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진아름의 말에 모든 시선이 그녀로 향했다.
깊은 슬픔에 잠겨있던 부현승은 그제서야 그녀의 존재감을 알아차렸다는 듯 휙 고개를 돌렸다. 그의 두 눈에는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을 보자 살얼음 판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에 진아름은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진씨 가문 출신의 그 도망간 약혼녀 아냐?"
"여기가 어디라도 감히 얼굴을 들이밀어?"
주변 사람들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늑대 떼에서 둘러싸인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진아름은 조심스럽게 부현승에게 물었다. "제가 노부인을 한 번 뵈어도 괜찮을까요?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여자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하천심이 비웃으며 날카롭게 말했다. "진한슬 양, 제정신이에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요. 언제부터 의사였다고 그래요?"
진아름은 그녀의 날카로운 말을 못 들은 체 했다.
대신 생명을 구하겠다는 집념으로 부현승에게 애원했다. "의사들도 포기한 마당에 저한테 맡겨보는 게 그렇게 손해 볼 일도 아니잖아요? 더 악화될 것도 없는 상황이죠."
그녀의 말에 의료진은 화가 난 듯 했다.
평판도 좋지 않은 데다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어린 여자애가 뭘 안다고 자신들의 사망 선고를 뒤집겠다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부씨 가문 사람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결혼식 당일 도망쳐 가문의 불명예가 된 여자가 대담하게도 노부인의 사망에 간섭하려 했다.
사람들은 모두 부현승이 제정신이 아닌 이 여자를 바로 쫓아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부현승의 눈에서 살의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진아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말 없이 등을 돌렸다. 사람들 모두 예상 밖의 전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참다 못한 부군철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어떻게 이런 막돼먹은 여자를 그냥 내버려둬? 당장 쫓아내!"
주변에 서 있던 경호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진아름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그때 부현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은 듯 행동을 멈췄다.
모두 깜짝 놀란 듯 했다.
압도적인 부현승의 존재감과 그의 명령에 반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말썽을 피웠던 부군철과 하천심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부현승은 말 한 마디로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리고는 진아름의 손을 잡고 침대 곁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부탁할게."
가장의 결정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진아름은 노부인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력이 회복되지 않은 데다 부현승한테 세 번이나 목이 졸린 탓에 손이 자꾸 떨려 검사하는 과정이 서툴러 보였다.
주변 구경꾼들은 진아름의 이런 모습을 보고 경멸을 금치 못했다.
의학 지식은 전혀 없으면서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 연기하는 탓에 긴장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부현승의 관심을 사기 위해 극적인 상황을 벌인 여자들이 많았다.
물론 진아름이 할머니를 그 상황에 끌어들인 건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미 과거에 자신과 부현승의 결혼을 위해 할머니를 구슬리는 여우 짓을 한 바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더욱 신뢰하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그녀는 진심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 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진아름을 지켜보았다.
곧 그녀가 망신을 당해 부현승에게 쫓겨날 뿐 아니라, 진씨 가문도 함께 몰락하는 장면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한편 진아름은 그들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곧 검사를 마친 그녀는 주머니에서 간이 침술 키트를 꺼냈다.
그 모습에 의사는 비웃었고 구경꾼들은 더욱 그녀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침술은 단순한 민간 요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노부인의 심장이 이미 멈춘 상황이었다. 수술로도 살릴 수 없던 사람을 진아름이 침 몇 개로 되살린다는 건 망상에 가까웠다.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둔 부현승조차 미친 게 틀림없었다.
노부인은 생전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어떻게 진아름 같은 여자가 감히 그녀의 몸을 건드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부현승이 잠자코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진아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는 못했다.
진아름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침을 소독한 뒤 노부인의 몸에 침을 두기 시작했다.
취선초 때문인지 기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손이 더욱 심하게 떨렸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보는 사람들 마저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심하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침 하나 하나를 놓을 때 마다 두려웠다.
맨 처음 침을 놓았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아홉 번째 침을 둘 때까지도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계속 지켜보던 사람들도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만해!" 부군철이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질렀다.
"우릴 속이려 들다니 배짱 한 번 제법이군! 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
"할머니 시신을 갖고 장난 치다니 정말 사는 게 지겹구나!"
언제라도 그녀를 찢어 죽일 준비가 됐다는 듯 이들은 진아름을 노려 보았다.
평소 온화한 부군남 조차 표정이 부쩍 어두웠다. "현승아, 진짜 저 여자를 이대로 내버려 둘 거니?"
사람들의 반응과 달리 부현승은 진아름을 막지 않았다. "모두 조용히 해!" 부현승이 막아섰다.
진아름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은 침은 하나 뿐이었다.
지금 부현승까지 믿지 못하고 그녀를 막아 선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부현승의 권위 아래 사람들은 다시 잠자코 조용해졌지만, 화를 억누르고 있는 사람들로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두가 그녀의 손 끝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열 번째 침을 놓았다.
그때 노부인은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