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임신이라니."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였지만, 내 손에 들린 테스트기를 보며 느낀 건 기쁨이 아닌 공포였다.
병원 복도 TV에서는 내 남편 서래환이 불륜녀 채이화와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법적 아내인 나를 '상간녀'라 손가락질했고, 남편은 나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병원 로비에서 마주친 서래환은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채이화의 손을 잡고 채혈실로 사라졌다.
그 차가운 뒷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이 남자의 피가 흐르는 아이를 낳는 건 죄악이라고.
나는 그 자리에서 수술을 예약하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혼 서류 준비해 주세요. 위자료는 필요 없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아이를 잃은 슬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체면과 회사 주가만 걱정하며 나를 몰아세웠다.
"고작 시상식 트로피 하나 못 받았다고 홧김에 애를 지워?"
그의 뻔뻔한 태도에 나는 비로소 웃음을 터뜨렸다.
10년 전, 그의 어머니와 약속했던 '은혜 갚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미리 처분한 주식 대금 수백억 원과 이혼 서류를 그에게 던졌다.
"착각하지 마. 내가 널 사랑해서 참은 게 아니야."
"이제 쇼는 끝났어. 서래환, 넌 이제 빈털터리야."
제1화
"임신이라니."
내 손에 들린 임신 테스트기는 선명한 두 줄을 보여주고 있었다.
멍하니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봤다.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고 했다.
의사는 희박한 확률이라고, 기적에 가까울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은 너무나 선명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야 할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이런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 아이를 끌어들일 수는 없어.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를 낳는다면, 이 아이는 그의 아이이기도 하다.
그의 차갑고 무정한 피가 흐르는 아이.
이런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지만 동시에 역겨운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세상에, 채이화 씨랑 서래환 대표님 아니야?"
"둘이 너무 잘 어울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아."
"진짜 최고 선남선녀 커플이야. 너무 부러워."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나를 비웃는 듯한 목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내 남편 서래환과 그의 불륜 상대 채이화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짜고 친 듯이 다정하게 웃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지만 그 그림은 허상이었다.
채이화는 오랫동안 서래환의 연인인 척 미디어에 노출되어 왔다.
세상은 그들이 진정한 연인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전,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찍혔다.
기사에는 내가 서래환과 채이화 사이에 끼어든 '촌스러운 비서'로 묘사되었다.
온갖 악플과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아무도 내가 서래환의 법적인 아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마주하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줄 뿐이었다.
"어머, 송희 씨 아니세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이 굳어버렸다.
채이화였다.
그녀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뭘 하세요? 혹시… 따라왔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채이화의 눈빛은 마치 나를 비웃는 듯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 남편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채이화와 함께 서 있었다.
그녀의 말에 서래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나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소송희, 또 무슨 짓이야."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따라왔다' 는 채이화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마치 악의적으로 침입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비난하는 듯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숨이 막혔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회차 2
서래환은 나를 변호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채이화의 손을 잡고 채혈실로 들어섰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채이화를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사람이었다.
그의 본성이었다.
나는 한없이 비참해졌다.
방금 전까지 아이를 낳을지 고민했던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
이런 남자와 똑같은 피가 흐르는 아이를 낳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아이가 나처럼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만 나의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수술을 예약했다.
병원을 나서는 길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이혼 서류 준비해 주세요."
변호사는 난처한 듯 말했다.
"사모님, 이혼 사유가 불충분합니다. 남편분의 외도 증거를 더 모으시는 게 유리하실 겁니다."
"아이 관련 친자 확인 소송까지 하시면 재산 분할에 훨씬 유리하십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물론 재산을 더 받는다면 좋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절반이면 충분합니다. 이 결혼 생활이 하루 더 지속되는 건 저에게 고문과 같습니다."
"적게 받아도 좋으니, 빨리 끝내주세요."
몸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래환이 돌아왔다.
나는 평소처럼 무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늘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마치 달려온 사람 같았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너무 강하게 잡아서 손목이 아파왔다.
"실시간 검색어 봤어."
나는 아픈 손목을 빼냈다.
"난 안 봤는데."
내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차피 채이화를 찬양하고 나를 비난하는 내용일 터였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채이화의 팬들은 끊임없이 나를 '상간녀'로 몰아갔다.
서래환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격앙되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목구멍에서 억지로 쥐어짜내는 듯한 소리였다.
"너 오늘 병원에 가서… 수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