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병실 안, 송하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각종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직접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렀다.
5년 간 혼수상태에 빠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이제 의식을 되찾은 송하린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반드시 최서강과 이혼할 것이다.
자신의 청춘을 쓰레기만도 못한 놈에게 빼앗겼지만, 재산과 사업,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두 아이만큼은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절대로 최서강 같은 괴물이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송하린의 최종 목표는 최서강에게서 양육권을 빼앗는 것은 물론이고 맨몸으로 내쫓는 것이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을 침대에 누워만 있었던 탓에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송하린이 병실 밖을 흘깃 쳐다보자 최서강의 실루엣이 언뜻 보였다.
이제 그녀의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임 선생님, 제 눈은 왜 이렇게 된 거죠?" 송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눈을 떴는데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송하린이 하는 말을 들은 최서강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더니 걱정 가득한 얼굴을 연기하며 그녀의 곁으로 서둘러 다가갔다.
"하린아."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송하린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역겨웠다.
"서강아, 드디어 왔어?" 송하린은 혐오감을 억누르며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초점조차 맞지 않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 최서강의 품에 쓰러졌다.
품에 안기자마자 은은한 여자 향수 냄새가 그녀의 코끝에 감돌았다.
"서강아, 너를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서워…" 송하린은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흐느끼듯 말했다.
최서강은 그런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부드럽게 달랬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네 눈은 반드시 고쳐줄게."
곁에 선 주치의 임이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최윤신 씨,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모님 눈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저 오랜 혼수상태로 인해 시신경이 회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최서강은 다급하게 되물었다.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임이현은 조금 망설이다 대답했다. "사모님의 회복은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최소 두세 달은 걸릴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선 정확히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무기력하게 최서강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던 송하린의 눈가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
그녀는 뻣뻣하게 굳어 있던 그의 어깨가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마 송하린이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에 경계심을 늦춘 듯했다.
송하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서강아, 나 병원에 더 있고 싶지 않아. 집에 돌아가고 싶어. 눈이 완전히 나으면 제일 먼저 너랑 아이들을 보고 싶어."
임이현도 빠르게 덧붙였다. "사모님께서 익숙한 환경에서 지내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최서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퇴화된 근육 때문에 혼자 걸을 수 없었던 송하린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최서강은 직접 병원에서 휠체어를 빌려 그녀를 아래층으로 데려갔다.
그 순간, 송하린의 머릿속에는 임하정을 다정하게 품에 안고 있던 최서강의 모습이 번쩍 떠올랐다.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른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지만 아내는 안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두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반사되었다. 송하린은 선글라스를 낀 눈으로 최서강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5년이 흘렀지만, 최서강은 여전히 눈에 띄게 잘생겼다. 오히려 예전보다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진 모습에 남자의 매력마저 더해져 있었다.
반면 송하린은 볼품없이 말라 있었고, 생기 없는 얼굴엔 피곤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최서강이 그녀의 행운과 생기를 모두 빼앗아 텅 빈 껍데기만 남겨둔 것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송하린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임하정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일찍이 집으로 돌아간 듯했다.
최서강이 직접 휠체어를 밀며 병원 밖으로 나가 조수석 문을 열자, 시트 위에 값비싼 립스틱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최서강은 송하린을 흘깃 쳐다보다 립스틱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를 조수석에 앉혔다.
"서강아, 내가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다른 여자가 조수석에 앉은 적 있어?" 송하린은 조수석에 앉자마자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없지." 거의 동시에 대답한 최서강의 입가에 억지로 짓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당신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복성 사람들이 다 알잖아. 어린 여자가 총 든 납치범과 맞섰던 일은 아직도 전설이지."
그제야 잊혀졌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서강이 납치당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의 더딘 대응에 그녀의 인내심은 바닥나 있었고, 그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 미칠 지경이었다. 송하린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가 잡혀 있는 곳을 끝내 찾아냈다.
결국 그녀는 돈과 총을 손에 쥔 채 납치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를 무사히 구해냈다.
무사히 살아 돌아온 최서강은 평생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고급 세단은 빨간 신호등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최서강은 갑자기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하린아,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
선글라스 너머 송하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지만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원히 깰 수 없는 꿈에 갇힌 것 같았어. 빛도 소리도 없는 어둠에 갇혀 그저 공포에 잠식돼 가는 기분이었어."
송하린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최서강은 그녀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이제 다 끝났어. 우리 집에 가자!"
송하린은 억지로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음, 다 끝났네."
그녀와 최서강의 관계는 이미 끝이 났다. 이제 그녀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최서강은 빠르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동시에 맞은편에서 검은색 고급 세단이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뒷좌석에 완벽함에 가까운 얼굴을 한 남자의 몸에서 압도적인 위압감이 풍겼다. 송하린의 얼굴이 흐릿하게 지나가는 것을 본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남자는 바로 창문을 내리고 송하린을 태운 세단이 빠르게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한영도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배 대표님, 왜 그러세요?" 그는 자신이 모시는 상사의 얼굴에 뚜렷한 감정이 피어 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빠르게 멀어지는 세단의 뒤꽁무니를 쫓은 배지헌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선을 거둔 그가 밤 하늘에 우뚝 솟아 오른 스카이 그룹 건물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을 가늘게 뜬 그의 입가에 옅은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송하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배지헌의 입술 사이로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이 묻어났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어?"
회차 3
검은색 세단이 화려한 별장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최서강은 송하린을 조수석에서 안아 휠체어에 태운 뒤 별장으로 향했다.
송하린은 선글라스 너머로 별장 곳곳을 살폈다.
이 별장은 그녀와 최서강이 결혼한 후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까지 함께 살던 집이었다. 5년 동안 다시 둘러본 별장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다.
"하린아, 이제 집에 도착했어." 최서강은 그녀의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향기 어때? 네가 나를 위해 직접 심어준 튤립이 아직 그대로야. 그 동안 내가 잘 돌봤어."
송하린의 시선이 정원으로 향했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활짝 핀 튤립들은 그녀가 처음 심었을 때처럼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시절, 그녀는 단지 최서강이 튤립을 좋아한다는 한마디에 이끌려 직접 정원에 수천 송이의 튤립을 심었다.
그가 왜 그 꽃을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뒤, 임하정이 튤립 꽃다발을 들고 병실을 찾아와 그녀의 귓가에 잔혹하게 속삭였다. "하린 언니, 튤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는 사실 아직도 모르죠? 정원에 그렇게 많이 심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서강이랑 그 정원을 지날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가슴 깊숙한 곳에부터 치밀어 오르는 증오와 고통에 송하린은 직접 튤립을 꺾어 짓밟고 싶었다.
그녀는 한때 최서강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사랑을 짓밟을 권리는 없었다.
최서강은 그녀의 휠체어를 밀며 현관 앞으로 다가갔다.
이 별장은 송하린이 직접 설계하고 인테리어한 공간이었다. 현관문 도어락에도 그녀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었다.
휠체어가 멈추는 순간, 송하린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문을 열려 했다. 그러나 최서강이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있는 것을 보아 적지 않게 긴장한 것 같았다.
"하린아, 내가 할게."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지만, 그 속에 미묘한 불안이 스며 있었다.
어쩌면 그가 도어락에서 자신의 지문마저 지웠다는 사실을 눈치챈 송하린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목구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조롱을 꾹 참았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마저 참을 수 없었다.
천천히 손을 뒤로 내뺀 송하린은 최서강이 문을 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딸깍" 걸쇠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직전, 가녀린 손이 안쪽에서 문을 밀어냈다.
임하정은 마치 별장의 안주인인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문에 기대 서 있었다.
무릎 위에 올린 손으로 주먹을 세게 움켜쥔 송하린은 간신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가 식물인간으로 지내는 동안 임하정은 계속 이 집에서 지냈던 걸까? 설마 최서강과 함께 그녀의 침대에서 잠은 잤을까? 5년 동안 그녀의 남편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빼앗은 건 아닐까?
활짝 웃으며 문을 연 임하정은 최서강과 휠체어에 앉은 송하린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서강아, 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 있어?" 송하린이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최서강이 임하정을 향해 조용히 있으라고 손짓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제야 송하린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임하정은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고, 최서강은 그녀의 휠체어를 직접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송하린은 선글라스 너머로 문틀을 잡고 선 임하정의 손을 쳐다봤다.
"서강아, 집이 조금 추운 것 같아. 담요를 좀 덮어줄 수 있어?"
"그래. 소파에 얇은 담요 있어. 내가 가져다 줄게." 최서강은 빠르게 대답하며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임하정이 무의식적으로 최서강의 뒷모습을 쫓는 것을 본 송하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큰 힘으로 문을 닫았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임하정의 손이 현관문에 끼였고, 입술까지 깨물고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았다.
"서강아!" 송하린은 일부러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팔을 휘저었다. "문을 닫으려 했는데, 뭔가 걸린 느낌이 났어. 너무 무서워!"
최서강은 임하정의 손을 확인하려 했지만 송하린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붙잡혀 먼저 그녀를 달래야만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이들 장난감이 문에 끼였어. 괜찮아. 네가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문은 내가 닫을게."
최서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달랬지만 눈언저리에는 귀찮은 기색이 가득 묻어났다.
"서강아, 청환이랑 진희는 어디 갔어?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송하린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쌍둥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이들의 이름을 지은 그녀는 당장이라도 아이들을 품에 안고 싶었다. 뻔뻔한 불륜녀 임하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뿐이었다.
최서강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내일 아침 일찍 어린이 집에 가야 해서 잠들었어. 하린아, 너무 걱정하지 마. 눈이 완전히 나으면 아이들도 볼 수 있을 거야."
선글라스 너머로 송하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녀는 지금 너무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최서강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송하린이 다시 말하려는 순간, 계단을 내려오는 낮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최청환과 최진희가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다.
각각 분홍색과 파란색 잠옷을 입은 두 아이는 잠옷과 똑같은 캐릭터가 그려진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송하린은 흥분된 나머지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아빠." 휠체어에 앉은 송하린에게 시선을 고정한 최진희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그녀의 정체를 눈치챈 듯한 아이는 긴장한 얼굴로 잠옷을 살짝 움켜잡았다.
하지만 최청환은 애교 가득한 얼굴로 임하정을 바라봤다.
"하..." 아이가 작은 입술을 벌리자마자 임하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최청환은 영문을 몰랐지만 당황한 얼굴로 얌전히 입술을 꼭 닫았다.
"청환이랑 진희야?" 송하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며 두 아이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내가 너희 엄마야.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최청환은 두려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연신 뒷걸음질 쳤고, 최진희는 자리에서 조금 망설이다 쭈뼛거리며 송하린의 앞으로 다가갔다.
작은 손을 내민 아이는 그녀가 진짜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얼굴을 만졌다. "정말 우리 엄마가 맞아요?"
"그래… 아기야. 나는 너랑 청환이 엄마야." 송하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아이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혹시 아이가 놀랄까 봐 간신히 참았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녀는 낯선 사람과 똑같았다.
그때, 최서강이 끼어들었다. "진희야, 시간도 늦었으니까 청환이 데리고 방으로 올라가. 내일 어린이집 다녀오면 엄마의 일이 자세히 이야기해 줄게."
잠시 머뭇거리던 최진희는 최청환의 손을 꼭 잡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도 계속 뒤돌아 송하린을 바라봤다.
결국 참지 못한 송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가야, 엄마가 안아봐도 될까?" 선글라스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망설이던 최진희가 어머니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최서강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진희, 빨리 방에 올라가."
이후 송하린의 어깨에 손을 얹은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하린아, 너무 서두르지 마. 아이들한테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
송하린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 최서강은 그녀가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방해하는 것이 틀림없다.
최진희는 최청환의 손을 잡고 순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시무룩한 얼굴인 최청환은 송하린이 아닌 임하정을 돌아보며 짧은 손 키스를 날렸다.
아이의 행동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귀여웠지만 송하린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배신과 슬픔의 무게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송하린은 최서강을 버릴 수는 있었지만 아이들만큼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쌍둥이가 떠난 후, 최서강은 송하린을 침실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기록한 결혼사진은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졌고, 그녀의 얼굴은 천으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송하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최서강은 이제 그녀가 미운 나머지, 사진 한 장조차 남기려 하지 않는 듯했다.
"하린아, 일찍 쉬어. 나는 서재에서 오늘 처리 못 한 일을 마무리할게." 최서강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송하린은 그저 담담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알았어."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최서강이 방을 나서자마자 그녀의 입가에 번진 미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그가 서재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눈치챘다.
송하린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휘청거리는 몸을 벽에 기대며 한 걸음 한 걸음 간신히 창문에 걸어갔다.
바닥에서 한 걸음 뗄 때마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데5분이 넘게 걸렸다. 창가에 다다랐을 때, 그녀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창가에 기대 선 송하린은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최서강과 임하정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