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임경학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임유정의 모습을 찾다가, 익숙한 인물을 보고는 눈빛이 반짝였다. "우 대표님, 사모님 오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우태민이 고개를 들었다. 차창 너머로 바라보자, 임유정이 우아하게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몸에 딱 붙는 강렬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무릎 위까지 과감하게 올라온 길이였다.
장미꽃처럼 주름 잡힌 치맛자락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가느다란 허리, 등 아래로 흘러내린 긴 흑발은 자연스럽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임유정이 걷는 인도는 마치 그녀만의 런웨이처럼 보였다.
임경학은 그 모습에 넋을 잃고 감탄을 내뱉었다. "와, 연예인 같네요."
우태민은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이런 옷차림으로, 이혼 첫날부터 누구를 유혹하겠다는 거지?'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의자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우태민이 전화를 받자마자 짧은 몇 마디가 오갔고, 통화를 마칠 무렵 그의 표정은 먹구름처럼 어두워졌다.
"본가로 가."
임경학의 눈이 커졌다. "그럼 사모님은요?"
"같이 데려가."
임유정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길가에 세워진 링컨을 알아봤다. '직접 가서 불러달라는 건가?'
임유정이 차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뒷문이 열리고 남자의 긴 팔이 그녀를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
바로 다음 순간, 차량은 굉음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급격한 가속으로 중심을 잃은 임유정은 그대로 우태민의 무릎 위로 넘어졌다.
손이 먼저 반사적으로 닿은 곳은 남자의 민감한 부위였고, 그곳은 그녀의 손길에 반응이라도 하듯 살짝 움직였다.
손바닥에 뜨거운 열기가 번지자, 임유정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다가 머리를 천장에 세게 부딪쳤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방금 전까지의 우아하고 기품 있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임유정은 머리를 감싸며 숨을 몰아 쉬었다. "이혼하러 온 거 아니었어?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운전석에 앉은 임경학은 귀를 쫑긋 세웠다. '혹시 대표님께서 마음이 바뀐 건 아닐까?' 수년간 함께 지낸 아내에게 정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임경학은 생각했다.
하지만 우태민은 방금 전의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가보면 알아."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박하사탕을 꺼내 느릿하게 포장을 벗기더니 입에 넣었다. 마음속의 불안을 억누르려는 듯했다.
임유정은 그가 더 말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고 고개를 숙이며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차는 한 시간 넘게 달려 대저택에 도착했다.
광대한 부지에 전통 건축 양식과 정교한 조경이 조화를 이룬 저택에는 다리, 시냇물, 정자, 복잡한 오솔길이 어우러져 있었다.
문자를 막 보낸 임유정은 익숙한 풍경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왜 날 본가에 데려온 거야?"
오늘은 두 사람의 결혼 3주년 기념일이었고, 우씨 가문에서는 그들의 결혼기념일마다 기념 만찬을 열었다.
하지만 전날 밤까지만 해도 우태민은 임유정에게 가족 모임에 오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었는데, 이혼을 앞둔 상황에서 그녀를 여기에 데려온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차가 호수 옆에 자리한 별장 앞에서 멈춰 섰고, 우태민은 임유정의 손목을 붙잡고 차에서 내려 급히 2층으로 향했다.
뒤따라온 집사는 헐레벌떡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노부인께서 오늘 아침에 깨어나시더니 곧바로 쓰러지셨어요. 다행히 어르신께서 빨리 발견하셔서... 안승원 의사가 진료 중이십니다."
집사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노부인께서 이번이 두 번째 쓰러지신 건데, 이번엔 코와 입에서 피까지 흘리셨고 장기 부전 증상까지 보인다고 합니다.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2층 안방 앞에는 이미 많은 가족이 모여 있었다.
우진환 어르신과 그의 아내 이경숙 노부인은 세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장남 우주태는 군에서 일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군대에서 보냈다.
차남 우택철은 우태민의 아버지로, 예전에는 우씨 그룹의 임원직을 맡았지만, 현재는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막내 우창석은 경성 시장으로, 출장 중이라 오늘 참석하지 못했다.
우태민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계모인 손효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조롱하듯 말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생사엔 관심도 없고, 돈에만 눈이 멀었나 봐."
손효연은 우태민 뒤에 서 있는 임유정을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어머,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사람 보고도 인사 한마디 없네."
실크 드레스를 입고 팔짱을 낀 손효연은 얼굴에 원망이 가득했다.
우택철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태민아,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아끼셨는데, 좀만 늦었으면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릴 뻔했어. 회사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 짐을 좀 내려놔야 하지 않겠어?"
가족들의 끝없는 말다툼에 지친 우태민은 우진환 어르신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할머니 상태가 어떠세요?"
하얀 머리와 수염, 지친 표정의 우진환 어르신은 닫힌 방문 앞에 축 늘어진 듯 서 있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안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구나." 우진환 어르신은 마른 몸에 어울리지 않게 강한 힘으로 우태민의 손목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민아,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해."
그 손의 힘은 마치 천근만근 같았고, 우태민은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그럴 리 없어요. 할머니는 평소에도 건강하셨고, 이번에도 괜찮으실 거예요."
임유정은 문 앞에 모인 어른들께 일일이 인사한 후, 우태민 뒤에 자리를 잡고 두 손을 모은 채 방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노부인은 우진환 어르신처럼 임유정을 손주며느리로 진심으로 아껴주던 분이었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태민이 이런 가족 일에 그녀를 부른 건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며 흰 가운을 입은 안승원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부인께서 지금 매우 위중한 상황입니다. 가능한 모든 치료를 시도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