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아일라

나는 여자 화장실 문을 세게 밀어 닫았다. 쾅 하는 소리가 타일 벽에 울려 퍼졌다. 거울 앞에 있던 두 여학생은 마치 내 분노에 데이기라도 할 것처럼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나는 맨 끝 칸으로 들어가 변기에 털썩 주저앉은 뒤 얼굴을 두 손에 묻었다.

왜 레트는 항상 모든 걸 망쳐야 하는 걸까?

오늘은 그냥 평범하면 되는 날이었다. 새 학기의 첫날, 새로운 얼굴들, 새로운 분위기.

그런데 아니었다.

레트는 또 내 공간 안으로 밀고 들어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처럼. 늘 과보호했고, 젠장할 정도로 통제하려 들었다. 항상 지나쳤다.

나는 신음하듯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리버의 시선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읽을 수 없는 회색 눈동자. 그 눈빛은 나를 따뜻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게 했다. 마치 내가 숨기고 싶은 것까지 전부 들여다보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를 전혀 모른다.

그런데도 낯선 사람을 만난 느낌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는 기분이었다.

“미쳤네, 진짜…”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렇게 신경 쓰는 거야?”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레트에게서 부재중 전화 다섯 통.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지만 나는 화면을 잠근 뒤 다시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계속 그 전화를 받다간 정말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휴지를 찾으려고 손을 뻗었다.

빈 휴지심뿐이었다.

“장난하냐…”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씁쓸하게 웃었다.

우주가 정말 날 비웃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유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서쪽 화장실. 휴지 없음. 살려줘.

10초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지금 감.

그게 바로 유나다.

마치 머릿속에 5G라도 연결된 사람처럼 빠르다. 내 베스트 프렌드는 거의 피에트로 막시모프 수준이었지만, 훨씬 차분했다.

레트가 족쇄라면, 유나는 그걸 끊어내는 볼트 커터였다.

그녀는 절대 망설이지 않았다.

1분쯤 뒤, 그녀는 문 아래로 휴지 한 팩을 밀어 넣었다.

“울 거면 적어도 유통기한 지난 소독약 냄새 나는 데서 울진 마.”

나는 문을 열고 휴지를 낚아채며 중얼거렸다.

“안 울었거든. 뭐… 아주 조금은 울었을지도.”

“또 레트 때문이야?”

유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만난 사람 앞에서 날 완전 망신 줬어. 그런데 더 최악인 건… 계속 그 사람이 생각난다는 거야.”

유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다른 사람? 그 남자 말하는 거야? 리버?”

나는 얼어붙었다.

“잠깐… 너 걔 알아?”

“제발. 지금 캠퍼스에서 걔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조용하고 미스터리한 타입이라 아침부터 여자애들 반이 걔 이야기만 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 보니까 우리도 그러고 있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이상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리버에게 느끼는 건 단순한 호감이 아니었다. 훨씬 깊었다. 보이지 않는 실이 나를 그에게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카페테리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정확히 어디를 봐야 할지 알고 있었다.

리버는 창가 쪽에 앉아 친구들과 조용히 웃고 있었다. 햇빛이 그의 얼굴 위로 떨어지며 폭풍 같은 회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강철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가슴이 간질거렸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려 했다.

하지만 리버는 곧 시선을 내리며 눈을 피했다.

그 거절은 생각보다 훨씬 아프게 느껴졌다.

“날 피하고 있어…”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면 레트를 피하는 거겠지.”

유나가 말했다.

“솔직히 그건 현명한 선택 같고.”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레트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리스와 리드까지 양옆에 데리고, 마치 개인 경호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표정은 폭풍우 직전 같았다.

“전화 왜 안 받았어.”

차가운 목소리였다.

“밥 먹고 있었어.”

나는 일부러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의 시선이 곧바로 리버에게 향했다.

나는 이미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남자한테 가까이 가지 마, 아일라. 널 보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내 숟가락이 식판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제발 좀 그만 통제해! 그 사람은 네 문제가 아니거든!”

“내 문제 맞아. 난 네 아버지께 약속했—”

“또 그 말이네.”

나는 벌떡 일어섰다.

“네 약속, 네 약속. 그게 어떤 기분인지 생각은 해봤어? 이건 보호가 아니야, 레트. 감옥이라고.”

카페테리아에 조용한 정적이 퍼졌다.

나는 테이블에서 몸을 떼며 말을 이었다.

“난 네 황금 새장 속 새가 아니야. 정말 날 지키고 싶다면… 숨 좀 쉬게 해줘.”

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유나가 급히 뒤를 따라왔다.

“어디 가게?”

“밖으로. 술 마시고 싶어.”

유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바? 아일라, 레트 진짜 미쳐버릴 텐데—”

“미치라 그래.”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난 이미 너무 많은 걸 잃었으니까.”

**

클럽 안은 네온 조명과 묵직한 베이스 소리로 진동하고 있었다. 가슴까지 울릴 정도였다.

나는 샷을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고 또 한 잔.

또 한 잔.

머리가 달콤하게 어지러워졌다.

“아일라, 그만 마셔!”

유나가 잔을 빼앗으려 했다.

나는 혀 꼬인 목소리로 웃었다.

“진정해. 나 괜찮아.”

그때 그를 봤다.

리버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단순한 검은 후드티 차림이었지만, 그 폭풍 같은 회색 눈동자는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바보처럼 웃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속삭였다.

“리버… 너 맞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우리 사이의 거리는 사라져 있었다.

입술이 맞닿았다.

분명 의식적인 키스였어야 했는데, 술기운과 억누를 수 없는 욕망 속에서 무모하고 위험한 감정으로 뒤엉켜버렸다.

내가 아는 건 단 하나였다.

리버도 내게 키스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그가 먼저 입술을 떼어냈다.

숨은 흔들리고 있었고, 떨리는 눈동자가 내 눈을 헤매듯 바라봤다.

“아일라… 너 취했어. 집에 가야 해.”

나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집 가기 싫어. 집은 집이 아니야… 그냥 감옥일 뿐이야.”

내 웃음은 거의 울음처럼 부서져 나왔다.

나는 그의 품 안으로 더 기대어 내려갔다. 따뜻한 체온에 몸을 맡긴 채 숨을 들이마셨다.

세상에.

냄새가 너무 좋았다.

깨끗하고, 따뜻하고, 중독적이었다.

영원히 그곳에 있고 싶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게 흐릿했다.

빛도, 소리도, 입술에 남은 감각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고,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건 군중 사이를 지나가며 나를 안고 가는 리버의 단단한 품뿐이었다.

그 뒤의 기억은 희미했다.

그리고 곧 어둠이 찾아왔다.

**

내 손이 따뜻하고 편안한 무언가를 붙잡았다.

동시에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내가 도와줄게.”

“여기… 어디야?”

나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주변을 파악하려 했다.

“내 아파트.”

그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크게 딸꾹질을 한 뒤 겨우 다시 물었다.

“리버… 너야?”

“응…”

나는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리며 다시 푹신한 곳 위로 쓰러졌다.

“나… 왠지…”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속이 더 울렁거렸다. 목구멍 위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대로 토해버렸고, 그 뒤로 다시 정신이 흐릿해졌다.

그 순간에도 머릿속엔 오직 그 사람뿐이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는 그의 실루엣조차 제대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곧 깨끗하고 부드러운 옷감이 피부에 닿는 게 느껴졌다.

“이제 좀 괜찮아?”

나는 서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 같아. 냄새 좋아. 마음에 들어.”

“고마워. 이제 쉬어야 해, 알겠지?”

리버는 나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나는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내 손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가지 마… 제발 나랑 있어줘, 리버.”

그의 체온이 내 가까이에 느껴졌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다정함을 갈망해왔다.

그리고 이제 리버가 그걸 내게 주고 있었다.

이게 현실이라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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