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결심을 굳힌 사람처럼, 그녀는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도장이 찍힌 혼인관계 증명서를 손에 쥔 송시헌은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구지영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듯 받아, 정장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한 장은 네가 가지고, 한 장은 내가 가질게. 내가 차 가져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구지영의 곁에 서 있던 육태현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송시헌이 혼인관계 증명서를 들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끝내 참지 못한 그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별꼴을 다 보는군. 저건 분명 내 혼인관계 증명서인데, 왜 저렇게 소중하게 간직하는 거지?'
육태현은 곁에 선 구지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지팡이를 짚고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얼굴에 외로움이 가득 묻어났다.
육태현은 자신이 잔인하고 독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구지영을 다시 본 순간, 육태현의 가슴 한켠에서 연민이 스쳤다.
송시헌에게 혼인신고를 마친 후, 24시간 동안 구지영에게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씨 가문의 결혼식이 끝난 뒤에야, 그는 구지영을 아내로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인가? 북성에서 안하무인으로 악명 높은 육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다.
그의 약속은, 결코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흠." 육태현은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