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모든 하인들이 문 앞까지 나가 노준혁을 맞이했지만 강하나는 홀로 2층에 서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남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옷걸이 같은 존재였다. 걸어 다니는 페로몬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186cm의 키에 황금비율로 나뉜 몸매, 120cm에 달하는 긴 다리, 군살 하나 없는 단단한 근육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그날 밤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너무나 황당했던 그날 밤은 지금까지도 현실로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아침, 마치 도망가듯 다급히 귀국한 뒤로 어떻게 그와 마주해야 할지 몰라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 상태였다.
노준혁의 얼굴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치 신이 공들여 조각해낸 걸작과도 같았는데 강인하고도 잘생긴 이목구비, 그리고 깊고 뚜렷한 선들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생각해보면, 신은 참 불공평했다. 그에게는 완벽한 몸매와 잘생긴 얼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높은 지능과 학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10대 때 이미 금융학과 법학을 복수 전공으로 졸업했고, 이후 당연한 듯 가업을 이어받아 승승장구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재계 정상에 올랐으며, 몇 해 전에는 해외 시장까지 뻗어나가 국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노준혁은 강하나와 혼인신고를 한 직후, 자회사가 막 첫발을 내디뎠다는 이유로 곧장 해외로 떠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강하나가 잡념에 휩싸여 있을 때, 갑자기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시선 두 줄기가 그녀를 향해 꽂혔다. 그 순간, 강하나는 깜짝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커튼 뒤에 몸을 숨겼다.
왜 숨는 건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일 뿐이었다... 강하나는 노준혁 앞에만 서면 늘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지곤 했다.
집에서도 사랑받지 못했고, 지금은 계모가 집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만약 노준혁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계모의 심부름만 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강하나의 어머니가 노준혁의 할머니 목숨을 구한 덕분에 이 혼인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하나는 잘 알고 있었다. 노준혁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늘 얌전하게 본분만 지켜왔으니까.
곧,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사모님도 내려와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십니다."
강하나는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식탁 위에는 이미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길게 뻗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 끝에 마주 앉아 있었다.
강하나는 중식을 좋아했고, 노준혁은 양식을 선호했다. 오늘은 그가 돌아온 날이니 당연히 그의 입맛을 기준으로 상차림이 맞춰졌다.
눈앞에 놓인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는 아직도 붉은 선혈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강하나는 저도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왜 그래?" 노준혁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너, 너무 덜 익었어요... 저는 원래 집에서 늘 중식을 먹거든요." 강하나는 여전히 양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은 입맛도 없고 속도 더부룩한 것이 아마도 아직은 더운 날씨 탓일지도 몰랐다.
"완전히 익은 것으로 바꿔줘."
"고마워요." 강하나는 작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식사를 하는 내내, 두 사람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부부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한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들에 가까웠다.
식사를 마친 후, 노준혁은 우아하게 입술을 닦았다. 한편, 강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결심을 굳히고 그날 밤의 일을 털어놓으려 했다.
"노준혁 씨."
"강하나."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강하나는 긴장이 서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먼저 말씀하세요."
그러자 노준혁도 주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건넸다. "강하나. 우리 이혼하자."
짧은 한 마디가 강하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강하나, 우리 이혼하자.' 그때, 하인이 이혼 합의서를 내밀었다. 그곳엔 이미 노준혁의 서명이 적혀 있었는데, 힘 있고 곧은 필체는 마치 서예가의 작품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감탄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산 분할이었다.
강하나는 서류를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이혼 후 두 채의 부동산이 그녀 명의로 넘어올 예정이었는데, 하나는 상가였고 다른 하나는 본가 주택으로, 모두 수십억에 달하는 금싸라기 땅이었다. 게다가 위자료로 백억이 지급되고, 연간 수익이 수억 원에 이르는 소규모 회사 하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계산하면… 단 한 번의 하룻밤 대가치고는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하나는 그저 노준혁이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낸 이유가 궁금했다.
강하나는 이혼 합의서를 덮고, 처음으로 대담하게 노준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노준혁 역시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순간, 노준혁 역시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 두 눈은 마치 검은 보석을 박아놓은 듯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엔 티끌 하나 없이 아주 맑은 것이 마치 투명한 샘물 같았다.
게다가 지나치게 앙상한 몸매는 마치 노씨 가문에서 굶겨온 것처럼, 뼈만 남은 듯 보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체구는... 어둠 속에서 만났던 그 소녀와 비슷했다.
정말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꼭 살을 찌워주고 싶었다. 너무 말라서, 차마 그대로 바라보는 것조차 안쓰럽게 느껴졌으니까.
"실례지만 그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내 마음에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왔어." 노준혁은 숨김 없이 고백했다.
회차 3
노준혁과 강하나의 결혼은 애초부터 감정이라고는 없는 혼인이었다. 그가 결혼을 택한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노씨 가문의 며느리 자리가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힘겨웠기에, 노준혁은 결국 어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하나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의 관계가 한동안은 한결 부드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노부인의 몸이 점점 약해져 더 이상 어머니를 괴롭힐 여력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노준혁은 반드시 그 소녀를 찾아내 정식으로 명분을 주고 싶어 했다. 그러니 강하나와 더 이상 어정쩡하게 얽혀 있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강하나는 아직 어린 데다 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그동안 결혼 사실조차 숨겨왔기에 이혼한다고 해도 일상에 큰 영향은 없을 터였다.
이혼 후, 강하나는 풍족한 재산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재산이라면 남은 생을 평온하게 살아가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강하나 역시 노준혁을 좋아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제야 겨우 두 번째로 마주한 사이였고, 고작 두 번 본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강하나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답답하게 막혀왔다.
'역시 정말로 마음에 둔 여자가 있었던 거였어… 그렇다면 내가 그날 밤의 여자였다는 사실은 굳이 밝힐 필요도 없지. 괜히 말해봤자 서로 불편해질 뿐일 거야.'
애초에 강하나가 해외까지 가서 바람 현장을 잡으려 했던 목적도 결국 이혼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지금 이렇게 된 것도 어쩌면 뜻대로 된 셈이었다.
"네, 좋아요." 강하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노준혁 역시 그녀에게 충분히 할 만큼 해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날 밤의 일도 온전히 그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단지 본능에 휘말린 상황이었으니, 어쩌면 지금도 그는 후회하고 있을지 몰랐다.
잠시 후, 강하나는 펜을 들어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다.
"고마워."
노준혁은 강하나가 질척거리며 억지로 매달리지 않은 것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어쨌든 평화로운 결별이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노준혁은 별장에 머물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강하나는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노준혁의 차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
강하나는 마지막으로 1년 동안 살아온 그 별장을 돌아보았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들어왔는데 이제 떠나는 순간조차 여전히 조용히 떠나고 있었다.
불과 1년 만에 그녀는 이혼녀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녀에서 여자로 바뀌기도 했다. 손에는 어제 막 사인한 이혼 합의서가 들려 있었다. 태양 아래에 서 있으니 모든 것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때, 비서가 차를 그녀 앞에 세웠다.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자 노준혁의 평온한 시선과 맞닿게 되었다. "데려다 줄게."
"괜찮아요… 저 혼자 차 타고 가면 돼요. 그 동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하나는 애써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준혁이 이렇게 많은 돈을 준 마당에, 고작 하룻밤이 대수일까.'
한편, 노준혁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
구청 정문 앞에 홀로 남은 강하나는 택시를 잡으려 했다.
가을로 접어들었음에도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 시간은 아직 오전 10시 남짓인데도, 작열하는 태양은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게 만들었다.
구청은 외진 곳에 있어 택시 한 대 잡기가 쉽지 않았다.
강하나의 온몸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밖에 서 있던 탓에 어지럼증이 밀려왔고, 점점 시야가 흐려지더니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얼마 후, 눈을 떴을 때 강하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떤 마음씨 착한 사람이 그녀를 옮겨준 것이었다.
"저... 제가 왜 그런 건가요?"
"열사병이에요. 다행히 심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산모이니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쓰셔야 해요. 아이는 건강하니까 조금만 쉬면 퇴원하실 수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 순간, 강하나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그녀는 간호사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열사병이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산모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환자분께선 임신하셨습니다. 몰랐나요? 벌써 임신 3개월 차인데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 순간, 강하나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했다.
그녀는 원래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 이번 달에 한 번 오면 다음 달은 건너뛰는 경우도 많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그날 분명 사후 피임약까지 복용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임신이라니…
"말도 안 돼요. 제... 제가 임신이라니... 저는 사후 피임약도 먹었다고요."
"아무리 강력한 피임약이라 해도, 임신 확률은 3% 정도 있어요. 그 어떤 안전 조치도 100%에 달할 순 없답니다." 간호사가 차분히 설명했다.
한편, 그 말에 강하나는 머리가 어지러워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