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한수는 보육원에 버려졌다.
그가 6살 되던 해.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나 그를 제자로 삼았고, 그 뒤로 의문의 스승은 가끔씩 나타나 그에게 무술과 의술을 가르쳤다.
그가 12살 되던 해. 강한수는 보육원을 나와 전국을 떠돌았고 15살이 되어 해외로 나갔다.
강한수는 해외에서 처음부터 시작해 상업제국을 이룩했다. 재산을 셀 수 조차 없이 많았고 세계 곳곳에 그의 세력들이 존재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대부'라고 불렀다.
2년 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그는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즉시 귀국하여 스승에게 치료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려 했지만 그의 뒤를 따라온 킬러의 총에 맞아 머리를 다친 채 절벽에서 굴러 떨어졌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그는 모든 기억을 잃어 버렸다.
하여 2년 동안 바보취급 당하며 동네 거지로 살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기억을 되찾았다.
강한수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형부. 깼어요?"
방문이 열리더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두 눈동자에는 빛이 없었다.
그녀는 김하늘의 동생 김하연이다. 김하늘과 많이 닮았지만 그녀와 달리 성숙한 느낌이 덜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약시를 앓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부터는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고 그 뒤로 방에 박혀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강한수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그를 찾아와 위로를 해 주었고 좋은 물건이 생길 때마다 잊지 않고 그를 찾아와 그와 함께 기쁨을 공유했다.
강한수는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내가 깬 줄 어떻게 알았어?"
그녀는 아이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두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강한수의 방으로 들어왔다.
"인기척이 들렸어요."
그녀는 손을 더듬어 의자를 찾아 내고는 위에 앉았다.
"형부,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그녀의 걱정 어린 관심에 강한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응, 정말 괜찮아."
김하연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너무 하잖아요."
강한수는 되려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무식함이 오히려 고마운 걸?"
"네?"
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강한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하연아. 이 형부가 반드시 네 눈을 낫게 해줄게."
김하연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형부 말만 믿고 기다릴게요. 꼭 돈을 많이 벌어서 제 눈을 낫게 해주셔야 해요."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시각장애자를 위해 설계된 특별한 휴대폰이었다.
그녀가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건너편에서 김학수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쓸모 없는 자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 보거라! 죽지 않았다면 당장 가계로 튀오 오라고 해! 늦었다간 네 언니가 험한 일을 당할 지도 몰라!"
말을 마친 김학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통화 내용을 전부 듣고 있던 강한수가 급히 말했다.
"하연아 어디 가지 말고 꼭 집에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 그리고 절대 주방에 들어가면 안돼."
당부를 마친 그는 부리나케 가계로 뛰어갔다.
김씨네 가계는 취객들이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잦았다. 혹시라도 김하늘이 무슨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그는 문을 나서자 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가계로 향했다.
차 안,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김씨 집안에서 1년 남짓 사는 동안에 그는 수많은 불쾌한 일들을 겪었고 김학상 부부는 항상 그를 하대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곳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그토록 원하던 보금자리와 가족을 얻었고 게다가 여기에는 그가 사랑하는 김하늘이 있었다.
온 세계를 떠돌아 다니며 얻고 싶은 건 무엇이든 손에 넣었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 잡은 여자는 김하늘이 유일했다.
강한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여자를 쉽게 포기 할 생각이 없었다. 하여 그는 잠시 외부에 연락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데릴사위 노릇을 이어가며 김하늘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참에 상처 입은 몸도 치료할 생각이었고 2년 전, 일에 대한 복수는 몸이 다 나으면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15분 후, 강한수는 김씨네 고깃집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님, 누가 난동을 부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닥치지 못해? 설마 정말 누가 난동이라도 부리길 바라는 거야?"
고기를 썰던 감학상이 퉁명스레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넌 아직도 죽은 척하며 침대에 누워 꾀병을 부렸겠지. 그럼 일은 누가 해?!"
강한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나면 새벽까지 고깃집에서 일을 도와야 한다. 그게 강한수의 일상이었다.
김기서의 주먹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다면 이미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이은화가 그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곱창이나 씻어 놔! 이따가 단체 손님이 올 거다."
그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닌지, 아프진 않은지, 김씨 부부는 사위에 대한 걱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무관심에 익숙해진 강한수는 쪽 걸상에 앉아 곱창을 손질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가끔 고개를 들어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 김하늘을 힐끗힐끗 쳐다 보았다.
그녀는 몸에 딱 달라 붙는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고 길쭉한 다리는 운동화와 잘 어울렸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그는 김하늘 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그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강하늘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그는 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많이 다쳤어?"
강한수가 쓰러지자마자 그녀는 그를 병원에 옮기려 했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필요 없다고 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김하늘은 자신이 더 고집을 부린다면 이은화가 울며불며 난리를 칠게 뻔히 보였다. 하여 그녀는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강한수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 멀쩡해. 내가 얼마나 튼튼한지 잊었어?"
김하늘의 간단한 한마디 안부에 그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의 진심 어린 한마디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를 외면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때, 김기서가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들과 함께 가계로 들어왔다.
앞장 선 남자는 민머리에 얼굴에 흉측한 칼자국이 있었고 일행의 우두머리로 보였다.
김기서가 우쭐거리며 가족들에게 남자를 소개했다.
"아빠. 최치수라고 내가 새로 알게 된 친구야. 대학로에서 치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치수 이름만 대. 그럼 다 해결 될 거야."
최치수가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 오세요."
말을 마친 그는 카운터에 있는 김하늘에게 시선을 고정하더니 위 아래로 훑었다. 노골적이고 거리낌 없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싫었던 김하늘은 몸을 돌려 한 켠으로 비켜섰다.
이때, 김학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치수야 얼른 친구들을 대접하거라. 친구들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시켜 주거라."
김기서는 일행들을 안내하며 자리에 앉았다.
김하늘은 최치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과 함께 온 손님이니 불쾌함을 드러낼 순 없었다.
그녀는 메뉴를 손에 들고 다가가 물었다.
"뭐로 드시겠어요?"
"앉아서 같이 먹지 그래?"
최치수는 대뜸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더니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만졌다.
"손 치워!"
짧은 비명과 함께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메뉴판을 그의 얼굴에 내던지고는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바로 옆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던 강한수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김학상의 거짓말이 씨가 되었는지 정말로 누군가 가계에서 난동을 부렸다.
최치수의 눈에 위험한 빛이 서렸다. 그는 김하늘을 향해 다가서며 싸늘하게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리 와."
그가 입을 열자마자 자리에 앉아있던 그의 일행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하늘을 에워쌌다.
김학상 부부가 급히 달려왔지만 최치수의 부하들에게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김기서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치수야. 갑자기 왜 그래."
철썩!
최치수가 욕설을 퍼부으며 그의 뺨을 때렸다.
"내가 네 친구야!? 한턱 낸다고 해서 따라왔을 뿐이야. 아니면 내가 너 같은 걸 왜 상대해."
그는 고개를 돌려 기분 나쁜 눈빛으로 김하늘을 바라봤다.
"어이 예쁜이. 빨리 내 옆에 와서 앉아. 너도 험한 꼴 당하기 싫잖아?"
김기서는 얼굴을 싸잡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궁지에 몰린 김하늘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입을 열었다.
"당장 꺼져!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
"신고?"
최치수가 가소롭다는 듯 낄낄 웃어댔다.
그러자 김학상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치수씨. 제 딸은 그만 풀어 주세요. 앞으로 치수씨와 일행이 오시면 무료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넌 빠져있어!"
그는 김학상을 쳐다보지도 않고 김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회차 3
최치수의 손이 김하늘에게 닿기 직전, 서슬 퍼런 빛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식칼이 그를 향해 날아 왔던 것이다.
그는 급히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바로 다음 순간, 식칼이 바로 뒤 테이블에 꽂혔다.
강한수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이를 만진 손은 알아서 자르는 게 좋을 거야."
순간, 가계에 있던 사람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김씨 일가가 더 그랬다.
그들은 여태 강한수를 겁이 많고 비굴한 사람이라 여겼다.
강한수가 멀찍이 몸을 피하고 있었다면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수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다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최치수가 싸늘하게 웃으며 반문했다.
"방금 뭐라 했냐? 한번만 다시 말해 봐."
강한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하늘이를 만진 손은 알아서 자르는 게 좋을 거라고."
패거리들이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욕지거리를 뱉으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최치수가 강한수의 앞에 다가서더니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별 같잖은 새끼가 감히 나한테 덤벼? 내가 누군지 알아?"
"동네 양아치 주제에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강한수가 냉소를 흘렸다.
"왜? 못 자르겠어? 내가 도와 줄까?"
김하늘은 복잡한 얼굴로 자신을 위해 나서 주는 강한수를 바라봤다. 그가 걱정이 되었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하, 미친 새끼가 죽고 싶나 보네?"
최치수는 테이블에 꽂혀 있던 칼을 움켜 쥐더니 강한수를 향해 휘둘렀다.
"죽어, 이 개새끼야!"
김씨 일가 사람들은 얼굴 빛이 하얗게 질렸다.
"조심해!"
김하늘의 가계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강한수는 물러서지 않았고 되려 앞으로 나아가더니 왼손으로 최치수의 손목을 제압하고는 오손으로 놈의 팔꿈치를 세게 비틀어 버렸다.
관절이 꺾이는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최치수의 팔은 완전히 꺾여 버렸고 뼈가 살을 찢고 밖으로 튀어 나왔다.
'땡그랑' 소리와 함께 식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극심한 통증에 최치수는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그의 부하로 보이는 놈들은 강한수의 잔인함에 그만 겁을 먹은 채 얼어 붙었다.
강한수는 양아치들을 둘러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당장 꺼져."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양아치들이라 강자 앞에서는 즉시 꼬리를 내렸다.
놈들은 허겁지겁 이미 기절한 최치수를 부축하여 급히 가계를 나섰다.
김씨 일가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최치수의 난동도, 강한수의 예상치 못한 모습도 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특히 강한수가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먼저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강한수였다.
"김기서, 앞으로 저런 양아치들과 어울려 다니지 마."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기수가 화를 내며 받아 쳤다.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최치수한테 뺨을 얻어 맞고도 찍소리도 못하던 김기서였으나 강한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한수가 냉소를 흘렸다.
"방금 양아치 새끼들이 네 누나한테 치근덕거릴 때, 그렇게 화를 내지 그랬어?"
김하늘이 입술을 깨물고 동생을 위해 한마디 했다.
"기서는 아직 어리잖아. 한수야, 기서를 너무 혼내지 마."
'20살이 넘은 놈을 보고 아직 어리다니?'
강한수는 고개를 저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김하늘은 다 좋았다. 굳이 결점을 찾아 낸다면 유독 동생을 과하게 아낀다는 거였다.
이때, 이은화도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동네 양아치 하나 쫓아 냈다고 기고만장하기는, 네가 뭔데 우리 기서를 가르치려 드는 거야? 넌 그럴 자격 없어!"
"에휴, 방금 넌 너무 과했어."
김학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충분히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싸움으로 해결하다니, 심지어 최치수는 중상을 입었어."
"맞아! 동네 양아치를 잘못 건드렸다가 놈들이 매일 와서 난동을 부리면 우린 장사를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은화가 눈을 부라리며 불평을 터뜨렸다.
강한수는 피식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꾸짖을 사람들이니까.
"너 최치수가 누군지 알아? 해성구의 오경수, 오사장의 탄광을 지키는 순찰팀 팀장이라고!"
김기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최치수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상원시는 자원이 풍부한 도시다. 때문에 탄광을 차지한 사람들은 전부 일대의 갑부로 자리 매김 했고 오경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힘이 있는 부류였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순찰팀은 악명이 자자했고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오사장의 부하라고?"
이은화는 발을 동동 굴렀다.
"세상에,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강한수를 힘껏 노려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네가 벌린 짓이야! 그러니 네가 책임 져! 이 일은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강한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걱정 마세요. 당신들이 휘말릴 일은 없으니까."
세계적으로 내놓으라 하는 거물들을 마주하면서도 허리를 굽힌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니 고작 탄광 몇 개를 가지고 있는 졸부 나부랭이들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김하늘은 김씨 부부를 흘겨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들 해요!"
그녀가 아니었다면 강한수는 주먹을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아수라장이 돼버린 가계를 둘러 보던 김씨 부부는 더 이상 장사를 이어갈 기분이 아니었다. 하여 일찍 문을 닫고 돌아가 쉬기로 했다.
가계에 남아 뒤처리를 하는 건 항상 강한수의 몫이었다. 그게 그의 일과 중 하나였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씨 부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계를 떠났다.
김하늘은 가계에 남아 강한수를 도왔다. 그 모습에 강한수는 다소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테이블을 닦고 있었고 그 탓에 목걸이가 자연스레 밖으로 흘러 내렸다.
진 붉은 색으로 된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였다. 나무였지만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항 상 그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다.
오늘 전, 까지만 해도 그는 그 목걸이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은 지금. 그는 그 나무가 얼마나 귀한 나무인지 알았다. 귀목(鬼木) 다시 말해 귀신이 깃든 나무를 뜻했다.
귀목은 온 세상을 뒤져도 좀처럼 찾기 힘든 나무였다. 개체수가 적은 건 물론이고 아마존 우림의 깊은 곳에서만 발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하다고 해서 좋은 나무인건 아니었다. 귀목은 자체로 신경성 유독기체를 외부로 배출한다. 하여 장 시간 귀목에 노출되면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된다.
'김하늘이 왜 귀목으로 만들어 진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걸까?'
잠시 생각을 하던 강한수가 입을 열었다.
"하늘아, 너 그 목걸이 하지 않으면 안 돼?"
김하늘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
"내가 알기론 그런 나무를 곁에 두면 건강에 좋지 않대."
김하늘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 건강하거든?"
강한수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농담 아니야. 다시는 그 목걸이 하지 마."
"그만해!"
김하늘은 행주를 테이블 위에 내던지며 입을 열었다.
"전에 했던 약속 잊었어?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
강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으니까, 화 좀 내지마."
"너도 눈치 챘겠지만 이 목걸이는 남자가 준 게 맞아. 그러니까 간섭하지 마."
그 말을 끝으로 김하늘은 가계를 나섰다.
강하늘에게는 둘의 결혼이 그저 거래에 불과했다. 강한수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대신 그녀는 집 한 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강한수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하늘은 강한수가 그녀에게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알아 차렸다. 무척이나 당황한 그녀는 강한수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고백할 낌새를 보이면 칼같이 잘라 냈다.
예전 같았으면 강한수는 당장 그녀를 쫓아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