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고승연은 깨져버린 와인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방에서 USB를 꺼냈다.
"여기에 지난 달 배성진이 바람 피우던 장면이 담긴 영상이 있어. 밖에 있는 기자들이 보면 아주 좋아하겠지?"
고승연의 말에 김혜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 집에 몰래 카메라 설치했던 거야?" 김혜성은 혹시라도 자신이 도촬을 당했던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고승연이 팔짱을 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혹시 집에 도둑이라도 들까 봐 설치했던 건데, 뭐 문제라도 있어?"
김혜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늘 연회는 배성진의 승진을 축하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여기서 불미스러운 스캔들이 터지면 그녀의 대표 부인 자리도 물 건너 갈 것이 뻔했다.
잠시 고민하던 김혜성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성진 씨랑 함께 지내고, 아이까지 낳았으면서 어떻게 성진 씨 앞길을 망칠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딸 이야기가 나오자, 고승연의 심장은 또다시 찢어질 듯 아파왔다.
"철썩!"
고승연이 김혜성의 뺨을 세게 내려쳤다.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두 여자에게 쏠렸다.
고승연이 차분하게 말했다. "미안, 파리 한 마리가 있길래! 안 그래, 김혜성 씨?"
김혜성은 뺨을 감싸 쥔 채 분노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고승연이 들고 있던 USB를 떠올리고는 치욕스러움을 꾹 참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파리... 정말 파리가 있었네요.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배성진이 아직 공식적으로 이혼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기에 고승연은 '배성진의 부인' 신분으로 이 연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다시 저마다의 대화로 돌아갔다.
김혜성은 속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배성진과 결혼하는 즉시, 고승연을 당장 감옥에 처넣겠다고 다짐했다.
"혜성아, 괜찮아?" 배성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김혜성은 상처 받은 표정을 하고는 애써 차분히 대답했다. "괜찮아, 성진 씨. 신경 쓰지 마. 별 일 아니었어."
하지만 배성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고승연을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 "고승연, 먼저 이혼하자고 한 건 너였잖아. 이제 와서 질투라도 하는 거야?"
'질투? 배성진은 진심으로 내가 질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딸의 수술 날, 배성진은 회사 일이 바쁘다며 병원에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는 병원에 있었다. 배예원이 아닌 김혜성의 아들의 심장 수술을 위해서 말이다.
딸을 화장하던 날, 그는 김혜성과의 밀회를 위해 또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딸의 장례식 날에마저 그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갔고, 고승연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단 한 마디였다. "그래."
고승연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담으며 대답했다. "어딜 봐서 내가 질투를 한다는 거야? 착각이 심하네."
고승연의 날카로운 말에 배성진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 그는 잠시 말을 잃고 시선을 돌렸다. "USB 가져왔어?"
고승연은 묵묵히 USB를 건넸고 그 모습을 보던 김혜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진 씨, 성진 씨가 이걸 가져오라고 한 거야?" 깜짝 놀란 김혜성이 물었다.
"응, 업무 자료가 필요해서 가져오라고 했어." 배성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고승연을 노려보는 김혜성의 얼굴에 분노가 스쳤다. '고승연이 아까 거짓말을 한 거였어? 그럼 뺨도 괜히 맞은 거고?'
김혜성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무대 위로 이사회 임원 한 명이 올라섰다. "여러분, 오늘 밤 임원진 관련 중요한 발표가 있습니다. 배성 그룹의 발전 전략과 개별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배성진 씨를 회사 대표로 승진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배성진 대표님께서 그룹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배성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한편, 와인잔의 파편이 박힌 고승연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빨간 카펫 위로 떨어진 피는 다행히 눈에 띄지 않았다.
김혜성은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내가 대표님 부인이 될 테니까 아까 때린 그 뺨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각오해."
고승연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부남 꼬셔서 올라간 자리인데, 누가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
어두워지는 김혜성의 표정을 무시한 채 고승연은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배현우가 약속을 지키길 바라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그때, 무대로 비서 한 명이 급히 올라가더니 이사회 임원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였다.
그러자 이사회 임원의 얼굴이 놀란 듯 굳어버렸다. "뭐라고? 배 대표님께서 오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