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폭발 직전의 차에서 약혼자를 구했다.
그 불로 등에는 끔찍한 흉터가 남았지만, 나는 그의 목숨을 살렸다.
그가 4년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나는 모든 걸 버리고 그를 간호했다.
그가 깨어난 지 6개월 후, 그는 컴백 기자회견 무대에 섰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 해야 했다.
대신 그는 관중석에서 웃고 있는 그의 첫사랑, 윤세라에게 세기의 고백을 했다.
그 후 그의 가족과 윤세라는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파티에서 내 드레스를 찢어 흉터를 만천하에 공개하며 나를 욕보였다.
윤세라가 고용한 깡패들에게 골목에서 폭행당했을 때, 강주원은 관심을 끌기 위해 내가 꾸며낸 짓이라며 비난했다.
내가 온몸에 멍이 들고 부서진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윤세라가 ‘무섭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약혼자인 나는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나의 모든 희생, 나의 고통, 나의 흔들림 없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나는 그저 동정심 때문에 갚아야 할 빚일 뿐이었다.
결혼식 날, 그는 윤세라가 배가 아프다고 연기하자 나를 리무진에서 내쫓았다.
웨딩드레스 차림 그대로 고속도로 갓길에 버려두고 떠났다.
나는 그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택시를 잡았다.
“공항으로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제1화
서은하의 손이 강주원의 팔에 놓였다. 차 안의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작지만 꾸준한 압력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주원아?”
그는 정면만 응시했다. 특별 주문한 맥라렌의 핸들을 쥔 주먹에 핏줄이 섰다. 도시의 불빛이 네온과 야망의 흐릿한 줄기가 되어 스쳐 지나갔다.
“해야 해, 은하야.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그의 목소리는 팽팽했다. 이건 레이싱의 스릴 때문이 아니었다. 왕좌를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다. 대한민국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JS그룹의 후계자, 강주원은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엔진이 포효했다. 힘을 약속하는 깊은 울림이었다. 저 앞에 날렵한 검은색 페라리 한 대가 비공식 출발선에서 공회전하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윤세라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도발적으로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열린 창문 너머로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유혹과 조롱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됐다.
강주원은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맥라렌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서은하를 가죽 시트에 처박았다. 세상은 속도와 소음의 터널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무모하지만 실력 있는, 천재적인 드라이버였다.
그때, 윤세라의 페라리가 날카롭고 의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의 뒷바퀴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쇠가 아스팔트에 긁히는 굉음이 울렸다. 서은하가 탄 쪽이 콘크리트 방호벽에 처박혔다. 모든 것이 끝나는 소리였다.
그녀는 슬로우 모션처럼 엔진 블록에 불이 붙는 것을 지켜봤다. 불길이 찌그러진 보닛을 핥았다. 강주원은 핸들 위로 쓰러진 채 의식을 잃었고, 관자놀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패닉은 순식간에 차가운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녀 자신의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그녀는 그의 안전벨트를 풀고, 그다음 자신의 벨트를 풀었다. 불길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타는 연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축 늘어진 그를 운전석 밖으로 끌어냈다. 잔해에서 겨우 벗어나는 순간, 차가 폭발했다. 폭발의 충격이 그들을 앞으로 내던졌고, 엄청난 열기가 등을 덮쳤다. 살갗과 내 미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듯한 작열통이었다.
의식을 잃기 전 그녀의 마지막 생각은 그의 이름이었다.
강주원.
4년 동안, 그 이름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그는 혼수상태였다. 살균된 하얀 병실에 누워 있는 아름답고 부서진 인형. JS그룹은 최고의 치료를 제공했지만, 밤낮으로 그의 곁을 지킨 것은 서은하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유망했던 미술가의 길, 친구들, 그리고 JS그룹이 그토록 경멸했던 ‘신흥 부자’ 집안에서 받을 상속 재산까지. 그녀는 그의 링거를 교체하는 법을 배웠고, 그가 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몇 시간이고 이야기했으며, 그녀의 등과 목 위로 뱀처럼 기어오르는 흉측한 화상 흉터를 향한 동정 어린 시선을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의 희생을 영원히 상기시키는 낙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깨어났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맞춤 정장을 입고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왕국으로 돌아온 왕이었다. 그의 회복 후 첫 공식 연설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서은하는 무대 옆에 서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최악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 목까지 올라오는 드레스를 입었다. 이 순간은 그녀의 것이기도 했다. 그가 자신을 구해준 여자,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공식적으로 감사하는 순간.
강주원은 매력적이었다. 기자들과 투자자들로 이루어진 청중을 손바닥 안에 쥐고 있었다. “제가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었던 건, 한 사람의 변함없는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에 젖어 울려 퍼졌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청중을 훑었다. 아주 잠깐, 서은하는 그가 자신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를 지나쳐 뒤쪽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았다.
윤세라. 눈부신 빨간 드레스를 입고 완벽하고 상처 하나 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 있었다.
“가평의 별장에서 별이 쏟아지던 밤, 오래전에 했던 약속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
그 말은 물리적인 충격처럼 서은하를 강타했다. 그건 그들의 추억이 아니었다. 그와 윤세라의 것이었다. 그가 언젠가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첫사랑 이야기.
그녀는 깨달았다. 이 성대하고 공개적인 고백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윤세라를 위한 것이었다.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4년간의 헌신, 고통, 희생… 나는 대체 뭐였을까? 그가 빚을 졌다고 느끼는 간병인? 임시방편?
청중은 그의 말을 헌신적인 약혼자에 대한 낭만적인 헌사로 오해하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은 감탄 어린 얼굴로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들의 축하는 독처럼 느껴졌다.
시야가 흐려졌다. 무대의 밝은 조명이 그녀의 흉터와 어리석음을 비추며 조롱하는 것 같았다. 드레스 아래로 느껴지는 거친 흉터 조직은 일방적인 사랑의 영원한 낙인이었다.
4년. 4년 동안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속삭이며, 그의 침묵이 약속이라고 믿었다. JS그룹의 주치의들이 포기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회사 지분을 팔아 실험적인 치료 비용을 댔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 차갑고 냉정한 강태준 회장과 싸웠다. 그는 그녀를 단지 후계자를 살리기 위한 필요 투자로만 여겼다.
강주원이 깨어났을 때, 그가 그녀에게 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결혼하자, 은하야. 너한테 내 목숨을 빚졌어.”
그는 빚을 졌다고 했다. 사랑한다고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깨달음은 헌신의 안개를 꿰뚫는 차갑고 날카로운 명료함이었다. 그는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은 감사함이었고, 그가 갚아야 한다고 느끼는 빚이었다.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나가야 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출구를 향해 돌아섰다.
강주원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봤다.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연설을 마쳤다. 복도에서 벽에 기댄 채 서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은하야? 괜찮아? 막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어.”
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정말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가 아닌, 낯선 사람을 보았다. 남자의 몸을 한, 감정적으로 눈먼 소년.
“왜 그런 말을 했어? 가평 얘기 말이야.” 그녀가 간신히 속삭였다.
그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말이 그렇게 나왔어. 세라가 거기 있었고. 난 좀…”
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때, 윤세라가 다가왔다. 순진한 걱정의 가면을 쓴 채였다. “주원아. 정말 아름다운 연설이었어. 그리고 은하 씨, 피곤해 보이네요. 이 모든 게 너무 벅차겠죠.”
강주원의 관심은 즉시 윤세라에게로 향했다. 그의 몸이 물리적으로 서은하에게서 돌아섰다.
“괜찮아, 세라야?”
“나… 나도 모르겠어.” 윤세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기사님이… 날 그냥 두고 가버렸어.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 아파트에 가스가 새서 오늘 밤 거기서 잘 수도 없는데.”
너무나 명백한 거짓말, 너무나 투명한 조종이었다. 하지만 강주원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걱정 마. 내가 데려다줄게. 시그니엘에 스위트룸 잡아줄게.” 그는 서은하에게 돌아섰다. 그의 말투는 무심했다. “은하 넌 차 가지고 집에 가. 이건 내가 처리해야 해.”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윤세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복도를 따라 그녀를 안내하며, 서은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다.
예상했던 고통은 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이상하고 텅 빈 평온함이 찾아왔다. 해방감이었다.
끝났다. 그녀가 4년 동안 붙잡고 있던 희망이 마침내, 자비롭게도, 죽었다.
그녀는 차를 타지 않았다. 뜨거운 뺨을 식혀주는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집까지 걸었다. 아파트에서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았다. ‘국경 없는 의사회 아프리카 의료 봉사.’
그녀는 예전 의대 예과 자격과 장기 간병인으로서의 경험을 나열하며 지원서를 작성했다.
한 시간 후, 메일함에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합격 통지서였다.
그녀의 출발일은 지금으로부터 3주 후였다.
강주원과 결혼하기로 한 바로 그날이었다.
회차 2
서은하는 한때 집이라고 여겼던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그곳은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결코 그녀의 것이 아니었던 삶의 박물관 같았다.
강주원은 없었다.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빛나고 있었다. “세라가 공황 발작을 일으켰어. 괜찮아질 때까지 오늘 밤은 같이 있어 줘야겠어. 내일 봐.”
그녀는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윤세라는 이미 사진을 올렸다. 시그니엘 스위트룸의 호화로운 배경이 선명한, 두 개의 샴페인 잔 클로즈업 사진이었다. 캡션은 이랬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챙겨줘야 하는지 그냥 알지. #진정한사랑.”
서은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응시했다. 그녀는 4년 동안 그를 돌봤고, 이것이 그녀가 받은 보상이었다.
갑자기 맹렬한 에너지가 솟구쳤다. 그녀는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유령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침실에서 시작했다. 강주원의 비싼 맞춤 정장들을 옷장에서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그의 향수병, 시계 컬렉션, 사진들—모든 것이 쓰레기봉투에 들어갔다. 그녀는 그의 존재를 공간에서 정화하며 체계적인 분노로 일했다. 그녀가 버리는 물건 하나하나가 그녀가 끊어내는 족쇄였다.
해가 뜰 무렵, 아파트는 텅 비었다. 강주원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그는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들어왔다. 한심한 화해의 선물로 페이스트리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는 거실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그의 눈이 충격으로 커졌다.
“은하야?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그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테리어 좀 바꿨어.” 그녀가 감정 없는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어색한 긴장감을 무마하려는 듯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래… 뭐, 변화가 필요하긴 했지. 주말에 쇼핑하러 가자.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사줄게.”
그는 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 소파가 그가 그녀의 삶에 낸 구멍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원아.”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었다. “우리 윤세라에 대해 얘기 좀 해야겠어.”
그는 굳어졌다. 그의 편안한 미소가 사라졌다. “얘기할 거 없어. 말했잖아, 그냥 친구라고. 도움이 필요했던 거야.”
“그리고 우린 결혼할 거잖아.” 그는 그 말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인 것처럼 재빨리 덧붙였다. “결혼식이 3주 남았어. 모든 게 준비됐다고.”
그녀는 그저 그를 응시했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는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오늘 밤 우리 집에서 파티를 열어.” 그가 화제를 바꿨다. “너도 와야 해. 우리가 문제없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가고 싶지 않았다. 문을 잠그고 다시는 그들 중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공개적으로 소란을 피우면 상황만 악화될 거라는 걸 알았다.
“알았어.” 그녀는 동의했다.
파티는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가식적인 미소로 가득한 악몽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강주원은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바다에 휩쓸렸다. 서은하는 홀로 남겨졌다. 그녀가 결코 어울리지 못했던 세상의 이방인이었다. 다른 여자들, 모두 ‘구세대 부자’ 가문 출신인 그들은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했고, 그들의 시선은 그녀의 흉터 자국에 머물렀다.
그녀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의 조용한 구석을 찾았다. 공기가 필요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어디서 굴러먹던 개가 들어왔나.”
서은하가 돌아섰다. 강주원의 여동생, 강주희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윤세라는 비단 옷을 입은 그림자처럼 바로 뒤에 있었다.
“집에서 오빠 구두나 닦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강주희가 비웃었다. “아니면 그 흉터투성이 손으로는 그것도 힘든가?”
윤세라가 강주희의 팔에 부드럽게 손을 얹었다. “주희야, 너무 심하게 굴지 마. 은하 씨는 손님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눈은 차가웠다.
“손님? 오빠를 함정에 빠뜨린 고작 간병인 주제에.” 강주희의 목소리가 커졌다. 사람들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근본도 없는 신흥 부자 집안의 돈만 밝히는 꽃뱀일 뿐이야.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윤세라는 극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주원 오빠에겐… 온전한 사람이 어울리는 건 사실이지. 자기 세상에 속한 사람 말이야. 하지만 오빠는 약속을 했잖아. 약속은 지키는 남자니까.”
모든 단어가 조심스럽게 조준된 화살이었다.
윤세라의 연기에 힘입은 강주희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우리 오빠는 널 불쌍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게 전부야. 동정심이라고. 너 같은 흉측한 괴물을 누가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서은하가 반응하기도 전에 강주희의 손이 뻗어 나왔다. 그녀는 서은하의 드레스 높은 옷깃을 잡고 아래로 찢어버렸다.
천이 역겨운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그녀의 목과 어깨에 있는 흉터의 전체 모습이 연회장의 거친 조명 아래 갑자기 드러났다.
군중 속에서 일제히 경악의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충격과 병적인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로 쳐다봤다. 속삭임이 들불처럼 번졌다.
굴욕감이 뜨겁고 숨 막히게 서은하를 덮쳤다.
강주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흉터를 가리키려는 듯 다시 손을 뻗었다. “봐! 이게 바로 이 여자의 실체야!”
서은하 안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녀는 순전히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올라가 강주희의 뺨을 후려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 안은 침묵에 잠겼다. 강주희는 빨개진 뺨에 손을 댄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진 눈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윤세라가 숨을 헐떡이며 앞으로 달려 나왔다. “세상에, 은하 씨!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녀는 연출된 서두름 속에서 ‘넘어져’ 비단 더미와 거짓 고통 속에서 바닥에 쓰러졌다. “내 발목!”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때 강주원이 나타났다. 그는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우는 윤세라 위에 서 있는 서은하, 그리고 뺨을 잡고 있는 그의 여동생.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윤세라에게 다가갔다. 그는 서은하를 밀치며 지나갔고, 그녀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발코니 난간에 세게 부딪혔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라야! 다쳤어?” 그의 목소리는 광적인 걱정으로 가득했다.
기회를 잡은 강주희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오빠, 저 여자가 날 때렸어! 그리고 세라 언니를 밀쳤다고! 미쳤어!”
강주원은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윤세라를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그는 돌아섰다. 그의 눈이 마침내 서은하에게 닿았다. 차갑고, 비난과 실망으로 가득했다.
그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서서 윤세라를 안고 떠났다. 서은하를 침묵하고 응시하는 군중의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둔 채.
회차 3
강주희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다가왔다. “봤지? 오빠는 언제나 우리를 선택해. 넌 아무것도 아니야.”
군중의 시선이 서은하에게 쏠렸다. 동정과 경멸의 숨 막히는 무게였다. 그녀는 찢어진 드레스가 갈기갈기 찢긴 존엄의 상징인 양 서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드러난 흉터에 잔인하게 입 맞췄다.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사고 전, 파티에서 술 취한 투자자가 그녀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때가 생각났다. 강주원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그 남자를 밖으로 내보냈고, 남은 밤 내내 보호하듯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그 강주원은 사라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파티장을 걸어 나왔다. 자신의 유령이 출몰하는 곳을 떠나는 유령처럼. 굳이 차를 부르지 않았다. 도시의 거리를 오래 걷는 것은 필요한 속죄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더 이상 알 수 없었지만.
아파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밴 한 대가 그녀 옆에 screeching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거구의 남자 두 명이 뛰어내렸다.
“서은하 씨?” 그들 중 하나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들은 그녀를 붙잡아 어두운 골목으로 끌고 갔다.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 남자가 그녀를 벽돌 벽에 처박았다. 거친 표면이 그녀의 뺨을 긁었다.
“이건 경고야.” 그가 뜨겁고 역겨운 숨을 내쉬며 으르렁거렸다. “윤세라 씨가 자기 남자한테서 떨어지라고 전하래.”
다른 남자가 웃었다. “너 같은 흉터투성이인 년은 네 자리를 알아야지.”
그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복부, 그리고 갈비뼈에 고통이 폭발했다. 그들은 전문가였다. 그들의 타격은 정확하고 잔인했으며, 죽이지는 않되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녀를 땅에 내동댕이치고 시야가 흐려질 때까지 찼다.
“그대로 처박혀 있어, 쓰레기 같은 년.” 그들 중 하나가 그녀의 머리 근처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라졌다.
그녀는 더러운 땅바닥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둔하고 욱신거리는 고통이 심장 박동과 일치했다. 신음하며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 119를 누르는 데 세 번이나 걸렸다. 전화를 걸기 전, 만약을 대비해 음성 메모 앱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간신히 응급실로 갔다. 경찰이 와서 진술을 받았다. 그녀는 깡패들이 윤세라의 이름을 언급하는 녹음을 들려주었다. 경찰관은 동정적으로 보였지만 확답은 피했다.
그녀가 멍과 붕대로 뒤덮인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마침내 강주원이 나타났다. 그는 피곤하고 가식적인 후회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은하야. 세상에. 방금 들었어. 정말 미안해.”
그는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아 손을 잡으려 했다. 그녀는 손을 뺐다.
“주희는 처리했어.” 그가 거짓된 권위로 가득 찬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용카드 정지시키고 시골 별장으로 보냈어. 다시는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
그는 감사를 기대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윤세라는?” 서은하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강주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세라는 이 일과 아무 관련 없어. 전부 주희 짓이야. 그냥 철없는 애가 사고 친 거라고.”
“그들이 윤세라 이름을 말했어, 주원아.” 서은하의 목소리는 그녀가 가진 줄도 몰랐던 힘으로 높아졌다. “날 공격한 남자들이. 윤세라가 보냈다고 했어.” 그녀는 휴대폰을 집으려 했다. “녹음 파일도 있어.”
그는 그녀가 재생하게 두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껐다. 그의 움직임은 날카롭고 명령적이었다. 매력적이고 미숙한 소년은 사라지고, JS그룹의 차갑고 무자비한 CEO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만해, 은하야.” 그가 낮고 위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처리할 일이 산더미 같은 거 안 보여? 내 동생은 엉망이고, 언론은 신나서 떠들어대고, 넌 이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고 있잖아. 너한테 실망했다.”
실망했다. 그 말은 뺨을 맞는 것 같았다.
“우린 결혼할 거야.” 그가 마치 그것이 토론의 끝인 것처럼 말을 이었다. “경찰에는 이미 얘기해 뒀어. 신고는 취하됐어. 이건 내부적으로 처리할 거야. 그게 그룹을 위해서도 더 나아.”
그는 일어섰다.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보호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 안의 지저분한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윤세라의 이름이 떴다.
“주원아, 자기야.” 서은하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윤세라의 눈물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너무 무서워. 누가 날 따라오는 것 같아.”
강주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즉시 그녀의 보호자, 그녀의 영웅으로 돌아갔다. “어디야? 움직이지 마. 지금 갈게.”
그는 전화를 끊고 문으로 향했다.
“주원아, 기다려.” 서은하가 말했다. 그녀가 그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부서져 있었다. “제발. 가지 마. 나랑 같이 있어 줘.”
그는 문 앞에서 망설였다.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심장이 멎을 듯한 한순간, 그녀는 그가 머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는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힘겹게 인내하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은하야, 가봐야 해. 세라가 겁에 질려 있어. 넌 여기 병원에 있으니 안전하잖아. 나중에 다시 올게.”
그는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서은하는 텅 빈 문간을 응시했다. 한 줄기 눈물이 그녀의 뺨에 묻은 때를 가르며 흘러내렸다. 그리고 또 한 줄기. 곧 그녀는 울고 있었지만, 동시에 웃고 있었다. 이상하고, 부서지고, 해방된 미소였다.
그는 언제나 윤세라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그녀는 자신을 선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