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노예주는 강지연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고 바로 가격을 올려 400만 원 금화를 요구했다.
다행히 몸 주인은 2000만 원 금화를 가지고 있었다.
강지연은 태연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건네받은 노예주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노예주는 우리 문을 활짝 열고는 육도결의 몸을 거칠게 걷어차며 소리쳤다. "나와, 네 새 주인님을 뵈어야지!"
은발 소년은 힘겹게 기어 나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방금 노예주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을 똑똑히 들은 그는, 이 여자가 자신을 화풀이 대상으로 사들였다는 것을 직감했다.
육도결은 그녀가 자신을 더 세게 때려주길 바랐다.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노예주는 육도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발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강지연이 바로 허리에 손을 얹고 눈을 부릅떴다.
"누가 너더러 손을 대라고 했지?"
그녀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덧붙였다. "누가 내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도 된다고 허락했냐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노예주가 허리를 굽히고 급히 뒤로 물러섰다. "전하, 소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말을 마친 노예주는 육도결의 목에 걸린 쇠사슬을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 올려, 열쇠와 함께 강지연에게 건넸다.
"전하, 여기 있습니다."
쇠사슬을 건네받은 강지연은 가슴이 벅차 올랐다.
'성공했다!'
그녀는 열쇠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
지금 풀어주면 육도결이 도망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400만 원 금화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녀는 쇠사슬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몸을 돌렸다.
"가자."
육도결의 시야에는 가느다란 발목과 흔들리는 치마 자락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재갈을 꽉 깨문 채, 뻣뻣한 몸을 겨우 이끌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강지연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춰 섰다.
육도결은 순간 온몸이 굳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지금 당장 자신을 괴롭히려는 걸까?
그는 무의식적으로 온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강지연은 무릎을 꿇고 기어오는 육도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열쇠를 노예주에게 던졌다.
"저 자의 몸에 걸린 쇠사슬을 모두 풀어주거라."
"네? 모두요?"
"그래, 목에 걸린 것만 빼고."
쇠사슬이 바닥에 떨어지자 강지연은 고개를 숙이고 그를 내려다봤다. "일어설 수 있겠느냐?"
그녀의 물음을 어렴풋이 알아들은 육도결은 고개를 끄덕이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발바닥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
강지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쇠사슬을 끌고 노예 시장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나 노예 시장을 나서자마자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전하!"
강지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높게 머리를 묶은 한 여자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정민아, 몸 주인의 절친이구나…'
강지연은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고통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흐읍…"
육도결이 비틀거리는 것을 본 그녀는 빠르게 몸을 돌려 그를 부축했다.
육도결은 너무 아픈 나머지 잠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겨우 의식을 되찾았을 때, 자신이 새 주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서려고 애썼지만, 몸에 힘이 풀려 버리는 바람에 그만 그녀의 옷에 피 자국을 묻히고 말았다.
'망했다.'
그는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수컷은 태생적으로 몸집이 크다 보니 육도결을 부축하기가 버거운 강지연은 시종에게 손짓해 호버카를 가까이 끌어오게 했다.
그녀는 육도결의 몸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 상처가 너무 심해 더는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정민아가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전하, 드디어 전하를 찾았네요! 전하께서 어찌 이런 곳에 오셨습니까?" 그녀는 친근한 말투로 말했지만,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육도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혐오감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런 곳은 전하의 품격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게다가 이런 노예를 만지셨다는 사실을 진우 오라버니께서 아시면 전하를 더욱 싫어하실 겁니다!"
강지연은 그런 그녀를 무심하게 흘겨봤다.
정민아는 그녀의 눈빛을 격려로 받아들이고 더욱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제 말을 좀 들어보십시오. 전하께서는 황실 예절을 제대로 배우셔야 합니다. 단정하고 온화한 모습을 보여야 진우 오라버니께서 전하를 좋아하실 겁니다!"
말을 마친 정민아의 시선이 문득 육도결의 옆얼굴에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죄인 노예의 상징인 어두운 빛깔의 문신이 또렷이 새겨 있었다.
그녀는 과장되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죄인 노예가 아닙니까? 전하, 어찌 죄인 노예와 이리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까? 진우 오라버니께서 아시면 전하를 더욱 싫어하실 겁니다!"
강지연은 그녀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더는 참을 수 없어 차갑게 한 마디를 던졌다. "닥치거라."
정민아는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강지연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몸 주인의 절친이라는 정민아는 작은 가문 출신으로 정신력과 몸 주인이 똑같이 약하기 짝이 없었다. 몸 주인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녀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며 소중히 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민아는 몸 주인의 명의를 빌려 갖은 이득을 챙기고, 몸 주인이 좋아하는 남자 백진우를 이용해 몸 주인을 괴롭혔다.
나중에 진짜 공주가 돌아왔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새 공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기도 했다.
강지연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짜 우정을 유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품에 안긴 사내에게 쏠려 있었다.
시종이 황급히 달려와 반쯤 의식을 잃은 육도결을 호버카에 조심스럽게 태웠다.
강지연도 호버카에 오르려 했지만, 정민아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하, 오늘 왜 이러십니까? 저는 전하를 위해 하는 말입니다. 제 말을 듣지 않으시면 진우 오라버니께서 전하를 더욱 멀리하실 겁니다!"
"그래, 알겠다." 강지연은 귀찮은 듯 손을 휘저었다. "길을 막지 말고 비키거라."
그 말에 정민아는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예전의 강지연은 백진우가 자신을 멀리한다는 말만 들으면 당황하며 정민아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곤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전하! 오늘 진우 오라버니의 생일 연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연회에 늦을 것 같으니 어서 이 노예를 버리고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러나 강지연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면 너 혼자 가면 되지 않느냐? 비키거라!"
정민아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백진우의 연회는 황실의 추천이 없으면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강지연이 일부러 나를 괴롭히는 걸까?'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전하께서 제 말을 듣지 않으시면, 저도 더 이상 전하를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강지연은 비로소 정민아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물었다. "방금 나를 뭐라고 불렀지?"
정민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공주 전하…"
"그래." 그녀는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가 감히 본 공주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정민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강지연은 그녀를 지나쳐 호버카에 올랐다.
정민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호버카로 달려가 소리 질렀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전하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 순간, 호버카의 창문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정민아는 강지연이 자신에게 사과하려는 줄 알고 눈을 반짝였다.
강지연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녀를 내려다 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아, 맞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너는 내 친구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구나. 우리 절교하자. 네가 그동안 나에게서 빌려간 옷, 가방, 장신구, 그리고 돈을 모두 돌려주거라."
"전하, 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강지연은 더욱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돌려주지 않으면, 내 오라버니께서 정씨 가문을 직접 손보시게 할 것이다."
말을 마치자 창문이 다시 올라가고 호버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민아는 얼이 빠진 듯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지연이 미친 거 아니야?'
육도결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이리도 부드럽게 자신의 몸을 어루만질 수 있겠는가.
그는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아픈 상처를 부드러운 손길이 어루만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미약한 힘이었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강지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거두었다.
별장에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정신력을 조종해 육도결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육도결은 끝내 눈도 뜨지 못했다.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의료 상자를 꺼내 그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정성스럽게 감아 주었다.
회차 3
사실 이 일은 굳이 그녀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경우 소문이 금세 퍼질까 두려웠다.
특히 큰오빠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정말 큰일이다.
몸 주인은 비록 폐암컷 신세였지만, 황제는 그녀를 매우 아꼈고, 황후 또한 그녀에게 인내심을 갖고 대하는 편이었다.
둘째 오빠는 황실의 이단아로, 연예계에 몸담고 있어 일 년에 두 번도 얼굴 보기 힘들었다.
오직 큰오빠, 강태정만 예외였다.
그는 엄격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강태정은 그녀보다 열 살이 많고, 현재 제국의 소장으로 변방 성역에 주둔하고 있지만, 가끔 수도성에 돌아올 때마다 어린 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극도로 엄격했다.
몸 주인이 여인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녀는 큰오빠를 죽을 만큼 두려워했다.
만약 큰오빠가 강지연이 죄인 노예를 사들여 정성껏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방에 가둬 버리고 이틀 동안 굶길 게 뻔했다.
굶는다고?
그건 강지연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전생에 그녀는 잦은 야근과 굶주림 때문에 위통으로 몸을 웅크린 채 과로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절대로 굶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녀는 새 노예를 빨리 시험해 보고 싶다는 핑계로 의식을 잃은 육도결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
이곳의 과학 기술은 매우 발달하여 상처 치료제는 나노 스프레이 형태로 되어 있어 빠르게 지혈하고 세포 재생을 촉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도 상처로 인한 신경 통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육도결은 부드러운 손길이 잠시 자신을 어루만지며 연민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터져 나왔다!
"으윽!"
그는 갑자기 눈을 뜨고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저항했다.
"아악!" 그때 가녀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육도결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굳어 버렸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설마… 방금 무심코 저항하는 바람에 자신을 사들인 여인을 다치게 한 것인가?
이 여인의 평판대로라면, 그는 앞으로 더욱 끔찍한 고문을 당하게 될 터였다.
강지연은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이 자식, 어떻게 손톱으로 가슴을 공격할 수 있지!'
가녀린 몸에 갑작스러운 충격이 가해지자 그녀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고, 아파 죽겠네!'
그녀는 몸을 돌려 몰래 가슴을 문질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허리를 똑바로 펼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육도결이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눈앞에 다가갔다. "정신이 들었느냐?"
그는 멍하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지연은 약병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약을 좀 발라 줄 테니, 움직이지 말고 참아라."
육도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사실 그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노예 시장에서 폭행을 당해 머리를 다친 이후, 그의 눈은 계속 흐릿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귀에 강지연의 말이 또렷이 들려왔다.
'나에게 약을 발라준다고?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혹시라도 이 꿈에서 깨어날까 봐 두려워했다.
강지연은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또다시 기습 공격을 당할까 봐 빠르게 약을 발라 주었다.
겨우 치료를 마친 그녀는 육도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어날 수 있느냐? 일어날 수 있다면 소파에 가서 자거라."
육도결은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죄인 노예는 주인님의 집에서 몸을 웅크릴 수 있는 빈 공간만 있으면 충분했다. 꿈속에서조차 그는 여인이 자신에게 소파에서 자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뒤, 주인님의 얼굴을 똑똑히 보려고 했다.
강지연은 방 한쪽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저곳에 가서 자거라."
그 소파는 아주 넓어서 육도결이 자기에는 충분했다.
육도결이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발바닥에 박혀 있던 잔유리 조각들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약이 발라져 있고 붕대까지 감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육도결이 지난번 탈출을 시도했을 때, 노예주가 그를 벌하기 위해 일부러 그의 발바닥에 박아 넣은 유리 조각들이었다.
입에 재갈을 물고 있는 그는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가 있는 방향으로 기어갔다.
"쿵!"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테이블 다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강지연은 육도결에게 다가가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다.
육도결의 흐릿한 눈동자가 그 움직임을 따라 살짝 흔들렸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느냐?"
육도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의 상처나 질병은 결국 주인에게 버림받는 이유가 될 뿐이었다.
육도결은 숨을 죽인 채 자신에게 내려질 판결을 기다렸다.
강지연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
육도결의 눈에 문제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여주인공이 육도결을 구하는 장면은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언급되었고, 그의 눈은 아마도 정신력으로 치료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강지연은 그를 치료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정신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지연은 속으로 절규했다. '역시 여주인공과 여조연의 차이는 이런 걸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육도결을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여기서 자거라."
육도결은 온몸이 굳은 채로 소파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강지연은 그에게 얇은 담요를 던져준 뒤, 자신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그래, 피곤하니 잠부터 자고 내일 생각하자.'
육도결은 소파에 누워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다고?'
채찍질도, 욕설도, 고문도 전혀 없었다.
'이 여인이 나에게 약을 발라주고 소파에서 쉬게 해주다니. 이게 대체 꿈일까 현실일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육도결은 너무 지친 나머지 피곤한 눈을 감아 버렸다.
내일 더 잔혹한 고문을 당할지라도,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강지연이 막 잠이 들었을 때, 요란한 광뇌 벨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방은 바로 맑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강지연! 곧 12시다! 백진우에게 직접 선물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오지 않으면 정말 늦는다! 내가 너 대신 이 정도까지 분위기를 띄워 놨는데, 너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상대방은 다름 아닌 강준혁, 그녀의 둘째 오빠였다.
강지연은 비몽사몽간에 몸을 일으키고 기억을 되짚었다.
백진우는 제국 귀족 백씨 가문에서 총애를 받지 못하는 수컷으로, 몸 주인의 인기를 등에 업고 연예계에서 꽤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몸 주인은 백진우의 열성팬으로, 해마다 그의 생일이면 직접 파티를 준비하고 값비싼 선물까지 보냈는데, 그 가격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쌌다.
작년에는 한정판 성해 시리즈 호버카를 선물했지만, 백진우는 너무 눈에 띈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몸 주인은 올해 실용적인 선물을 주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둘째 오빠에게 부탁해 다른 성역에서 천연 정신력 공명 수정을 주문했는데, 수컷의 정신력 양육에 도움이 된다는 그 수정은 무려 2억 금화나 하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2억 금화라니!
그것은 육도결을 50명이나 살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강지연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둘째 오라버니! 선물을 이미 줬습니까?"
그러자 강준혁은 전화 너머로 비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급해졌느냐? 12시까지 8분 남았다. 빨리 오거라. 수정은 내가 가져왔으니 너만 오면 된다."
"주지 마세요!" 그녀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절대 그 사람에게 선물을 주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저 지금 당장 갈게요!"
그러나 상대방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강지연은 침대에서 뛰어내려 아무 옷이나 걸치고 허둥지둥 방을 나섰다.
소파에 앉은 육도결은 어리둥절한 채 초점 없는 눈으로 그녀가 떠난 방향을 바라봤다.
한편,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 찬 연회장 중앙에는 정교한 선물들이 쌓여 있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2층 테라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테라스에 기대선 강준혁은 손에 작은 선물 상자를 쥐고 있었다.
"둘째 황자님이시다! 너무 잘생겼어!"
"야, 너도 수컷이고 둘째 황자님도 수컷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우와! 둘째 황자님이 나를 쳐다봤어! 나를 쳐다봤다고!"
강준혁은 지루한 듯 주위에 시선을 던지며 한껏 매력을 발산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흥, 멍청한 여동생이 백진우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성간 톱스타인 내가 이런 곳에 올 리 없지.'
'그런데 강지연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다니! 돌아가면 큰 형님에게 제대로 혼내달라고 해야겠어!'
"둘째 황자 전하."
강준혁이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눈에 짜증이 스쳤다.
백진우는 어느새 그의 뒤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공작족 수컷인 만큼 외모 하나는 확실히 빼어났다.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백진우는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강준혁은 그의 눈에 스치는 오만함을 놓치지 않았다.
"둘째 황자 전하, 공주님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
백진우는 점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강지연은 항상 미리 도착했는데 오늘은 왜…'
강준혁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손을 들어 선물 상자를 건네려 했다.
선물을 건네고 이곳을 떠나면, 더 이상 불편한 자리에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잠깐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