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다음날 아침.
에머리엘이 성문을 나서자 두 명의 전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왕께서 찾으십니다, 왕자님. 법정으로 오세요."
'젠장. 그 멍청한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왕에게 고자질한 모양이군.' 에머리엘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법정으로 향했다. '아마 채찍질 정도로 끝나겠지?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어.'
하지만 문을 향해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주위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뭔가 이상했다.
법정은 언쟁과 고함,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어서 늘 밖에서부터 떠들썩한 곳이었다.
그런데 에머리엘이 문을 열고 들어갔음에도 사람들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법정 한가운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머리엘도 자연스레 그 시선을 따라갔다.
하얀 예복을 입고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두 남자가 무해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복 아래로 살짝 드러나는 단단한 근육, 미묘하게 뾰족한 귀,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얼굴이 에머리엘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우레카이였다. 그들은 너무나도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였다.
에머리엘은 목이 바싹 말라왔다. 직접 우레카이를 마주하는 건 누구에게나 공포 그 자체였다.
"오레스투스 왕이시여, 어찌 하시겠습니까?" 뺨에 길게 흉터가 나서 인상이 꽤 날카로워 보이는 한 우레카이가 말했다.
"안 됩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겁에 질린 오레스투스 왕이 어설프게 연기를 하면서 항의했다.
그러자 얼굴에 흉터가 있는 우레카이의 미간이 더욱 찡그려졌다.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당신은 한낱 인간의 왕이니까요." 그가 위협적인 발걸음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법정에 있던 대신들이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섰다.
"진정하세요, 블라디야 영주." 다른 우레카이가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명령이라기보다는 간청에 가까웠다.
그러나 흉터 있는 우레카이, 블라디야 영주는 매서운 눈빛으로 왕을 노려보았다.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공주를 넘기면,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합당한 대가도 지불하겠습니다." 다른 우레카이가 예복 안으로 손을 넣어 커다란 동전 자루를 꺼내며 덧붙였다.
오레스투스 왕은 두려운 표정을 거두고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대가요?"
"그냥 돈이 아닙니다. 금화도 있습니다." 흉터 없는 우레카이가 말했다.
에머리엘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금화란,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희귀하고 값진 화폐였다.
우레카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공주만 저희에게 넘겨주신다면, 이 자루는 곧 당신 것입니다."
'잠깐... 공주? 설마... 아닐 거야.'
웅장한 문이 다시 열리고 두 명의 경비병이 아이케이라를 법정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안 돼, 안 돼, 안 돼. 누나만은 절대 안 돼.'
에머리엘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옆에 있던 경비병들이 그를 막아 섰다.
그는 애가 타서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건 꿈일 거야. 우레카이가 누나를 노예로 사려고 이곳에 왔을 리가 없어.'
아이케이라를 법정의 가운데로 끌고 오던 두 경비병이 우레카이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아이케이라의 얼굴에 에머리엘과 똑같은 공포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자, 확실히 말해보세요." 오레스투스 왕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저 아이를 팔기만 하면, 이 돈 전부가 내 것이 된단 말입니까? 다른 조건은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흉터 없는 우레카이가 대답했다.
블라디야 영주가 눈에 띄게 떨고 있는 아이케이라 쪽으로 다가섰다. 그는 아이케이라의 뺨을 감싸 쥐고 혐오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군."
오레스투스 왕은 테이블을 세게 두드리면 말했다. "좋아요! 이 순간부터, 아이케이라 공주는 우레카이 당신들 겁니다!"
"안돼!" 에머리엘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더니 법정 한가운데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제발... 누나를 저들에게 넘기지 마세요. 우레카이한테는 절대 안 됩니다! 폐하, 부탁 드립니다."
오레스투스 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금방 팔아버렸어, 에머리엘."
'뭐라고?' 에머리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왕을 올려다보았다. "안 됩니다. 누나는 폐하의 조카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우라카이한테 팔 수가 있단 말입니까?"
높아진 목소리가 여자의 비명 소리처럼 들렸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 운명이 저 산 너머에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누나를 팔아 넘기실 수가 있어요!"
"누가 보면 너한테 선택권이라도 있는 줄 알겠네." 블라디야 영주가 냉소를 지으며 비웃었다.
에머리엘은 몸을 홱 돌려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노려보았지만,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안에 있던 분노는 공포에 잡아 먹히고 말았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우레카이는 물리적 접촉 없이도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저 소문일 수도 있었지만, 누나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확인해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누나가 가는 곳이라면 저도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에머리엘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러자 아이케이라가 공포로 확장된 동공으로 에머리엘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안 돼! 에머리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나랑 같이 갈 거야." 에머리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블라디야 영주가 완벽하게 다듬어진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니. 우린 너 같은 건 필요 없다. 너희 누나만 있으면 돼."
에머리엘이 일어섰다. "상관없어요. 나도 갈 거예요. 날 여기 두고 가면, 내가 어떻게든 누나를 찾을 거예요. 저 거대한 산을 넘어서라도!"
블라디야 영주가 비웃었다. 그는 웃음기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통과 의례 없이는, 저 거대한 산이 너를 통째로 삼켜 버릴 거다. 네가 산 반대편에 도착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 운에 맡기겠어요." 에머리엘이 대답했다.
"안 돼! 제 동생은 안 돼요." 아이케이라가 에머리엘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이러지 마, 에머리엘. 난 이미 끝났어. 너까지 같이 끌려가게 둘 순 없어."
"우리와 함께 간다면 너는 우리의 노예가 될 것이다." 블라디야 영주가 에머리엘을 쏘아보며 단언했다. "우레카이는 네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하지 않아. 그저 주인의 요구에 따라 주인을 섬겨야 할 것이다. 광산이든 지하실이든, 무릎을 꿇든, 바닥에 엎드리든 말이다. 네가 우리 노예가 되는 것에 동의한다면, 너의 자유와 개인 의지는 오늘부로 끝이다."
에머리엘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작은 인간아, 우레카이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너는 예쁜 남자아이니, 섬길 주인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이 에머리엘의 심장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들은 모든 소문이 사실이라면 인간에게는 우레카이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악몽들. 그것을 생각하면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누나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흉터가 없는 우레카이가 말했다. "우리는 노예 두 명을 데려가는 것으로 합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제 합의하면 되겠군." 블라디야 경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흉터 있는 우레카이가 또 다른 동전 자루를 꺼내 왕을 향해 바닥에 던졌다. "둘 다 데려가겠습니다."
"좋아요!" 오레스투스 왕이 다시 한번 테이블을 세게 두드리면서 흔쾌히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