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흔한 돌이 아니었다. 정확히 26개었고 서로 다른 도시의 시청 앞에서 주어 온 돌이었다.

이도현이 그랬다. 그녀가 26살이 되는 해, 그녀와 결혼을 할 것이며 신혼여행으로 그 26개 도시를 한 바퀴 돌자고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어쩌면 이도현은 이미 강지안과 결혼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진작에 그녀를 잊었을 수도 있다.

차라리 잊혀지는 게 나았다. 그와 다시 엮이는 걸 원치 않았고 그녀는 이미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임하늘을 사색에서 끄집어냈다.

회사 상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임하늘은 손에 쥔 병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네, 부장님."

그녀는 강서구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회사에 인턴으로 출근하고 있었고 지금은 정직원 전환을 앞둔 중요한 시기였다.

"임하늘 씨, <꿈속의 도시> 프로젝트 기획자가 임하늘 씨라고 들었어요. 내일 저희 광고주인 강대표께서 회사에 방문할 예정이니, 빈틈 없이 준비하셔야 합니다."

"네." 임하늘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형편이 그닥 좋지 못했던 탓에 할머니의 병원비는 현재 큰아버지가 내고 있고 생활비는 그녀가 부담하고 있다.

예전에 모아 둔 돈이 조금 있긴 했지만 이제 그녀도 투병 생활을 해야 하니 어깨가 자연히 무거워 질 수 밖에 없었다.

내일 발표인데 오늘 저녁에야 통보를 받았으니, 아무래도 오늘 밤은 꼬박 새워 기획서를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깊은 밤.

문득 이도현이 늦어도 밤 11시에는 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임하늘은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왜 또 그 자식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

다음 날 오전, 광고주가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검토하러 온다는 말에 모두가 회의실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 민지영이 초조한 얼굴로 임하늘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하늘 씨, 준비는 다 됐어요?"

"네."

임하늘은 여유로운 얼굴로 대답했다.

"강대표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아요? 완전 마녀래요. 오직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만 여자여자한 모습을 보인다지 뭐에요?"

임하늘은 선입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나이에 대표가 된 강대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강대표님이 일에 있어 신중하다는 뜻이겠죠."

민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두고 봐요. 곧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부장이 두 사람을 모시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중 한명은 젊어 보이는 여자였고 날씬한 몸매와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장부장은 그 여자에게 상석을 권했다. "강대표님, 이쪽이 바로 저희 <꿈속의 도시> 프로젝트 팀, 팀원들입니다. "

여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강성 그룹 대표 강지안입니다."

임하늘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강지안... 10년 전, 임하늘은 룸 문밖에서 똑똑히 들었다. 이도현과 강지안이 곧 약혼을 할 것이며 대학을 졸업하는 대로 결혼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선 여자가 바로 이도현의 와이프, 강지안이다.

임하늘은 급히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내렸다. 눈앞의 여자를 똑바로 쳐다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장부장은 손짓으로 모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강지안은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쭉 훑어보며 물었다. "임하늘 씨가 어느 분이시죠? "

임하늘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옆에 있던 민지영이 팔꿈치로 그녀를 툭 쳤다. "강대표님이 찾잖아요, 하늘 씨."

그제야 정신을 차린 임하늘은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강대표님. 제가 임하늘입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즉시 시선을 돌렸다.

10년 전, 그녀는 강지안을 만난 적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강지안이 당시에 그녀에 대해 조사를 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그녀를 알아보진 못할 것이다.

지금의 그녀는 임하은이 아니라, 임하늘이다.

임하늘은 속으로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테이블 아래에 놓인 손은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강지안은 임하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프로젝트를 훑어보긴 했는데, 기획 의도가 뭔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몇 군데 보이더군요. 그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이 기획안을 보류하도록 하죠. "

그 순간, 프로젝트 팀원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임하늘을 바라보며 모든 희망을 그녀에게 걸었다.

임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과거는 모두 떨쳐내고 프로다운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에 대해 속속들이 숙지하고 있었고, 강지안의 모든 질문에 막힘 없이 설명했다.

최종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기분이 좋았던 장부장은 팀원들을 이끌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 크게 한턱 쐤다.

다만 임하늘은 여전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만약 프로젝트가 통과된다면, 앞으로 강지안과 마주칠 일이 많아 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직서를 제출할 수도 없었다. 어렵게 인턴생활을 마무리 지었는데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임하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퇴근 후, 임하늘은 남재진과 함께 동네 한의원으로 향했다.

남재진의 아우디 A4가 의원 입구에 멈춰 섰다. "누나, 여기예요. 먼저 들어가 있어요. 주차하고 바로 갈게요."

"응. 주차하고 문자 줘."

임하늘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한의원답게 어르신들이 많았다. 임하늘은 접수처를 찾아 한참이나 주위를 서성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등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하늘은 즉시 허리를 곧게 펴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마치 슬로우 모션이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

이도현이었다. 그는 새하얀 의사가운을 입고 있었고 가슴팍에 달린 호주머니에는 6개의 볼펜이 꽂혀져 있었다.

그는 두 손을 가운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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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지 10년, 재결합을 원하는 전 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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