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윤채아는 도자기 인형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은 완벽한 금발 컬의 폭포수 같았고, 눈은 크고 순수한 파란색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그녀를 더욱 연약하게, 마치 부드러운 바람에도 부서질 것처럼 보이게 했다.
다음 날 아침 복도에서 이현을 본 그녀는 작고 머뭇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이현 씨. 모든 게 정말 미안해요.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삶을 그토록 능숙하게 해체해버린 여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강태준 의원이 채아 뒤에 나타나 그녀의 어깨에 다정한 손을 얹었다.
“채아야, 주방장에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 팬케이크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는 이현이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온기로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정부의 딸을 친딸에게 보여준 것보다 더한 애정으로 대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이현에게 닿자, 그 온기는 사라지고 차가운 짜증으로 바뀌었다.
“네 물건 아직도 네 방에 있더구나. 이제 그 방은 채아가 쓰기로 했다고 말했을 텐데. 하인들 시켜서 네 짐 손님방으로 옮겨.”
“싫어요.”
이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뭐라고 했나?”
아버지가 얼굴을 굳히며 요구했다.
“싫다고 했어요. 그 방은 우리 엄마 방이었어요. 저 여자한테 줄 수 없어요.”
“이 집의 주인은 나다!”
그가 천둥처럼 소리쳤다.
“시키는 대로 해! 넌 은혜도 모르는 년이야. 이게 바로 네가 시집가야 하는 이유다. 주해민이 널 감당하겠지.”
채아는 이현의 말이 물리적인 타격이라도 되는 듯 움찔하며 의원 뒤로 몸을 숨겼다.
“의원님, 제발 이현 씨한테 화내지 마세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손님방에 머물면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의원은 그녀에게 돌아서자마자 즉시 부드러워졌다.
“넌 최고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어.”
그는 이현을 노려보았다.
“네 짐 옮겨. 당장.”
메마르고 유머 없는 웃음이 이현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알았어요.”
그녀는 몸을 돌렸다. 손님방이 아니라, 현관문 쪽으로.
“어디 가는 거냐?”
그가 뒤에서 소리쳤다.
“나갈 거예요.”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결혼식이 2주 후야! 그냥 떠날 순 없어!”
“두고 보세요.”
그녀는 문 옆에 둔 여행 가방을 잡았다.
“결혼식 때문에 부산에 갈 거예요. 그게 우리 거래였잖아요. 전 제 몫을 다하고 있어요. 이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가 정부 딸이랑 행복한 가족 놀이하는 걸 지켜보는 건 거래에 포함되지 않았고요.”
그녀는 밝은 아침 햇살 속으로 걸어 나갔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강씨 집안의 금박 입힌 새장은 마침내 그녀의 등 뒤에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시내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었다.
그녀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를 예약하고, 아버지가 ‘재량껏’ 쓰는 주 가족 계좌로 요금을 청구했다.
그리고 쇼핑에 나섰다.
그녀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최고급 명품 부티크에 들어갔다.
그녀는 모든 것을 샀다.
결코 입지 않을 드레스, 결코 신지 않을 구두, 작은 나라 하나를 살 수 있을 법한 보석들.
블랙카드를 긁을 때마다 작은 반항이었고, 아버지의 정치 자금 창고를 겨냥한 독화살이었다.
그날 오후, 아버지가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세 시간 만에 10억 원이 넘게 썼어!”
이현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그 단면들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전 아버지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최고가 입찰자에게 팔려갈 딸이잖아요. 새로운 삶을 위한 새 옷 정도는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런가요?”
“넌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 네 입으로 그렇게 말했잖아!”
“그리고 한 푼도 빠짐없이 갚아드릴게요.”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재벌이랑 결혼하자마자요. 대출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그가 폭발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이틀 동안 실크, 가죽, 다이아몬드의 폭풍 속에서 난동을 계속했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했다. 아버지의 계좌에서 유동 자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빼내어, 그의 선거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모금 기간 직전에 그를 허둥지둥하게 만드는 것.
사흘째 되던 날, 그녀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떴다. 서지혁에게서 온 것이었다.
“어디야?”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그녀 안의 한 부분, 어리석고 바보 같은 부분이 이 모든 추잡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부분을 죽였다.
“결혼 준비 중.”
그녀는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아침 식사를 주문하려 했다.
호텔 매니저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그녀의 카드가 거절되었다고 알렸다.
아버지가 계좌를 동결시킨 것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호텔은 정중하게 계산을 마치고 스위트를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산더미 같은 명품 옷과 가방을 택시에 싣고 시내 중심가에 내렸다.
트렁크에는 수천만 원어치의 자산이 있었지만, 주머니에는 단돈 만 원도 없었다.
완고하고 맹렬한 자존심 때문에 그녀는 그중 어느 것도 팔 수 없었다.
이것은 부산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한 갑옷이었고, 복수의 지참금이었다.
단 한 조각도 내놓지 않을 터였다.
황혼이 질 무렵, 그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냉혹한 진실을 깨달았다.
권력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평생 동안, 그녀는 단 한 명의 진정한 친구도 만들지 못했다.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결국 차가운 공원 벤치에 앉게 되었다.
그녀의 명품 여행 가방들이 요새처럼 그녀 주위에 쌓여 있었다.
실크 드레스의 감촉이 살을 에는 바람에 얇게 느껴졌다.
한때 그녀의 놀이터였던 도시가 이제는 낯설고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자정이 지난 어느 때, 술 취한 남자들 무리가 그녀를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크고 위협적이었다.
“이런, 이런, 이게 누구야.”
그들 중 하나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이 그녀를 훑었다.
“성을 잃어버린 공주님이네.”
이현은 일어섰다. 턱을 높이 쳐들었다.
“저리 가.”
남자는 웃으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아니면 어쩔 건데?”
갑자기, 날렵한 검은 차가 길가에 멎었다.
문이 열리고 서지혁이 내렸다.
그는 남자들을 보지 않았다. 오직 그녀만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불쾌감으로 가득 찬 먹구름 같았다.
술 취한 남자들은 그를 보자마자 즉시 정신이 들었다.
서지혁에게서 풍기는 차갑고 위험한 권력의 아우라는 어떤 무기보다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쥐새끼처럼 흩어졌다.
지혁은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짐, 드레스, 공원 벤치를 훑었다.
“이게 무슨 꼴이지, 강이현?”
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그녀가 식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걱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짜증이었다.
마치 그녀의 곤경이 그가 억지로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면 모르겠어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자존심이 따끔거렸다.
“신선한 공기 좀 쐬는 중이에요.”
“차에 타.”
그것은 요청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거절하고 싶었다. 윤채아에게나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떨리고 있었고, 술 취한 남자들과의 마주침에서 온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지쳐 있었다.
말없이, 그녀는 차에 탔다.
그의 기사가 그녀의 짐을 트렁크에 싣고, 그들은 길가를 떠났다.
그녀의 짧고 비참했던 길거리 생활을 뒤로하고.
그녀는 너무나 깊은 굴욕감에 거의 질식할 것 같았다.
그에게, 그녀가 벗어나려 했던 단 한 남자에게 구조된다는 것은 궁극적인 패배였다.
회차 3
그는 그녀를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데려갔다.
불과 며칠 전 그녀가 도망쳐 나왔던 바로 그 펜트하우스.
도시의 불빛이 떨어진 별들의 융단처럼 아래에 펼쳐져 있었지만, 오늘 밤 그것들은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하고, 현기증과 상실감만을 안겨주었다.
그는 운전하는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 옆에 앉아, 차 안을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채우는 조용하고 음울한 존재로 있었다.
도착했을 때, 그는 그녀의 짐을 직접 옮겼다. 그의 움직임은 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이었다.
그는 문을 열고 그녀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안방 써.”
그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그들이 수많은 밤을 함께 보냈던, 그들의 비밀스러운 관계의 유령이 깃든 바로 그 방이었다.
그의 배신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마음으로 그 침대에서 혼자 자야 한다는 생각은 견딜 수 없었다.
“손님방 쓸게요.”
그녀가 의도했던 것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머물지 않을 거예요. 부산으로 갈 준비가 될 때까지만요.”
무언가—실망? 좌절?—가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가려졌다.
“마음대로 해.”
그녀는 손님방에 틀어박혔다. 호텔처럼 작고 무균 상태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텅 빈 벽을 응시하며 결혼식까지 남은 날을 세었다.
열하루. 열하루 후면 그녀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남자의 소유가 된다.
그것은 사형 선고인 동시에 해방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부엌에서 그를 발견했다.
전날 밤의 긴장감이 여전히 공기 중에 짙게, 말없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깨기로 결심했다.
“윤채아랑 다시 만나는 거예요?”
그녀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으며 커피를 따랐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태블릿으로 경제 뉴스를 계속 읽었다.
“누군지는 알지.”
대답 아닌 대답은 그 자체로 대답이었다.
“물론 그러시겠죠.”
이현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빚진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겠네요. 언제나 연약하고 구해줄 필요가 있는 사람 말이에요.”
그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차가웠다.
“채아랑 나는 과거가 있어. 복잡해.”
“지혁 씨랑 관련된 건 뭐든 복잡하죠.”
그는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채아한테서 떨어져, 이현아. 걘 충분히 겪었어. 네가 걜 괴롭히는 건 용납 못 해.”
경고는 명확했다. 그는 윤채아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로부터.
날카롭고 부서지기 쉬운 웃음이 그녀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걱정 마세요. 당신들의… 복잡한 과거에 끼어들 생각 없으니까. 전 결혼식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녀는 커피를 들고 손님방으로 물러났다.
대화는 입안에 시큼한 뒷맛을 남겼다.
그는 윤채아 주위에 요새를 쌓았고, 이현은 확고하게 그 밖에 있었다.
그녀는 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펜트하우스의 침묵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날 밤,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습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가 항상 침대 왼편에서 자는 방식,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한때는 위안이었던 것.
이제 복도 저편 그의 방에서 들려오는 침묵은 그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그는 그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욕망이 아니라 의무감에서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었다.
다음 날, 그는 초대장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오늘 밤 파티가 있어. 내 동료 집에서. 같이 갔으면 좋겠어.”
“왜요?”
그녀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여기 혼자 앉아서 우울해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이 조용한 아파트에 갇혀 또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숨이 막혔다.
더 나은 판단에 반하여, 그녀는 동의했다.
“좋아요.”
파티는 언덕 위 호화로운 저택에서 열렸다. 도시의 엘리트들로 가득 찬 화려한 행사였다.
그들이 들어서자, 밝고 환한 미소를 지닌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윤채아였다.
“지혁 오빠! 왔구나!”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친숙하게 외쳤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다 이현을 발견했고, 그녀의 미소는 아주 잠깐 흔들렸다.
“어. 이현 씨. 여기도 왔네요.”
“안녕, 채아야.”
이현이 얼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 다 와주셔서 정말 기뻐요.”
채아가 재빨리 회복하며 말했다.
“환영 파티예요. 저를 위한.”
이현은 발밑의 바닥이 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라이벌의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에 데려온 것이었다.
굴욕감은 물리적인 타격처럼 폐에서 공기를 앗아갔다.
그녀는 돌아서서 떠나려 했지만, 채아의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제발, 가지 마세요.”
채아가 거짓된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아버님한테 의절당해서 많이 힘드시겠죠. 정말 막막할 거예요.”
그녀의 말은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컸다.
고개들이 돌아갔다. 속삭임이 군중 속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이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채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 이현 씨, 그렇게 용감한 척 안 해도 돼요. 우리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알지만, 전 정말 돕고 싶어요.”
그녀는 훌쩍였다. 모든 사람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완벽하고 섬세한 소리였다.
“그만해.”
이현이 인내심을 잃고 쉭쉭거렸다.
“제발 저한테 화내지 마세요.”
채아가 흐느끼며 지혁에게 돌아섰다. 아랫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지혁 오빠, 이현 씨가 무섭게 해.”
지혁이 앞으로 나서 채아의 어깨를 위로하듯 감쌌다.
그는 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실망으로 굳어 있었다.
“강이현. 그만해.”
그는 울고 있는 채아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이현은 심판하는 눈들의 바다에 홀로 남겨졌다.
그녀는 그가 채아에게 위로의 말을 속삭이는 것을 보았다. 그의 머리가 그녀의 머리에 가깝게 숙여져 있었다.
그 광경은 그녀의 심장을 찌르는 단도와 같았다.
그는 그녀에게 그런 공개적인 지지, 그런 부드러운 보호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세상에게, 그리고 그에게, 그녀는 악당이었고, 채아는 희생자였다.
그녀는 마침내 이해했다.
그는 단지 빚 때문에 채아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아꼈다. 어쩌면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 강이현은 단지 기분 전환용, 사적으로 길들이는 것을 즐기는 ‘아름다운 재앙’이었을 뿐, 공개적으로는 결코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존재였다.
그녀가 매달렸던 사랑, 어둠 속에서 키워왔던 희망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바로 향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뻣뻣하고 기계적이었다.
술이 필요했다.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려는 고통을 마비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