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송지아, 너 오늘 네 동생 대신 약혼해야 하니까 당장 시골에서 올라와! 우리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송지아는 즉시 어머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녀는 세 살 때, 유괴를 당했고 지난달에야 겨우 친부모를 찾았다. 그러나 부모는 그녀에게 작은딸 대신해 누군가와 결혼할 것을 강요했다.
쾅!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총소리였다! 그녀는 즉시 의학 서적들을 챙겨 골목을 빠져나갔다.
바로 그때, 그녀는 다가오는 남자와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남자가 쓴 은색 가면 아래로 날렵한 턱선이 언뜻 보였다. 가면 아래는 딱 봐도 값비싸 보이는 양복이었다. 하지만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부상을 당한게 확실했다.
"움직이지 마…"
주지훈의 목소리는 거칠고 위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을 마친 그는 즉시 송지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그는 송지아의 얼굴을 확인했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의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와 빨간 입술, 화상을 당한 듯 보이는 허물들이 얼굴 대부분을 뒤덮었지만 그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그는 근 10년 간 흑백 세상 속에서 살았다. 색감이라곤 전혀 볼 수 없는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마치 칠색 무지개를 본 것 같았다.
같은 시각, 검은 옷을 입은 일행들이 그를 뒤쫓고 있었다.
"쫓아. 다쳤으니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거야!"
골목 안은 순식간에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였고, 두 사람의 숨소리만 미약하게 들릴 뿐이다.
송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놈들의 목에는 제비 문신이 있었다. 악명이 자자한 킬러들이 틀림 없었다.
"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는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
"우리 일을 도와. 돈은 얼마든 줄 테니까."
주지훈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세상은 여전히 흑백이었지만, 그녀를 볼 때만큼은 흑백 세상이 칠색 무지개 빛으로 물들었다.
'대체 그녀는 누구일까?'
골목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송지아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귀찮게 됐네."
그녀는 남자의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어 그녀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꿔 입을 열었다.
"자기야, 우리 이러는 거 남들이 보면 어떡해?"
마침 머리 위에 널어 놓은 빨래들이 있었고 하얀 천이 둘의 모습을 어렴풋이 가렸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플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킬러들의 발자국 소리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때,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로인해 둘 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보면 어때?"
우린 일부러 이런 외진 시골까지 와서 라이브 방송하는 거잖아. 누가 본다고 해도 괜찮아. 어쩌면 우리 방송이 더 핫해질 지도 몰라."
주지훈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탓에 송지아에게서 풍기는 싱그러운 풀 내음을 맡을 수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 색깔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남자는 허리를 숙였고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천에 가려진 두 사람은 마치 열애 중인 커플처럼 보였다.
킬러들은 못 볼 걸 봤다는 듯 욕설을 내뱉으며 다른 방향으로 추적했다. 남의 라이브 방송에 얼굴이 찍히는 건 싫었던 것이다.
위험이 사라지자 송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수는 4억이야."
얇은 옷감을 사이로 그녀는 남자의 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손바닥은 약간 꺼칠꺼칠하고 컸으며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몸매도 좋았다.
그녀의 현재 위치에서 너무 잘 보였다. 살짝 벌어진 셔츠 틈사이로 은근히 보이는 탄탄한 가슴근육, 근육 라인도 흠 잡을 데 없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불 수 없었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튼튼한 역삼각형 몸매, 남성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었다.
"좋아. 연락처 줘."
주지훈은 여전히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금 바로 보내줄게."
그는 그녀의 몸에서 피어 오르는 오색찬란한 빛을 빠짐 없이 눈에 담았다.
또다시 두 눈이 마주쳤고 송지아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남자의 눈은 마치 야수 같았고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쿵, 쿵, 쿵.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번호로 보내주시면 돼." 송지아는 그를 밀어내고 거래용 계좌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방금은 착각이었을 거야.'
그녀는 일부러 흉측해 보이게 화장을 했다. 그녀의 절친마저도 이건 화상으로 얼굴을 잃은 거나 다름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설마 취향이 그리 독특하겠어?'
이내, 잘 훈련된 것으로 보이는 보디가드들이 도착했다.
"형님, 저희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그 놈들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선두에 선 남자는 주지훈의 곁에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 멈칫하더니 즉시 경계 태세를 갖췄다.
"형님, 이 여자도 놈들과 한패입니까? 어떻게 처리할까요?"
보디가드로 일하면서 가녀린 여자로 위장한 킬러들을 수도 없이 많이 겪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나 못생긴 킬러는 처음이었다.
송지아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입막음을 하려고 날 죽이려는 건가?'
그녀는 남자가 흔쾌히 4억을 준다고 했던 것도 아마도 그 이유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쯧 혀를 차더니 연기를 펼쳤다.
"늬들 뭐야, 나 주지훈의 약혼녀야! 그 대단한 주씨 가문 몰라? 너희들, 날 건드렸다간 큰 코 다칠 줄 알아!"
'약혼녀?'
보디가드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주고 받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형님이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여자와 약혼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 너 장난하냐? 우리 형님이 바로..."
회차 2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중간에서 잘렸다.
"닥쳐."
주지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송 아가씨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당장 사과드려."
그 말에 일행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털썩!"
그들은 전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송 아가씨,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송지아가 입을 열었다.
"됐어. 어차피 받아야 할 보수는 받았으니까. 별일 없어 보이니까, 난 이만."
하지만 곧 덩치가 큰 남자가 그녀의 앞을 막았다. 넓은 어깨와 길게 뻗은 다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고마워. 아까 보니 정말 용감하더군."
주지훈의 약혼 상대는 육씨 가문에서 잃어버렸던 큰딸 송지아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얼굴이 흉측하게 망가졌으며, 지난달에야 육씨 가문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 온 즉시 육씨 가문 사람들의 괴롭힘을 당했고 심지어 양부모의 성씨를 아직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소문 속의 그녀는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소문과 완전히 달랐다.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 말도 안 되는 소리.'
"송지아,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의 목소리는 중저음이었고 매력적이고도 미묘하게 들렸다.
송지아는 별로 놀라지 않은 기색이었다. 자신이 직접 주지훈의 약혼녀라고 밝혔으니 그녀의 신분을 알아 차리는 것쯤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눈치는 빠르시네. 하지만 우린 다시는 안 보는 게 좋을 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두 팔로 팔짱을 꼈다.
"충고 하나 하지. 손목시계나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송지아는 말을 마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약혼식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형님, 이 시계는 어르신께서 선물하신 겁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미 확인했는데,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주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송지아이 그런 시덥잖은 농담을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단검을 꺼내 시계를 분해했다.
철컥!
시계 내부에 하얀 분말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주지훈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사람 시켜서. 병원에 가져가. 이 분말이 뭔지 알아내."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전에 그들은 직접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형님, 저희는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그들이었지만 시계 안에 분말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송지아는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주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했다. "벌은 알아서들 받아."
그 즉시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예! 형님!"
주지훈이 정신을 차렸을 때, 송지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애초에 나타난 적이 없는 듯 흔적 하나 없었다.
시간 후, 송지아는 약혼식이 열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에서 어머니 맹여정이 살갑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평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지연아, 네가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는 바람에 엄마는 네가 화가 난 줄 알았지 뭐니. 그래서 나도 홧김에 통화 중에 심한 말을 좀 했어..."
육씨 가문과 주씨 가문은 일찍부터 주지훈과 송지아의 혼약을 정했다.
재벌가들 사이에서도 주씨 가문은 인맥, 재력, 지위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최상급 재벌 가문이다.
하지만 주지훈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다. 얼굴이 못생긴 데다 망나니 짓을 일삼고 다니고 그의 손에 망가진 여자가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지훈 본인을 직접 만나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니 맹여정은 그녀가 그토록 애지중지 키운 작은딸 육소희를 단연코 주지훈에게 시집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큰딸을 다시 데려온 것이다.
"맞아요, 언니. 엄마는 언니를 정말 아끼세요."
육소희가 수줍게 앞으로 나서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서 원래 이 약혼도 언니한테 다시 돌려 주신거에요."
송지아는 차갑게 비웃으며 손을 손을 뺐다.
육소희의 행복과 육씨 가문의 발전이 달려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평생 그녀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위선적인 사람들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 호텔 직원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이봐요, 그 대단하신 주대표를 언제 만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그녀의 양부모는 죽기 전에 그녀에게 주씨 가문에 가서 생체 칩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육씨 가문에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등 떠밀려 주지훈과 결혼하게 될 줄은 그녀도 몰랐다.
기회가 제 발로 굴러 들어 온 것이다.
맹여정은 깜짝 놀랐다. '못 배워 먹은 년!' 하지만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가정부가 주씨 저택으로 달려갔다.
"도련님, 송 아가씨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며 먼저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남자는 아주 잘생긴 얼굴이었다. 속눈썹은 길고 짙었고 이목구비가 아주 뚜렸했다. 얼핏 보면 혼혈인 듯 보였다.
"곧 간다고 전해."
가정부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예, 도련님!"
곧 서재는 다시 조용해졌다.
옆에 앉은 빨간 머리의 남자가 하품을 했다.
"야, 주지훈. 네 그 못난이 마누라, 말하는 투가 아주 보통이 아닌데?"
오민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오전에 기습을 당한 일 말이야. 너 설마, 널 구해 준 사람을 잘 못 본 건 아니냐?" "송지아는 겁이 많고 무능한 여자라고 들었단 말이야."
주지훈의 얼굴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몰라. 하지만 사람에게서 다른 색깔을 본 건 그 여자가 처음이야.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꼭 찾아내고 말 거야."
오민혁은 혀를 끌끌 찼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잘못 본 거 아니냐? 의사도 네 눈이 여전히 정상이 아니라고 했잖아."
솔직히 주지훈도 자신이 잘 못 본건 아닌지, 의심을 했었다. 그의 시야는 다시 흑백으로 돌아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온 검사 보고는 틀릴 리 없다. 그 분말은 분명히 독약이었다. 그러니 그 여자가 연속으로 두번이나 그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
그는 고개를 살짝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맞는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되겠지."
회차 3
연회장에 도착한 송지아는 오전에 만났던 가면남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때,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주대표님이 정말 오셨어요!"
시끄럽던 연회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더니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터주었다.
송지아는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봤다.
주지훈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색 셔츠를 입은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마냥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팔뚝에 보기 좋게 자리 잡은 근육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남자가 소문처럼 잔뜩 못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짙은 눈썹과 그 아래에 보이는, 날카롭게 솟은 콧대, 그리고 칼로 다듬은 것 같은 턱선까지, 너무 잘생긴 얼굴이었다.
"어머, 주대표님이 저렇게 젊고 잘생기셨다고?"
"언론의 인터뷰조차 일체 거절하시는 분이시잖아. 공개 석상에도 거의 모습을 안 드러내셔서 여태 몰랐어! 영화 배우들 보다도 잘생긴 것 같아."
"너무 잘생겼어요. 성격이 안 좋다는 소문만 아니면…"
"쉿, 조용히 해요. 주대표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분인지 잊었어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던데요!"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송지아는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찰나, 그녀는 주지훈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 자식, 눈빛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너무 이상했다.
송지아는 주지훈의 몸이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는 걸 예리하게 발견했다. 심지어 놀란 기색이 스치는 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설마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건 아니겠지?
내가 분장 하나는 끝내주게 하긴 했지!'
한편, 주지훈의 마음속에는 거대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오민혁, 저 여자야."
송지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는 다시 한번 확인 했다. 오전에 자신을 구해준 여자는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교통사고 이후, 주지훈은 세상은 흑백으로 뒤바뀌었다.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했지만,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이 어두침침한 흑백의 세상에 점점 익숙해 지고 있었다.
하지만 송지아... 그녀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것도 몇번이나.
오민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확실해?"
"어. 저 여자한테서 색깔이 보여."
주지훈은 자신을 가두던 흑백 세상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송지아를 중심으로 선명하고 밝은 색깔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녀가 손에 든 잔이 아름다운 황금색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송지아가 입은 원피스가 검은 색이라는 것도 보였다. 심지어 그 색깔에서 섬세한 광택까지 느껴졌다.
나머지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오직 그녀의 주위만은 눈부신 색깔로 가득했다.
"실화냐?"
오민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바로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볼게."
수많은 명의도 고치지 못한 난치병이다. 그런데 불현듯 기적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오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약혼은? 약혼할 거냐?"
주지훈은 여전히 송지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지."
"이 결혼, 반드시 해야겠어."
오민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녀가 주지훈에게 색깔을 볼 수 있게 해줬다고 해도, 그 못생긴 여자와 굳이 결혼까지 할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주지훈이 미쳤나?'
그때, 맹여정이 앞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주대표님, 제 남편과 아들은 대표님께서 일찍 도착하실 줄 미처 몰랐던 탓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바로 도착할 겁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송지아를 앞으로 밀었다.
"여기, 저희 지아입니다. 어렸을 때 뵌 적이 있으실 겁니다. 원래 대표님과 약혼하기로 한 사람도 이 아이였죠. 하지만 지아가 어렸을 때 길을 잃어버려서 그만... 이제서야 저희는 우리 딸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니 대표님께서는 우리 지아와 약혼하시는게…"
맹여정은 서지안을 육소희의 대타로 그와 결혼 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몇마디 말로 얼렁뚱땅 넘기려 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육소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세상에. 주지훈이 이렇게 잘생겼을 줄이야.'
그녀는 후회가 막심했다. '주지훈을 그 못생긴 년한테 넘겨주지 말았어야 했어!'