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아, 아파..."

무언가 단단한 게 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진아름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곧이어 다리 사이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보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악!"

의자에 취선초가 잔뜩 놓여 있다는 걸 잠시 잊어버린 진아름은 그냥 앉아버렸고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살을 깊숙이 파고 들었다.

취선초는 마취 성분이 강력한 풀로, 이 정도라면 앞으로 6시간 동안 꼼짝 없이 몸이 마비될 지도 몰랐다.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오늘 영업종료.

이를 악물고 엉덩이에 박힌 가시를 겨우 빼낸 그녀는 당장 가게 문에 임시 휴무 표지판을 달려 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큰 키의 정장 차림을 한 남자가 유리 문을 열고 꽃집으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주위의 공기마저 차가워졌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단호한 표정을 한 그의 눈에는 경멸과 증오, 그리고 파괴적인 무언가가 뒤섞여 있었다.

의문의 인물 등장에 진아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손님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좋은 목적으로 온 건 아닌 듯 했다.

진아름에게는 적이 많았다. 임무 수행 중에는 변장을 하고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실제 신분이 노출될 위험은 언제나 따라다녔다. 조직에 배신자가 있을 지 모른다는 경계도 늦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한 적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컨디션으로는 섣불리 행동하기 어려웠다. 겉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님, 꽃 보러 오셨어요?"

"하!"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밖으로 나섰다.

진아름은 본능적으로 남자의 등을 내려쳤지만 탄탄한 몸에 그녀의 주먹은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이었다.

좁고 낡은 옛날 거리에 십 여 대가 넘는 검은색 고급 외제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백 여명의 굳은 표정을 한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작은 꽃집이 마피아의 소굴이라도 된 듯한 모양새였다.

주변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서둘러근처 가게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음 순간 마동석이 "어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빵을 물고 나올 듯 했다.

나름 상당한 실력자임에도 란흥시에서 자신을 노리는 이 정도의 거물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대낮에 이런 장관이라니! 누구인지는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데다 무척 대담한 자임에 틀림없었다.

남자는 다소 거칠게 그녀를 차 안으로 던진 후 옆자리에 앉았다.

차 문이 닫히자 압도적인 그의 존재감은 공기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진아름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조심스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찾았다. 어떻게든 구조 요청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녀의 핸드폰은 남자에게 빼앗아 갔고 진아름은 거칠고 긴장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적어도 그 쪽 이름과 절 납치한 이유는... 악!"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목을 움켜 쥐었다.

조금이라도 더 저항했다가는 목이 끊어질 지도 몰랐다.

"수작 부릴 생각 마! 한 마디 더 하면 죽여버릴 테니까!"

진아름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차마 반격할 힘이 없었던 그녀는 가만히 앉아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빨리 파악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타난 일은, 진아름의 예상 밖이었고 더 이상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남자는 그녀를 시청으로 데려간 것이다.

눈 깜박할 사이에 혼인 신고에서 두 사람의 이름과 서명이 되어 있었다.

다시 차 안으로 던져진 진아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손에 들고 있는 혼인 결혼 증명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남자의 이름이 부현승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란흥시에서 이 정도의 부와 권력을 가진 부현승은 오직 딱 한 사람이었다.

란흥시 최고의 부자 부씨 가문의 현 주인.

당황스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다.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남자는 천사와 악마의 결합물이었다. 물론 천사는 외모를 말하고 있었고 악마는 그의 잔폭한 성격을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진아름은 살면서 이렇게 극과 극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진짜 실수로 이 거물의 심기를 건드렸다 해도 암살 또는 복수가 아니라 강제 결혼?

"저, 부현승 씨..."

"시끄러워!"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부현승은 진아름의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그녀의 왼손 약지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이전처럼 우리 할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려. 더는 나 건들지 말고!" 부현승은 명령조로 잘라 말했다.

진아름은 말문이 턱 막혔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의 할머니를 무슨 수로 행복하게 한단 말인가?

"부현승 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요... 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녀의 목은 다시 그의 손에 짓눌려 있었다.

부현승의 인내심은 바닥 났다. 그의 말 한 마디 마디가 어둠 속에서 메아리 쳤다.

"나랑 결혼하려고 할머니를 속이더니 내가 결국 알겠다고 하고 청첩장까지 다 뿌린 마당에 결혼식에 안 나타나? 당신이 날 쫓아다니다 왜 도망쳤는지도 관심 없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나한테 타격이 있지도 않아. 하지만 할머니가 그 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계시는데 그대로 널 놔줄 수는 없지. 지금 위독하시니 당장 가서 착한 손주 며느리 역할 해 드려. 또 다른 수작을 부리면 진씨 가문 전체를 등지게 될 테니 각오해!"

그제서야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저기요, 아저씨. 사람 잘못 찾았어요.'

누구인지는 몰라도 도망간 약혼녀와 자신을 착각한 게 틀림 없었다.

진아름은 내일 약혼자 강혁과 결혼하기 위해 고향인 명가 마을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회차 2

진아름은 다른 사람으로 오해 받은 게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부현승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녀가 치밀하게 세웠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오해를 푼다 해도 이혼 기록은 남아 있을 걸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했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이런 짓을 벌이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지킬 만한 힘이 없었다. 부현승 특유의 고압적인 분위기는 그녀를 저도 모르게 복종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탄 차는 노을 빛을 받으며 호화로운 부씨 장원으로 들어섰다.

부현승이 그녀를 차에서 끌어내자마자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집사가 달려와 급하게 소식을 전했다.

"대표님, 급한 일입니다. 이쪽으로 빨리 오시죠. 노부인께서 또 쓰러지셨습니다.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 하고 있고요. 쓰러진 것만 벌써 세 번째예요. 의료진 설명에 따르면 심장 기능이 떨어지고 있고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부현승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잠깐이었지만 강력한 살기에 진아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때였다. 부현승이 냅다 그녀의 목을 조르며 차 문으로 세게 밀쳐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진아름은 거의 기절할 정도로 목이 졸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무사하길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네 인생을 생지옥으로 만들 테니!"

부현승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를 놓아주고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

구속에서 벗어난 진아름은 아픈 목을 움켜 잡고 고통스럽게 공기를 들이마시며 기침을 해댔다.

"하아... 콜록..."

죽음을 가까이한 느낌에 그녀는 두려움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미친 놈이다.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다니.

현재 부현승의 불안정하고 공격적인 태도로 보건대, 혹여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자신도 분명 같이 생매장 당할 게 뻔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밝혀질 때 까지 어떻게든 할머니를 살려내야 했다.

결심한 진아름은 부현승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다.

침실에는 백발의 노부인 부홍선이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의료진은 필사적인 듯 했지만 활력 징후를 나타내는 모니터를 보니 심박수가 매우 낮았다. 노부인은 지금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있었다.

부현승은 걷다 말고 긴장된 표정으로 문 앞에 멈춰 섰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진아름 역시 순간 숨을 참았다.

그때였다. 심박수 모니터 화면 속에서 규칙적으로 요동치던 리듬이 사라지고, 단조롭고 날카로운 음이 울려댔다.

의료진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심폐 소생을 분주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부인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주치의가 입을 열었다. "돌아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현승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는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그럴 리 없어! 다시 해 봐! 돈이라면 상관없으니까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하라고!"

의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표님, 노부인 심장은 이미 멈췄습니다. 더 이상의 시도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부현승은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였다. 가장 가까운, 유일한 가족이었다.

"안돼, 이렇게 가실 수는 없어! 내가 결혼해서 아이 낳는 것 까지 보시겠다더니!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하셨단 말이야!"

침실에는 이상할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불안감에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마침내 부군철이 짜증난다는 말투로 침묵을 깼다. "부현승, 그만해. 지금 그런 말 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맏형인 부군철은 부현승보다 23살이나 더 많았다.

부군철은 다시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할머니는 네 가출한 예비 신부 때문에 돌아가신 거야. 다 너 때문이라고. 여자 하나 못 다뤄서 이 사단을 만들어? 그런 널 어떻게 믿고 집안을 맡기겠냐? 할머니께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품고 있다면 경영권과 지분 넘기고 우리 집안 사업에서 물러나!"

부현승은 입을 꾹 다물고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할머니가 맏이인 자신을 두고 지분과 우두머리 자리를 부현승에게 맡긴 것에 대해 부군철은 늘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동생을 비난할 기회가 있으면 결코 놓치지 않았다.

물론 부현승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형이라도 할 말은 꼭 했다.

하지만 오늘은 말다툼할 기운이 전혀 없었다. 그저 할머니가 좋은 곳에 가시길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휠체어에 앉아있던 셋째인 부군남이 입을 열었다.

"형, 할머니는 우리 집안 책임자로 현승이를 지목했어. 이런 상황에 그 자리를 요구하는 건 너무 아니지 않나? 아무리 욕심이 있더라도 좀 참지 그래?"

"도련님이 언제부터 발언권이 있었다고 그래요?" 부군철의 아내인 하천심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공들여 한 정교한 화장도 그녀의 악랄한 성격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 현승 도련님이 부씨 가문의 주인으로서 큰 실수를 했는데 경영권과 지분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리고 군철 도련님은 불편한 몸으로 아무 것도 한 게 없으면서 지분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평소 거친 언행으로 유명한 그녀답게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

부군남은 얼굴을 찡그린 채 무릎을 움켜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편 진아름은 조용히 옆에 서서 지켜보기만 하였다.

재벌 싸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몇 마디 들은 후 그녀는 계속 노부인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형제들의 말다툼이 격화되는 가운데 진아름이 입을 열었다. "할머니께서는 다시 살아나실 수도 있어요..."

회차 3

진아름의 말에 모든 시선이 그녀로 향했다.

깊은 슬픔에 잠겨있던 부현승은 그제서야 그녀의 존재감을 알아차렸다는 듯 휙 고개를 돌렸다. 그의 두 눈에는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을 보자 살얼음 판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에 진아름은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진씨 가문 출신의 그 도망간 약혼녀 아냐?"

"여기가 어디라도 감히 얼굴을 들이밀어?"

주변 사람들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늑대 떼에서 둘러싸인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진아름은 조심스럽게 부현승에게 물었다. "제가 노부인을 한 번 뵈어도 괜찮을까요?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여자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하천심이 비웃으며 날카롭게 말했다. "진한슬 양, 제정신이에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요. 언제부터 의사였다고 그래요?"

진아름은 그녀의 날카로운 말을 못 들은 체 했다.

대신 생명을 구하겠다는 집념으로 부현승에게 애원했다. "의사들도 포기한 마당에 저한테 맡겨보는 게 그렇게 손해 볼 일도 아니잖아요? 더 악화될 것도 없는 상황이죠."

그녀의 말에 의료진은 화가 난 듯 했다.

평판도 좋지 않은 데다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어린 여자애가 뭘 안다고 자신들의 사망 선고를 뒤집겠다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부씨 가문 사람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결혼식 당일 도망쳐 가문의 불명예가 된 여자가 대담하게도 노부인의 사망에 간섭하려 했다.

사람들은 모두 부현승이 제정신이 아닌 이 여자를 바로 쫓아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부현승의 눈에서 살의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진아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말 없이 등을 돌렸다. 사람들 모두 예상 밖의 전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참다 못한 부군철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어떻게 이런 막돼먹은 여자를 그냥 내버려둬? 당장 쫓아내!"

주변에 서 있던 경호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진아름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그때 부현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은 듯 행동을 멈췄다.

모두 깜짝 놀란 듯 했다.

압도적인 부현승의 존재감과 그의 명령에 반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말썽을 피웠던 부군철과 하천심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부현승은 말 한 마디로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리고는 진아름의 손을 잡고 침대 곁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부탁할게."

가장의 결정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진아름은 노부인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력이 회복되지 않은 데다 부현승한테 세 번이나 목이 졸린 탓에 손이 자꾸 떨려 검사하는 과정이 서툴러 보였다.

주변 구경꾼들은 진아름의 이런 모습을 보고 경멸을 금치 못했다.

의학 지식은 전혀 없으면서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 연기하는 탓에 긴장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부현승의 관심을 사기 위해 극적인 상황을 벌인 여자들이 많았다.

물론 진아름이 할머니를 그 상황에 끌어들인 건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미 과거에 자신과 부현승의 결혼을 위해 할머니를 구슬리는 여우 짓을 한 바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더욱 신뢰하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그녀는 진심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 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진아름을 지켜보았다.

곧 그녀가 망신을 당해 부현승에게 쫓겨날 뿐 아니라, 진씨 가문도 함께 몰락하는 장면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한편 진아름은 그들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곧 검사를 마친 그녀는 주머니에서 간이 침술 키트를 꺼냈다.

그 모습에 의사는 비웃었고 구경꾼들은 더욱 그녀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침술은 단순한 민간 요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노부인의 심장이 이미 멈춘 상황이었다. 수술로도 살릴 수 없던 사람을 진아름이 침 몇 개로 되살린다는 건 망상에 가까웠다.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둔 부현승조차 미친 게 틀림없었다.

노부인은 생전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어떻게 진아름 같은 여자가 감히 그녀의 몸을 건드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부현승이 잠자코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진아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는 못했다.

진아름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침을 소독한 뒤 노부인의 몸에 침을 두기 시작했다.

취선초 때문인지 기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손이 더욱 심하게 떨렸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보는 사람들 마저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심하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침 하나 하나를 놓을 때 마다 두려웠다.

맨 처음 침을 놓았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아홉 번째 침을 둘 때까지도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계속 지켜보던 사람들도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만해!" 부군철이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질렀다.

"우릴 속이려 들다니 배짱 한 번 제법이군! 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

"할머니 시신을 갖고 장난 치다니 정말 사는 게 지겹구나!"

언제라도 그녀를 찢어 죽일 준비가 됐다는 듯 이들은 진아름을 노려 보았다.

평소 온화한 부군남 조차 표정이 부쩍 어두웠다. "현승아, 진짜 저 여자를 이대로 내버려 둘 거니?"

사람들의 반응과 달리 부현승은 진아름을 막지 않았다. "모두 조용히 해!" 부현승이 막아섰다.

진아름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은 침은 하나 뿐이었다.

지금 부현승까지 믿지 못하고 그녀를 막아 선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부현승의 권위 아래 사람들은 다시 잠자코 조용해졌지만, 화를 억누르고 있는 사람들로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두가 그녀의 손 끝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열 번째 침을 놓았다.

그때 노부인은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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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게 만드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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