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제1화
1.
은빛이 스치는 순간, 내가 칼을 휘둘러 돼지고기 한 쪽을 고르게 같은 크기로 잘라냈다. 장병들은 오랜만에 고기를 먹게 되어 모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또 한 번 칼솜씨를 보이려는 바로 그때, 멀리서 다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장군님, 왜 아직 여기 계신 거예요? 궁에서 사람들이 도착했어요."
그는 내 팔을 잡고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칼..."
눈치 빠른 주방장이 재빨리 내 손에서 칼을 가져갔다.
드디어 내 본진 막사에 도착하자, 다린은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서 멋진 갑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장군님답게! 올해 병사들의 나머지 지급품은 장군님께 달려 있어요!"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다린은 항상 이렇게 성급했다. 아레스모어에서 사람들이 온 것뿐인데, 뭐가 그리 다급한 건지 모르겠다.
내가 적극적이지 않은 것을 눈치챘는지, 다린은 목소리를 높였다. "장군님, 예비 서방님도 함께 오셨어요!"
뭐라고! 나는 순식간에 갑옷을 갈아입고 문밖으로 뛰쳐나가며, 다린에게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투덜댔다.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보인 사람은 선두에 서 있는 남자였다. 키도 크고 잘생긴 그는 틀림없이 내 예비 신랑이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를 향해 다가왔고, 한 남자가 비난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메이블, 명문가 규수가 왜 이렇게 변방인 리몬트까지 온 거야? 규슈의 품위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네."
그의 품에 안긴 여자는 코를 가리며 말했다. "아, 구역질 나는 냄새네."
내가 자세히 맡아보니, 그냥 돼지고기에서 나는 피비린내였다. 그게 뭐가 그렇게 역겹다는 건지? 만약 그녀가 전쟁터의 피 냄새를 맡게 된다면, 그땐 진짜 역겨운 냄새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거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우리 서로 아는 사이라도 되나요? 입조심하세요, 안 그러면 내 부하들에게 당신들을 쫓아내라고 할 거니까."
두 사람은 몹시 화를 냈지만, 나는 상대하기도 귀찮았다. 전쟁터에 애인까지 데리고 오는 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밀어내고 예비 신랑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2.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지 않았나요?" 내가 물었다.
내 말을 듣고 그가 몸을 돌린 순간, 나는 멈칫했다. 너무나 잘생겼다. 신랑감으로 나쁘지 않은데.
그 남자는 아까 그 두 멍청이를 흘끗 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요?"
'그럼 누구에게 하는 말이겠어?'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예비 신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입니다, 메이블. 많이 변했네요."
다린도 같은 말을 했었다. 내가 기억을 잃기 전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가 같든 다르든, 나는 여전히 나다.
나는 예비 신랑의 손을 열정적으로 잡았다. "따라와요. 당신의 거처로 안내할게요. 바로 내가 머무는 막사 옆이에요."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그 두 멍청이 옆을 지나갈 때, 희미하게 그 남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상관없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거처에 도착해서, 나는 보름 전에 적군을 추격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깨어나 보니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예비 신랑한테 알려주었다.
그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바로 '그래서였구나'하는 표정을 지었다. "메이블, 당신과 정혼한 상대가 나라고 생각하나요?"
"아닌가요?" 내가 되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맞아요."
회차 2
제2화
1.
환영 연회 자리에서 나는 예비 신랑을 내 옆에 앉혔다.
내가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아까 그 남자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다시 찾아왔다.
"메이블, 이게 무슨 짓이야? 난 단지 니콜라를 첩으로 들이려는 것뿐인데, 감히 이렇게까지 날 무시해?"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가 첩을 들이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를 내쫓으려던 찰나, 다린이 다가왔다.
"장군님, 착각하셨습니다."
"착각? 나는 장군으로서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제가 말한 건, 사람을 잘못 보셨다는 겁니다. 이분이 바로 장군님의 예비 신랑 엘리엇 가문의 코너입니다."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옆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 사람은...
그는 부채를 닫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메이블, 나는 해럴드입니다."
세이먼드의 왕세자 해럴드?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믿을 수 없어요! 내가 아무리 눈이 멀었다고 해도 당신 같은 방탕한 남자를 선택할 리가 없어요."
방 안은 조용해졌고, 해럴드만이 웃음을 터뜨렸다.
코너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메이블! 엘리엇 가문에 발을 들이는 일은 꿈도 꾸지 마. 그리고 나의 부인이 되는 일도 없을 거다!"
곁에 서 있던 니콜라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코너를 달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30만 대군을 이끄는 당당한 장군이다.
코너의 부인 자리가 무슨 대수라고.
"잘됐네요. 그러면 정혼 얘기는 없던 걸로 하죠. 고마워요, 코너."
코너는 화를 내는 것도 잊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라고 했어?"
그는 머리뿐만 아니라 귀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젊은 나이에 벌써 귀가 먹다니, 참 안됐네.
측은한 마음에 나는 그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내 말은,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고요!"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후회하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그는 니콜라를 끌고 나갔다.
"잘 가요, 코너. 오늘은 좋은 날이네요. 술을 가져오거라!"
그 말을 듣고 코너는 휘청거려 넘어질 뻔했다.
2.
해럴드는 술을 따르려는 나의 손을 막았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술을 마실 수 있겠어요?"
그가 어떻게 알았을지 의아해하던 중, 그의 시선을 따라 내 머리에 감긴 붕대를 보았다.
깨어난 지 3일 만에 활기차게 뛰어다니다 보니, 머리를 다쳤던 사실을 거의 잊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술잔을 내려놓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의원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됐어요, 드디어 이 장군님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네요."
말을 마친 의원은 만족한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 나갔다. 그 모습에 나는 갑자기 그를 한바탕 때리고 싶어졌다.
의원이 도망갔으니, 나는 시선을 해럴드에게 돌렸다.
"아까 내가 당신이 내 예비 신랑이냐고 물었을 때, 왜 그렇다고 속였어요?"
해럴드는 내게 술을 못 마시게 하면서도, 자신은 천천히 술을 따라 마셨다.
내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려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메이블, 잊었어요? 우리는 함께 자랐고, 당신이 여섯 살 때, 나에게 신랑이 되어달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속였다고 할 수 있겠어요?"
해럴드는 아주 당당하게 웃었고, 오히려 내가 그를 나무라기가 좀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렇긴 하네요."
나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내가 그동안 정말 눈이 멀었었다는 점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
함께 자란 태자를 두고, 엘리엇 가문의 그 방탕한 자식을 좋아했다니.
심지어 코너와 혼인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아버지를 몹시 화나게 했었다.
결국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우리 두 사람의 혼인을 인정해 주었다.
다린의 말에 따르면, 나는 코너가 보낸 편지를 받고, 그가 한 기생을 첩으로 들이려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로 마음이 심란해져 적군의 함정에 빠져 절벽에서 떨어졌고 결국 기억을 잃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코너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아레스모어에서는 그 어떤 명문 가문도 정실을 맞기 전에 첩을 들이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전의 나는 이미 죽었다.
지금의 나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코너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