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초설아는 침착하면서도 단호하게 정규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병실에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창고에 CCTV가 있었어. 불 때문에 카메라가 망가졌을 수는 있지만, 영상은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야."

"그만해!" 정규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초설아를 노려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분노가 서려 있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겠다고 변명만 늘어놓는구나. CCTV 영상이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어. 네 입에서 나오는 말, 단 한 마디도 믿을 수 없어. 너 같은 여자 말을 어떻게 믿어!"

초설아는 정규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마치 상대방의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설아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 하지만 결국, 이렇게 끝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당장 초아한테 사과해!"

그의 목소리가 차가운 바람처럼 공기를 가르며 초설아를 덮쳤다. 그녀는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싸늘해졌다.

"당신 아내는 나야!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거야?" 초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상처받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초설아, 초아한테 당장 사과하라고! 만약 초아가 고소라도 하게 되면, 그땐 무릎 꿇고 빌어 봐야 소용 없을 거야."

그의 날카로운 말이 초설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두 사람의 결혼, 그리고 그녀가 사랑과 헌신이라고 믿었던 지난 10년의 시간은 모두 잔혹한 웃음꺼리일 뿐이 였다.

정규환은 그녀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 끌며 백초아의 병실로 향했다.

간호사 한 명이 그 뒤를 다급하게 쫓으며 소리쳤다. "환자 분은 갈비뼈가 부러지신 상태예요! 당장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지금 하시는 건 학대나 다름없어요!"

그러나 정규환은 간호사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한 채,

초설아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VIP 병실로 들어갔다.

VIP 병실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따뜻하고 평온했다. 백초아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유소희가 그녀 옆에 앉아 과일을 깎아 건네고 있었다.

초설아가 들어서자, 유소희는 그녀를 한 번 흘끗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돌려 못 본 척했다.

초상호의 얼굴은 혐오스럽다는 듯 일그러졌다. "네가 어떻게 감히 여기에 얼굴을 내밀어? 네 동생이 어떤 상태인지나 알고 있는 거냐?"

그 순간, 초설아의 마음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녀는 주상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아빠, 제가 아빠의 피를 나눈 딸인 걸 잊으셨어요? 엄마가 떠나시고, 다시는 재혼하지 않겠다고 저한테 맹세하셨던 거 기억 안 나세요? 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이게 저를 지키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설명이나 변명의 기회조차 주려 하지 않았다.

초상호의 표정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초설아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네가 잘못한 일에, 왜 나까지 끌어들여? 너 아주 맹랑해졌구나? 이제는 나한테까지 대들겠다는 거냐?"

침대에 누운 백초아는 심각한 상태라는 말과 달리 꽤 건강해 보였다.

그녀는 갑자기 과장된 제스처로 가슴을 누르더니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언니, 아빠가 늙어서까지 혼자 쓸쓸히 사시길 바라는 거야? 언니가 결혼하고 나면 아빠가 얼마나 외로우실지 생각해본 적 있어? 그 넓은 집에서 혼자서, 아플 때 물 한 잔 떠다 줄 사람도 없이 외롭게 지내실 텐데.. 그런 생각은 해봤어?"

말을 끝낸 백초아는 정규환을 향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리고 규환 오빠, 내가 설마 나 자신을 죽이려고 불을 질르겠어요?"

정규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고, 눈빛에는 요동치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초설아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초설아, 무릎 꿇고 초아한테 용서를 빌어!"

초설아는 정규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 순간, 유소희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초설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깜짝 놀란 초설아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유소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초설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초설아! 내 딸을 죽이려 해놓고,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서서 초아를 몰아 세울 수가 있어? 불쌍한 우리 초아.. 다 내 잘못이다. 처음부터 남의 자식을 친 딸처럼 받아들이려고 한 내가 바보였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널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는데! 그런데도 넌 날 원망하고, 우리 초아까지 죽이려고 했어.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어!"

유소희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초상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노로 가득 찬 그는 초설아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그대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

그 충격으로 초설아는 뒤로 휘청이다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시 똑바로 서려고 애썼지만, 이미 정신이 멍해진 상태였다.

초설아는 멍하니 벽에 기대어 서서 눈물 때문에 흐릿해진 시선으로 정규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마음 속에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가 단 한마디라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산산이 깨뜨렸다. "지금 당장 사과해.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를 거야. 초설아, 네가 한 짓은 살인 미수야. 네 남은 인생, 감옥에서 끝낼 수도 있다고."

회차 3

"정규환.."

그의 대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칼날로 깊게 베며 파고드는것 같았다.

10년이라는 그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자그마치 10년을 바쳐 이 남자를 사랑했고, 온 마음을 다해 헌신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다른 여자를 맹신하고 보호하는 그의 모습 뿐이었다.

"그래, 경찰 불러!" 유소희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며 핸드폰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런 살인자는 경찰에 넘겨 콩밥 먹여야 되!"

그 소란 속에서 초설아는 백초아가 유소희의 손을 살짝 쥐는 장면을 목격했다.

둘은 짧은 순간 눈을 마주치며 무언의 사인을 주고 받았다.

유소희가 순간 멈칫하자,

백초아가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규환 오빠, 오빠가 절 걱정해 주는 건 알지만, 이건 우리 가족 문제예요. 경찰을 불렀다가는 언니가 체포될 수도 있어요. 초씨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그런 일은.. 원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그냥 넘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백초아가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이쯤에서 그만 없었던 일로 해요."

그 말에 초상호는 생각에 잠긴 듯했고, 정규환도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초설아를 노려보며 냉혹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지금 당장 사과해!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

부러진 갈비뼈의 고통이 점점 심해졌지만, 초설아는 이를 악물고 등을 곧게 세운 채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서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잔혹한 깨달음이 스쳤다. 자신의 고통이, 이들에게는 그저 한낱 구경거리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난 잘못한 게 없어! 결백하다고! 무릎 꿇지도 않을 거고, 사과하지도 않을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초상호가 무섭게 다가와 그녀의 뺨을 또 한 번 세게 후려쳤다.

초설아는 충격에 비틀거리며 휘청거렸다. 이미 지쳐 있던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녀가 제대로 중심을 잡기도 전에, 무자비한 발길질이 날아왔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단단한 바닥에 무릎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무릎에서 가슴까지 찌르는 듯한 고통이 퍼져 나갔다.

초설아는 손바닥을 바닥에 짚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가슴을 감은 붕대 사이로 피가 스며 나오더니 그녀의 옷을 붉게 물들였다.

그 모습을 본 간호사가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왔다.

초설아를 부축하러 달려간 간호사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정규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록을 확인해 봤어요. 초설아 씨 남편 분 되시죠? 부부라면 서로를 보살펴야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구세요? 초설아 씨는 지금 부상이 심각하고 제대로 치료 받지 않으면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요!"

"난 저렇게 악랄한 여자는 아내로 받아들일 생각 없어." 정규환은 바닥에 쓰러진 초설아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마치 신발 바닥에 붙은 먼지를 보는 것처럼 혐오감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초설아,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초아는 착해서 용서해 줄지 모르지만, 넌 선을 넘었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여기서 무릎 꿇고 있어!"

그리고는 주상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버님도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보시죠?"

주상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자기가 한 잘못을 뉘우칠 줄 알아야지. 난 찬성일세."

그때, 의사가 병실로 들어와 가족들을 불러냈고, 병실 안에는 초설아와 백초아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병상에 앉아 있던 백초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초설아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바닥에 짚고 있었다. 백초아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언니, 친딸이면 뭐해? 내 앞에 이렇게 무릎이나 꿇고 있는데. 난 규환 오빠가 좋아. 오빠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언니도 절대 가질 수 없어."

그 순간, 초설아는 왼손을 주머니에 살짝 밀어 넣어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초설아는 백초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불을 낸 게 너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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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넘볼수 없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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