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최치수의 손이 김하늘에게 닿기 직전, 서슬 퍼런 빛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식칼이 그를 향해 날아 왔던 것이다.
그는 급히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바로 다음 순간, 식칼이 바로 뒤 테이블에 꽂혔다.
강한수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이를 만진 손은 알아서 자르는 게 좋을 거야."
순간, 가계에 있던 사람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김씨 일가가 더 그랬다.
그들은 여태 강한수를 겁이 많고 비굴한 사람이라 여겼다.
강한수가 멀찍이 몸을 피하고 있었다면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수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다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최치수가 싸늘하게 웃으며 반문했다.
"방금 뭐라 했냐? 한번만 다시 말해 봐."
강한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하늘이를 만진 손은 알아서 자르는 게 좋을 거라고."
패거리들이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욕지거리를 뱉으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최치수가 강한수의 앞에 다가서더니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별 같잖은 새끼가 감히 나한테 덤벼? 내가 누군지 알아?"
"동네 양아치 주제에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강한수가 냉소를 흘렸다.
"왜? 못 자르겠어? 내가 도와 줄까?"
김하늘은 복잡한 얼굴로 자신을 위해 나서 주는 강한수를 바라봤다. 그가 걱정이 되었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하, 미친 새끼가 죽고 싶나 보네?"
최치수는 테이블에 꽂혀 있던 칼을 움켜 쥐더니 강한수를 향해 휘둘렀다.
"죽어, 이 개새끼야!"
김씨 일가 사람들은 얼굴 빛이 하얗게 질렸다.
"조심해!"
김하늘의 가계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강한수는 물러서지 않았고 되려 앞으로 나아가더니 왼손으로 최치수의 손목을 제압하고는 오손으로 놈의 팔꿈치를 세게 비틀어 버렸다.
관절이 꺾이는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최치수의 팔은 완전히 꺾여 버렸고 뼈가 살을 찢고 밖으로 튀어 나왔다.
'땡그랑' 소리와 함께 식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극심한 통증에 최치수는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그의 부하로 보이는 놈들은 강한수의 잔인함에 그만 겁을 먹은 채 얼어 붙었다.
강한수는 양아치들을 둘러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당장 꺼져."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양아치들이라 강자 앞에서는 즉시 꼬리를 내렸다.
놈들은 허겁지겁 이미 기절한 최치수를 부축하여 급히 가계를 나섰다.
김씨 일가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최치수의 난동도, 강한수의 예상치 못한 모습도 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특히 강한수가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먼저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강한수였다.
"김기서, 앞으로 저런 양아치들과 어울려 다니지 마."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기수가 화를 내며 받아 쳤다.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최치수한테 뺨을 얻어 맞고도 찍소리도 못하던 김기서였으나 강한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한수가 냉소를 흘렸다.
"방금 양아치 새끼들이 네 누나한테 치근덕거릴 때, 그렇게 화를 내지 그랬어?"
김하늘이 입술을 깨물고 동생을 위해 한마디 했다.
"기서는 아직 어리잖아. 한수야, 기서를 너무 혼내지 마."
'20살이 넘은 놈을 보고 아직 어리다니?'
강한수는 고개를 저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김하늘은 다 좋았다. 굳이 결점을 찾아 낸다면 유독 동생을 과하게 아낀다는 거였다.
이때, 이은화도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동네 양아치 하나 쫓아 냈다고 기고만장하기는, 네가 뭔데 우리 기서를 가르치려 드는 거야? 넌 그럴 자격 없어!"
"에휴, 방금 넌 너무 과했어."
김학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충분히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싸움으로 해결하다니, 심지어 최치수는 중상을 입었어."
"맞아! 동네 양아치를 잘못 건드렸다가 놈들이 매일 와서 난동을 부리면 우린 장사를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은화가 눈을 부라리며 불평을 터뜨렸다.
강한수는 피식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꾸짖을 사람들이니까.
"너 최치수가 누군지 알아? 해성구의 오경수, 오사장의 탄광을 지키는 순찰팀 팀장이라고!"
김기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최치수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상원시는 자원이 풍부한 도시다. 때문에 탄광을 차지한 사람들은 전부 일대의 갑부로 자리 매김 했고 오경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힘이 있는 부류였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순찰팀은 악명이 자자했고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오사장의 부하라고?"
이은화는 발을 동동 굴렀다.
"세상에,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강한수를 힘껏 노려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네가 벌린 짓이야! 그러니 네가 책임 져! 이 일은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강한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걱정 마세요. 당신들이 휘말릴 일은 없으니까."
세계적으로 내놓으라 하는 거물들을 마주하면서도 허리를 굽힌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니 고작 탄광 몇 개를 가지고 있는 졸부 나부랭이들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김하늘은 김씨 부부를 흘겨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들 해요!"
그녀가 아니었다면 강한수는 주먹을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아수라장이 돼버린 가계를 둘러 보던 김씨 부부는 더 이상 장사를 이어갈 기분이 아니었다. 하여 일찍 문을 닫고 돌아가 쉬기로 했다.
가계에 남아 뒤처리를 하는 건 항상 강한수의 몫이었다. 그게 그의 일과 중 하나였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씨 부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계를 떠났다.
김하늘은 가계에 남아 강한수를 도왔다. 그 모습에 강한수는 다소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테이블을 닦고 있었고 그 탓에 목걸이가 자연스레 밖으로 흘러 내렸다.
진 붉은 색으로 된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였다. 나무였지만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항 상 그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다.
오늘 전, 까지만 해도 그는 그 목걸이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은 지금. 그는 그 나무가 얼마나 귀한 나무인지 알았다. 귀목(鬼木) 다시 말해 귀신이 깃든 나무를 뜻했다.
귀목은 온 세상을 뒤져도 좀처럼 찾기 힘든 나무였다. 개체수가 적은 건 물론이고 아마존 우림의 깊은 곳에서만 발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하다고 해서 좋은 나무인건 아니었다. 귀목은 자체로 신경성 유독기체를 외부로 배출한다. 하여 장 시간 귀목에 노출되면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된다.
'김하늘이 왜 귀목으로 만들어 진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걸까?'
잠시 생각을 하던 강한수가 입을 열었다.
"하늘아, 너 그 목걸이 하지 않으면 안 돼?"
김하늘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
"내가 알기론 그런 나무를 곁에 두면 건강에 좋지 않대."
김하늘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 건강하거든?"
강한수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농담 아니야. 다시는 그 목걸이 하지 마."
"그만해!"
김하늘은 행주를 테이블 위에 내던지며 입을 열었다.
"전에 했던 약속 잊었어?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
강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으니까, 화 좀 내지마."
"너도 눈치 챘겠지만 이 목걸이는 남자가 준 게 맞아. 그러니까 간섭하지 마."
그 말을 끝으로 김하늘은 가계를 나섰다.
강하늘에게는 둘의 결혼이 그저 거래에 불과했다. 강한수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대신 그녀는 집 한 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강한수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하늘은 강한수가 그녀에게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알아 차렸다. 무척이나 당황한 그녀는 강한수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고백할 낌새를 보이면 칼같이 잘라 냈다.
예전 같았으면 강한수는 당장 그녀를 쫓아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