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로비로 내려온 김소은은 태연하게 데스크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체크아웃 할게요."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십거리를 떠들어대고 있던 직원들은 눈앞에 화면과 똑같게 생긴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흠칫 놀라더니 이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 중 한 직원이 TV를 흘깃거리며 김소은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이후 그녀의 목에 선명하게 남은 빨간 자국을 발견하고 놀란 듯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차에 올라탄 김소은은 프런트 직원이 그녀를 바라보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며

핸드백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했다.

바로 목에 난 자국을 발견한 그녀는 미간을 깊게 찌푸리고 파운데이션으로 자국을 꾹꾹 눌렀지만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산에서 보약이라도 먹고 내려온 걸까? 무슨 남자 체력이 끝날 줄 몰라?

의도치 않은 교통사고 때문에 한 순간의 일탈을 즐겼다는 배덕감 때문일까,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30분 후, 빨간 스포츠카가 김씨 가문 저택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검은색 세단이 뒤따라 들어와 스포츠카 바로 옆에 주차했다.

세단의 뒷좌석 문이 열리며 유재석이 김예슬을 품에 꼭 안고 내리는 것이다. 김소은을 발견한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렸다.

"예슬이한테 심한 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유재석의 명령에 가까운 말투에 김소은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본인보다 그녀의 생리 주기를 더욱 잘 기억하고 있었던 그는 생리 기간에는 아이스크림과 차가운 음식을 먹지 못하게 감시했고, 평소에도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가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았다.

한때 유재석의 집착에 가까운 감시를 사랑으로 착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의 목소리마저 역겨울 정도였다.

김소은은 유재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침 잘 왔네, 우리 결혼 없던 일로 해요."

가녀린 몸매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꼿꼿하게 선 그녀의 얼굴에 뜨거운 햇빛이 반사되며 투명한 피부에 홍조가 피어 올랐다.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유재석은 김소은의 가느다란 목에 희미하게 남은 자국을 발견하고 눈살을 깊게 찌푸렸다.

다정하게 잡고 있던 김예슬의 허리를 뿌리친 그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앞에 다가오더니 손목이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낚아채고 추궁했다.

"어젯밤에 어디 있었던 거야? 누구와 함께 있었어?"

마치 그녀가 그를 두고 다른 남자와 함께 밤을 보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손 놔요!" 김소은은 그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며 소리쳤다.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이 봐줬지? 그래서 아무 남자한테 몸을 내준 거야?" 유재석은 김소은이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밤을 보냈다고 전혀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일부러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무 남자나 찾아 흔적을 남기고 자극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뿌리쳐지지 않자 김소은은 차갑게 입 꼬리를 올렸다. "목뿐만 아니라, 몸 구석구석 입술로 훑지 않은 곳이 없어요. 침대에서 날 안을 때 얼마나 다정하게 불러줬는지, 아직도 가슴이 설레네."

안색이 확연히 굳은 유재석은 김소은의 팔을 낚아챈 손에 힘을 조금 풀었다. .

"내, 내가 해명할게. 그러니 예슬이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

이제 보니 그는 영상의 존재를 눈치챈 게 틀림없다.

정말이지 이토록 뻔뻔한 남자였다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김소은은 손을 번쩍 치켜들고 유재석의 뺨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소은아, 왜 이러는 거야?" 그때, 뒤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김예슬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김소은의 허리를 잡고 밖으로 밀어냈다. "재석 오빠는 아무 잘못 없어. 내가 먼저 연락했어. 오빠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어떻게 오빠를 때릴 수 있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던 김예슬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려왔다.

"예식장에 혼자 남겨진 기분 어땠어? 난 그저 손목만 그었을 뿐인데, 재석 오빠가 날 위해 달려올 줄은 몰랐지. 우리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넌 모를 거야."

마치 독사처럼 기분 나쁘게 감겨오는 감촉에 기분이 불쾌했던 김소은은 김예슬의 팔을 꽉 잡고 뒤로 밀쳤다.

김소은의 팔이 닿는 순간, 김예슬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붕대로 감은 손목에서 빨간 피가 새어 나온 것이다.

"예슬아!"

어느새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유재석이 빠르게 달려와 김예슬을 부축하며 소리쳤다. "김소은, 당장 예슬이한테 사과해!"

"재석 오빠, 나 괜찮아요." 유재석의 팔에 몸을 기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재에 나선 김예슬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모두 내 잘못이에요. 내가 내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해 벌어진 일이잖아요. 소은이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해요. 나만 아니었으면 두 사람 예정대로 결혼했을 텐데. 모든 벌은 내가 받을게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는 김예슬의 태도에 유재석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예슬아, 네 잘못 아니니까 울지 마."

회차 3

유재석이 김예슬을 다정하게 품에 안고 위로하는 모습을 지켜본 김소은은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너도 네가 얼마나 뻔뻔한 사람인지 알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유재석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봤다.

"김소은, 말이 심하잖아. 예슬이 그래도 네 언니야. 방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 사람을 꼭 상처 줘야겠어?"

"언니?" 작게 소리 내어 웃던 김소은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동생 약혼자를 유혹한 사람이 정말 내 언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너!" 김예슬을 부축하고 저택 안으로 향하던 유재석이 김소은의 곁을 지나갈 때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했다. "문 앞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명령 어투가 습관이 되듯, 그는 그녀가 반드시 자신의 말에 복종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자 김소은은 경멸 어린 눈빛으로 유재석과 김예슬을 노려보더니 미련 없이 뒤돌아 섰다.

아찔한 하이힐에 몸에 꼭 맞는 빨간 미니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마치 구미호가 환생한 듯 매혹적인 자태로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 내 집이라는 거 잊지 않았죠?" 그리고 혐오에 가까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흘겨봤다.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은 없어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적지 않게 놀란 듯, 유재석은 빠르게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봤다.

하룻밤 사이, 김소은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석 오빠." 김예슬의 나긋한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유재석은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로 위로했다.

"소은이 어렸을 때부터 막무가내였잖아. 괜찮아,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다시는 너한테 버릇없게 굴지 않게 내가 으름장을 놓을게. 우선 방에 올라가 조금이라도 쉬는 게 좋겠어."

그러나 김예슬은 그의 팔을 놓아주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재석 오빠, 계속 내 곁에 남아줄 거죠?"

그녀의 잔뜩 겁에 질린 눈빛과 목소리에 유재석은 또다시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래, 내가 계속 옆에 있어 줄게. 날 너무 사랑해서 벌어진 일이니까 네가 나을 때까지 내가 지켜줄게."

그 시각, 방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옷까지 갈아입은 김소은은 창가에 서서 유재석과 김예슬이 서로의 품에 기대며 함께 저택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문 어르신들도 있는 저택에서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만져대는 모습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물고 빨고 다 했나 봐?" 가죽 소파에 기대앉아 잔뜩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물은 김소은은 마치 길들이지 않은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때, 2층에서 호통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김소은, 또 뭐가 문제야. 왜 날이 갈수록 버릇없게 구는 거야!"

김소은의 아버지 김철민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임정화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임정화는 김씨 저택에 지내면서 명실상부 김씨 사모님이 되었다.

온갖 명품과 보석들로 치장한 차림새에도 각박스러운 분위기는 숨기지 못했다. 김예슬의 생모인 그녀는 단 한 번도 김소은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적 없었다.

김소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가볍게 터치하더니 TV 화면에 방금 전 현관문 CCTV에 찍힌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에는 유재석과 김예슬이 현관문 앞에서 뜨겁게 입을 맞추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소은아,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김예슬은 마치 큰 굴욕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흐느끼며 방으로 달려갔다.

만약 아무 사정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김소은이 김예슬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이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예슬아, 바보 같은 짓은 안 돼!" 걱정 어린 얼굴로 서둘러 뒤따라가는 임정화가 김예슬이 환자라는 점을 일부러 크게 강조했다.

예상대로 김철민이 대노하며 벽에 꽂힌 TV 플래그를 뽑아버리는 것이다.

"김소은, 어떻게 된 게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어!" 김철민은 당장이라도 손찌검할 기세로 호통쳤다.

"그 질문은 제가 아니라 김예슬에게 해야 할 것 같네요." 김소은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태연하게 반박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 아무 감정도 보아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화목했던 가정이 깨지기 얼마나 쉬운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그녀의 어머니가 16년 동안 김철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김철민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임정화와 김예슬을 집에 데려왔다.

어쩜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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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신부,거물이 총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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