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자스민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그날로부터 3년이 흘렀고, 그 중 2년은 페크에게 쫓기며 살았다. 자스민의 어머니는 그녀가 페크를 떠나는 걸 강하게 반대하셨지만, 아버지는 전적으로 찬성해주셨다. 자신을 거부한 사람을 계속 지켜보는 게 무척 힘들 것이라는 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자스민의 아버지는 차라리 그녀가 떠나는 게 나을 거라고 지지해주셨지만, 어머니는 자스민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거라며 걱정이 많으셨다.

어쨌든 자스민은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던 중 우연히 페크의 이름을 발견했다. 3년의 시간 동안 자스민은 더욱 대담해졌고, 물론 제이슨을 향한 짝사랑도 지나간 추억 그 뿐이었다. 그의 존재는 지금의 자스민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조금은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방금 택시에서 내린 뒤 차가 떠나는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런 결정을 한 자신이 놀라웠던 것이다.

3년 전 그 날, 거절 당한 이후로 자스민은 우울증을 겪었고, 마음이 혼란스러운 나날들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망가지고, 굴욕을 당했던 바로 그날. 제이슨 같은 별로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자신의 멍청한 마음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자스민!" 친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루비가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루비!" 자스민도 웃으며 대답했다. 루비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스민을 꼭 껴안았고,

큰 눈동자로 그녀를 이리 저리 훑어 보았다. "와, 너 몸매 봐라. 못 본 사이에 볼륨이 생겼네?" 확실히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스민의 몸은 3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만 놀려." 자스민은 빙긋 웃으며 루비의 포옹에서 벗어났다.

"야, 못 본 사이에 아가씨가 다 됐네. 섹시한 아가씨. 이 정도 몸매라면 블루몬 페크가 네 꽁무니를 쫓아다녀도 이상하지 않겠어." 수다쟁이 루비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루비는 자기 차에 자스민의 짐을 싣는 걸 도와주고, 페크 저택까지 그녀를 데려다 주었으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페크 저택에 도착했을 때, 자스민의 어머니는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이미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자스민을 보자마자 어머니는 행복하게 웃으며 외쳤다. "자스민!" 페크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에 충분한 외침이였다.

그들은 서로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자스민은 엄마가 그리웠다. 이 곳을 떠나 산 지 3년, 모든 게 다 그리웠다.

"어쩜, 언제 이렇게 많이 컸니? 여보!" 자스민의 어머니는 바로 그녀의 아버지를 불렀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에 자스민은 괜히 웃음이 났고, 왠지 마음이 행복하고 편안해지는 듯 했다. 다시 돌아오길 역시 잘했다 싶었다.

루비와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3시간 동안 운전해온 터라 휴식이 필요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이 익숙한 느낌, 정말 집에 돌아온 게 실감났다.

거실로 들어오신 아빠는 엄마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딸이 벌써 어른이 됐네!" 알파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빠는 마지막으로 뵀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했다.

자스민은 일어나서 아빠를 껴안았다. 아빠도 엄마만큼이나 그리운 존재였다.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오랜 만에 부모님과 함께 재회하는 순간은 정말 완벽했다. 물론 자스민이 집을 나간 원인이 된 그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녀의 마음을 산산조각 낸 남자. 제이슨, 자스민의 양 오빠 말이다.

자스민은 아빠를 꼭 껴안으며 따뜻함을 느꼈다. 부모님과의 인사를 마무리하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이슨이 혹시 얼굴을 비추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한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여전히 아프긴 했지만 자스민은 이제 극복했다. 집에 돌아온 건 오랜 상처를 뒤로하고 앞으로의 나날들을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방은 떠날 때 모습과 달라진 게 없었다. 한편 루비는 옆에서 숨쉴 틈도 없이 계속 말을 걸어댔다. 연애는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낱낱이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실연의 고통을 겪은 자스민에게 특별한 일은 없었고, 그녀는 남자를 향해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 곧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야." 루비는 손톱 정리 브러시를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준비해야지."

엄마가 보내주신 편지에서 언급한 이 파티를 자스민은 절대 잊을 리 없었다. 오늘 밤, 제이슨과 스테파니의 약혼식이 열린다. '나쁜 년. 물론 이제 나와 상관 없는 일이지만. 이제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평소의 자스민이라면 아무 옷이나 입었을 테지만, 루비는 그녀를 꾸미는 데 꽤 긴 시간과 공을 들였다.

자스민은 몸에 달라붙는 은색 원피스를 입었다.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고, 가슴도 꽤 많이 파인 디자인이었다. 움직이기 불편했지만, 루비는 몸매는 드러내기 위해 있는 거라고 했다.

이날 저녁 내내 제이슨을 볼 수 없었다. 아마 약혼식 준비에 한창인 모양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차분한 저녁이었다. 부모님의 얼굴은 시종일관 웃음이 가득했다. 아들의 약혼식 있는 날이었으니, 기쁘신 게 당연했다.

자스민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금세 퍼졌지만 그 누구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제이슨과 스테파니,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어쩜 저렇게 귀여울까?" 그들 옆에 서 있던 금발 여성이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루비가 살짝 째려보자 그 여자는 금세 자리를 떴다.

시끌벅적한 자리에 있으려니 괜히 갈증이 난 자스민은 앞으로 걸어갔다. '난 정말 준비가 됐을까?' 제이슨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심장이 빨리 뛰는 걸 느끼니 완전히 잊진 못한 모양이었다. 루비는 마실 것을 가지러 잠시 자리를 떴다.

자스민은 그녀를 기다리며 VIP 코너에 서 있었는데, 잠깐 제이슨과 눈이 마주쳤다. 깔끔한 네이비 블루색 정장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옛 추억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자스민의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지며 이전의 고통이 다시 밀려오는 듯 했다. 그녀는 그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 조차 힘들었다.

시간이 지났고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스민의 착각이었다. '말도 안 돼.'

자스민은 저도 모르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달린 뒤에야 겨우 멈춰 서 숨을 골랐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그녀 귓가에 울렸다. 그때, 자스민이 서 있던 자리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갑자기 불이 꺼졌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제이슨에게서 도망간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무서워하는 어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안녕, 우리 빅센!" 갑자기 불이 켜졌다.

회차 3

"안녕, 우리 빅센!"

갑자기 불이 켜졌고, 자스민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움찔하며 뒤돌아보았다. 혼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고, 매혹적인 눈동자는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 했다.

"누구세요?" 자스민은 말을 더듬었고, 갑자기 목이 말라오는 걸 느꼈다.

그는 씩 웃었다. 늑대 인간과 전혀 비슷하지 않았던 그는 왠지 위험해 보였고, 정장 차림이었지만 근육은 숨길 수 없었다.

남자의 어둡고 신비로운 시선이 자스민을 훑어보았고, 그 눈빛에는 조롱도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도망친 데가 여기인가?" 그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스민은 그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내가 도망치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스민은 턱을 치켜들며 그에게 맞섰다. "내가 어디에 있든 당신이 알 바 아니에요. 그럼 실례할 게요." 그러자 그 남자는 긴 다리를 성큼 내뻗으며 자스민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당황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남자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볼 정도로 키가 컸고,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했으며, 자스민을 비웃는 표정은 여전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분명 자신보다 작은 키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스민은 키가 173cm 정도로 살면서 자신이 작은 키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그 남자가 무슨 일을 벌일 지 자스민은 조금 궁금했다. 그녀는 남자가 분명 새로 페크에 들어온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라이더 케일." 그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잘생긴 미남인 건 확실했다. 검은 머리카락에 특유의 위험한 눈동자. 넓은 어깨에 근육질 몸매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스민 테인." 자스민 역시 그를 따라 이름을 말했다. 잘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적어도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씩 웃었다. "아, 그 자스민 잘 알지. 늑대로 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이슨에게 짝을 거절당한 여자." 그의 말에 자스민은 또 한 번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그가 대체 뭐라고 날 모욕하는 거지?' 그녀를 이렇게 화나게 했던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고, 자스민은 겨우 이를 악물며 화를 참아야 했다. 그때 그녀의 마음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자스민, 이건 어쩔 수 없어. 매운 맛을 보여줘!' 자스민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녀의 주먹이 한 차례 그의 턱을 강타한 뒤, 그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됐고, 그 남자의 목덜미를 잡은 손에는 발톱이 자라더니 살갗을 파고 들었으며 입 안에서는 송곳니가 자라났다.

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깜짝 놀란 자스민은 행동을 멈추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정말 내가 그랬다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강하고 뾰족하게 드러난 발톱을 보며 자스민은 당황스러워했다. '발톱은 그렇다 치고 송곳니는 뭐였을까?'

"드디어 자신의 늑대를 찾은 모양이군." 그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잠깐, 뭐라고? 내가 늑대로 변할 수 있다고?' 자스민 역시 내면에 늑대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잠잠하던 늑대가 그 남자를 만난 후 이렇게 큰 반응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미안해요." 옳바른 짓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스민은 그래도 그에게 사과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늑대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자스민은 기뻐 어쩔 줄 몰랐고, 잠자고 있던 늑대를 깨워준 그 남자에게 고마웠다.

자스민은 저도 모르게 그를 꼭 끌어안았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불규칙하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가 왠지 모르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방금 만난 낯선 사람이었지만, 왠지 평생 알고 지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식처 같은 곳이랄까?

"너처럼 좋은 빅센을 거절하다니 제이슨은 멍청한 놈이야." 그는 자스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전 빅센이 아니라 자스민이에요." 그녀는 말을 정정하며 그의 품 안에 그대로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자..자스민?" 그때 루비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바로 품에서 빠져 나왔다.

루비는 와인 잔을 든 채 두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헛기침을 하는 자스민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런 거 아니야, 루비." 그녀는 변명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맞아요.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거든요." 그가 루비에게 윙크하며 대답했다.

'어우! 저렇게 느끼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 남자는 정원 끝까지 걸어가더니 다시 돌아서며 외쳤다. "곧 보자, 빅센!"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 진심이 느껴졌다.

"맙소사! 어쩌다 리컨 왕이랑 엮인 거야?" 그가 떠나자마자 루비가 자스민에게로 달려갔다.

자스민의 두 눈이 커졌다. "리컨 왕이라니, 무슨 말이야?" 그녀는 되물었다.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서였다. 물론,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아마 몸집이 워낙 큰 탓에 리컨으로 오해를 받았을지도 몰라, 왜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 크레센트 페크 말하는 거야?" 이번에는 자스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네 부모님이 그를 약혼식에 초대했다고 들었어."

정말 그게 맞는다면, 자스민은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가자. 이미 중요한 부분을 놓쳤을 지도 몰라."

사람들이 춤을 추고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스민과 루비도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고, 괜히 제이슨 때문에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어이, 동생.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도 없네?" 익숙한 목소리에 자스민의 가슴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제이슨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항상 심술궂고 무례했던 말투가 오늘은 부드럽게 들렸다.

"아... 나 잠깐만 볼일 좀 보고 올게." 루비는 웨이트리스에게서 와인 한 잔을 받아 들더니 두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아... 오랜만이야, 제이슨."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자스민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한때 그를 정말 어리석으리만치 열렬하게 좋아했었던 건 사실이었다.

"오늘 너무 예쁘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제이슨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이었으면 분명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그의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졌다.

"고마워." 속으로 제이슨이 변태라고 생각하면서 자스민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빅센, 또 보네. 같이 춤추기로 한 거 기억나지?'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이더였다. 자스민이 돌아서자 그의 눈이 반짝였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스민은 다시 제이슨을 돌아보았는데, 그가 그녀의 손목을 갑자기 움켜쥐더니 말했다.

"지금은 나랑 춤 추고 있어요!" 꽤 단호한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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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가 외면하고 리컨이 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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