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레드 카펫의 끝에 신랑이 몸을 비스듬히 돌리고 서있었다. 사이즈가 딱 맞는 양복은 그의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를 더 두드러지게 나타냈다.

그는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마스크 아래로 그의 날렵한 턱선과 뚜렷한 윤곽이 드러났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만약 그의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준수한 모습이었을까?

소우희가 하객들 사이에 앉자 그녀의 절친이 호들갑을 떨며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니, 결혼 대신 할 사람을 찾을거면 나부터 찾았어야지! 유씨 도련님, 저 체격이면 탑 모델이랑 비겨도 손색이 없는 걸! 그저 원나잇이라도 할 수 있다면야…"

소우희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위로 쭉 뻗은 유승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질투가 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몸매만 좋으면 무슨 소용인데? 너 저 사람 가면 벗은 얼굴을 못 봤지? 저 사람, 차사고로 얼굴이 망가져서 가면을 못벗는대. 그런 못생긴 얼굴이 네 옆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해봐, 끔찍하지 않아?"

소우희의 절친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그저 남몰래 신랑만 힐끔힐끔 훔쳐봤다.

이때, 결혼식장의 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듣기 좋은 바이올린 음악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나영이 소문일과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서명호는 웨딩 드레스를 입은 소나영의 우아하고 순결한 모습에 반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만약 그가 바람을 피지 않았다면 소나영과 결혼할 사람은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서명호는 소우희를 그저 섹스 파트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오직 소나영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만이 자신의 결혼상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우희는 소나영한테 홀린 듯한 서명호를 보자 화가 치밀어 올라 은근히 소나영을 헐뜯기 시작했다.

"소나영이 입으로는 결혼하기 싫다 해도 속으로는 엄청 좋아하고 있을걸? 어찌됐든 유씨 집안은 최고의 재벌가잖아. 뭔 고상한 척, 내숭을 떨고 있어."

소나영은 하얀 베일을 통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남자를 어렴풋이 바라보자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소문일은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고생했다. 너한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거야, 삼촌이 미안해."

소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저었다.

이미 이렇게 된 일, 더이상 돌아갈 수도 없었다.

소나영은 천성적으로 낙관적인 성격이기에 슬픔에 빠져 자포자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것으로 삼촌과 숙모에게 마지막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그녀는 자유다.

소문일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신랑한테 넘겨주었다.

소나영은 손에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자 살짝 놀랐지만 남자는 흔들림 없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가 긴장해 있는 것을 눈치 채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을 살살 어루만져 주었다.

소나영은 그의 부드러운 위로에 멈칫했다.

어쩌면 이 생전 얼굴도 모르는 남편은 소문처럼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닌 듯 싶었다.

비록 얼굴은 안보이지만 그의 차분하고 젠틀한 행동거지는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유승재는 살짝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준비되셨나요, 나의 신부님."

그의 목소리는 첼로 음악처럼 울러퍼졌다. 소나영은 귀가 찌릿찌릿해났다.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이 남자한테 반한 이유가 있구나.'

소나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이끄는 대로 목사 앞으로 걸어갔다.

결혼 맹세는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성혼 선언문을 마치자 사회자가 반지가 놓여져 있는 받침대를 들고 올라왔다. 사회자가 받침대를 덮고 있던 보를 들어올리자 현장에 있던 여성 하객들이 우뢰 같은 환호성을 보냈다.

모두들 반지에 박힌 전설적인 보석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저것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낙조의 불꽃' 인가요? 지난 세기 남아프리카에서 캐낸 전설의 핑크 보석이 하나는 Y국 왕비의 손에 있다더니, 나머지 하나는 바로 여기 있었네요!"

소우희는 거위알 같은 10캐럿의 핑크색 다이아몬드 반지가 소나영의 손가락에 끼워지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이를 꽉 물었다.

'저 반지는 원래 내 것이었는데!'

그녀는 유승재가 유동일의 첫번째 아내가 낳은 아들로서 가문에서 환영을 못받는다고 생각했다. 더우기 그는 얼굴도 못생겼기에 유동일의 환심을 사기 어려워 앞으로 재산도 얼마 못가질거라 믿었다.

하지만 유씨 가문에서 별로 환영하지 않는 아들한테도 이렇게 통이 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소우희는 이건 단지 유씨 가문에서 유승재의 체면을 생각하여 보여주기 식으로 내놓은 반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돈도 많고 얼굴도 잘생긴 서명호가 못생긴 유승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소우희는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목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결혼식장에 퍼졌다. "신랑은 이제 신부에게 입맞춤을 해도 됩니다."

소나영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녀는 오늘 처음 만난,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뜻 밖에 유승재도 마찬가지로 난처해 보였다.

소나영은 의아했다.

'바람기가 많고 여자가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유승재가 당황을 해?'

회차 3

하객들의 환호성 속에서 소나영은 유승재의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 했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낙타 같은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긴장한 속마음을 드러냈다.

잠시 후, 따듯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그녀의 이마에 느껴졌다. 그 느낌은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서 닿자 마자 사라졌다.

소나영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유승재의 점잖은 옆 모습만 보였다.

그녀가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결혼식은 끝났다.

"형은 가만 보면 운이 참 좋네,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맞아드리고."

그녀가 유승재를 따라 결혼식장을 떠나려고 하는데 장난끼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는 준수하게 생겼지만 눈 밑이 시퍼랬다. 그는 술잔을 들고 소나영 앞으로 다가갔다.

소나영은 본능적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났고 유승재는 소나영 앞에 막아 서서 그녀를 지켜주었다.

그 남자는 싱긋 웃었다. "형수님,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저는 형수님 남편과 이복형제 사이가 되는 유승현이라고 합니다. 사실, 형수님이 조금 불쌍해요. 형이 어렸을 때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형은 결혼식에서도 그 가면을 벗지 못하잖아요. 가면을 벗으면 형수님이 도망갈까 봐 두려운 거죠."

소나영은 약 올리는 그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유승재를 바라보았다. 그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의 표정은 평안했다. 마치 자신과 연관이 없는 일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유승재가 가문에서 환영을 못 받는다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동생마저 결혼식에 와서 그를 마음껏 조롱하다니.

하지만 유승재는 지금 소나영의 남편이다. 그가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해도 그녀는 상당히 눈에 거슬렸다.

소나영은 앞을 막고 있는 유승재의 팔을 내리고 정색하여 유승현과 대면하였다. "저는 남편을 고를 때 인품을 제일 중요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긴 것은 멀쩡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형제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모르더군요. 그런 사람이야말로 보기 거슬리는 게 아니겠어요."

유승재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잠깐 당황한 듯 소나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유승현의 낯빛이 잠시 어두워 졌지만 이내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와, 말이 참 예리하시네요."

그는 와인잔을 소나영 앞에 내밀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방금은 제가 경솔했습니다. 벌주로 한 잔 마시겠습니다."

소나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술잔을 받으려는 찰나 유승현이 손목을 돌리더니 꼴똑 담긴 술을 그녀의 가슴에 전부 쏟았다.

빨간색 액체가 소나영의 풍만한 가슴 골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드레스를 적셨다. 유승현은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가슴을 훑어보았다.

"앗!" 소나영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한창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던 유승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해요, 형수님. 제 손이 미끄러졌네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유승현에게서는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도발하는 듯 유승재를 바라보았다. 그는 유승재가 함부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유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묵묵히 외투를 벗어 소나영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유승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풉 하고 비웃었고 자리를 뜨면서도 중얼거렸다. "아, 어떻게 손이 마침 그때 미끄러질 수가 있지?"

"술잔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손이라면 남겨둘 필요가 없겠지."

유승현의 등 뒤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유승현은 손목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뼈가 끊어지는 고통이 온 몸에 전파되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유승재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목은 이미 부러져 형태가 기괴해졌다. 유승재는 진짜로 그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유승현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낯빛이 창백해졌다.

"네...네가 감히!" 유승현은 너무 아파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자 유승재가 그의 무릎을 또 한번 걷어찼다.

유승현은 고통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유승재는 와인 한잔을 쥐고 그의 머리채를 잡아서 목을 하늘로 젖혔다

"술을 권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던데." 붉은 와인이 유승현의 머리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워낙에도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이번에야 말로 물에 빠진 개마냥 비참해졌다.

이 모든 과정이 짧은 시간내에 벌어졌고 연회장은 삽시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바로 그 순간, 유씨 가문의 가장인 유동일이 낯빛이 시퍼래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 못난 놈아! 너 지금 동생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유승재는 태연하게 옷소매를 정리했고 눈빛은 차갑다 못해 섬직했다. "아버지께서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않으신다면 형님인 제가 나서서 사람 됨됨이를 가르쳐 줄 수 밖에 없죠."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승재는 다시 발을 들어 유승현의 얼굴을 걷어찼다. 둔탁한 격파음과 함께 피 묻은 이빨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레드 카펫에 떨어졌다.

"그만 해! 너 미쳤어! 이 호로자식 같은 놈! 네 놈은 이 애비가 눈 앞에 보이기나 하냐! 당장 동생한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널 유씨 집안에서 내쫓을 것이다!" 유동일은 크게 분노하며 온 몸을 떨었다.

유승재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았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는 소나영의 팔목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결혼식장을 나왔다. 그의 뒷모습엔 미련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유동일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유승재의 모든 카드를 정지시키고 이 놈의 명의 하에 등록된 모든 부동산을 당장 회수해! 알 거지로 쫓겨나 봐야 무릎 꿇고 사죄를 하지! 어디 한번 돈 한 푼도 없이 살아보라 해!"

결혼식장은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는데 몇 초 후 하객들은 못 참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소우희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소나영에게 남아있던 질투심이 싹 사라져 버렸다.

원래도 유승재는 돈만 쓸 줄 알고 놀 줄 밖에 모르는 도련님이었는데, 오늘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거지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소나영이 돈이 없고 못생긴 남자와 결혼 생활을 보낼 것을 상상하니 소우희는 속이 후련했다.

그녀는 샴페인을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속으로 생각했다. '소나영, 네 고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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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선택: 불가능한 남자와 결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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