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왜?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안서연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고, 박정훈이 잡으려는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왜 이민지가 임신했다고 내 남편을 빼앗아 가? 내가 그 여자에게 임신하라고 강요라도 했어?"
안서연은 배 속이 터질 듯한 상처를 손으로 감싸쥐며 절규하듯 소리쳤다. "이민지가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왜 박씨 가문은 나한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박정훈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안서연은 고아원에서 자란 탓에 시야가 좁고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화를 억누르며 그녀를 달래려 했다. "두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야. 이씨 가문과 박씨 가문은 대대로 친하게 지내왔고, 우리 부모님은 이민지를 반쯤 딸처럼 여기고 있어. 지금 그녀가 이런 위급한 상황에 처했는데,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박정훈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손이 얼음처럼 차가운 것을 느꼈다.
그는 무심코 자신의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쌌다. "결혼 후 너무 바빠서 너를 챙기지 못한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서연아, 날 믿어줘. 나랑 이민지는 단지 형식상 가짜 결혼일 뿐이야. 그녀의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야. 다만… 그녀 뱃속의 아이가 불쌍해서일 뿐이야."
"하!" 안서연은 화가 치밀어 웃음을 터뜨렸다. "박정훈, 부끄럽지도 않나? 결혼 후 너는 나한테도 안 건드렸잖아. 그럼 우리도 가짜 결혼이었던 거야?'
그 말에 박정훈은 할 말을 잃었다.
결혼 후 첫 해, 그는 대통령 선거 준비로 지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 그녀에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둘째 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산더미 같은 업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속에서 시간을 내지 못했다.
올해 들어 모든 것이 안정되나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지셨다. 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동안, 그는 정신없이 바빴다.
안서연은 날카롭게 비웃었다. '결혼 3년 동안, 나는 그의 고생을 모두 지켜보고 끊임없이 이해하며 포용해 주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건드리지 않은 이유가 이민지 때문이었을 줄은 몰랐어.'
박정훈은 그녀의 비웃음에 가슴이 먹먹해졌고, 비로소 죄책감이 밀려왔다. "지난 3년 동안 고생 많았어."
"결국 너도 내가 3년 동안 기다렸다는 거 알고 있었구나! 3년 동안 내가 기다린 건 네가 약속된 화려한 결혼식이 아니라, 겨우 이혼 합의서라니!'
그녀의 가슴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듯한 아픔에 숨이 가빠왔다. "박정훈, 우리 결혼식 때 맹세한 거 기억해?"
결혼 전, 박정훈은 부씨 가문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안서연은 그 힘든 시절을 다 함께해 주고, 그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윤지호'라는 가명으로 그의 조언자 역할을 하며 대통령이 되고 부씨 가문의 자랑이 되게 해 줬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자리 막 차지했는데, 그녀를 오수궁에서 내쫓고 이민지를 대통령 부인으로 맞이하려 한다니?
안서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쏟은 진심이 다 헛되이 흘러간 느낌이었다.
"나…" 박정훈은 그녀를 평생 지켜주겠다고, 생로병사도 그들을 가르지 못하리라고 맹세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민지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으면, 그녀와 아이 모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안서연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서연아, 절대 잊은 게 아니야. 내가 너에게 한 약속은 변함없어. 하지만 지금은, 먼저 민지랑 아이를 지켜야 해. 그것이 내 책임이야. 너에게 진 모든 빚은 평생을 두고 갚을게. 우리에겐 아직 오랜 시간이 남아있잖아…"
안서연이 그를 세게 밀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의 이탈리아 수제 가죽 구두를 발로 세게 밟아댔다.
"아!" 박정훈은 고통에 손을 놓으며 외쳤다. "안서연!"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안서연의 실망과 절망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중에 나랑 다시 결혼하는 게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당신은 대체 왜 내가 더러워진 세 번째 남자를 원할 거라고 생각해?"
"안서연!" 박정훈은 이를 악물며 분노를 삼켰다. "지금 네 모습을 봐.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품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보여?"
안서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너, 내가 대통령 부인이라고 공개적으로라도 인정한 적 있어?"
오수궁 안에서조차 그녀를 비서로 소개했으니,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서연아, 그건…" 박정훈이 해명하려는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게 박씨 가문 특별 벨소리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어머니 정수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안서연은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 뭐? 민지가 또 손목을 그었다고?"
박정훈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다급하고 안타까운 표정이 스쳤다. 아까 그녀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을 때보다 훨씬 진심 어린 눈빛이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걱정 마."
그가 전화를 끊는 순간, 안서연의 심장은 얼어붙듯 차가워졌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지난 3개월 동안, 박정훈이 박씨 본가에 갈 때마다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한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이민지를 만나러 간 것이었어.'
"서연아, 그만하자. 나 너랑 상의하려는 게 아니야!"
박정훈은 그저 통보할 뿐이었다. 그녀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혼 서류에 서명해야 했다.
"하!" 안서연은 눈물을 닦아내고 부은 눈으로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혼하고 싶으면 진짜 이혼뿐이야. 내가 이 서류에 사인하는 순간, 우리는 진짜로 끝난 거야. 그래도… 내가 사인하길 바라는 거야?"
회차 3
박정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아내가 이렇게 단호한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안서연이 나를 8년이나 사랑했고, 이런 협박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어. 그녀가 정말로 나를 떠난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우리는 가짜 이혼을 하는 것이니, 이혼 증명서만 한 장 더 생길 뿐, 우리의 관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거야.'
"얌전히 있어, 나 진짜 피곤해. 서연아, 이제 투덜대지 마, 알았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안서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서류에 사인하고 일찍 자. 나 오늘 집에 안 들어올 거야."
극도로 화가 난 안서연은 오히려 마음이 평정되었다. 그녀는 싫은 듯 그의 손을 밀쳐내고, 합의서 옆에 미리 준비된 펜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박정훈은 그녀가 울지도, 떼쓰지도 않는 모습을 좋아했다.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의 마음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마음 한켠에 불안이 스며들었다.
그는 이런 불안감을 싫어하며, 재빨리 은행카드를 꺼내 안서연에게 건넸다. "비밀번호는 네 생일이야."
"나한테 주는 '보상'이야?" 안서연은 코웃음을 치며 카드를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빈 카드로 사람을 역겹게 하지 마."
박정훈은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안서연은 손목이 아파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껏 손을 빼냈다. "네 착한 엄마한테 물어봐. 네 카드가 그녀 손을 거치기만 하면, 잔액이 순식간에 0이 돼. 정말 신기하잖아?"
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객실로 향했다.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은 더 이상 무리할 수 없었다. 그녀는 빨리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박정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옆에 선 오수궁 집사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 카드에 돈이 있는지 확인해 봐."
안서연은 밤새 눈을 감지 못할 줄 알았지만, 박정훈이 떠난 후 오히려 편안하게 잠들었다.
어쩌면 사람은 무언가를 잃을까 봐 걱정할 때만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정말로 잃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 한구석이 갑자기 도려내진 것처럼 쑤시는 고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5시 30분, 익숙한 노크 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안서연, 빨리 일어나서 대통령님의 커피를 준비해." 이것은 비서가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수궁 여자 관리인 백성민이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안서연이 안 나오자, 결국 문을 열고 그녀의 이불을 걷어 올렸다.
초여름 아침의 기온은 낮았고, 하필이면 객실의 항온 시스템이 고장 난 상태였다. 이불이 걷히는 순간, 안서연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뜨거워 열이 난 것 같았고, 사지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 다시 누워 쉬고 싶었다.
안서연이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주우려 손을 뻗었을 때, "딱!" 회초리가 그녀의 손등을 내리쳤다.
이것은 오수궁 관리의 권한이었다. 그들은 단단한 회초리를 손에 쥐고 각자 관할하는 직원들을 훈계하고 교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서연이 박정훈을 따라 오수궁에 입주한 2년 동안, 백성민의 회초리는 그녀 한 사람만 때렸다.
백성민은 이민지가 오수궁에 집어넣은 아부꾼이었고, 그래서 항상 그녀를 괴롭혔다.
2년 동안 안서연의 손등은 수없이 부어올랐지만, 박정훈은 못 본 척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위해 수없이 마음을 다잡고 참아 왔다.
"뭘 쳐다봐? 오수궁에서 일할 수 있는 건 너한테 엄청난 복이야. 그런데도 여기서 농땡이를 부려?"
백성민이 욕설을 퍼부으며 손에 쥔 회초리를 다시 내리치려는 순간, 안서연은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회초리를 빼앗아, 백성민의 몸통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악! 악!" 백성민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객실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안서연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다시 끌어당겼다. 그리고 회초리로 그녀의 등을, 어깨를, 더 세게 내리쳤다. 안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전에 나 때릴 때 엄청 시원했잖아? 이번엔 너도 회초리 맞는 맛 좀 봐야지!'
"딱! 딱! 딱!"
안서연은 자신이 맞은 만큼, 참아온 만큼 돌려주려 했지만, 회초리가 그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퍽하고 부러졌다.
그제야 그녀는 백성민의 머리채를 놓아주며 소리쳤다. "꺼져!"
백성민은 객실에서 굴러떨어지듯 도망쳤고, 밖에서 기다리던 하인들은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모두 보았다.
백성민은 당장이라도 안서연을 죽이고 싶었다. '이 천한 년, 두고 봐. 민지 아가씨가 오면, 너를 가만히 안 둔 거야!'
백성민을 혼낸 후, 안서연은 열이 더 심하게 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물을 한 잔 가득 마시고 이불을 꼭 끌어안고 다시 누웠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안서연은 이미 건장한 하녀 몇 명에게 끌려 박정훈 앞에 서 있었다.
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고, 이민지는 그의 곁에 앉아 흐느껴 울고 있었다.
이민지는 얼굴을 붉히며 흐느끼듯 말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서연이는 나를 못마땅해했어. 그동안은 다 참았는데, 내가 백 관리인을 오수궁에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연이가 아무 잘못 없는 그녀를 몹시 때리다니. 흑흑… 회초리가 부러질 정도로 때렸으니, 박 관리인이 얼마나 아팠겠어!"
백성민은 옆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통령님, 이민지 씨. 모두 제가 무능한 탓입니다. 제가 부하 직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둘이 서로를 끌어안고 울기 직전 같은 그 순간, 박정훈은 이민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부드럽게 달랬다. "울지 마. 아이한테 안 좋아…"
아이를 언급하자 이민지는 더욱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백 관리조차 지켜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애를 제대로 지킬 수 있겠어? 차라리 아이랑 함께 천국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과일 접시에 놓인 과일 칼을 잡으려 했다.
그 모습에 박정훈은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잡고 품에 꽉 끌어안았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내 말 들어."
"정훈아, 나 좀 놔. 서연이가 보고 있잖아. 서연이가 화나게 하면 또 난리 날 거야."
이민지는 박정훈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그의 품속에서 힐끔 안서연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그녀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