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박씨 가문에서 후계자 수업을 듣는 자제는 많았지만, 박씨 어르신은 박현진을 제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박현진은 박씨 그룹을 물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고 배신하는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해외에서 사업체를 운영해 가문의 그늘 밖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안채린은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박운재와 약혼했지만, 박현진을 만난 횟수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박현진을 그리워하는 박씨 어르신이 간간히 소식을 전해주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선보이는 연극인 만큼, 아무리 학교 총장님이라 할지라도 감히 박현진을 초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안채린을 가만히 쳐다보는 박현진은 그녀의 대답을 갈구하는 듯했다.

사실, 안채린은 자신의 바보 같은 행동을 무마하기 위해 일부러 그 말을 했을 뿐, 박현진의 일정을 꼬치꼬치 캐물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안채린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중요하지 않아요."

짙은 속눈썹 아래 피어 오른 감정을 감춘 박현진은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빠르게 달린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다.

고작 피부가 긁힌 상처였지만, 박현진은 외과에서 실력이 제일 훌륭한 의사를 불러 진료하게 했다. 검사를 마친 후, 단순 마찰상에 춤을 추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까지 듣고 나서야 안도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안채린은 작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과분하고 낯선 VIP 대접에 두 볼이 수줍게 물들었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나간 후, 간호사에게 소독약과 거즈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그녀는 손에 일회용 장갑을 끼고 박현진을 돌아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삼촌, 손 내밀어 보세요. 최대한 살이 닿지 않게 조심해서 할게요."

조금 전, 간호사가 박현진의 손바닥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녀를 구하려다가 난 상처이기 때문에, 안채린은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한참을 설득해야 할 줄 알았으나, 박현진이 순순히 손을 내밀자 그녀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녀는 최대한 살결이 닿지 않게 치료를 끝낸 후, 거즈로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완벽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안채린은 그를 올려다보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반짝이는 두 눈에는 아까 사람들의 비난 때문에 느낀 절망감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가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박현진이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그를 따라 병원을 나선 안채린은 계속 박현진의 신세를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자리에 멈춰 서서 손을 내저었다. "삼촌, 조심해서 가세요."

우뚝 자리에 멈춰 서 뒤를 돌아보는 박현진의 미간이 못마땅하게 찌푸려졌다. "다시 학교에 안 돌아가?"

안채린이 막 대답하려던 찰나,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에 그녀는 바로 통화를 거절했다.

호기심에 그녀의 핸드폰을 흘깃 쳐다본 박현진이 다시 물었다. "어딜 가려고? 내가 태워다 줄게."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고, 이번엔 통화가 아니라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안채린은 눈살을 깊게 찌푸리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 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그녀는 마침 병원 앞에 멈춰 서 있는 택시에 망설임 없이 올라탄 후 박현진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주먹을 세게 움켜쥔 채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그의 손에 난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택시에 올라탄 안채린이 주소를 말하자 택시는 빠르게 병원을 벗어났다.

소품 팀 스태프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 이유비가 무대 조명 줄을 건드리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녀가 무대를 설치하는 스태프를 매수해 무대 기둥 몇 개를 설치하지 말라 시켰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직접 만나서 거래를 하고 싶다면서, 돈을 챙겨오면 증거 영상을 주겠다고 했다.

박운재의 차가운 반응에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지만, 이대로 죄를 뒤집어쓸 수 없는 노릇이다.

어두운 조명만 희미하게 밝혀진 룸에 차림새가 불량한 남자 여섯 명이 소파에 편하게 기대앉아 그녀를 맞이했다. 그 중 한 남자가 바로 소품 팀 스태프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안채린이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증거 영상 어디 있어? 영상만 확인하면 600만 원 바로 입금할게."

안씨 가문은 박씨 가문만큼 대단한 재벌 가문은 아니었지만, 꽤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리하여 안채린은 고민도 하지 않고 600만 원을 입금하기로 했다.

"이유비가 선을 넘은 행동을 해서, 나도 눈감아줄 수 없었어." 그 스태프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태블릿을 건네주며 계속해서 말했다. "분명하게 말해두지만, 네가 이유비한테 어떻게 복수하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이 문을 나가면 우리 거래는 없던 일이고, 절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거야."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 안채린은 그 스태프가 건넨 술잔을 받아 들고 잔을 부딪치더니 한 모금에 술을 비운 후, 태블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태블릿의 영상 파일을 클릭한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결정적인 증거를 영상으로 남길 준비까지 마쳤다.

갑자기 화면을 가득 채운 기괴한 영상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당장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룸을 가득 메웠다.

바닥에 떨어진 태블릿에서 새어 나오는 남자의 저속한 말과 여자의 끈적한 신음소리가 안채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도망치려 할 때, 거친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잡았다.

"안채린, 넌 오늘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어... 악!"

안채린은 두 손으로 그의 어깨와 팔을 둘러멘 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남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녀는 틈을 놓치지 않고 문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하지만 갑자기 발 밑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키더니 욕설을 내뱉었다.

"이것 참 안타깝게 됐어. 오늘은 이 방에서 나갈 수 없을 거야. 내가 평소보다 약을 3배나 더 탔거든. 10분도 안 돼서 태블릿에서 본 여자처럼 숨을 헐떡이며 애원하게 될 거야."

안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계속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등 뒤에서 들리는 벨트를 푸는 소리와 조롱 섞인 웃음소리에 그녀는 더욱 공포감에 휩싸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절망과 후회의 물결이 파도처럼 그녀를 덮쳐 작은 희망마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굉음과 함께 문이 활짝 열리며 번개처럼 나타난 그림자가 단숨에 그녀를 품에 안아 들었다.

어두운 조명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압도하는 기세와 살기 가득한 눈빛은 저승사자가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삼촌, 절 도와줘요." 안채린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애원했다.

지금 전체 스토리 읽기
작가를 후원하고 Moboreader의 다음 이야기를 응원해 주세요!
모든 회차 잠금 해제

용서는 없어,작은 삼촌의 애인이 될거야

3화
회차
사용자 설정
다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