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한시혁은 매몰차게 말을 던진 뒤 자리를 떠났다.
송아윤은 서류를 손에 쥐고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들은 송아윤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그 시각, 비서 박성재는 한시혁을 태우고 별장 단지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 시간대의 산길에는 이미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차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한시혁은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대표님, 강 도련님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임서연 씨를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박성재가 보고했다.
"그래." 한시혁이 짧게 대답했다.
박성재는 백미러로 한시혁을 흘끗 바라봤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별장에서 나온 이후로 차 안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분위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대표님, 사모님입니다." 박성재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보고했다.
한시혁은 갑자기 눈을 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벨소리가 한참 울렸지만, 한시혁의 속내를 가늠할 수 없었던 박성재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모님?"
"박 비서님, 한시혁 씨께 전해 주세요. 협의이혼 신청서에 서명했으니, 내일 가정 법원에 함께 출석해야 한다고요. 만약 직접 마주치기 싫다면, 시간만 맞춰 따로 출석해도 된다고 전해 주세요." 송아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이 이혼을 한다고?' 박성재는 깜짝 놀란 얼굴로 한시혁을 쳐다봤다. 차 안 공기가 한층 더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먼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한편.
한시혁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송아윤은 그날 밤 리조트 별장에서 머물렀다. 다음 날, 그녀는 일부러 출근 시간을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신혼집에서, 송아윤은 지난 3년 동안 직접 꾸민 물건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옷 몇 벌과 생활용품만 챙겼다.
그녀의 혼수품은 지난 몇 년 동안 송씨 가문의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갔고 거의 다 썼다.
한씨 가문에서 받은 물건은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
법원에 도착한 그녀는 박성재만 보았을 뿐, 한시혁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많이 바쁘셔서..." 박성재는 습관처럼 한시혁을 대신해 변명했다.
비록 체면을 세워주려는 말이었지만, 송아윤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어 막았다. 그녀는 더 이상 이런 자기기만 속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송아윤은 가정법원 접수 창구로 걸어갔다. 미리 준비해 둔 협의이혼 신청서를 직원에게 건넸다.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담당자는 한 달의 숙려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출석해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아윤은 고개를 끄덕인 뒤 서류를 정리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택시에서 내린 송아윤은 캐리어를 끌고 임시로 임대한 집으로 향했다.
수십 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기본 가구가 갖춰져 있어 짐만 들고 들어와도 바로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침구를 새로 갈아 끼운 뒤 잠시 숨을 돌리고, 그제야 천천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은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두고, 세면도구는 가지런히 정리했다. 소파 위에는 인형을 올려두고, 창가에는 작은 풍경을 달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송아윤이 문을 열자, 코트를 입은 키가 큰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녀의 오빠 송도윤이었다.
"오빠!" 순간 밀려오는 죄책감에 그녀는 고개를 들고 오빠를 바라보지 못했다.
송도윤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바보야,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 왜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송아윤은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 안겼다. "오빠, 저 이혼했어요. 오빠한테 너무 미안해요."
"이제야 정신을 차렸으니, 난 기쁘기만 해." 송도윤은 여전히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송씨 그룹은..." 송아윤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한시혁 앞에서는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지만,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송도윤은 부드럽게 말했다. "예전에 송씨 그룹은 내 책임이라고 했잖아. 너랑은 아무 상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