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최고의 재벌인 김씨 가문의 후계자답게 김도준의 결혼식은 사치스럽기 그지 없었다.
신부를 위해 준비된 드레스는 40만 개가 넘는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식되어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에 단어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심하나는 자기가 그 드레스를 입고 김도준과 결혼하는 것을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왔는지 모른다.
김씨 와 심씨는 모두 재벌이지만 차이는 엄청났다. 때문에 심현준은 심씨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번 기회에 심씨 가문의 평판을 끌어 올리기 위해 1000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혼수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유진에게 갈 줄이야...
오늘 아침 항공편으로 도착한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드레스가 이유진의 몸에 걸쳐진 것을 보니 그들은 죽을 쒀서 개줬다는 생각에 복창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이유진은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야 했다. 곁에 빙산같이 차가운 김도준이 있었으니 말이다.
김도준은 위험한 인간이다. 사업수단은 물론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갖췄기에 그의 앞에서는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많은 의문들이 남아 있었고 그녀는 빠른 시일 내에 자초지종을 밝혀 내고 싶었다.
심씨 저택 밖에 수많은 기자들이 물 샐 틈 없이 모여들었다. 작은 기사거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두 호시탐탐 기사거리를 찾아 헤맸다. 하여 김도준은 신부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밖으로 전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 이유진과 함께 헬기로 이동했다.
헬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진 것을 본 심하나의 얼굴에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 김씨 가문 사모님이 되려는 내 꿈은 이렇게 끝난 거예요?"
"아니! 아직 포기하긴 일러." 허수빈의 목소리에 독기가 가득 묻어났다. "김도준이 저렇게 못생긴 여자랑 결혼 한다고? 그것도 영문도 모른 채? 김도준이 어떤 인간인데, 어쩌면 이유진이 첫날밤도 보내지 못하고 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심하나의 두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김도준이 이유진을 제거 할거라는 거예요?"
허수빈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유진이 죽으면 김도준은 다시 널 찾아올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넌 A시의 최고의 재벌 아가씨 타이틀을 지키고 있어야 해. 때가 되면 김씨 가문 사모님자리를 네가 차지 할 수 있을 거야."
헬기로 이동중인 이유진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유진은 여태껏 김도준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A시 최고의 재벌 김도준에 대한 소문은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고 그는 그가 가는 길에 튀어나온 걸림돌 들은 가차없이 잔인하게 처리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심지어 그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들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 하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고달픈 삶을 살아 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여 이유진은 김도준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이유진은 결혼식 내내 얌전한 모습이었다. 이후, 신혼방에 들어온 후에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장 외투를 벗은 김도준은 침대 맞은편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강렬하고도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녀는 흉측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마치 난민 구역에서 뛰쳐나온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하얀색 베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백옥처럼 빛났고 거기에 날씬한 몸매까지 더해지니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소문에 이유진은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다섯 살 때, 그녀가 집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그녀의 어머니는 불바다 속에서 사라졌고 자신의 얼굴에도 큰 화상을 입어 흉측한 허물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못생긴 것도 모자라 머리가 멍청하다고 했지만, 김도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그녀의 두 눈에는 영리한 빛이 가득한 걸 보아. 멍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심계가 깊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낮에 심하나가 그녀한테 달려들 때, 재빨리 그의 뒤로 숨는 몸 놀림, 그건 피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의외라고 생각 했을 뿐 김도준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다름아니라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를 했냐는 것이다. 대체 누가 이토록 치밀하게 일을 꾸민 걸까?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해서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유진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낮에는 말만 잘하더니, 왜 지금은 조용한 거야?" 김도준의 목소리가 방안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이유진은 소름이 끼쳤다. "저는 김도준 씨와 결혼할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너무 갑작스러워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유진은 김씨 가문에 발을 들인 이상,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얌전하게 있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싱긋 지어 보이는 미소와 나긋한 태도를 유지하면 큰 위험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김도준은 참지 못하고 작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유진이 한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심하나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일부러 '여보'라고 불렀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녀의 목소리에서 불안한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이유진도 그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을 뿐더러, 그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허점도 잡히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유진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김도준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반응도 하기 전에 그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동화 속 신부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그의 품에 안기자 이유진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김도준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김도준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신혼부부가 결혼식 첫날밤에 해야 하는 게 뭔지 내가 꼭 하나하나 설명해야 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가볍게 침대에 내던지고는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김도준의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이유진은 경악했다.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손을 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