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응?" 고성수는 미간을 살짝 치켜 올리며 강다빈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평소 강다빈은 이런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깨끗하고 고고한 꽃 같은 여자였다.
강다빈은 그의 반응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촉촉한 눈망울을 들어 올리며 약간 부끄러운 듯 말했다. "전에 그 별장이 환경이 좋다면서 나중에 우리 신혼 집으로 쓰자고 했잖아."
달콤했던 지난 시간이 떠오르자, 고성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원한다면 그 집은 너한테 줄게."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바라보던 심서연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번졌다. "성수 씨,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집을 내게 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바로 말을 바꾸다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에요?"
그 말에 고성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결혼한 지 3년 동안 심서연은 언제나 그의 앞에서 잘 길들여진 애완동물처럼 순종적이었고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고성수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고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작 별장 하나일 뿐이야. 내 명의로 된 별장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다 줄 수 있어."
상황이 어색해지자, 강다빈이 재빨리 나서며 거들었다. "심서연 씨. 그 별장을 저에게 양보해 주신다면, 제가 따로 20억을 보상해드릴게요."
그 말에 심서연은 코웃음을 터뜨렸다. "강다빈 씨. 어젯밤 꿈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거예요? 그 별장의 시가는 최소 120억이에요. 그런데 고작 20억으로 가져가겠다고요?"
그 말에 강다빈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굳더니, 이내 억울한 듯 고성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성수야. 난 그런 뜻이 아니야."
심서연은 더 이상 그녀의 연극을 볼 생각이 없어서 바로 차갑게 말을 잘랐다. "그 별장이 그렇게 가지고 싶으면, 못 줄 것도 없어요. 다만... 그 대신 고씨 그룹의 지분 10%와 바꾸시죠."
"뭐라고요?" 강다빈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심서연 씨. 정신 나갔어요?"
현재 고씨 그룹은 상장 기업으로서 10%의 주식이면 적어도 수백억의 가치가 있다.
이건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였다.
고성수 역시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심서연, 너무 한 거 아니야?"
하지만 심서연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주식 혹은 별장, 하나만 고르세요. 고 대표님이 결정하시죠."
그렇게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강다빈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성수야, 됐어. 그 별장 난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어디에서 살아도 괜찮아."
사랑하는 여자의 다정한 목소리에 고성수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냉랭한 시선으로 심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그 별장은 이제 네 거야."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을 챙긴 심서연은 더 이상 그 둘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강다빈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심서연 씨."
심서연이 고개를 돌리자, 강다빈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동안 성수를 보살펴주셔서 감사 드려요.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제가 고씨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달콤하고 온화한 말투 속엔 뚜렷한 도발이 담겨 있었다.
심서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고성수가 마시던 커피 잔을 집어 들더니, 주저 없이 두 사람을 향해 휙 하고 내던졌다.
"아악!" 강다빈의 비명과 함께, 새하얀 원피스는 한 순간에 갈색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고성수의 값비싼 양복 위로 커피 자국이 번져 그의 얼굴은 분노로 잔뜩 일그러졌다. "심서연, 너 미쳤어?!"
심서연은 커피잔을 탁자 위에 툭 내려놓으며, 입가에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했다. "죄송해요. 방금 너무 역겨운 걸 봐서 손이 좀 말을 안 들었네요."
그 말을 끝으로, 심서연은 두 쓰레기 같은 놈을 더 이상 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단호히 걸어나갔다.
회차 3
막 고씨 그룹에서 나오자마자 심서연은 절친인 박소라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자기야, 오늘 내 생일이야. 네가 안 올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한마디는 꼭 하고 싶었어. 고성수 그 쓰레기 같은 놈이 도대체 너한테 무슨 요술을 부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 인간한테 홀려서 넌 이제 그냥 출가해도 되겠어.]
심서연은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다. [주소 보내.]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상대방의 문자가 폭탄처럼 쏟아졌다.
[헐,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심서연은 차분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문자를 보냈다. [우리 이혼했어.]
[맙소사. 드디어 네가 호구라는 딱지를 떼어냈구나! 거기서 10분만 기다려, 바로 갈게.]
고속도로 위.
보랏빛이 감도는 오픈카가 미친 듯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박소라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를 향해 휘파람을 불며 외쳤다. "자기야, 네가 드디어 그 지옥에서 벗어났으니 저녁에 벨벳 클럽에서 한잔해야지. 오늘 한번 끝까지 달려보자."
심서연은 느긋하게 시트에 기대며 말했다. "그래,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근데 갑자기 왜 이혼한 거야? 잠깐만, 내가 맞혀볼게. 혹시 강다빈이 돌아온 거야?"
"축하해, 정답이야." 그 말에 박소라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비아냥거렸다.
"그 여자, 예전에 고성수가 불구라고 혐오하면서 밤 비행기 타고 도망쳤잖아? 그런데 이제 돌아오니까, 그 인간은 또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그 여자한테 달려가는 거야? 고성수는 그때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게 틀림없어."
"그러게 말이야."
"너도 참, 왜 그런 놈한테 목을 매서 3 년의 인생을 버리다니. 그래도 애가 없어서 다행이지 있었으면 이혼도 쉽지 않았을 거야."
심서연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둘은 같이 잔 적도 없는데 애는 무슨."
"뭐라고?" 박소라는 하마터면 핸들을 놓칠 뻔했다.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한 번도 계를 안 가졌다고?"
'서연이는 그래도 빼어난 미인인데 고성수, 혹시 남자 구실을 못하는 거 아니야?'
"고성수가 강다빈을 위해 순결을 지킨 거야." 고성수 얘기를 꺼내니 심서연은 위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얘긴 그만하자. 먼저 집으로 데려다 줘, 옷 좀 갈아입게."
"그래."
밤 8시 벨벳 클럽. 이곳은 경시 최고의 유흥 장소이다. 눈부신 조명 아래, 사치와 향락이 넘치는 곳. 아무 술병이나 하나 열어도 기본이 수천만 원이었다.
박소라는 옆에 서 있는 친구를 바라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이래야 내 친구답지."
심서연은 새빨간 슬립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요염하고 매끄러운 몸매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고, 굵은 웨이브 머리칼에 붉은 입술까지, 화려하고 대담해 보였다. 그녀는 마치 한 송이 요염한 붉은 장미, 혹은 혼을 빼앗는 요정 같았다.
박소라는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말했다. "서연아. 잠깐만 기다려. 좋은 술 좀 골라올게."
"응."
심서연은 너무나도 눈부셨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조명 아래 그녀의 모습은 모든 남자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그때, 금발로 염색한 남자가 능글맞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가씨, 혼자 있으니까 쓸쓸하지 않아? 오빠랑 한 잔 할래?"
멀지 않은 곳에서 고성수가 여동생인 고현아를 데리고 클럽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강다빈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성수야. 현아야. 나 여기 있어."
고현아는 반갑게 달려갔다. "언니, 드디어 돌아왔구나! 엄청 보고 싶었어."
"나도 우리 현아가 너무 보고 싶었어."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강다빈의 시선은 줄곧 고성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분위기를 끌어올릴 대화 주제를 찾던 중, 갑자기 고현아의 놀란 외침이 터졌다. "오빠. 저 사람, 심서연 아니야?"
그 말에 고성수는 시선을 돌렸다.
흔들리는 조명 아래 요염한 실루엣 하나가 바의 높은 의자 위에 앉아 있었고 붉은 드레스 아래로 드러난 긴 다리가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심서연은 그야말로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