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아니, 없어." 서하율이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윤도현은 그제야 잡지에서 시선을 떼고 서하율을 바라봤다. 가을 호수처럼 깊은 눈동자가 그녀의 민낯을 천천히 훑더니, 마침내 그녀의 무명지에 끼워진 결혼반지에서 멈춰 섰다.
서하율의 착각이었을까. 잠시 남자의 얼굴선이 부드러워진 듯 보였지만 그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후에 본가에 가야 해." 윤도현이 말했다.
서하율은 무의식적으로 거절하려 했다.
윤도현의 어머니 임윤정은 서하율을 좋아하지 않았고, 서하율 역시 본가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거절하기도 전에 윤도현이 먼저 말했다. "이미 본가에 연락해 놨어. 네가 간다고 했으니 내 체면 깎지 마."
서하율은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으로 죽을 휘저었지만 식욕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윤도현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죽이 맛없어?"
"아니, 맛있어. 이렇게 맛있는 죽은 처음 먹어봐. 아주 천하일미네."
윤도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는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짙은 녹색의 쇼핑백을 서하율의 앞에 밀었다. 벨벳 재질의 쇼핑백에 새겨진 금색 로고가 아침 햇살 아래 차가운 광택을 내뿜었다.
서하율은 쇼핑백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이 브랜드를 알고 있었다. 윤씨 가문의 여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석 브랜드로, 매 시즌 신상품이 본가로 배송되어 원하는 걸 직접 고를 수 있다고 들었던 곳이었다.
그녀는 쇼핑백을 손에 쥐지 않고 손가락으로 쇼핑백 모서리를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다. 쇼핑백 안에는 짙은 파란색의 벨벳 보석함이 들어 있었다.
"오후에 본가에 갈 때 착용해. 내가 너를 괴롭힌다고 오해하지 않게." 윤도현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하율은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다.
"알았어." 그녀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윤도현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녀의 목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비싼 거 아니야." 그는 갑자기 덧붙였다. "그냥… 아무거나 산 거야."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버리려고 했는데, 너한테 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서하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 감정 기복 없이 쇼핑백을 옆으로 밀었다.
햇살이 통창을 통해 들어와 두 사람 사이에 밝은 경계를 그었다.
윤도현은 그녀의 길고 가는 속눈썹이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이내 방향을 바꿔 커피잔을 들었다.
"웃는 연습 좀 해. 맨날 찌푸리고 있으면 보기 싫어."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불어온 바람이 서하율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날렸다.
그의 발소리가 계단 끝에서 사라진 후에야 서하율은 천천히 보석함을 열었다.
보석함 안에는 에메랄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보석은 아침 햇살 아래 깊은 광택을 내뿜었다.
최명숙이 생전에 가장 자주 착용했던 목걸이와 거의 똑같았다.
하지만 서하율은 확신할 수 없었다.
윤도현이 그녀에게 준 선물은 늘 그런 식이었다. 원래 버리려던 물건, 사은품, 값나가지 않는 것들…
"어머?" 김숙희의 의아한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왔다. "이 목걸이는 노부인의 유품이 아닌가요?"
김숙희는 윤씨 가문의 가사 도우미로 오래전부터 최명숙의 곁을 지켜 온 사람이었다. 3년 전, 서하율과 윤도현이 결혼한 뒤에는 최명숙이 직접 그녀에게 서하율을 잘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김숙희의 말을 들은 서하율은 잠시 멍해졌다.
"정말요?"
김숙희는 목걸이를 가까이에서 확인하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맞아요. 노부인의 유품이에요. 두 개가 있었는데, 모두 도련님한테 남겼어요."
김숙희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도련님이 이 목걸이를 사모님께 드렸다는 건… 사모님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에요."
서하율은 2층을 힐끗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